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2. 아픈 날에, 너무 슬퍼하지 마.

시북(허지수) 2026. 3. 20. 03:12

 며칠 뒤, 반년만에 드디어 일자리 테스트를 받는다.

 "아마... 다시 일할 수 있을꺼야."

 계속. 계-속. 나를 다정히 안는다.

 

 세계가 발전한 걸까? 괴물이 된 걸까? 잘 모르겠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이지만, 책을 펴서 시시포스의 신화를 곱씹는다.

 

 나의 목표, 나의 꿈, 나의 인생, 바위가 한 번 사라졌으면 뭐 어때?

 다시 바위를 찾아서,

 산을 내려가며, 멋진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인생이라고

 시인은 아름답게 썼다.

 

 또 다른,

 휘트먼 같은 시인은 내친 김에 이렇게 비유했다.

 "추위에 떤 사람일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고도 문명.

 추위에 떨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태양에 무감각해 진다.

 

 햇볕 하나로도 즐거웠던 아름다운 인생을 잃는다.

 쓰르르 빗소리, 큰 우산, 가라앉은 시원한 공기의 맛도 잃은지 오래다.

 

 그 대신, 나는 사고, 또 산다.

 택배상자를 뜯고선, 사고, 또 산다.

 

 정신이 조금 든다.

 

 문득 산을 내려가 보는 일을 깊이 생각해 본다.

 버리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단 한 번 제대로 버린 적 없다.

 

 이른바 버킷리스트는 5개, 10개, 20개까지 적어놓고 기뻐하기도 했다.

 때론 미친 척, 버킷리스트를 실제로 해보는 일은 영화에 쏙 온 것처럼 무척 신났다.

 

 갖고 싶은 것들을 쓱싹 가지다보니, 어느새 인생의 절반을 달려온 것이다.

 돌보는 시간이 적었던 몸은 탈이 나고, 고장나 버린 것이다.

 

 심야 근무 - 테스트.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면, 작은 기쁨으로 여기자.

 혹여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 조차 나의 감사한 축복으로 여기자.

 

 삶을 다시 바라보자.

 바위를 찾아, 기쁨을 찾아, 산을 내려가자.

 저 무거운 바위를 다시 안고, 하루에 한 걸음씩 살자.

 

 내게 할 일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더욱 고단해진 일들을,

 다만 마주보기 싫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점점 지옥으로 변해가는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심지어,

 나 또한 지옥의 일부분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기에.

 

 내 힘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을 다시 전할 수 있다면,

 거기가 내 작은 천국이고, 쉼터라 믿는다.

 

 참 오랜만에,

 작지만 행복한 감정을 또렷히 스치며 느낀다.

 이토록 필요한 게 없다는 것에 또한 크게 놀란다.

 

 어쩌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일,

 도서관. 혹은 피아노 건반. 그리고 작은 미소들.

 내게 행복이란, 그 정도가 다였는지도 모른다.

 

 이미 스무살부터 가지고 있던 그 풍요로움을,

 이제라도 실컷 누려보지 뭐.

 

 아무튼, 괜찮아. 라고 오늘만큼은 다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