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에세이) 29

[피아노 11편] 나와는 잘 맞는 피아노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전자오락을 좋아하는 몹쓸 병(!)에 빠져 있다. 그런데 특히 요즘 스마트폰 게임은, 시간이나 재화(=돈)를 투자해야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고, 나는 그 점이 대단히 싫었다. 거칠게 말해,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한국의 플레이스토어(=스마트폰) 게임은 아예 하지 않는다. . 엉뚱한 서론으로 시작한 이유는 피아노는 뭔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육중한 몸의 그랜드 피아노로... (이게 눌러보면 정말 많이 다르다...) 간단한 선율만을 치고 있어도, 대단히 즐거움이 크다. 예를 들어, 오늘부터는 바이엘 제 3권 이고, 번호로도 앞 번호 곡을 쳐보는데, 이 또한 장치가 숨어 있거나,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다. 축구 게임으로 치면, 기본적인 2대 1로 주고 받는, 기초 삼각형 모양 패..

[피아노 10편] 정확하게, 그것이 어렵다.

벌써 10편 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10주 레슨이 지나갔다는 이야기. 학업 중임에도, 좋은, 그리고 긍정적인 취미가 되어주었다. 오늘 느낀 바는, 정확한 터치가 어렵다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다르게,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한 곡이라도 숙달된다는 것은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일부러 왼편을 도맡아 앉으셔서, 오른손을 집중훈련 시키셨다. 자신감은 과잉되어 있었고, 실제로는 힘만 잔뜩 들어가 있었고, 좀처럼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했다. . 어느 지인은 또 긁는 소리를 해댄다. 왜 돈들여가면서 피아노 취미를 배우려고 하는건데요? 에이, 선생님이 뭐가 중요해요, 본인 연습으로 하는거지 음악은. 싸워서 무엇하리. 그냥 내 나름의 반박을 여기에 남겨본다. 그럼 아무런 ..

[피아노 9편] 세 가지 방법, 다정한 음색.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먼저 오셨다. 나는 서두른다고 했는데, 겨우 시간에 맞췄다. 빨래에, 설거지에, 분리수거에, 집안일... 휴 ㅠㅠ... 바이엘 진도를 여전히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신다. 드디어 2번째 책 마지막이 보일 정도다. 그 대신에 엄격함은 변함없으셔서, 안 되는 구간은 10번 연습이라고, 콕! 못 박으신다. 휴 ㅠㅠ... 오랜만에 돌아온 어레인지 찬송가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던지, 선생님의 세련된 레슨은 너무 멋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열심히 대안을 생각해가면서, 플랜 A, B, C를 다 마련하셨다. A는 낮은음 자리표를요... 또 B는 이 손 모양 보이죠? 그리고요, 또 이렇게 화음을 눌렀을 때는... 고민하다가 화음을 눌러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피아노 제8화] 피아노와 천재 의사들

셜록 홈즈 추리 소설을 썼다는 그 유명한 작가는 사실 의사였다. 이제와 밝히지만, 나도 어릴 적 공부는 좀 했고, 꿈이 의사라고 말할 만큼... (중략) 나는 건강상의 큰 문제가 있었기도 했고, 아무튼, 뭐, 지금은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크게 감사한다. 얼마나 힘들고, 무거울테니 말이다. . 1. 내가 정말 존경하는 S대 박사님 (구OO 정형외과 선생님이시다) 은, 의사 집안이다. 어느 조용한 시간 클래식을 듣고 계셨다. 원장실에는, 손주가 그린 어설프고 빛나는 사진이 아름답게 걸려 있었다. 30대 후반 - 40대 초반. 원장님, 자녀분이 전교 1등을 할 만큼의 수재였고, 그걸 자랑하다가, 아내 허 모 선생님께 엄청나게 혼났다고 한다. 나는 이 (백발) 전문의 선생님의 겸손한 삶에서..

