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화국은 4.19 라고 하는, 혁명을 통해서 만들어진 정부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글처럼 왜 자유에는 피냄새가 섞여있는가! 또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오늘날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갔는가를 한 번쯤 곱씹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문서 본편으로 들어가서, 2공화국이지만, 대통령은 있었습니다. 윤보선이 대통령이었는데 권력은 없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의 대통령이었지요.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장면 이었지요. 그래서 제2공화국을 다른 말로, 장면 내각 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자, 그러면 이 장면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요.

 

 정치적인 면에서는 개헌을 한 번 더 합니다. 3.15 부정선거가 너무 고약했던 것입니다. 기존의 법 체계로는 이 부정선거 사범들을 벌 주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확실하게 벌을 주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4차 개헌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4차 개헌의 특징은 소급 입법입니다.

 

 소급 입법이라는 말은, 법이 새로 생겼을 때 과거에 행했던 일까지도 벌을 주겠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우리 반에서 오늘부터 지각하면 벌금 5,000원이라는 무시무시한(!) 법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보통은 그 법이 오늘부터 시작되겠죠? 하지만 소급 입법이 된다면, 과거에 개학 했을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예전에 했었던 지각 잘못까지도 함께 벌을 주겠다는 거에요. 그만큼 강력한 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장면 내각이 4차 개헌까지 하면서 소급 입법을 했던 것은, 3.15 부정선거 같은 대참사, 말도 안 되는 모습은 절대로 금지시키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 다음에 굉장히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박정희 정부의 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있잖아요. 그 밑바탕, 그 청사진은 사실 장면 정부에서 다 만들어 놓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이미 경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사실! 중요합니다. 물론 계획을 수립하고는 정작 해보지도 못하고 장면 정부가 무너졌고, 계획은 박정희 군사 정부로 넘어가는 모습이었지요.

 

 여기까지가 장면 내각의 전반적인 모습이었는데요. 4.19 혁명에 의해서 들어선 정부다 보니까, 혁명을 주도했던 학생 세력들, 시민 세력들이 볼 때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 이래, 민이 주도하면서 지도부를 교체시킨 사례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4.19 사건을 혁명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이고요. 민의 힘을 확인하니까, 이제 민은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을 더 내려놓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달라, 민주주의의 열매를 함께 나누자! 는 의미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옵니다.

 

 먼저 교사들은 교원 노조 결성을 주장하고 만듭니다. 이제 교사들도 노동자라는 것이고, 조합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학원 자율화를 주장합니다. 으잉? 그 때도 사교육이 많았나봐요? 하하, 그건 아니고요. 학교를 살펴보면 법인들이 다 ㅇㅇ학원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 당시의 학원 자율화 라는 말은 학교의 자율화를 달라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도호국단 역시 폐지해달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군인도 아니고 동원나가기 싫다는 거지요!

 

 시민들의 요구를 살펴봐야 겠네요. 사실 6.25 전쟁 과정 속에서 굉장히 많은 양민들의 학살이 전개되었습니다. 북측도, 남측도 수 많은 양민을 학살하였지요. 왜냐하면 한국전쟁 자체가 밀고 당기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까, 상대편 적군을 색출하는 과정 속에서 특히나 많은 양민들이 적으로 내몰려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북한 같은 경우는 인천 상륙 작전 이후, 후퇴하는 도중에 대전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전력이 있습니다. 남한도 거창에서 빨갱이들을 색출한다는 명분 하에 양민들을 또 많이 죽이곤 했습니다. 전쟁이란 그토록 비극적인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살펴봅시다. 이제까지는 전쟁이란 원래 이런거야, 빨갱이로 몰리면 죽어야지 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면, 이제 민주주의가 좀 더 발달하니까, 마음껏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왜 빨갱이냐, 우리는 양민이었을 뿐이고, 억울하게 죽은 것이었다 라고 하소연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거창양민학살 진상조사를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그 다음에 진보적인 계열로, 혁신계 라고 있습니다. 이들 혁신계에서는 중립화 통일방안을 주장합니다. 이 때 나왔던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이 땅이 뉘땅인데 오도 가도 못한단 말이냐 라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한편, 수년 전이죠. 우리 1950년대 후반 진보당 사건을 기억해 봅시다. 그 때만 해도, 진보당의 평화통일정책이 남한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면서, 북진통일 아니라는 이유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사형시킨 전례가 있잖아요. 아니, 그런데 드디어 다시 또 통일을 이야기 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런데 문제는 장면 정부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회 곳곳에서 요구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수용하기 부담스러웠고, 수용하기에도 당연히 벅찼습니다. 따라서, 예컨대 혁신계 중립화 통일안은 탄압으로 대응하였고요. 게다가 핵심이었던 3.15 부정선거 처벌 까지도 법안까지 만들었지만, 시행에서 소극적으로 전개되면서 실망을 낳고 말았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여전히 북한의 위협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회의 의견은 다양하고 폭넓게 갑자기 쏟아지고 있지요~ 그래서 이 당시의 분위기를 혼란스럽다 라고 규정하는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누구였을까요? 바로, 또 다른 엘리트층인 군인세력 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이 분위기를 위기 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겠지요. 우선 민주주의는 원래부터 시끄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입장과 의견을 표현하고 있으니 무질서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민이 주인되려는 과정이 펼쳐지고 있고, 민주주의가 조금씩 자리를 잡고 성장해 나가려는 과정을, 이제 군사정변을 통해서 한 방에 쓸어버리는 것을 볼텐데, 이것을 과연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민주주의의 싹을 잘라버렸다, 따라서 군부의 쿠데타는 합리화 될 수 없다 라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이 체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너무 이르고 안일하다, 아직은 우리에게 민주주의 체제가 맞지 않았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후자의 주장을 지금 군인들이 들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961년이 되면, 지난 4.19 혁명으로 들어섰던, 피를 흘리면서 만들었던, 그 결과물인 장면 제2공화국을 부정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1961년 5.16 군사정변 입니다. 이제 박정희를 중심으로 군부가 정치를 하는 것이지요.

