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가슴 설레는 그 이름 이순신 - 싸움의 태도

시북(허지수) 2013. 5. 10. 23:52

 이번 문서에서는 싸우는 사람들을 살펴볼 텐데요. 일반적으로 평화라고 하면 좋은 것, 싸움 이라고 하면 나쁜 것으로 인식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사가 반드시 이분법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싸울 줄 알아야 하고, 나쁜 놈이 되더라도 할 말을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가슴 저미는 진심을 몰라주고, 주류에서 추방될 때도 있겠지요. 때로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때로는 모욕적인 말들을 들으면서,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인생을 인생답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고 찬사하고 싶습니다. 왜란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함경도 길주에서는 정문부가 왜와 맞서 싸우며 값진 승리 (북관대첩) 를 거둡니다. 그리고 전승기념비를 세웁니다. 이것이 북관대첩비 입니다. 씁쓸하게도 이 비는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이 휙~ 하고 가져가 버렸는데, (자신들이 볼 때도 북관참패가 민망했나 보지요?) 그래서, 이 비는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21세기가 되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조선 백성들이 결코 우스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꿔 말해서, 도요토미 일파를 몰락시켜버린 것이 왜란의 결과였으니까요. 지배층의 위선 앞에서도, 결연하게 싸우던 사람들이 얼마나 멋집니까.

 

 금강산에서는 승려 유정이 의병을 모으며, 왜와 맞서 싸웁니다. 이 인상적인 승장(僧將)에 사람들은 존경의 뜻을 담아서 사명대사 라고 높여 부르지요. 참으로 멋진 사람들입니다. 또한 경남 의령에서는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면서 대활약 합니다. 붉은 옷을 입고 싸웠다 하여, 홍의 장군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처음에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자 겨우 노비 10명의 병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뜻이 있는 곳에는 분명 헤쳐나갈 길도 있기 마련입니다. 숨어 있던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은 왜와 맞서 싸우며 용감한 선택을 해나갑니다.

 

 관군도 있었습니다.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에서 대승하면서 전세를 역전시키기 시작 했고, 명나라에서도 원군을 보내오면서 많은 도움 을 주었습니다. 막 밀고 올라오던 일본은, 조선, 명나라 연합군의 반격 앞에서 이제 도리어 밀리기 시작했고, 경상도 지역으로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얼핏 6.25전쟁과 겹치는 느낌을 주는데, 중국이 개입하면 판도가 달리지는 거지요. 즉 한반도의 역사는 독립적으로만 흘러가지 않으며 주변국과 함께 움직여 나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외교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지요.)

 

 왜란에서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으로는, 단연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슴 설레는 그 이름 이순신! 이순신은 옥포해전,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까지 수년간 연전연승하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자, 거북선과 좋은 화포 기술을 앞세워 늘 이기는 장군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순신은 명성 높은 전략가이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역사적인 거인이니까요.

 

 이순신이 보여주는 싸움의 태도는 - 탁월하고 철저하게 관찰을 시도했고, 섬세하고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전쟁 앞에 결연히 서고자 하는 모습 입니다. 제가 개인을 영웅화 신격화 하려는건 아닙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괴로웠을테고, 두려움이 있었을테지요. 그럼에도 강력한 통찰을 통해서, 이기는 싸움을 추구했던 그의 자세는 배워야할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일본의 배들은 기본적으로 빠른 대신에, 물살이 빠른 곳에서 방향전환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안정감을 중시하는 조선의 배와는 특성이 상당히 다르지요.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순신은 지형과 물살을 치밀하게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아서 해전을 치루었고, 엄청난 승리 를 거두었지요. 한산도 대첩에서는 학익진을 이용해서, 거센 물살에 혼란스러워 하며 우왕좌왕 갇힌 왜군을 그야말로 쓸어버립니다.