[피아노 7편] 3주간의 특훈

오늘은 원장님도 나도 개인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특훈을 하기로 했다. 같은 부분을 10번, 심지어 20번, 30번... 마치 근육이 기억하듯이 노력하기로 한다. 막판에는 원장님이 농담을 건네신다. 자, 100번! . 의미 있는 곡이니 외울만큼 노력하라는 그 깊은 헤아림을 어찌 모를까! 또 다시 멋진 악보 앞에 감동이 커진다. . 원장님의 눈물을 보았다. 슬픔을 보았다. 상처를 보았다. 드릴 위로가 단 한 마디가 없었기에, 그저 듣기만 했다. . 집단 정신 착각에 걸려 있는 것이 틀림 없다. 그 고대의 사람들도 교만 = 아는 척 이 가장 큰 죄악인 것임을 이미 알았는데... 현대인들은 다들 스스로 똑똑하다고 떠들기 바쁘다. . 나는 어머니 생전에 정신병동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아예 미쳐버린 이들을 굉장히 보..

[일기6] 악인의 꾀, 그리고 심판과 멸망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시편 1편을 정말 좋아한다. 물론 1편 1절도 좋지만. 후반부도 매우 즐겨서 읽어보곤 하는데, 대략 이렇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중략)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 4~6절] 짧은 겨우 5줄 이지만, 그 폐부를 찔러대는 깊이가 나는 옛날부터 좋았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별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한다면, 악인들에 대하여, 그래 - 너희끼리 놀아라 이 저질들아. 지금 깔깔거리지? 망하는 거? 심판 불에 타는거? 우리 다 보인단다. 구약 성서는 그래서 때때로 두려움 이라는 감정도 든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판단..

[피아노 5편] 플랫 - 반음

나는 아는 게 없다. 백지 였다. 어쨌든 오늘부터는 제목이, 돌아온 피아노가 아니다. 그냥 피아노다. 겨우 3~4달 레슨 받는다고...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2배, 3배만 노력해보자. 즉 - 일단 매일 피아노 30분에서 시작하는 것. 두 달 쯤 지나니... 양손을 드디어 누르고 넉 달 쯤 되어가니... 반음을 드디어 익힌다 말할 것도 없이 지혜로운 원장님 혜안 덕분이다. 할 수 있는데까지 엄격하게 밀고 가시는데, 마치, 아주 아주 잘 쓰인 소설책 같은 기분이다. 따라가기만 했는데, 어느 구간을 넘는 기쁨. 희열 이라는 단어도 좋지만, 더 솔직히는 힐링이 된다. 그토록 맑은 그랜드피아노를 아침부터 명랑하게 치고 있노라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뿐더러, 잡념 ..

[일기05] 가끔은 넘어질꺼야!

지하철 안이 너무나 졸립다.잠들꺼 같아서 일부러 일어난다.눈에 보이는 사람을 관찰한다.오른쪽에 일곱 명이 앉아있다.그럼 반대편도 대칭이니 일곱 명...14명 중 - 독서인원은 0명 이었다그 옆 칸으로 가보니 역시 0명 이었다.28명 중 0명.지하철 1마디 - 총 42명의 일반좌석 중,앉아서 책 읽는 사람은 정말 0명 이었다.희망이란,아이들은 그럼에도삼삼오오 모여 웃는다.과감하게 맨 뒤 땅바닥에 앉아버리기도 한다.그래. 너희가 대한민국의 미래다.말만 하고,돈만 떠드는,이상한 외계인이 아닌.청소년, 너희야 말로 21세기의 "멋진 인간"이구나.너희들에게 늘 배운다.얘들아! 가끔은 넘어져도 얼마든지 괜찮아!- 2025. 09. 12. 지하철을 바라보며. 허지수.- 스마트폰에 세뇌된 세상을 바라보며.

[돌아온 피아노 4편] 단, 한 곡의 기쁨.

엄격한 원장님이 레슨을 마치며, 미소를 건네셨다. "오~ 연습 많이 하셨네요!" 그렇게 단 한 곡을 알게 되었다. 언제든지 친구처럼 연주할 수 있는, 단, 한 곡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아... 그 기쁨이 끝나기도 전에! 박 원장님은 또 다시 아름다운 곡을 알려주신다. 나는 솔직히 바이엘 02 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그런 일에 신경 쓰실 분이 아니다. 나는 행복이 물감색처럼 번져간다.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보이는 것처럼, 다채로운 음악소리가 오고 간다. 선생님. 다만 오늘도 고맙습니다. - 2025. 09. 10. 허지수 (지하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