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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반주자의 기도

제목 - 반주자의 기도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당장, 반주자가 이제 없다. 정말로 없다. 주일날 교회를 가면 기타줄 조율부터 하고 있다. 아직 피아노 반주 실력은 먼 훗날의 일이다. 클래식을 최근 많이 들어서인지, 교회음악들은 화려하지 않다는 안정감이 있다. 찬송가에 실린 곡들에는 미세한 비밀들이 있다. 분명 누군가를 잃어서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영감으로 찬송시가 쓰여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3절, 4절. 마지막 절에 가면, 천국이나 고향 (물론 천국이다) 에 대한 묘사도 많다. 남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현생을 경건하게 해준다. 경건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배운 경건은, 삶에 타인의 공간을 두는 것이 전부다. 참 좋아하는 ..

12. 아버지 (감사)

제목 - 아버지 (감사) 어린 시절 전축이라는 것이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레코드판을 놓으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나와는 전혀 다르게 고급 직업을 입고, 부지런히 생활하셨다. 비틀즈 나 모차르트 같은 곡들이 주로 엄마 아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집 안에, 내가 장만한 디지털 피아노가 배송되어 들어왔을 때도, 아버지는 놀람이 없으셨다. 이 녀석 봐라? 어디 한 번 쳐보지 그래? 라는 호기심으로 마주하셨다. 고가의 물건은 아니고, 이른바 타건감과 음향감이 좋지 않아서 디지털 피아노를 자주 치지는 않는다. 그저 연습용과 기분전환용에 가깝다. 스피커도 좋은 것을 써야 기분이 풀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름은, 음향에 반쯤 홀려서, 전축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응급실에서 수술 판정..

11. 근육통과 만원 버스

제목 - 근육통과 만원 버스 이틀 간의 심야 근무도, 이제야 하루의 쉼을 얻는다. 긴장이 풀리며 근육통이 몰려온다. 표현이 서툴지만, 기분 좋은 뻐근함 이다. 일하는 곳이 약간 멀어서 버스를 탄다. 날이 밝았으므로, 버스는 금새 만원이 된다. 어쩌면 그 중에서 즐겁기로는 내가 손꼽힐테지. 그저 고단한 몸을 눕히는 일만 남았으니깐. 피아노를 조금 더 잘 쳐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발전이 없었다. 전공자인 친척에게 물어보니, 답변이 화끈하다. "오빠! 그냥 제발 4시간씩 앉아서 쳐! 일단 앉아!" 1시간도 안 되어서 도망가는, 내 모습을 어떻게 이리 잘 알지! 무슨 일이든 끈기를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음악에 조예도 없지만, 인공지능 녀석이 추천한 멘델스존의 선율은 조화롭다. 쇼팽은 언..

10. 미소는 전염되어

제목 - 미소는 전염되어새벽 3시.1시간 가까이 손님이 없는 병원 편의점.고단한 물류 정리는 발바닥에게 미안할 정도.사라사테의 카르멘판타지가,잠을 깨운다. TV예술무대에게 더없이 고맙다.총총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앳되어 보이는 젊은 간호 선생님의 등장.정말 열심히 정돈해놓은 보람이 있었다.게다가 친절은, 미소의 인사로 돌아온다."우와" 24시간 편의점이라니!밤늦게 겨우 물건 두어개 팔면서도,나도 신이 난다.야간에 식당이 여는 것도 아니라서,간식이나 즉석식품류가 꽤나 인기다.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는 차선의 끼니다.난 예쁜 사람들이 좋다.작은 미소는 더욱 좋다.밤에도 여기는 맑음이죠!그 사소함에도 감탄사를 건네시는 모습이사람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압도적인 피로감 속에,오늘도 수고했다는 작은 위로가....

9.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제목 우연 -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본문일주일은 일을 할 수 있었다.긴장감이 나를 압도한다.잠시 관찰자 모드가 되어본다.도착한 병원 안 작은 편의점,휴게코너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당연히 환자복을 입은 분들도 더러 있다.그러나, 표정은 무척 밝고,목소리톤은 정답고 높다.아프더라도 누군가가 곁에 있기에병의 지루함도,수다의 재료로 변신한다.나 역시 긴 고통과 변신의 과정을 지나.오랜만에 편의점 임시직원으로,맞이하는 첫 날.커피는 더없이 달콤씁쓸하다.맛이 매력적이라고 써보고도 싶다.누가봐도 간호사 선생님들,경쾌하고 빠른 템포의,야간 출근길도 보인다.편의점 내부에서 일을 시작한다.다리는 아파오고,일은 상당히 버겁다.돈을 쉽게 버는 일들이아니라서 오히려 반갑긴 하다.새벽 2시가 넘으니 극단적으로조용하다.휴대폰 볼륨..