 

 (정유재란 때 있었던) 명량해전은 어땠나요? 이순신이 말하기를, "저에게는 열두척의 배나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문을 살려보면 좋겠군요. 선조가 수군이 이제 거의 바닥나서 폐지하려고 하자 이순신이 답하길, "지금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나이다. 신이 죽지 않는 한 적들은 감히 저희들을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자신감과 결연한 말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떨림을 줍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가진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침착한 여유와 강인함. 이번에도 지형과 전술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명량해전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면서 발생하는, 기묘하고 독특한 물살을 대폭 활용하면서 일자진을 만들었고, 물살로 고생하는 왜군을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포로 쏘아붙이며, 133척의 배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100%의 탁월한 전략이 거둔 눈부신 승리였습니다. 왜군은 수치상 10배가 넘는 전력이라도,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단 12척을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충무공이 존경받는 불멸의 영웅인데, 심지어 일본의 작가와 학자, 장군까지도 이순신을 높이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싸움의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싸움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왜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이 수군에서 계속 밀렸다는 것은, 또한 절대로 가벼운 사태가 아닙니다. 수륙양용 정책을 추구하던 일본은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당연하지요. 보급을 어디에서 해오나요. 바다를 통해서 물자를 실어와야 하는데, 당장 이 길이 끊겨버리게 되었습니다. 보급로의 단절은, 한마디로 전쟁 필패의 코스로 가게 되는 겁니다.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일본은 먼저 휴전을 요청합니다. 3년간 휴전 회담이 진행되다가, 결국 1597년 정유재란을 통해서 왜군은 다시 쳐들어 오지요.

 

 이미 대비를 어느정도 해놓았던 조선은, 마침내 왜군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후 노년의 도요토미는 죽었고, 임진왜란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요. 물론 조선의 후유증도 상당했습니다. 많은 성리학 자료가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특히 퇴계 이황 연구는 일본에서 해야할만큼, 수많은 자료가 넘어갑니다. 도자기 기술도 대량으로 넘어갔는데요. (가령, 일본색이 진하게 느껴지는 자기들은 유래를 따라가보면, 상당수가 조선시대의 기풍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 이라고 이름붙이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제 국제 관계는 크게 변화하고 맙니다. 명나라가 특히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는데요. 일본과의 거의 "간접적인 전쟁"을 하다보니, 명의 국력이 계속 떨어집니다. 이 때를 틈타 여진족이 성장하며 후금을 세웁니다. 후금은 명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후에 청나라를 세우게 되지요. 한마디로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즉 명이 쇠하고, 청이 흥해가는 계기 가 되었지요.

 

 일본은 전쟁을 주도한 도요토미가 몰락했고, 뒤에서 단단히 힘을 키워나갔던 도쿠가와 세력의 에도막부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역으로 보자면, 전쟁으로 가장 커다란 이익을 얻은 두 집단이, 청나라와 도쿠가와 세력이었다 라는거지요. 서로 싸우고 정신 없이 바쁠 때, 누군가는 뒤에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종종 보게 되는 쓰라린 고찰 중 하나입니다. 흔들리던 조선은 살아남았으나, 도우러 들어왔던 명나라와 침략의 도요토미 세력은 그렇지 못했다는게 역사의 묘한 지점입니다. 다음 문서에서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살펴봅니다.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 입니다. 맞서 싸운다는게 가볍거나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청나라와의 싸움은 명분 때문에 얽히기도 하고 말이에요. 다음 문서에서 계속~

 

 이제 오늘의 영감 - 흔히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현실을 똑똑히 보라"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것은, 현실을 보고 나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이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나는 가진게 이것밖에 안 돼, 어차피 가능성이 없어, 환경도 따라가지 않아서 힘들어, 라고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일단 마음은 적당히 편할 것입니다. 그럴싸하고 말이 되는 자기합리화에, 비난할 사람 역시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좋습니다. 어쩌면 이해나 위로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변명함으로서 바꿀 수 있는게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실을 보고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가진게 거의 없지만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겠어, 환경이 따라가 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나약한 변명만 해대는 인생은 절대로 되지 않겠어. 음, 너무 무리한 이야기 인가요? 저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하겠어 라는 의지 말이에요.

 

 설령 사회가 규정하는 틀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고, 그래서 때때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비루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순간에서도,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성과 예의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을 선명히 보고,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순간, 그 때 우리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박한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격려와 따뜻한 존경을 표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