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시편 1편을 정말 좋아한다.
물론 1편 1절도 좋지만.
후반부도 매우 즐겨서 읽어보곤 하는데,
대략 이렇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중략)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 4~6절]
짧은 겨우 5줄 이지만, 그 폐부를 찔러대는 깊이가 나는 옛날부터 좋았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별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한다면,
악인들에 대하여,
그래 - 너희끼리 놀아라 이 저질들아.
지금 깔깔거리지?
망하는 거? 심판 불에 타는거?
우리 다 보인단다.
구약 성서는 그래서 때때로 두려움 이라는 감정도 든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삼가하는 편이지만,
어찌, 이 세상에 악인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표현법을 빌려본다면,
겉으로는 거칠어 보여도, 사실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와 정반대로,
겉으로는 아주 우아해 보여도, 사실은 "악의 시꺼먼 마음"으로 물든 사람도 얼마든지!
그래서 나는 슬픈 일, 속상한 일, 억울한 일을 마주하는...
지치는 날에는, 황당한 날에는,
시편 1편을 생각한다. 묵상한다.
남에게 해꼬지를 하는 그 못난 마음이 어디갈까. 그 화살이 어디로 향할까.
나는 잘 알고 있다.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그 던진 사람의 급소를 쳐버리는 것을 너무나 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결코 하나님은 듣고만 있거나, 가만히 있는 분이 아니셨다.
선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인에게 보응하사,
그의 엄격한 심판으로, 악인들을 기필코 망하게 만들어 버리셨다.
나는 인생을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도덕론을 지금 꺼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무신론이 지나치게 많은데,
나보다 좀 더 경이로운 존재가 있다는,
조금 인간을 낮게, 겸손하게 보는, 유신론적인 관점을 가진다면,
결국 인간의 꾀 라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초특급 지름길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길은 아주 독특해서,
때로는 수십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기도 하고, 침묵하시기도 하지만,
당신을 깊이 사랑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로 또한 갚아주신다. 그것이 내가 가진 아주 작은 믿음이다.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눈치채 버린대로, 드라마 미생에도 나오는 대사처럼,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거나, 혹은 이미 지옥이다.
그럴 때, 믿음을 가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또 올바른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가다보면, 위로를 만나고, 가다보면, 가끔은 눈물이 닦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악인들은 심판 받아버렸으므로. 그들은 이미 미래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다니, 너무 좁은거 아냐? 라고 반문할 법 하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다. 선한 사람은, 말도 안 되게 선하고, 아름답고, 빛나고, 똑똑하고, 눈부시고,
반대로, 악한 사람은, 늘 똑같이 저질스러운 궁리만 하다가 망해가더라. 말만 많고, 요란하고, 껍데기더라.
그래서 껍데기는 가라 뭐, 그런 글도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정확하지 않은가 껍데기는 대체로 아무 무게가 없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괴로워하고, 휘둘리고, 잠못자고, 속쓰리고, 그렇게 쏙 망해가더라.
.
요점 없는 글을 나는 정말 싫어하니까, 이제 정리할 시간.
악인들이 나를 칠 때, 우리는 인간인지라, 잠시 속상함을 느낀다.
그러나, 악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 같은 시간, 주께서 악인들을 심판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그렇게 뒤늦게 눈물(?)로 참회하더라도, 과연, 우리 주께서 악을 용서하실까.
물론,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다. 나는 애시당초 성직자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단 한 가지를 기억한다.
오직 한 가지를 기억한다.
" 나는 저렇게 저질스럽게 살지 않는다. "
그것이 영어단어로 표현한다면, " Dignity " 인간으로서의 존엄이자, 기본이다.
짐승 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여전히 재밌다.
그래서 고대 로마 시대, 혹은 그 이전의 에트루리아 아주 고대 문명까지도 생각해본다면,
개를 조심하라는 명언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아마도 고대 로마 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2025년에는, 이렇게 바꿔 써도 좋을 것 같다.
"개만도 못한 사람 조심"
"상대할 가치도 없음"
오늘,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을 많이 꺼내어 글을 썼다.
시편 1편을 다시 묵상한다.
개신교, 천주교 공동번역본 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야훼(주님)께서 보살피신다.
멸망에 이른다는 것은, 심지어 스스로도 멸망에 도착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면 보살펴 주신다는 것은, 돌봐주신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면 조금은 안다고 한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임을.
우리의 인생이 그토록 귀한 것인데,
저절로 망해가는 사람에게, 굳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만화를 제법 좋아한다.
짱구 아빠가 가끔 그러더라.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더라.
평생 행복하고 싶니? 정직하게 살면 된단다.
명탐정 코난이 가끔 그러더라. 피-융 손목에서 뭔가를 쏘더니,
진실을 밝혀내 버리더라.
.
좋아 좋아.
거짓된 인생은 저절로 망하게 될 뿐이더라.
다시, 우리는 신나게 길을 가자!
- 2025. 09. 22. 오후 08시 30분 허지수 드림.
- 시편 1편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