#53 릴리앙 튀랑 - 프랑스의 명수비수
이번 회 업데이트 시간은 바로 릴리앙 튀랑! 역시 또 수비수 이야기군요. 프랑스의 손꼽히는 명수비수 였던 그가 2008년 8월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튀랑은 국가대표로 무려 142시합을 소화했으며, 이것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프랑스 대표팀의 최다출장 기록으로 남을 것 입니다. 오늘은 튀랑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글의 초안은 2008년 9월에 작성되었습니다.)
프로필
이름 : 풀네임 Ruddy Lilian Thuram-Ulien
생년월일 : 1972년 1월 1일
신장/체중 : 185cm / 78kg
포지션 : DF (중앙 수비수, 오른쪽 사이드백)
국적 : 프랑스
국가대표 : 142시합 2득점 (역대 출장 1위)
일대일 수비의 달인, 철벽수비 튀랑 이야기.
튀랑은 현역시절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지단, 앙리 등과 함께 프랑스의 슈퍼스타이자, 인기스타였습니다. 튀랑은 두뇌가 대단히 명석해서, 지성파 축구인으로도 불립니다. 철학자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2005년, 프랑스에서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르코지는 초강경진압에 나서며, 인간쓰레기다, 청소해버리겠다는 막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 당시 튀랑은 단호히 나서서 "나는 인간쓰레기가 아니다" 라면서, 이같은 이주민들의 폭동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현상학자는 인간은 현실에 대해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도 했지요. 튀랑은 그걸 알았습니다. 문제 뒤에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이라고 해야할까요. 서론이 또 길었습니다. 여하튼 튀랑이 지성파 축구인임을 알았는데.
사실 축구하면서 머리도 비상하다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는 듯 합니다. 브라질의 소크라테스라는 선수는 의사이기도 했는데, 넓은 시야와 감각적인 패스를 자랑하면서 80년대 인기스타로 군림했습니다. 튀랑도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전술적인 시야로 통합니다. 흐름을 파악하는 감각이 탁월해서, 오랜 세월 프랑스 대표팀의 부동의 수비수로 활약했습니다. 혹자는 깊은 지성을 가진 현대 축구의 보물 같은 선수였다며 극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좀 더 스타일을 살펴봅시다.
튀랑은 체격이 좋았고, 그 덩치(?)를 살려서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수비로 명성을 날립니다. 운동량과 스피드 역시 훌륭한 평가를 받으며, 일대일 수비에서는 당대 최고클래스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수비수이면서도 안정적이게 볼을 다루는 테크닉도 뛰어난 편이며, 오른쪽수비수를 맡았을 때 올라오는 크로스 실력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써놓으니 별로 흠잡을데가 없어보이는데, 정답입니다. 항상 냉정했으며, 감각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프랑스에게 큰 힘이되었던 선수였습니다. 리자라쥐-로랑블랑-드사이-튀랑 이 이끌던 황금기 프랑스 수비는 이제 전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철의 포백이라고 불렀습니다. 최고의 철벽수비진을 가지고 있는팀은 두려울게 없는 법이지요. 이들은 98월드컵, 유로2000을 연거푸 우승하면서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이제 튀랑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튀랑은 북중미 카리브해에 있는 과들루프에서 태어났습니다. 과들루프는 인구 40만이 살고 있는 섬나라이며, 이 곳은 프랑스령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에서 1월 1일 태어난 아이가 바로 튀랑이었습니다. 튀랑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가까이 했으며, 가톨릭 신부를 꿈꾸었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다가 1981년, 튀랑이 9살이었을 때 프랑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공을 차게 되었는데... 튀랑은 축구에 재능이 있었고, 또 기막히게도 좋은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1990-91시즌, 튀랑은 당시 강호로 손꼽히던 AS모나코 팀에서 데뷔전을 가지며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팀의 감독은 훗날 명장으로 불리게 되는 "아르센 웽거"감독이었습니다. 웽거 감독의 지도 아래, 실력이 나날이 좋아져가던 튀랑이었고, 20대 초반부터는 당당한 주전수비수로서 국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AS모나코는 최근 박주영 선수의 이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데, 90년대에도 프랑스의 손꼽히는 명문팀이었습니다. 90년대 10년동안 4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이 2회 뿐이었는데, 요즘 들어 조금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두각을 나타내던 튀랑은 1994년에는 국가대표로도 데뷔하면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이름난 수비수로 성장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996년 튀랑은 드디어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세리에A의 파르마 팀이었습니다. 파르마는 90년대 잘 나갔습니다. 특히 튀랑과 칸나바로 등이 버티고 있는 수비라인은 유럽 톱클래스로 평가 받았습니다. 파르마는 튀랑이 이적해 온 1996-97시즌에는 리그 2위를 기록하는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파르마는 90년대 후반, UEFA컵을 따내기도 했으며 상당히 훌륭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랬던 파르마가 얼마전 강등당하자, 적잖은 세리에 팬들이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파르마 시절의 튀랑은 평판이 대단했는데, 수비력으로는 최고수준이라는 아낌없는 찬사도 쏟아집니다. 이 눈부신 시절 98년 월드컵 이야기도 잠깐 하고 가야겠습니다. 프랑스는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튀랑의 공헌도 특별했습니다. 4강전 크로아티아와의 명승부는 유명합니다. 튀랑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고, 수케르가 훌륭하게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이후 튀랑은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했고, 혼자서 두 골을 넣으며 위기에서 프랑스팀을 구해냅니다.
