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27. 14:07

 다크나이트 처럼, 한 번 보면 좀처럼 내용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습니다. 최근 저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다시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계속해서 떠올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인간들이 똑똑한 유인원을 싫어하는 대목이 너무 선명해서, 저는 이상하게도 자꾸 애니메이션 건담이 생각나더군요. 흔히 애니메이션 건담시리즈, 마크로스시리즈 등을 현실 반영의 리얼한 세계관으로 묘사하는데, 만화임에도, 똑똑한 주연들이 활약하기 보다는, 휘둘림 당하고, 희생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몇 가지 생각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떠오르는 주제는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한 고찰입니다. 유인원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쇠창살에 갇힌 장소? 아니면 음식이 좀 더 잘 나오는 동물원? 곡예를 펼칠 수 있는 서커스단? 사람과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박사의 집? 괜한 보기들은 필요 없겠지요. 유인원은 자연에 있어야 가장 편안할 것입니다. 마음껏 나무를 오르고, 넘나들고, 즐거운 인생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진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솔직히 저는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답이 없는 경우,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저는 가치관이 조금 수정된 이후로는, 일단 쓰고 봅니다 (...) 답의 근처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우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즉 너무 틀에 박혀서 적당히 안주하며, 똑같은 일만 반복하게 된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채, 먹고 살아가다가 언젠가 병들어 죽고 말테니까요. 한 달에 몇 번이나마 산행을 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말로 맑아집니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활동을 하고, 움직인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행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행복과 웃음이라는 것이 혼자 덩그러니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있을 때, 우리는 보다 더 즐거울 수 있고, 살아가는 일이 풍요로워 질 수 있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같이 생활하기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을지라도 함께 지낸다는 것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안겨다 줍니다.

 

 당연히 마음이 어느 정도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겠지요. 나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는 몹쓸 생각은 잠깐의 쾌락적인 기분은 줄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람은, 슬픈 인생 아닐까요. 다르게 말하자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소중함 중 하나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머나먼 어딘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지점에서부터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하는게 필요합니다. 만약 이곳이 아니라고 끝없이 생각된다면, 가까운 것부터 변화시켜나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유인원 지도자 시저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몇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저는 어느새 많이 컸고, 문제를 일으켜서,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처음에 시저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위로를 얻고자 합니다. 창문을 그려보기도 하고, 거기에 기대어서 언젠가 다시금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지금 순간을 어떻게든 참아보고자 합니다. 시저는 곧 알게 됩니다. 이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며,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창문을 지우는 장면은 묘한 박력이 느껴집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집단에서 가장 영리한 시저는 유인원들을 모두 불러모읍니다. 먹을 것을 주면서, 자신을 따르면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행동으로 지금 말합니다. 거의 뭐 혁명가 수준이지요. 사실 먹을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지도자가 있다는 건 집단으로서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먹을 것 하나라도 더 혼자 챙겨가고자 하는, 그야말로 욕심에 눈먼 부패한 집단을 현실에서 더 자주 보니까요.

 

 리더십 이야기를 하면, 배의 비유를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선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평화로운 항해 중에는 선장이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배를 돌아보면서 선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폭풍이나, 암초 등으로) 침몰 직전의 위기 순간에는, 모두를 불러모으고, 직접 명령을 해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길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 길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안일하게 괜찮다 라는 말만 해서는 결코 좋은 선장이 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가 침몰하기 때문입니다.

 

 시저는 뭉치면 강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를 따라온 유인원들은 답이 안 나올만큼, 아무 생각도 없고, 바보 같습니다. 이 때, 참으로 놀라운 시저의 선택은, 각성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정신차려 이놈들아,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꺼냐, 등신 같은 삶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길은 있다고 시저는 이번에도 행동으로 말합니다.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약을 구해와서 유인원들에게 뿌려댑니다. 마침내 정신차린 집단은 철문을 열고, 다른 세상을 향해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이쯤에서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이들의 도전이 순탄하고, 멋진 일이었을까요? 제 눈에는 거의 투쟁처럼 보였습니다. 모두가 숲으로 건너갈 수 없었고, 누군가는 쓰러지고, 가장 강한 녀석은 앞장서서 동료들을 위해서 몸을 던집니다. 우석훈 선생님은 씁쓸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하게 좋은 놈부터 먼저 안 좋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 라는 말. 이 말이 한참이나 머리 속을 맴돌다가 사라집니다. 저는 여전히 좋은 사람부터 응원할 겁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 그 자체라고 응원할 것입니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 먼저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 모두 화이팅!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끙끙대면서, 거대한 철근을 밀어야 하고, 추락하면 완전히 끝나버릴지 모르는 구름다리를 꽉 잡고 건너야 합니다. 게다가 도중에 도망치거나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를 꿈꾸고, 좀 더 다른 인생을 꿈꾸고, 나아가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가 편안하게 누워서 다른 삶을 꿈만 꾸고 있다면, 감옥에서 가상의 창문을 그려놓고 희망에 젖어 있던 그 시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가 되어야 하며,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늘 이 순간 노력하고 있나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의외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피곤함에 절어서 하루를 보낼 때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집단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알았으며,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으며, 스스로 고민하고 행동할 줄 알았던 시저. "NO"라고 힘껏 외치며, 다른 세상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는 그는 리더가 무엇인지를 말 없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렇게도 쓸 수 있겠네요. ㅇㅇ하겠다. ㅇㅇ할꺼야. ㅇㅇ해야지... 라는 말들은 모두 부질 없습니다. 오늘 이것을 했나요. 라고 질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만 둥둥 떠나니는 사람이 된다면, 그 얼마나 초라합니까. 저도 이런 꼴사나운 모습이 되지 않도록 자주 경계하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리뷰를 마치며 이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붉은 돼지를 작업할 때, 누군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이 잘 나올 수 있나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그려, 그리고 또 신경써서 그려." 어떤 사람은 입으로 모든 것을 하며, 어떤 사람은 행동으로 중요한 것을 합니다. 저는 소질 없는 사람이지만, 삶의 태도는 후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꼴사납기 보다는 근사한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를 지금은 찾지 못하더라도,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하는 인생을 언제나 응원하며.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