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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움직이다 보면

제목 - 움직이다 보면병원 1층 로비는 새벽에도움직이는 분들이 자주 계신다.여기서 저기까지 계속 반복한다.지루함일텐데...하지만 그 고통이 치유라는게나는 늘 신기하다도서관에 가서나는 비슷하게 이곳저곳 움직인다.여러 권을 골라보다가,가끔 마음을 울리는 문장가를 만난다.글은 더 신기해서생각을 비우고 감각적으로 쓸 때가더 빛날 때가 있다.흘러가는대로편안히 살아왔다.하고 싶은 꿈들 만큼은거슬러서 마음껏 시도해봤다.용기 내본 일들은상처가 되고 흉터가 되어지워지지도 않는다.1등 인줄 알았는데열심히 사는 곳에 가보면겨우 끝자락의 순위다.치열한 열정들은 뜨겁고 아프다.말로 사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싫었다.어둠 속에서도 거칠게 찔려가며 노력하는대담한 시간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누군가에게 속아수천만원씩을 잃어도인생은 계..

16. 주어진 자리

제목 - 주어진 자리주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나에게 일을 부탁했던 물류담당 형님은이번 일주일을 크게 고마워 했다.밤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지만,오늘은 특히 고요해서,벌써 사람이 그립다.별 이유없이,내게 잘 대해주는 분들이 있다.굉장히 애쓰고 노력했음에도,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 역시 있다.쌓인 피곤 때문에,그냥 엎드려 잠시 잘까 싶다가도.주인의식 이라는 마음에 자세를 또 고친다.짧은 스트레칭에 세포들이 아픈소리를 낸다.가득한 원두찌꺼기를 깨끗이 비워낸다.시간이 임박한 상품들도 덜어낸다.화장실을 다녀오고, 가볍게 세수를 한다.음악소리를 또 키운다.아! 이제야 잠과는 조금 멀어진다.물류담당 형님은 일자리가 필요하면,알아봐줄테니 걱정말라고 응원해주신다.밝고 경쾌하고 발랄한 글을 꿈꾸지만,오늘은 어쩐지 저공비행이..

15. 푸른 옷의 천사들

제목 - 푸른 옷의 천사들새벽 2시가 넘은데다가 일요일.병원 편의점은 조용하고,청소까지 마쳤다.볼륨을 높여요!모차르트의 피아노곡들로가게를 공연장으로 만들어 놓는다.따스한 국물이 그리워서컵라면에 청양고추세트까지 멋진 심야다.실은, 인기척도 못 느꼈다.실컷 국물이 옷에 튀도록우습게 먹고 있었는데,헉.두 분이나 간호 선생님이 오셨다.편히 드세요.간호 선생님의 선빵에 당황해버리는 나.클래식 취향이 들킨 것도 부끄러워얼른 선곡을 밤, 바다 그리고 숲 으로 돌린다.물론 이쪽도 큰 취향이고, 라이브가 정말 입체적이다.선생님들도 편의점에 잠시 쉬러 오셨는지시간을 재보니 10분 넘게 쇼핑에 진심이시다.3번째 선곡이 시작될 무렵,우르르 물건들이 쌓인다.마침 포인트 쌓인게 있고,나는 초단기근무라서.선생님들께 양해를 정중히 ..

14. 칭찬 도장 찍기

제목 - 칭찬 도장 찍기조용한 교회에서 혼자피아노를 치다가고단해서 널부러져 있다.하찮은 내 모습이 어쩔 수 없다.너무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윗층은 하필 색소폰 연습실이라,조용히 있으면 음악들이 들려온다.의외로 가장 자주 들리는 노래는,이것이다.도.레.미.파.솔.라.시.도.근사하고 화려한 연주자는오히려 잘 없다.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음악의 꿈을 안고 연습에 열을 올린다.조금 먼 곳에서는 건물 내부공사가 한참이다.전동드릴소리는 적응불가의 소음이 되어,음악소리와 큰 대비를 이룬다.피아노, 색소폰, 그리고 사람의 노래소리.좋은 소리들은 삶을 즐겁게 해준다.실은 드릴 녀석도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을테지.단지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시끄러우니...옅은 녹색의 바이엘 연습책이 오늘 좀 미웠다.아직은 정이 가지..

13. 반주자의 기도

제목 - 반주자의 기도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당장, 반주자가 이제 없다. 정말로 없다. 주일날 교회를 가면 기타줄 조율부터 하고 있다. 아직 피아노 반주 실력은 먼 훗날의 일이다. 클래식을 최근 많이 들어서인지, 교회음악들은 화려하지 않다는 안정감이 있다. 찬송가에 실린 곡들에는 미세한 비밀들이 있다. 분명 누군가를 잃어서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영감으로 찬송시가 쓰여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3절, 4절. 마지막 절에 가면, 천국이나 고향 (물론 천국이다) 에 대한 묘사도 많다. 남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현생을 경건하게 해준다. 경건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배운 경건은, 삶에 타인의 공간을 두는 것이 전부다. 참 좋아하는 ..

