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요한계시록9:1-)

 

요즘을 사람들은 한마디로 말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말세가 사실 너무 깁니다. 마치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여겨졌는데 용케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뭔가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비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신학적으로 말세는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말세만 약2000년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세의 끝이라고 해서 ‘말세지말’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 직유와 온갖 은유로 점철된 기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서 특별한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너무 요한계시록을 설교하지 않으면 혹여 이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서 신자를 미혹할 우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구절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4절에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의 분위기가 지금 어떻습니까? 곳곳에 피와 불과 유황과 사망의 음침한 광경이 나타납니다. 특히 본문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고 그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서 무저갱의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연기가 나와서 온 세상이 빛을 잃고 그 가운데서 황충이들이 날아 나와서 세상을 괴롭히는 기사입니다. 마치 지옥이나 말세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환경가운데서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총을 받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우리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이라고, 자기 자녀라고 인친 이들은 보호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을 시험해도 좋다고 허락하셨지만 그의 목숨은 뺏지 못하도록 하신 기사가 생각납니다. 여기서는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사람들에 대해서만 괴롭히되 그것도 목숨은 빼앗지 못하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그 옛날 욥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있는 거지요. 아니면 더 부드럽게 취급되고 있는 거지요.

 

아무래도 우리에게 그런 가혹한 시련이 오면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망가져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자연재해가 무섭습니다. 점점 더 더워지고 점점 더 추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가을이 너무 빨리 왔습니다. 더 빨리 여름이 왔다가 더 빨리 갑니다. 전체적으로는 더워지지만 그에 비례하여 더위와 추위가 극심해 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여름이 이렇게 덥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태풍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좁은 남한에서 한쪽이 홍수가 나고 다른 한쪽은 가뭄이 드는 경우는 정말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확실히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이들에겐 뭔가 이상합니다. 정말 심상치 않습니다. 북극이나 알프스의 빙하가 녹고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았다는 기사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물 한통을 구하기위해 100리길을 가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뭔가 지구가 병들어서 회복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인간은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늘어갑니다. 제가 자랄 때 30억이니 40억이니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75억이 넘는다는데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때도 ‘지구는 초만원’이란 표어가 있었는데 초만원의 두배가 넘었습니다. 그러니 모두먹기떼와 같은 인간들이 지구를 얼마나 더 황폐화시켰을지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게다가 지금 텍사스에서 하루 750mm의 비가 내려서 거대한 휴스턴 일대가 호수로 변했다는 둥 루이지애나에 1300미리의 비가 왔다는 둥의 기사는 정말이지 뭔가 지구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몇 년전에 이웃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쓰나미로 인해 폭발해서 수천명이 죽고 수십만의 이재민을 내었고 지금도 그 일대가 죽음의 땅으로 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연근해 해산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졸지에 먼 아프리카의 고기들이 식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일단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한 원자로의 불을 완전히 끄기가 어렵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오죽했으면 우리 정관의 통장들이 원자력해체연구소라는 것을 유치하겠다고 서명을 받으러 다녔겠습니까? 만일 원자로를 해체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이게 세계최초라면서요?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원자로를 해체해 본 적이 없답니다. 엄청나지요? 우리는 지금 뒷감당을 아무도 하지 못할 위험한 물건을 목숨을 내걸고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뿐입니까? 영국의 해안에서 유독가스가 몰려오는 바람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벌어 졌습니다.

 

인재도 정말 심합니다. IS의 횡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 유럽에 퍼진 무슬림들 때문에 피의 살육이 일어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뭐 어쩌면 백인들의 궐기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게다가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와 달걀과 쏘세지와 햄이 번갈아 가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가습기사태도 생리대사태도 있습니다. 제대로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고 제대로 안심하고 사용할 것이 없다는 탄식들이 들려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미 핵과 운반수단까지 개발한 상황입니다. 얼마 전에 중국과 인도가 부탄의 국경에서 만나서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며 대치하다가 결국 한판 붙었는데 누가 이겼을까요?

