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민족문화 수호운동 1부 - 조선교육령과 조선어학회

시북(허지수) 2014. 12. 14. 21:51

 일제강점기의 문화파트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던 문학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하지 못했겠지요. 지식인들 역시 기껏 신문을 발행했음에도 잘려나가는 일도 많았고요. 검열이 있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렇듯 문인들의 아픔들은 얼마나 컸을까 싶어요. 이번 문서부터는 교육, 문학, 역사 이런 식으로 나뉘어서 문화파트 접근을 해볼까 합니다.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으니까, 술술 읽어내려가시면 됩니다~


 복습부터, 먼저 개항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교육입국조서 (1895년) 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앞과 뒤의 학교들이 달라져요. 교육입국조서 앞 시기에는 최초의 근대학교 원산학사 있고요. 이화학당, 배재학당 (선교사중심)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립은 동문학(외국어교육)이 있었네요. 최초의 공립 근대식 학교로는 육영공원이 존재합니다.

 

 자, 그러다가, 근대적 학제인 교육입국조서 이후에는 학교들이 여럿 세워집니다. 사립학교는 국외에 서전서숙과 명동학교가 북간도 지역에 있었고요. 국내에는 오산학교 대성학교 (애국계몽운동, 민족주의계열) 가 존재합니다. 공립에는 소학교, 한성사범학교, 한성외국어학교, 1900년도에 한성중학교까지 세워지고 있습니다.


 1910년대로 넘어오면서, 1차 조선교육령 (1911년) 이 나와요. 중요한 것은 바로 일본학제와의 차별 입니다. 차별이 핵심포인트인데요, 수업연한이 축소가 되요. 일본에서는 보통학교(초등학교)가 6년이라면, 우리나라는 6년 → 4년으로 축소합니다. 덩달아 조선어 교육도 축소합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굳이 많이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 조선인들은 더하기 빼기만, 기초적인 것만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식으로 접근했던 거겠죠. (이 당시에도 물론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던 열망은 굉장히 컸었는데요, 우리는 이 시대에 비하면 복 받은건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러니까, 공부에 너무 질려하기 보다는 선조들에 비한다면 복받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싶어요. 적어도 공부에 있어서는 말이지요.)


 1920년대를 넘어가면서 3.1 운동을 겪었고, 2차 조선교육령 (1922년) 이 시행이 됩니다. 문화 통치 시기이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겠다 라는 독특한 모습이 여러가지 나왔습니다. 교육에도 영향이 있어서, 일본학제와의 차별을 없앤다는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선사람에게 고등교육도 가능해지는거에요. 민립대학 설립운동도 해보곤 했습니다. (물론 기만적 통치였기 때문에 고등교육학교는 일제가 방해하고, 자기들이 설립합니다. 경성제국대학.). 1920년대에는 그외에도 조선어가 필수로 되는 독특한 대목이 있어서, 시험에 참 잘 나옵니다. 꼭 체크하고 넘어갑시다!


 1930년대라고 한다면, 공황을 겪고, 전쟁을 확대하는 시기가 되겠습니다. 특히 1938년에는 국가총동원령이 설정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3차 조선교육령이 만들어지는데요. 보통학교의 이름을 심상소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심상이라는 말은 보통이라는 뜻이에요. 한마디로, 그냥 다시 소학교라는 이름으로 돌아가더라 라는 것이에요. 한편, 1930년대는 민족말살통치 시기이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머릿속에 조선인이라는 의식을 지워야 한다는 거지요. 창씨개명 등을 하기도 했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언어를 없애면 가장 확실하겠지요.

 

 따라서 조선어 과목을 수의 과목으로 바꿔놓습니다. 선택과목으로 바꾼다는 거에요. 일제의 탄압이 강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한다, 그 의도가 뻔히 보이잖아요. 만약 어느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겠다고 선정했다가는 탄압 제1호가 되는겁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거의 조선어 교육 폐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던 선조들, 그 덕분에 우리는 국어를 계속 쓸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휴대폰 타자도 엄청나게 빠르고 말이지요. 하하.


 참, 심상소학교는 1941년이 되면 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꿉니다. 여기에는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학교>를 줄여서 국민학교라는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인 육성학교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거에요. 저도 안타깝게(?) 국민학교 출신입니다만...... 아, 세월아!