12. 아버지 (감사)

제목 - 아버지 (감사) 어린 시절 전축이라는 것이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레코드판을 놓으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나와는 전혀 다르게 고급 직업을 입고, 부지런히 생활하셨다. 비틀즈 나 모차르트 같은 곡들이 주로 엄마 아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집 안에, 내가 장만한 디지털 피아노가 배송되어 들어왔을 때도, 아버지는 놀람이 없으셨다. 이 녀석 봐라? 어디 한 번 쳐보지 그래? 라는 호기심으로 마주하셨다. 고가의 물건은 아니고, 이른바 타건감과 음향감이 좋지 않아서 디지털 피아노를 자주 치지는 않는다. 그저 연습용과 기분전환용에 가깝다. 스피커도 좋은 것을 써야 기분이 풀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름은, 음향에 반쯤 홀려서, 전축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응급실에서 수술 판정..

11. 근육통과 만원 버스

제목 - 근육통과 만원 버스 이틀 간의 심야 근무도, 이제야 하루의 쉼을 얻는다. 긴장이 풀리며 근육통이 몰려온다. 표현이 서툴지만, 기분 좋은 뻐근함 이다. 일하는 곳이 약간 멀어서 버스를 탄다. 날이 밝았으므로, 버스는 금새 만원이 된다. 어쩌면 그 중에서 즐겁기로는 내가 손꼽힐테지. 그저 고단한 몸을 눕히는 일만 남았으니깐. 피아노를 조금 더 잘 쳐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발전이 없었다. 전공자인 친척에게 물어보니, 답변이 화끈하다. "오빠! 그냥 제발 4시간씩 앉아서 쳐! 일단 앉아!" 1시간도 안 되어서 도망가는, 내 모습을 어떻게 이리 잘 알지! 무슨 일이든 끈기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음악에 조예도 없지만, 인공지능 녀석이 추천한 멘델스존의 선율은 조화롭다. 쇼팽은 언..

10. 미소는 전염되어

제목 - 미소는 전염되어새벽 3시.1시간 가까이 손님이 없는 병원 편의점.고단한 물류 정리는 발바닥에게 미안할 정도.사라사테의 카르멘판타지가,잠을 깨운다. TV예술무대에게 더없이 고맙다.총총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앳되어 보이는 젊은 간호 선생님의 등장.정말 열심히 정돈해놓은 보람이 있었다.게다가 친절은, 미소의 인사로 돌아온다."우와" 24시간 편의점이라니!밤늦게 겨우 물건 두어개 팔면서도,나도 신이 난다.야간에 식당이 여는 것도 아니라서,간식이나 즉석식품류가 꽤나 인기다.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는 차선의 끼니다.난 예쁜 사람들이 좋다.작은 미소는 더욱 좋다.밤에도 여기는 맑음이죠!그 사소함에도 감탄사를 건네시는 모습이사람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압도적인 피로감 속에,오늘도 수고했다는 작은 위로가....

9.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제목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본문일주일은 일을 할 수 있었다.긴장감이 나를 압도한다.잠시 관찰자 모드가 되어본다.도착한 병원 안 작은 편의점,휴게코너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당연히 환자복을 입은 분들도 더러 있다.그러나, 표정은 무척 밝고,목소리톤은 정답고 높다.아프더라도 누군가가 곁에 있기에병의 지루함도,수다의 재료로 변신한다.나 역시 긴 고통과 변신의 과정을 지나.오랜만에 편의점 임시직원으로,맞이하는 첫 날.커피는 더없이 달콤씁쓸하다.맛이 매력적이라고 써보고도 싶다.누가봐도 간호사 선생님들,경쾌하고 빠른 템포의,야간 출근길도 보인다.편의점 내부에서 일을 시작한다.다리는 아파오고,일은 상당히 버겁다.돈을 쉽게 버는 일들이아니라서 오히려 반갑긴 하다.새벽 2시가 넘으니 극단적으로조용하다.휴대폰 볼륨..

8. 게임 소년의 기원.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남학생 중 1등을 기록했다. 조금 불편한 무릎과 발목. 하지만, 걷는 일도, 그 때는, 아직 가능했다. 공부는 약간 잘했고, 게임은 더욱 잘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놀기 바쁜 아이라 걱정이 되었겠지만, 뭐, 나로서는 만족으로 물든 기쁜 삶이었다. 엄마는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슈퍼알라딘보이 (메가드라이브) 게임기를 사다주었다. 뛰어놀기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한, 당신의 깊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추억을 잔잔히 되짚어 본다. 구체적으로는, 랑그릿사1, 소닉2, 판타지스타4 같은 호화로운 라인업이었고, 그 시절의 게임회사 세가는, 인기 있는 게임회사 닌텐도처럼, 우리네 게임 친구들 사이엔 꽤나 알려진 회사였다. 무릎이 불편해서 뛰지 못한다는 게 무슨 불편이겠는가. 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