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드라이브 (Drive,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2. 16:46

 이 작품은 자동차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닙니다. 비교적 저예산 (1천5백만 달러) 으로 제작된, 긴장감 넘치는 범죄 영화에 가깝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극중에서의 섬세한 심리묘사까지 잘 담아낸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그냥 이름도 없는 "드라이버" 입니다. 하는 일도 존재감이 별로 없습니다. 영화 스턴트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카센터에서 정비공으로 조용히 지내는 편입니다. 물론 이걸로 영 밥벌이가 시원찮았는지, 한 번씩 범죄활동에 참가하면서 운전만 해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무명남자가, 운전 하나는 탁월하게 잘한다는 점입니다. 그의 차분하면서도, 맹렬한 운전실력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글쎄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주인공인 "드라이버"는 굉장히 차갑게 느껴지고, 감정을 읽기 어려운 인물인데, "실력만" 뛰어나기 때문에, 선악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무표정하게 악당이 될 수도 있고, 무표정하게 수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사가 많지 않고, 무심한듯 흐르는 분위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 남자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해서는 선리뷰, 후감상의 태도 보다는, 일단 선감상, 후리뷰를 강력 추천합니다. 긴장감 있는 범죄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대단히 묘한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옆집 여자에 의해서 드라이버의 모습은 조금씩 관객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이 남자, 생각보다는 참 순수하고 맑은 면이 있는 모습이고, 특히 경쾌하게 자동차를 몰고서, 소박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은 근사합니다. 옆집 여자 아이린은 이 이웃 드라이버가 참 좋았고, 아이린의 아이도, 이 삼촌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300마력의 심장을 달았다는 그의 자동차는 시원스럽게 수족이 되어서 움직여 줍니다. 여기까지 보면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대체 이 영화 왜 19세 판정을 받은거야? 차타고 과속하면 다 19세냐? (과거 만화 이니셜D도 19세 제한으로 방송되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런데 아이린의 남편이 감옥에서 돌아오면서 부터, 이야기는 급격하게 범죄드라마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디에나 "양아치"들은 많고, 사채로 돈을 뜯어가는 짓은 전세계 고금을 통틀어서 내려오는 잔혹한 행위인 듯 합니다. 하여간 전반부의 따뜻함에 비한다면, 후반부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전개가 끝까지 계속됩니다. 드라이버는 아이린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정답고 친절했던 그녀가 잘 지내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갱들로부터 이웃을 구해내고자, 이 남자는 스스로 악역의 옷을 입습니다. "너희들 당장 손 떼지 않으면, 끝장날 줄 알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갱들에게 협박이 통할리가 없습니다. 꺼지라는 야유만을 받을 뿐입니다. 심지어 아이린네 남편을 도우려는 일이, 완전히 틀어져서 잘못되는 바람에 아주 처참한 결과를 낳고 맙니다. 순식간에 아이린은 과부가 되었고, 무명 드라이버까지 "갱단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잔혹합니다. 피가 튀고, 거침없이 총탄이 날아들고, 그야말로 살벌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드라이버가 엄청나게 강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이 남자 싸움도 잘 하고, 총도 잘 쏘고! 운전만 잘하는게 아니라, 다 잘 합니다. 그는 단신으로 복수극을 시작합니다. 나의 소박한 행복과, 그녀의 충만한 행복을 빼앗은 악당들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몽환적이고 절묘한 사운드 덕분에, 어쩐지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풍으로 느껴지는데, 자동차와 함께 펼치는 혼신의 복수가 보기 드문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남자의 진심을 관객이 알게 되는데, 그 진한 여운 때문에, 마지막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10억원 이라는 큰 돈 때문에, 갱들이 목숨 걸고 드라이버와 싸우지만, 정작 드라이버에게 이 돈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셈입니다. 하기야 처음부터 카센터 정비공으로 일할 때에도 그는 돈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요.

 

 그러므로 관객이 해석하고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이 남자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는 무엇이었을까? 이 남자는 무엇을 추구했던 것일까? 영화는 굳이 이런 대목들은 몽땅 제거함으로서, 설명식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강조합니다. "이 남자의 슬픔을 보라, 그리고 이 남자의 분노를 보라" 입니다. 음, 저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드라이버는 다만 자동차를 운전하고, 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겨했을 뿐이며,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 (에이린네 식구) 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었다 입니다. 그 작은 행복조차도 "누군가가" 밟아버리는 욕심이 참 속상하지요.

 

 이렇듯 관객이 적극적으로 영화에 끌여당겨지는 맛이 참 신선했던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묘했던 느낌은 그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시키는대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부탁은 거의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0만개의 길이 있다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슬며시 느껴져서, 참 멋지다랄까요. 어딘가 속박되어서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내가 원하는 길을 해보겠다는 모습. 이것이 진정한 강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백만불? 협상? 그런 것 없이 그냥 돌직구를 정통으로 던질 뿐입니다.

 

 그렇게 볼 때, 마지막 장면은 너무 너무 시원스러워서 감탄이 들었습니다. 돈은 너나 가지도록 하고, 그녀에 대한 미안함은 복수극을 끝내면서 조용히 곁을 떠나도록 하고, 고독을 함께 해주는 자신의 차만이,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밤거리를 누빌 뿐입니다. 소란스럽고 환호가 가득한 영웅도 있지만, 침묵하며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었던 영웅도 있었음을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이제 마치며 결론, 영화 드라이브는 달콤한 솜사탕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습니다. 차가운 얼음같은 영화이고, 대사 보다는 행동으로 읽어내려 가는 영화 입니다. 피곤한 생색내기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시원한 청량제와 같은 독특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멋진 삶은 역시 말 보다는 행동이며, 쿨한 삶은 역시 돈 보다는 자유 입니다. 하하, 너무 낭만적인 리뷰가 되고 말았네요.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100분이 즐거웠습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