8. 게임 소년의 기원.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남학생 중 1등을 기록했다. 조금 불편한 무릎과 발목. 하지만, 걷는 일도, 그 때는, 아직 가능했다. 공부는 약간 잘했고, 게임은 더욱 잘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놀기 바쁜 아이라 걱정이 되었겠지만, 뭐, 나로서는 만족으로 물든 기쁜 삶이었다. 엄마는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슈퍼알라딘보이 (메가드라이브) 게임기를 사다주었다. 뛰어놀기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한, 당신의 깊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추억을 잔잔히 되짚어 본다. 구체적으로는, 랑그릿사1, 소닉2, 판타지스타4 같은 호화로운 라인업이었고, 그 시절의 게임회사 세가는, 인기 있는 게임회사 닌텐도처럼, 우리네 게임 친구들 사이엔 꽤나 알려진 회사였다. 무릎이 불편해서 뛰지 못한다는 게 무슨 불편이겠는가. 게임 ..

7. 게임 제국의 꼭대기.

만 스무살의 성탄절이었다. 외로운 밤이었고, 게임조차 쓸쓸했다. 클릭 몇 번, 동호회를 만들었다. 게임 동호회는 무척, 아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엄청나게 성공했다. 수 백명이던 회원은, 수 만명이 되었다. 접속하면 늘 할 일이 있었다. 귀한 능력자들까지 계셨다. 게임 한글화 작업을 성공하는걸 지켜봤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 닉네임 초기인 형님이 생각난다. 정모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겸손한 멘트를 건네신다. "지수(시북)님, 당신은 0 에서 1 을 만든 사람이예요. 자부심을 가지세요. 세계를 만드는 일.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답니다." 시간이 더 흘러, 나의 게임 제국은 한 분야의 거의 최고점까지 올라갔다. 이상한 사람들이 더욱 많이 보였다. 좋은 사람들은 각자의..

6. 학창 시절과 겨우 5분.

선생님 저는 자신 없어요. 어차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6개월만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도전한다니.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비오듯 그이는 사선을 보며, 나는 절망했다. 그래. 이 문제는 알고 있음. 동그라미는 더 적었다. 야학의 혜윤 (가명)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하셨다. "지수야. 점수는 삶에서 중요한 게 아냐. 용기내봤니? 한 번 해봤니? 그게 전부인지도 몰라." 배움이란, 알려진 지식이나 문제풀이기술을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불이 타오르게 마법을 거는 연금술 같은 것. 그 시절, 혜윤 선생님은 다정하게 나를 살짝 안아주셨다. 모르는 것을 물어봐 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냥 당신이 다니던 그 부산대학교에 몇 번이고, 나를 끌고 올라가서 같이 웃기만 했다. 꽃이 핀 나무와 교정은 ..

5. 굿바이 게임 라이프

게임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잘 설계된 틀 안에서, 금방 성장하는 느낌이 특히 좋았다. 그건 내가 현실에선 무척 약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가상의 세계에서 강한 적을 물리치면 일종의 짜릿한 성취감이 쌓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 청춘의 시절에는, 세계를 게임 무대이자, 실험실로 생각하며, 건방을 부렸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삶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일은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복잡한 질문을 던졌다. 솔직한 답변까지 부탁했다. 오늘날 (현재는 2026년이다.) 제일 똑똑한 인공지능 모델 중 하나인 구글 제미나이는 게임의 미래가치를 나에게 0 이라고 보여주었다. 진실이란, 가끔 보기가 좀 불편하다. 그러면? 그렇다면? 좋아하는..

4. 엄마 생각 (생일 축하해!)

가녀린 몸의 엄마는 나를 업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무릎과 발목에 뜸을 놓았다. 눈물이 날만큼 아파서 늘 가기 싫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업히는 것은 늘 좋았다. 아이들이 안아줘, 업어줘 하는 마음을 약간 더 이해한다. 감촉에서 기억이 조금씩 다가온다. 지워지지 않는 이상한 기억 그 시골 한의원 가던 풍경이 생각난다. 나는 잘 걷지를 못했다. 학교를 하도 길게 빼먹었더니, 친구들이 한마디씩 적은 큰 종이를 건네주었다. "빨리 학교에서 보자." 반 친구들이 그토록 좋았다. 어린 시절, 희망과 사랑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동심 이라는 다정한 단어가 좋았다. 아파도 좋은 게 간혹 있구나 라는 생각의 근원은 여기쯤이다. 체육 시간에는 배려를 받았고, 저 멀리 떨어져 앉아, 친구들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