 

무승부입니다. 왜 무승부냐면 서로 짱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치고받아서 이마가 터지고 이런식으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싸웠겠습니까? 수만명의 군대와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고서도 이 사람들이 이렇게 원시적으로 싸운 이유는 혹여 이 싸움이 발단이 되어서 핵이 동원되는 비극이 일어날까봐 서로 자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 핵을 담보로 전쟁을 억제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겁니다. 즉 핵의 인질이 되어 있습니다.

평화스런 겉 모습 안에 언제든 우발적일 수도 있겠고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멸망이 뜻하지 않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중국을 중심으로 인신매매, 장기매매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장기가 없는 시체가 여기저기서 발견되어 집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그런가하면 한편에서 불로불사에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고 인공수정과 복제와 인공지능같은 미증유의 연구들이 이루어 집니다. 과연 지구는 지금 대 격변기에 접어 들었습니다. 이게 인류를 복락으로 이끌지 파멸로 이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전에 가 본 적이 없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그 누구도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 바로 이때 성도는 어떻게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말세에 일어날 열가지 재앙 중에서 일곱 나팔 재앙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다섯 번째 나팔재앙입니다. 이걸 보면 아마 지구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연구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듯이 보입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가면 인간은 아마 살아있는 지옥을 만드나 봅니다. 여하튼 기분이 좋지 않지요? 찝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래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4절 말씀입니다. ‘자연은 해하지 말고 또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자만 해하라’는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성도는 끔찍한 멸망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도만 구원받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혹시 우리도 겨우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아슬아슬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자,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봅시다. 먼저 8장에는 첫 번째 나팔재앙부터 네 번째 나팔재앙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8장은 13절입니다. 그러니까 각 재앙을 매우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본장인 9장은 21개의 절에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팔재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10장에서는 단독으로 일곱 번째 나팔 재앙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나팔을 불면 불수록 뭔가 더 큰 재앙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재앙의내용을 기술한 구절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수인 일곱 번째 나팔을 불게 되면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보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이 성경의 분량을 보면서 뭔가 재앙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이래도 너희가 회개하지 않을거냐? 이런 식입니다.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진짜로 별이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일 진짜로 별이 땅에 떨어진다면 아마 지구는 그날로 멸망할 겁니다. 별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별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보통은 사탄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무저갱을 맡은 천사장 ‘우리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대세를 따라 이 별을 사탄으로 간주합시다. 예수께서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여기서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 그런데 무저갱은 또 뭡니까? 문자 그대로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를 말하는 것이지만 음부라고 해도 되고 태초에 하늘아래의 물 중에서 땅에 가두어 둔 물이 있던 곳으로 이 곳에는 악한 자들이 갇혀 있고 또 사탄이 천년동안 결박되어 투옥될 곳으로 칭해집니다.

 

그런데 사탄이 지금 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합니다. 누구로부터 받았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겁니다. 그러므로 그가 아무리 권세를 부린다 해도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탄이 날뛰어도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우리 성도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 즉 사탄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으로는 부족해서 점쟁이에게 가고 무당에게 가고 하는 이들은 정말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물론 목사들이 신자들에게 제대로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목사들의 책임도 큽니다.

 

자, 사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고서 그 무저갱을 열었습니다. 아마 이 무저갱은 들락날락거릴 수 있는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먼저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왔는데 그 연기가 올라오자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 때문에 어두워집니다. 또 그 구멍에서 황충이 나옵니다. 그리고 황충이들이 전갈과 같은 권세를 받았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4절에 나오네요.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해하라”
이 황충이는 모세의 재앙에서 나오는 바로 그 황충이를 말합니다. 메뚜기. 그런데 메뚜기가 자연의 푸른 것을 갉아먹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 중에서 성도가 아닌 자들만 해하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메뚜기가 사람을 해치는 것은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이 황충이는 보통 메뚜기가 아니라 전갈같이 사람들을 해하는 모양입니다. 이 황충이가 사람들을 해하지만 죽이지는 않고 다섯달 동안 괴롭히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냥 괴롬이 아니라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쏘는 듯하게 고통스럽게 해한답니다.

