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에세이)

[피아노 9편] 세 가지 방법, 다정한 음색.

시북(허지수) 2025. 10. 10. 07:24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먼저 오셨다.

 나는 서두른다고 했는데, 겨우 시간에 맞췄다.

 빨래에, 설거지에, 분리수거에, 집안일... 휴 ㅠㅠ...

 

 바이엘 진도를 여전히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신다.

 드디어 2번째 책 마지막이 보일 정도다.

 그 대신에 엄격함은 변함없으셔서, 안 되는 구간은 10번 연습이라고,

 콕! 못 박으신다. 휴 ㅠㅠ...

 

 오랜만에 돌아온 어레인지 찬송가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던지, 선생님의 세련된 레슨은 너무 멋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열심히 대안을 생각해가면서, 플랜 A, B, C를 다 마련하셨다.

 

 A는 낮은음 자리표를요...

 또 B는 이 손 모양 보이죠?

 그리고요, 또 이렇게 화음을 눌렀을 때는...

 

 고민하다가 화음을 눌러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겨우 왼손에 건반 2개, 오른손에 주 멜로디 1개. 그렇게 건반 3개인데도, 아름답다.

 

 조금 이상하기도 했고,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

 더 질문이 나오는 것을 그냥 멈추고,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수 밖에 없다. 특히 왼손.

 나는 여전히 낮은음 자리표가 익숙하지 않으니깐.

 

 인스타그램 개그에도 있다. 보통사람은 왼손 / 오른손 이렇게 구분하지만.

 피아노를 가까이 하다보면 낮은음자리표 / 높은음자리표 이렇게 구분한다고 한다.

 음... 생각해보니 그다지 웃음이 나는 개그는 아닌 것 같다. 약간 독일 개그 같다. 휴 ㅠㅠ...

 

 여하튼, 오늘도 아침부터 피아노를 치러 가고자 준비를 서두른다.

 바이엘 + 배우는 악보 + 시와 찬미 까지 오늘은 꽤나 악보가방이 무겁다.

 그만큼 내가 많이 알게 되었다는 의미니까,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다.

 

 처음 백지 상태로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늦은 나이에 문을 두드렸을 때,

 선생님의 반가운 미소가 여전히 선명하기만 한데...

 그 엄격한 선생님과 티격태격(?) 혼나면서도, 조금씩 피아노가 늘어가니까,

 나한테도 스스로 놀라고, 선생님에 대한 따스한 존경심은 커져만 간다.

 

 다른 학생들을 보니까, 선생님들에게 정성스럽게 해주는 것도 많던데...

 나는 그런 능력도 없다보니까, 그저 묵묵히 한 주, 연습하는 게 전부다.

 그거라도 잘하자고 다짐한다.

 

 이제는 피아노를 잘 쳐서,

 남을 기쁘게 한다거나,

 주님께 봉사를 한다거나,

 그런 마음마저 사라져간다.

 

 인생이 못난 나는, 어쩌면 나를 위해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한 음, 한 음, 차분히, 정성스럽게, 아름답게 눌러가면서, 좋은 소리를 찾아간다.

 아마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배워서 남에게 나눠줄 수도 없는 피아노.

 너무 무거워서 들고다닐 수도 없는 피아노.

 

 피아노를 치다보면, 이상한 지점이 생각할수록 많다.

 8도 - 옥타브가. 정확한 거리라면.

 7도의 자리를 눌러도 굉장한 소리가 나고, (기타의 세븐 코드 같다)

 2도의 자리에서도 굉장한 소리가 나고, (기타의 G2 같은 느낌이다)

 

 뭐, 이론을 배우겠다는 건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고!

 그저 (아마추어) 피아노를 사랑하면 그거면 되지 뭐!

 

 못난이 사과가 의외로 맛있듯이,

 못난 아마추어의 손이지만,

 내 피아노의 손길이 부디 이제 다정한 음색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생님께 기본을 배우는 지금 이 시간이 참 귀중하다는 것을.

 오늘도 감사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2025. 10. 10. 피아노 앓이 중인 허지수 / 물론 중간고사 다가와서... 학교공부도 하고 있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