 

 물론 광북 이후에는 국민학교라는 것이 말 그대로 국민을 위한 학교라는 거겠지만요. 하지만, 어쨌건 그 출발점이라는 것은 일제의 영향, 일제의 잔재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초등학교가 되었지요~ 의외로 국민학교 라는 단어가 시험에 잘 나와요. 1940년대의 특징이다 보니까요. 키워드로 작용한다는 것 체크해 두어요. 또한 1940년대에는 법적으로도 조선어를 완전히 금지하고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전쟁 교육을 강화시키는 모습이 나타나더라 입니다. 일제의 마지막 발악이라 볼 수 있겠지요. 교육쪽에서의 전반적인 흐름 기억해 두시구요~ 간단하죠. 차별, 허용, 그리고 선택과목 했다가, 국민학교로 일본화 시키는 것!

 

 다음으로 국어를 살펴보아요. 이번 문서에서는 연구단체까지만 보도록 할께요. 먼저 연구단체라고 한다면, 개항기에는 국어를 연구하는 국문연구소가 있고요. 국문연구소는 학부 안에 설치 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교과부에 소속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주로 국어 문법을 연구했습니다. 또한 1910년대 라인에 걸쳐서 조선광문회라고 있습니다. 박은식, 최남선 같은 인물들이 이끌었는데, 고전을 정리하고 간행했습니다.

 

 1910년대 이제 일제강점기에 접어드니 국어와 관련된 연구 가능하겠어요? 무단 통치, 헌병 경찰이 깔려 있으니 국어 연구하기 어려웠습니다 ㅠ.ㅠ. 1920년대에 오면 그 때에야 연구단체가 만들어지는데, 바로 조선어연구회 입니다. 한글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가갸날 (한글날) 을 제정합니다. 10월 9일 법정공휴일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나는군요! 그리고 또한 놀아야 합니다! 한국의 보물 1호가 뭔가요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어요. 역시 그 중에 한글 아니겠어요. 언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조선어 연구회의 뒤를 이어서, 1930년대가 되면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한글이라는 잡지는 계속 간행이 되고 있고요.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합니다. 조선어학회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시도합니다. 결과는 잘 되지 못했지만요. 왜냐하면 조선어학회는 1940년대에 조선 어학회 사건 (1942년) 을 겪습니다.

 

 당시 시국은 조선어가 금지되고, 민족말살의 절정에 이르렀던 때, 그런 상황이라는거죠. 그런데 조선어를 연구하는 단체? 용납할 수 없는거겠지요. 그래서 일제는 건수를 딱 잡았습니다. 사람들이 조선어를 쓰다가 걸린거에요. 조선어 가르친 사람들 이름 대봐! 연결고리를 캐다보니 조선어 학회가 딱 나온겁니다. 물론, 일부러 이쪽으로 연결을 지으려고 했겠죠 그죠.

 

 이로 인해, 조선어 학회가 국가를 전복하려는 단체로 황당하게 둔갑해 버립니다. 저쪽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할 때, 치안유지법을 딱 때리는 겁니다. 치안유지법은 주로 사회주의자들 잡아들이는 법인데, 우리나라 말 연구하는 사람들, 학자들까지도 잡아가고 학회를 강제 해산 시켜버리는 겁니다. 법이라는 것이 잘못 집행되거나, 남용되면 참 말도 안 되는 불행한 결과를 낳는거죠. 여하튼, 우리말 큰사건 편찬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네요. 따라서 혹시 시험에 나오는 문항 중에,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큰사전 편찬하였다 라고 나오면 잘못된 지문입니다. 오늘은 이쯤해두며, 이야기는 다음 문서에서 계속 할께요~

 

 오늘의 영감 - 행복,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이 꿈을 좇아가는 것에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목표점은 때때로 변경되기도 하겠지요. 이를테면, 저는 좋아하는 김두식 변호사님께서 책을 통해 "법조계에서 나 아닌 나로 사는게 너무 힘들었으며, 그렇게 살아서 성공할 가능성도 너무 낮았어요." 라고 표현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변에서 높게 평가하는 검사 라는 직책보다는 그것 말고 다른 길 → 이제 또 여기서부터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고심하는 모습이 무척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최선생님께서도 꿈이 먼저 앞서 가는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꿈이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도 계속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바꿔 말하면 나는 무엇에 흥미가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할 때 도저히 견딜 수 없는지 파악해 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에 걸쳐서 중도 포기하는 나약한 습관만큼을 꼭 버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자 가 지금의 작은 목표입니다.

 

 목표가 작더라도 이루기 까지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인내심과 열정을 가지고, 나답게,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