큰 무대에서 이렇게 과감한 판단으로 놀라운 활약을 펼친 튀랑. 그는 실수했다고 주눅들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하게 그 실수를 발판삼아서 눈부신 활약을 펼쳐보였습니다. 위기의 4강을 넘긴 프랑스는 결승에서 브라질을 오히려 쉽게 완파하면서 우승합니다. 98년 월드컵, FIFA는 튀랑에게 브론즈볼을 줍니다. 그는 필시 숨은 MVP였습니다. 그가 크로아티아 전에서 넣은 두 골은, 대표팀 142경기를 뛰면서 넣은 유일한 골들이었습니다. 2년 후, 유로2000에서도 튀랑은 우승에 공헌하면서, 과연 명수비수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1-02시즌,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던 튀랑을 데려오고자 유벤투스가 움직입니다. 엄청난 금액을 부르는 유벤투스. 400억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 당시 수비수 사상 최고이적료를 기록하며, 튀랑은 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초창기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명불허전, 튀랑은 점차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오른쪽수비수로도, 중앙수비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부동의 수비수로 실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2001-02시즌 마침내 리그우승 트로피를 획득하는 튀랑이었습니다. 유벤투스에서 수 차례 우승을 차지합니다. 한편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에 참가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되면서 프랑스가 충격의 예선탈락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유로2004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튀랑하면 오른쪽 수비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편이지만, 실제로 튀랑 스스로는 중앙수비수가 제일 적성에 맞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수생활 마지막에는 주로 중앙수비수를 맡아서 플레이 하게 됩니다. 여하튼 튀랑은 대표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구심점들을 여럿 잃어버린 프랑스 대표팀이 휘청휘청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2006년 독일월드컵에 가보지도 못할 위기에 처하자, 결국 난국을 타개하고자 지단, 마켈렐레, 튀랑이 구세주로서 다시 한 번 프랑스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월드컵 유럽예선은 통과성공!
2006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철의 포백의 황금시대는 지났고, 프랑스의 수비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노쇠 프랑스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튀랑은 갈라스 등과 훌륭한 콤비를 보여주면서 철벽같은 수비를 또 한 번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튀랑은 2006년 월드컵을 통해서 프랑스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기록을 갈아치웠으며, 프랑스는 놀랍게도 결승전까지 진출합니다. 브라질 마저도 프랑스에게 무릎을 꿇고 맙니다. 앙리를 비롯해서 회춘한(?) 30대 중반의 지단, 튀랑 등이 이끌던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영광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승전에서, 지단은 박치기를 날려주시며 퇴장 당했고, 프랑스는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여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마지막 월드컵 무대... 튀랑 역시 아쉬움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후, 현역 은퇴도 고려하는 분위기 였습니다만 튀랑은 이후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조금 더 선수생활을 이어나갑니다. 유로2008에도 튀랑은 참가하게 되었는데, 역시 그도 나이는 숨기지 못했습니다. 노쇠 프랑스는 더 이상 회춘하지 못했고, 부진 끝에 프랑스는 조별리그탈락의 아픔을 맛보고 맙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튀랑은 프랑스 대표팀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길었던 대표팀 생활이었습니다. 통산 142시합 출장, 역대 1위입니다. 유로2008 이후에는, 이적을 위해 메디컬테스트를 받았었는데 심장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집니다. 이로 인하여 결국 2008년 8월 1일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 튀랑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그것은 지켜봐야 하겠지요.
프랑스 축구는 플라티니와 매직스퀘어로 통하는 마법같은 미드필더진이 있던 시대가 있었으며, 지단이 지휘하던 황금시대이자 철의 수비로 명성을 날리던 멋진 시대가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이제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닙니다. 리베리, 벤제마 등 스타들은 또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축구가 다시 한 번 재도약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통했던 튀랑의 수비영상을 덧붙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그리고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월드컵의 영광을 경험하는군요! 과연 엄청났습니다. 동영상 업데이트 했습니다.
2008. 09. 02. 초안작성.
2020. 05. 0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