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파고 들어오는 호러 로맨스 영화 렛미인! 강렬한 연출력으로 인해, 인상적인 대목이 많기에, 리뷰를 참 신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소년 오스칼,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과연 만남을 가지고,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요?

 

 또한, "당신이 존재하기에" 고통스러운 현실을 버텨나가는 힘이 되어준다는 점도 너무 좋았습니다. 삶이 초라하고 심지어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그 순간, 소년과 소녀는 운명처럼 만났고, 함께 하는 법을 배우고,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웁니다.

 

 스웨덴 영화다 보니, 기존의 익숙하던 할리우드 외화와는 전개와 분위기가 굉장히 다릅니다. 긴장감과 박진감 대신에, 촉촉하게 다가와 감성을 두드리는 느낌이 아주 상큼합니다. 주류가 되지 못한 이들의 치명적 고독, 존재가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갈망, 사랑이란 그 어떤 달콤한 언어보다 단지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어준다는 것까지... 소년과 소녀는 우리에게 질문을 건네줍니다. "존재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겠니?"

 

 

 영화 렛미인은 인생을 조연처럼 살아가고 있는 소년 오스칼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오스칼은 굉장히 똑똑한 아이지만, 책과 친숙하고, 대인관계는 영 좋지 못합니다. 친구들은 오스칼을 괴롭히며, 가정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이 없습니다. 마치 조용한 외톨이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만나게 되는 소녀 이엘리,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저쪽으로 가버려"고 말하는 이엘리의 토라진 목소리에, 아마 오스칼도 놀라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저 애는 나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호기심. 그렇게 혼자 놀기의 대가(!)인 두 녀석은 어느덧 성큼 가까워 집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우선 뱀파이어 이엘리의 생활로 들어가 봅시다. 외모는 12살이라고 주장하지만, (설정상으로는) 200년씩이나 삶을 이어왔던 소녀. 그런데 이엘리의 삶은 즐겁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흡혈귀의 주식인 "피"만 계속 공급된다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 피를 구한다는게 문제입니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을 계속 죽여야만 하는 딜레마, 그리고 그런 삶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웃음"이 상실되어버렸다는 게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 배고픈 게 심해지면 정말 괴롭듯이, 이엘리도 "피 없이 살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존재라는 거지요. 우리의 돈벌이가 쉽지 않듯이, 흡혈귀의 밥벌이도 고역입니다 :)

 

 흥미로운 점은, 이엘리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존재 "오스칼"을 만나면서 갈등하고 방황한다는 점입니다. 심금을 울리는 로맨틱한 명대사, "네 곁에서 죽는게 나을까, 너를 떠나서 사는게 나을까" 는 애시당초 둘의 관계가 함께 갈 수 없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관계가 깊어지면, 결국 뱀파이어라는 정체가 들통날테고, 그러면 거기서부터 파국으로 치닫게 됨을 가슴 아프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엘리가 "오스칼이 잠에 취해 있던 공간"으로 날아들어와(!), 나를 쳐다보지 말고 다만 함께 있기만을 바라는 장면은 가슴 시리게 따뜻하고 먹먹합니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도 좋아할꺼니? 라고 묻는 질문은, 다르게 본다면, "나의 모습은 네가 원하던 것과 분명 아주 다를꺼야, 그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니?" 라는 사랑에 관한 본질적 접근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만약 내가 형편없어도 괜찮겠어?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NO! 저리가! 혹은 당장 이혼해! 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왜 꽃다운 청춘남녀가 아니라, 하필 소년과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어쩌면 우리들보다 훨씬 순수하고 맑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조건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는 장면들은 숭고한 느낌마저 들테니까요.

 

 이제 오스칼의 시점으로 전환해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스칼은 이엘리와 친해지면서, 드디어 그녀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 정신줄을 놓을 수 밖에 없는 흡혈귀의 처량한(?) 모습, 놀라운 것은 오스칼이 이엘리를 겁내지도 않고, 혐오하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점이랄까요. 두 사람은 여전히 만남을 이어가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엘리가 문을 두드리는 거지요. "내가 너의 공간으로 들어가도 되겠어?", "이런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겠어?" 라는 질문. 오스칼은 곧장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의 이런 점이 너무 좋고, 황홀했습니다. 이엘리도 고민에 휩싸여서 힘들어하고, 오스칼도 마찬가지로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힘들어 합니다. 즉답을 내놓지 못하는 "그 인간다움"이 이 영화가 가진 굉장한 저력이 아닌가 싶고요. 그러므로, 살아있는 존재는 힘겨워하고, 망설이며, 그렇게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갑니다.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엘리는 "그런 건 없어"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엘리는 긴 세월을 살 수 있지만, 그녀의 연인은 그럴 수 없을테고, 따라서 어느 덧 늙어가고, 결국엔 사라지게 되겠지요. 과연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를 만나는 것" 사실은 이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엘리는 정작 굶주린 자신의 모습은 참아보고자 노력할 수 있었지만, 홀로 살아가는 삶은 견디지 못합니다. 인간도, 흡혈귀도, 사실은 홀로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태어나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쁜가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좋은 친구 한 사람이, 호화로운 물건더미 보다 더 많은 기쁨과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고요.

 

 자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불편한 이엘리의 존재를, 오스칼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가는 이엘리의 모습은, 떨리는 불안감을 정말 황홀하게 연출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에는 오스칼이 이엘리의 손을 잡아줍니다. 저는 어서와 라는 말에는 다정함이 듬뿍 들어있는게 아닐까 라고 종종 생각해 봅니다. 게다가 이제 오스칼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줍니다!!! 우리가 종종 쓰는 그 표현대로 말이에요. "항상 내 편만 드는 사람이 생겼어!!!"

 

 영화는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오스칼을 구원해주는 이엘리의 짜릿한 등장과 함께, 그리고 두 사람의 특별한 여행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도무지 공존 불가능이라고 보였던 존재는, 놀랍게도 서로 소통을 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저는 이 매력적인 작품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독한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에이, 저는 그런 운명적 사람은 없다고요? 그래도 우리는 그런 "기대"를 마음에 품고서 살아가잖아요. 그러므로, 인간이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기쁨을 얻고, 미래를 얻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미나 작가의 책에서 발견한 이 부분을 덧붙이고 싶네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에 눈 감고 끌어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 부족한 자신이라고, 못난 자신이라고, 그렇게 자책하며 살기에는 인생의 가능성이 너무 굉장합니다. 타인의 부족함을 눈 감고 끌어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약함을 보게 될 때, 계속해서 한걸음씩 노력해 나가는 게 참 소중하겠고요.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고, 말할수도 없는데도, 손가락 만으로 소통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일지라도, 가능성을 향해서 걸어간다면, 그 모습보다 멋진 게 어디 있을까 싶네요. / 2013. 08.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3.08.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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