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반년만에 드디어 일자리 테스트를 받는다.
"아마... 다시 일할 수 있을꺼야."
계속. 계-속. 나를 다정히 안는다.
세계가 발전한 걸까? 괴물이 된 걸까? 잘 모르겠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이지만, 책을 펴서 시시포스의 신화를 곱씹는다.
나의 목표, 나의 꿈, 나의 인생, 바위가 한 번 사라졌으면 뭐 어때?
다시 바위를 찾아서,
산을 내려가며, 멋진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인생이라고
시인은 아름답게 썼다.
또 다른,
휘트먼 같은 시인은 내친 김에 이렇게 비유했다.
"추위에 떤 사람일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고도 문명.
추위에 떨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태양에 무감각해 진다.
햇볕 하나로도 즐거웠던 아름다운 인생을 잃는다.
쓰르르 빗소리, 큰 우산, 가라앉은 시원한 공기의 맛도 잃은지 오래다.
그 대신, 나는 사고, 또 산다.
택배상자를 뜯고선, 사고, 또 산다.
정신이 조금 든다.
문득 산을 내려가 보는 일을 깊이 생각해 본다.
버리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단 한 번 제대로 버린 적 없다.
이른바 버킷리스트는 5개, 10개, 20개까지 적어놓고 기뻐하기도 했다.
때론 미친 척, 버킷리스트를 실제로 해보는 일은 영화에 쏙 온 것처럼 무척 신났다.
갖고 싶은 것들을 쓱싹 가지다보니, 어느새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것이다.
돌보는 시간이 적었던 몸은 탈이 나고, 고장나 버린 것이다.
심야 근무 - 테스트.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면, 작은 기쁨으로 여기자.
혹여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 조차 나의 감사한 축복으로 여기자.
삶을 다시 바라보자.
바위를 찾아, 기쁨을 찾아, 산을 내려가자.
저 무거운 바위를 다시 안고, 하루에 한 걸음씩 살자.
내게 할 일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더욱 고단해진 일들을,
다만 마주보기 싫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점점 지옥으로 변해가는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심지어,
나 또한 지옥의 일부분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기에.
내 힘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을 다시 전할 수 있다면,
거기가 내 작은 천국이고, 쉼터라 믿는다.
참 오랜만에,
작지만 행복한 감정을 또렷히 스치며 느낀다.
이토록 필요한 게 없다는 것에 또한 크게 놀란다.
어쩌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일,
도서관. 혹은 피아노 건반. 그리고 작은 미소들.
내게 행복이란, 그 정도가 다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스무살부터 가지고 있던 그 풍요로움을,
이제라도 실컷 누려보지 뭐.
아무튼, 괜찮아. 라고 오늘만큼은 다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