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그래비티 (Gravity,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19. 20:58

 고대 현인들의 지혜는 매우 인상적이고, 간단합니다. 너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든지 (소크라테스), 무슨 일이 발생 하면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공자) 식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며, 한 살을 먹어가고, 또 한 살을 먹어가고...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진실이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라는 통찰을 배우게 됩니다. 현실을 마주보지 않기 위해서, 오늘날 많은 친구들이 가상현실의 세계를 가까이 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지! 그래서, 괴로운 환경은 잠시 제쳐두고, 오늘을 즐기면 되지 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유혹이 종종 듭니다. 그럴 때, 영화 그래비티를 아주 몰두해서 보고 나면, 어쩌면 우리의 삶이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런 감동이 속삭이며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를 아름답게 보여주지만, 사실적인 우주만을 그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을 봤을 때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것과 비슷하게, 우주의 현실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매력적으로 그려냅니다. 산드라 블록이 열연을 펼친, 라이언 스톤 박사에게 우주란 아름다우면서도 괴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참 경이로운 인생, 그리고 참 쉽지 않은 인생살이. 자, 지금 그래비티 영화 속으로 떠나보려 합니다.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라이언 스톤 박사는 뜻하지 않게,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합니다. 우주를 떠도는 파편이 무더기로 날아오면서, 우주 임무가 순식간에 초토화 되었고, 박사는 거의 우주 미아가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맙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휙휙 돌아가는 우주의 모습은 살짝 멀미가 날 정도로 공포로 다가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동료 한 명은 파편에 맞아서 생을 달리했고... 그나마 또 다른 동료 맷이 있었기에, 라이언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게나마 생깁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아름다운 지구별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가 있기에, 인간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대단한 축복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우주공간을 누비려는 것이 인류의 거대한 꿈인데, 그 우주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상당히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원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갈 수가 없어서, 이동을 위한 외부적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생명 유지를 위해 무거운 복장을 껴입어야 하고, 산소를 확보해야만 우주를 누빌 수 있습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아서, 통신장비의 힘을 빌려 의사소통을 해나갑니다. 한마디로 필요한 게 상당히 많고, 이 중 하나만 없어도 거의 끝장납니다.

 

 라이언 박사는 목숨은 건졌지만, 어떻게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요? 산소는 점점 떨어져가고, 도와달라고 119나 911을 부른다고 쌩~하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리하여 라이언과 맷은 힘을 합쳐 우주 정거장을 향해서 이동합니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 오히려 인간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기 쉬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경우 귀환만을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 나머지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저는 이걸 제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래비티가 좋았습니다. 돈 이야기? 그런 건 없습니다. 남녀간의 애정노선? 낭만적일지 모르나, 사치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애정 조차도 거의 농담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그 진지한 현실감각이 더욱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합니다.

 

 멋있게 그려지는 맷은, 라이언이 패닉 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말을 건넵니다. 맷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라이언은 우주 정거장까지 도착했지만, 무중력 공간에서 당장 두 사람의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 펼쳐집니다. 순간만 삐끗하면, 곧바로 죽음이라는 절대적 긴장감이 계속 흐릅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런 무서운 공간을 딛고, 달까지 다녀온 인류가 새삼스럽게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로 인류는, 인간에 앞서서 동물들을 우주에 보내는 적응력 실험을 여러 차례 했는데, 살아서 귀환한 동물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다양한 의학 연구 역시도 동물을 대상으로 시험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영화는 중반부 희망이 걷어차이는 비극적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기적적으로 간신히 우주 정거장에 도달하며, 희망찬 탈출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정작 바라는대로 착륙선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제는 절망과 두려움이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메이데이(SOS)를 처절하게 연신 외쳐대며, 통신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지구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개짖는 소리뿐... 라이언은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사실, 그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이해될 수 있는 전개입니다. 정신은 너무 지쳤고, 도무지 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곧 닥쳐올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미리 알게 된다는 건, 역시 유쾌하지 못한 일입니다.

 

 여기서부터,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집니다. 라이언 박사는 최후 직전에 "이미 고인이 된 맷의 환상"을 체험합니다. 맷이 말하길, "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까지 시도해보는 것. 현실이 아무리 시커멓게 절망으로 뒤덮혀 있더라도,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온 힘을 다해서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고언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희망이 인생을 죽음에서 삶의 영역으로 인도해 나갑니다. 현실을 바로본다면, 우리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 대신에, "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은, 대기권 진입을 앞두고, 라이언이 담담하게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지구를 향해가는 착륙선 외부가 불덩이에 휩싸이고, 이걸 버텨낼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는 극심한 공포 앞에서도, 이제 라이언은 단 두 가지 결과만 있을 뿐이라고 결론내립니다. 성공하고 살아남아 이 여행을 이야기 해주든지, 아니면 여기서 우주선과 함께 재가 되던지.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않는 모습. 거기에 어쩌면 우주만큼이나 아름다운 인간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비티는 제목 그대로 "중력의 느낌"을 다시 맛보게 되는, 라이언의 극적인 귀환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단지, 사람이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동을 준다는 느낌이 참 신선했습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 실제로도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는 하나의 귀환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모해 보여도 도전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에서도 주인공이 고작 숟가락 하나 들고, 벽을 파내어가며 탈출을 시도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실제로 해보느냐, 아니면 자포자기 하느냐는, 다른 결과를 가져다 주겠지요. 현실을 바로보고, 시도하며 뛰어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덜 후회하며 살아가는 교훈이 아닐까요.

 

 저는 변명 중의 최고가 다음과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해볼만큼 열심히 해봤다고, 그래도 안 되는걸, 나보고 뭘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이젠 나도 몰라, 모르겠다고..." 오늘날은 지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가짜 위안이라도 얻어보려고, 여기저기 남몰래 서성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진지하게 난 왜 이것 밖에 안 되는걸까 고민해 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이 괴물 같을 때! 그래서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작은 희망이라도 간직하며 살아가다가, 그것 조차도 벽에 부딪혀 버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기서, 헬렌 켈러의 이 말을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삶이 지칠 때 마다, 저는 이 말을 여러번 곱씹어 봅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만 멍하니 바라 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괴로웠던 과거 앞에서 마냥 주저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꼭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른 버튼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현 가능한 쪽을 제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그것이 곧 행복의 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채널을 담당했던 김진혁PD는 인간에 대해서 인상적 표현을 했습니다. "인간이란 참 재미있는 존재여서 고통과 절망을 회피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지고 두려움에 떨게 되지만, 피하지 않고 직시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는 마음 편한 삶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실부터 바라봐야 합니다. 혹자는 영화 그래비티가 "체험하는 SF영화"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고 극찬했는데, 물론 동의합니다, 또한 저는, 그래비티를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선택을 제대로 했다면, 그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담담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한 삶에, 정통으로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관점의 중요성"에 관하여, 다양한 말보다 그래비티 한 편이 더 진중한 무게로 느껴졌습니다.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것. 그런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