 

 5.16 군사정변은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반공을 국시로 한다. 제일 먼저 내걸었지요. 그리고 경제 개발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내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군인들이 계속 정치하지 않겠다, 정권이 안정되면 민간인들에게, 그러니까 3년 뒤에 민정 이양을 해서 권력을 넘겨주겠다고 말합니다. 특징이 있네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는데, 투 스타, 별 두 개의 소장들이 주도합니다. 나중에 배우게 될 12.12 전두환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왜냐하면 소장이 되면 실질적으로 병력들을 이끌고 지휘하는 사단이기 때문에 그 힘이 굉장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는 이제 정치에 나서게 되었으니, 군사 혁명 위원회를 만듭니다. 나중에 이름을 바꾸는데 꼭 기억해 둬야 합니다. 국가 재건 최고 회의 가 됩니다. 여기서 다 결정되는 거에요. 그리고 중앙정보부를 만듭니다. 반대 세력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들을 했지요. 이렇게 두 가지를 해놓고 나면, 그 뒤로는 군정이 실시되는 것입니다. 군사정부라는 의미에요.

 

 군사정부에서는요. 5차 개헌을 합니다. 핵심적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였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장면 내각은 보기 싫었다는 거지요. 그 다음에 정부 여당을 만들어야 겠지요. 공화당을 창당합니다. 정권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를 착착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떻게든 자주적인 경제개발이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또 나름대로 돈도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화폐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지하 경제에는 분명히 돈이 있을 것이고, 장롱 속이건, 지하 어디에 묻어뒀든 간에 돈을 끌어올려서, 세금을 제대로 걷겠다는 거지요. 몇 월 몇 일 이후로 구 화폐를 쓸 수 없도록 만드니까, 지하의 돈들이 나타날테고, 이런 돈들을 다 끌어모아서 경제 개발을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다만 씁쓸하고도 당황스러웠던 것은, 실제로 화폐 개혁까지 단행했지만, 돈이 정말로 안 나왔던 겁니다. 정말 다들 진짜 가난했어요! 너도 가난하지만, 나도 가난해! 박정희 군정에서는 이 장면을 보며, "우리 정말 거지였군, 이럴수가!" 라는 한탄이 나왔을 정도라고 합니다. 화폐개혁은 실패했고, 다음으로는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과감하게 농어촌의 부채탕감을 시행합니다. 그리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이제 시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1,62,63... 벌써 3년이 흘렀네요. 이렇게 해서 1963년도에 제3공화국이 출범하게 됩니다. 박정희가 약속을 딱 지킵니다. 직접 군복을 벗고, 스스로 민간인 입장이 되어서, 대선을 실시해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5차 개헌 때, 대통령 직선제 하려는 것은 이유가 다 있었던 거지요. 이번 문서는 여기까지 일단 딱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박 대통령의 시대! 박정희 정부 제3공화국의 이야기들은 다음 문서에서~

 

 이야기를 마치며,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소중합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흘리면서 거리에서 쓰러져 갔던 장면들이 있었다는 것 여전히 잊지 말아야 겠지요. 어느 설문조사를 보니 존경하는 대통령 1, 2위가 나란히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순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것도 높은 지지율이 나왔어요. 한 분은 근대화의 아이콘이고, 한 분은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어서 인상깊게 생각되더라고요.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 분은 보수, 한 분은 진보로 나뉘어서 또 패가 갈리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저는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사랑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그저 매우 인상 깊었네요.

 

 오늘의 영감 - 저를 사로잡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모험담들 입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은 대부분 미신이다. 안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안전한 선택 보다는 보다, 할 수 있는 한 더 치열한 인생을 살아보라고 헬렌 켈러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헬렌 켈러는 비슷한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마음 속에서 느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분의 글이지만 - 정말 중요한 것들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우며 행간을 통해서 읽어내려갈 수 있다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눈을 감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적당한 현실도피에 안주하거나, 이만하면 되었다 라는 것은 아님을 발견해 보곤 합니다. 저는 아주 뒤늦게야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없어도 되는 것들을 좇아가기 보다는, 그럼에도 나를 설레게 하는 삶을 향해서 걸어가는 그 걸음이 좋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5.01.05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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