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승만 정권이 3선을 하고 권력을 오래 움켜쥐었지만, 그리고 반공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지만, 이제는 떠나는 민심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민심은 1956년부터 못살겠다 갈아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음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눈감으려 하거나,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표를 쥐고 있는 국민을 아예 무시하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입장에선, 너희들은 그저 우리가 정하는대로 따라오면 되잖아 라는 오만한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자, 이제 1960년 대선을 치르게 됩니다. 대통령선거와 부통령선거로 나뉘어지는데요. 자유당 후보로는 역시 이승만이 계속 나옵니다.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서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계속 후보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맞서서 야당에는 조병옥이 후보로 나옵니다. 부통령은 4년전과 마찬가지로 이기붕과 장면이 붙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이승만은 이 시점에서 무려 86세로 나이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죽었을 때 권력이 어디로 이어지느냐가 상당히 중요해졌습니다. 부통령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입니다. 참, 그러고보면 이미 1956년도 선거에선 부통령이 장면이 당선되며 야당이 했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1960년 대선에서는 부통령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면서 자유당은 사활을 걸게 됩니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로 이승만이 죽게 된다면, 권력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미리 대비를 철저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지요. 이기붕을 당선시키지 않으면 정권을 내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는거지요. 관전포인트! 과연 부통령에는 누가 당선이 될 것인가! 이승만은 그래 계속 대통령 죽을 때까지 하라지 뭐~!


 한편, 또 여기서 대선 후보 조병옥이 지병으로 죽습니다. 아, 어떻게 우연도 이런 우연이! 정말 이승만과 맞붙으면 무슨 꼭 죽음과 연결된단 말이지요. 하여튼 이승만은 일단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지요? 부통령이 누가 되느냐를 봐야하니까요! 이기붕은 여전히 인지도가 약했습니다 장면보다는 아무래도 뛰어나질 못했어요. 이러다보니 공무원들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 시키는대로 해야하는 공무원들, 정권을 어떻게 연장시켜 볼 것인가! 이러면서 벌어지는 대규모의 3.15 부정선거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정선거의 백과사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례가 워낙 많으니까 몇 가지 대표적인 것만 봅시다.


 올빼미 선거라고, 표를 세고 있는데 불이 딱 꺼지는거에요. 헐~ 그리고 눈을 떠보니 세고 있던 표들은 다 이기붕의 표로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있어요. 피아노 건반 투표라고 있습니다. 고급기술인가 본데요~ 맨윗장과 맨아랫장은 이기붕이고요, 중간표에 장면의 표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렇게 간추려서 한 데 잘 모으면, 헐! 위와 아래가 이기붕이니까, 이 표는 전부 이기붕 표 입니다. 아예 대놓고 선거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가령, 조를 짜서 투표하러 가는데, 따라서 앞사람이 이기붕을 찍었는지 확인하는 모습도 있었어요. 아휴 비밀투표의 기본적인 원칙도 지금 온데간데 없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한 지역구에서 나올 수 있는 표보다 이기붕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무슨 표가 계획보다 더 많아! 표를 미리 집어 넣어놓았던 것입니다. 아 황당해라! 이러면 투표의 의미 조차 사실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부정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학교 뿐만 아니라 당시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사회 의식이 높았고, 이제 곧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요. 특히,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웠던 학생들이 볼 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현실이란 말입니다. 4.19혁명에 의해서 이승만 정부는 무너지게 되는데요.


 음, 이승만 정부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만큼은 이승만 정부의 치적이다 라고 하는 것은 1950년대에 국가재정의 20%를 교육에 투자한 것입니다. 이것은 높이 살만한 것입니다. 1인당 국민GNP(총생산)가 65불이었던 시절이었거든요. 너무 못 살았던 과정 속에서도 전체 국가 재정의 20%를,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교육에 쏟아붓는 그 결단은 이승만 정부를 높게 평가할 점이겠지요. 그래서 1950년대 이미 초등학교 의무교육이 시작됩니다. 그 때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치적인 그 의무교육, 교육재정의 확대 라고 하는 그 시스템에 의해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점이지요. 그 교육에 힘입어 1960년대 경제개발이 가열차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어쨌건 학교에서 선거할 때, 우리는 이렇게 부정선거 안 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호소했고, 설득력 있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민주주의 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어른들이 완전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거에요. 이러면서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 첫 번째 지역이 마산입니다. 3.15 부정선거 무효다 라면서 시위를 하지요.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속에서 한 학생이 사라집니다. 김주열 학생이었지요. 그리고,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떠오릅니다. 게다가, 눈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는 상태였고요. 이런 XX...XXXX... 같으니라고!!! (욕설은 오늘도 편집)