참, 왜 하나님은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미 이 땅의 1/3이 극심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이것마저 해하게 되면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지금 인간의 완전 파멸이 아니라 뭔가 인간을 다루고 계신 겁니다. 회개시키려고. 회개시켜서 하나님앞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그런데 황충이로부터 당한 이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사람들은 고통을 받기 보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호소할 정도라는 겁니다. 그러나 죽기를 바라도 죽지는 못한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고통일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죽은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몇 번 몇십번을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지만 죽지도 못하고 영세토록 고통을 받는다니 너무 끔찍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 고통을 미리 맛보여 주시고는 이래도 너희들이 회개하지 않을 거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전도하지 못해서
내 사랑하는 자들이 만일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해서
이 황충이로부터 고통을 받는다면 내가 곁에서 제대로 지켜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황충이를 보면 이건 보통 황충이가 아닙니다.
무슨 메뚜기가 말 같답니다. 그것도 전쟁을 위하여 준비된 말 전마. 게다가 머리에 금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고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같고 머리털은 여자의 머리털 같답니다. 그리고 이빨은 사자의 이빨같다는데 정말이지 엄청나게 먹어 제낄 것 같습니다. 주로 메뚜기들이 갉아 먹는데 메뚜기들의 작은 이빨로도 엄청나게 갉아먹는데 사자의 이빨 같은걸로 갉아먹게 되면 얼마나 많이 먹을까요?

 

게다가 가슴에는 철호심경같은 것을 하고 날개소리가 마치 병거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가는 것 같다고 묘사가 되어집니다. 아마 이런 황충이들이 엄청나게 많고 또 기세가 사나운 모양입니다.

자세히 황충이의 모습을 살펴보면 먼저 황충이는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답니다.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을 우리는 전마라고 하지요. 이 말은 매우 사납고 덩치가 크며 시끄러운 소리에도 잘 놀라지 않습니다. 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전마는 가장 크고 힘이 셉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순한 말이 아니라 그 기세가 사납습니다. 그래서 전마들이 달려오는 그 앞에서 보병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마는 힘이 좋습니다. 그래서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도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지요.

 

메뚜기가 말만큼 크다고 하면 당연히 이상합니다. 말만큼 큰 메뚜기들이 하늘을 떼를 지어 날아다니면 그 자체로 지구 멸망입니다. 공포지요. 그래서 여기 본문에 나오는 황충이는 그냥 상징일 뿐입니다.
진짜로 메뚜기가 지옥에서 날아와서 사람을 해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 황충이는 사탄의 하수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황충이의 모습은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답니다. 잘 보세요. 주님이 쓰신 금 면류관이 아닙니다. 금도 아니고 금 같은 것이고 면류관도 아니고 관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충이는 주님을 모방한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지만 얼핏보면 뭔가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서는 사람들을 미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나 사교의 교주?

 

이건 우스개소리입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요한이 혹시라도 전쟁의 폐허에서 지하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투기를 보고 이런 식으로 글을 적지 않았을까하는. 당시 사람들은 전투기라는 걸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란 말은 혹시 조종사들이 탄 곳이 유리로 얼굴만 비춰져서 그런게 아닐까 게다가 이빨부분은 페인트로 그리거나 한 그런 모습을 멀리서 보고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당연히 전쟁터니까 무저갱이 열리고 연기가 나고 .... 하하 말이 됩니까? 안됩니까? 넘어갑시다.

 

세 번째로는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촛대 사이에 계시는 인자같은 이’로 묘사하는데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지요. 여기 황충이 역시 사람 비슷하지만 메뚜기와 결합된,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이상한 모습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서양의 신화에 보면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켄타우로스도 그렇고 바알도 그렇고 스핑크스도 그렇고 메두사도 그렇고...

