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The Hobbit : The Desolation of Smaug,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4. 1. 12. 23:52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남겨봅니다. 판타지 영화 호빗 2편, 스마우그의 폐허 이야기 입니다. 드래곤이 불을 뿜어대고, 함께 여행을 다니는 로망은, 순수한 마음을 흔듭니다. 판타지 영화의 매력이라면, 꽤 긴 시간동안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서, 매력적인 세계 속으로 다녀올 수 있음에 있겠지요. 161분의 상영시간이 꽤 아쉽게 느껴질만큼, 또 2천억이 넘는 제작비의 위용을 보여주듯이, 영화는 크고 아름다운, 화려한 장면이 제법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스토리를 요약하거나, 배경을 설명할 수 있을만큼의 역량은 전혀 없다보니, 저는 단지 인상적이었던 대목 몇 가지를 가져와서, 즐겁게 리뷰를 써보고 싶을 뿐입니다. 반지의 제왕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영화에서는 오래도록 사는 요정족 "레골라스"가 멋지게 등장합니다. 곱상한 외모에다가 능숙한 활솜씨까지, 추억도 추억이지만, 이 요정족의 대사들 중에 재밌는 게 있었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요정족은 굳이 세계가 위험하다고 해서, 처음부터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깥 세계와는 상관없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너희의 사정에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웁니다. 이 대목은 수십년 전, 추억의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금 길긴 합니다만, 전문을 통해 생각해 보기엔 좋겠지요.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랑 뭔 상관이여! 라는 말은, 어쩌면 조금 무책임하고 무서운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데, 요정족만 무사하기를 원하는 모습은, 욕심많은 난쟁이족 보다는 오히려 깨끗한 요정족이 더 이기적일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 너무 인간편인가요... 하하. 흥미로운 것은, 결국 집단의 룰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것이 희망과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즐거웠습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지점에 무엇인가 비밀이 숨어있다! 라는 관점은, 영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장면에서, 세련된 연출과 함께 다가옵니다. 원정대가 고생을 거듭하며, 산 속에 숨어있는 비밀문을 찾기 직전까지, 겨우 도착했건만, 끝내 아무리 해도 비밀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밝은 해까지 저물어 버리니까, 이들의 큰 기대는 곧바로 거대한 좌절로 변해버립니다. "우린 결국 낚인거야!!! ㅠ_ㅠ, 집어쳐!!! 안 해!!!"

 

 그러나 묘하게도 바위문은 거의 우연처럼, 달빛을 비추면서 원정대를 안내해 줍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한 친구가 있었기에, 원정대는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까지 끝까지 해본다는 대목은 또 한 가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 연금술사의 작가 코엘료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열쇠꾸러미를 들고서, 어떤 문을 열고자 할 때, 마지막에 남은 그 열쇠가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 저는 이런 소소한 표현들에서 희망을 엿볼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해보았을 때, 의외로 놀라운 일들이 다가오고, 흥미로운 통찰을 얻게 될 때, 참 기뻤습니다.

 

 그러므로 "해봤는데 역시 안 되더라" 라는 말을 하기 보다는, "대부분 안 되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해봐야지"라는 말이 좋습니다. 너무 연구자 같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계속되는 실험정신 그 어딘가에 분명히 해답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보고, 시도해보고, 다시 또 생각해보고... 결국, 중요한 것은 바라왔던 일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면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글들은 판타지 영화에 어울리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고, 실로 삶의 현실은 훨씬 가혹하고 잔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고,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져 있는 내면 때문에 속상하기만 합니다. 더욱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당장 하긴 해야 겠는데......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는 도무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최악의 순간이 있다면, [용 잡으려다가, 용에게 다 죽겠네!!!] 마치 스마우그의 폐허 영화처럼, 온힘을 다해서 시도했던 일이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버릴 때 입니다. "나 지금 숟가락 들 힘도 없는 것 같아..." 라는 에너지의 고갈 상황. 영화는 단지 기대하며 3편을 즐겨달라는 이야기 입니다만, 삶에 있어서는 어떤 처방이 필요한 걸까요. 예술가 폴 고갱의 말로 마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더이상 열정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작렬하는 용의 화염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 있다면, 더이상 열정이 솟아나지 않는 허무와 불능의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상처 받을지도 모르는 공간 속으로 뛰어들어갈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 모험 영화나, 성장 영화는 묘한 설레임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막막하다 해도, 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도, 벌써 좌절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겠니? 라고 되물어 주니까요. / 2014.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