 김주열군의 시신 발견으로 저 같은 소시민 뿐만 아니라 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분노했겠습니까.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국은 더욱 뜨거운 혁명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게다가 고려대 학생들이 이번에는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피습당하는 사건도 일어납니다. 정치 깡패들이 동원되었던 거에요. 정부는 경찰도 동원하고, 깡패도 동원하고...


 드디어 4.19 혁명이 시작됩니다. 정치는 X판이고, 사람은 죽어나는데,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노한 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시위를 시작합니다. 이 때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고 시위대를 향해서 총까지 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총을 왜 군대가 갖고 있습니까. 외부의 적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라고 총이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상황이었습니다. 총알이 시민들을 향해 발사가 된다? 이쯤되면 갈 데까지 다 간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당선이고 뭐고 그만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4.19 혁명이 들불같이 전개가 되자 결국 이승만은 하야합니다.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한다, 라는 단서는 달았는데, 그러길래 애시당초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후세에서 역사가 평가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그나저나, 현대사의 이 현장은 실로 대단하지요. 우리 국민들은 독재의 힘, 위에서부터 조직적으로 일어나던 부정선거의 장면을, 바로 학생들로부터의 힘으로 그 물줄기를 힘차게 바꿔놓은 것입니다. 결국 4.19혁명 때는, 최종적으로 대학교수들까지 동참하는 모습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대학교수라고 한다면 그 당시 최고지성인들이었는데 이들까지 거리에 나오고 이승만은 물러가라며 혁명에 동참하자 이승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승만은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습니다. 독립운동도 했었고, 정세파악도 참 빨랐던 정치인 이승만은 그 인생의 마무리를 참 역사의 오점 비슷하게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이 물러나고, 이제 허정의 과도내각이 들어섭니다. 참, 허정은 사람 이름이에요. 이승만 정부의 외무부 장관이었어요. 과도라는 말은, 정부 이양을 위해서 임시로 맡고 있다는 형태에요. 한편, 과도정부는 나중에 최규하 과도정부와도 비교해 놓을 필요가 있는데요. 10.26사태를 통해서 박정희가 죽으면서, 그 뒤를 잇게 되는 과도정부가 최규하 이고요, 최규하 때는 전두환 정부로 넘어가지요. 따라서 과도기라는 말을 보면, 허정 또는 최규하를 떠올리면 됩니다. 물론 시기는 완전 달라요~ 허정 과도내각은 1960년이에요~ 이 뒤에는 장면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고요. 최규하 앞에는 유신체제가 있었고요, 허정 과도내각 이전에는 4.19 혁명이라는 사건이 있다라는 것. 과도 내각의 전후, 시험에 종종 나오니까 체크를 잘 해두어요. 아이쿠, 한 번만 더 재차 정리할께요. 4.19-허정-장면 / 유신-최규하-전두환 / 어때요, 한결 좀 낫네요.

 

 허정 과도내각에서 중요한 것은 3차 개헌을 시도합니다. 권력이 집중되니까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3차 개헌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제 하지 말자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내각제를 시행하는 정부가, 장면 정부가 되겠습니다. 지금도 개헌 논의를 할 때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현재는 대통령제이고 5년 단임제 잖아요. 이제 미국식으로 4년 중임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의원 내각제로 해볼 것인가를 논의할 때가 있습니다. 어쨌건 3차 개헌을 통해서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로 바뀌었고, 이제 장면 정부에서 최초로 시행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그 전에도 없고, 그 이후에도 없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완전히 정부 구성이 바뀌었네요. 완전히 체제가 달라지는 장면 정부! 제2공화국의 모습은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경고가 먼저 올 때가 있습니다. 귀를 막고 싶고, 현실에 달콤함에 만족하기 쉽기 때문에, 우리는 경고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위기가 없을 것이라면서 귀에 좋은 말만 듣기 시작하면서, 몰락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어려움을 바라보고, 탈출하려는 계획부터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힘들더라도 진짜 노력해보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이번 한 해, 그 값진 시간들이 우리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5.01.0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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