 

이단과 사탄은 항상 이처럼 가면을 쓰고 아니면 그럴듯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자세히 살피면 전혀 다른 실체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세에 이단과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 보세요. 황충이는 여자의 머리털같은 머리털이 있어서 얼핏 보면 음녀의 그것처럼 매력적인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 머리털로 감추인 이빨은 뭐든지 씹어서 부숴뜨릴 수 있는 사자의 이빨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자의 이빨이란 대목은 요엘서에 나옵니다. 온갖 것들을 부숴뜨리며 씹어서 작물을 다 갉아먹고 망치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는 마치 가면 뒤에 마수를 감추고 있는 거짓 선지자나 적그리스도 같습니다. 거짓선지자의 가면에 속아서 가까이 간 이들을 집어 삼키는 무시무시한 모습이 연상됩니다.

 

저는 솔직히 이단에 빠진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열심히 바르게 믿어 보려다가 ‘금같은 관비슷한 것’을 쓴 황충이에게 속아서 위기에 처해 있는 이들이지요.

 

아무 방비도 없이 그냥 가면, 예수님의 얼굴을 하고 선지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저 가증한 거짓말쟁이들에 속고 있는 저들을 저는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요. 우리 주님이 그 어리석지만 착한 저들을 부디 사탄의 이빨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 성도뿐만 아니라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자비와 긍휼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황충이는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답니다. 호심경은 심장을 보호하는 방패같은 것이지요. 옷위에 주로 철로 만들어서 덧대 놓았습니다. 여기에 칼이나 화살이나 창이 침범해도 심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 번역본의 성경에서는 호심경이 아니라 철흉갑으로 되어 있습니다. 흉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호심경보다는 보호받는 범위가 더 넓습니다. 이것은 황충이의 약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말처럼 빨리 다니는 황충이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는 갑옷에 사자의 이빨을 가졌으니 그 탐욕과 무서움이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리고 황충이의 날개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답니다. 아마 엄청나게 많은 황충이들이 일제히 날개를 퍼득이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나 봅니다.

 

병거의 바퀴들이 구르는 소리와 말발굽소리가 연상되는 황충이들의 날개소리는 황충이들이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런 황충이들 앞에 인간의 힘은 매우 미약합니다. 도저히 그들을 제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의 재앙이 엄청나게 끔찍하고 힘이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제어할 수 없을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황충이에 대한 묘사가 이걸로 끝난게 아닙니다. 진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메뚜기 황충이는 전갈과 같은 꼬리가 있답니다. 전갈은 꼬리로 쏘아서 사람을 중독시키지요. 일반적으로 메뚜기는 그런 흉악한 꼬리를 가지지 않습니다. 단지 이빨로 갉아먹는 것만이 메뚜기가 해를 끼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무저갱에서 날아온 황충이는 메뚜기면서 전갈같은 꼬리까지 있습니다. 아마 이걸로 사람들을 해하여 다섯달 동안을 괴롭히는 모양입니다.

 

이 황충이의 모습은 사실 하나님의 창조원리하고는 정반대입니다. 사람과 짐승이 결합된 모습일 뿐만 아니라 곤충이 관과 갑옷까지 착용한 듯한 모습은 한마디로 혼동과 무질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만 보면 이런 짐승과 사람을 결합한 시도는 이교의 신상을 묘사하는데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천사와 짐승의 중간이다. 그래서 천사처럼 한없이 고귀해 질 수도 있고 짐승처럼 한없이 저열하고 악해 질 수도 있다는 그런 말을 했지요. 바로 이 황충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뭔가 기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홀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황충이는 사자의 이빨과 전갈의 꼬리로 사람을 해하는 권세를 가졌지요.

 

우리가 황충이가 쓰고 있는 금 같은 관비슷한 것에 홀리고 사람의 얼굴을 한데에다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는데에 미혹된다면 그 고통은 가히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섯달’이란 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별로 얼마 안되는 기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차라리 죽기를 바랄정도라고 하는데 왜 하나님은 저들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허락지 않고 다만 고통만을 주실까요?

 

그것은 저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려함입니다. 원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러함에도 미혹의 영인 사탄에게 미혹되어 그 기괴한 능력과 형상을 숭배합니다. 사탄이 일시적으로 권세를 가진 것도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도 저들은 자기 편한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사탄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왜 저들이 사탄을 숭배합니까?

 

사탄은 거대한 건물과 권력과 돈과 쾌락같은  인간에게 잠재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 저들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으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한 황충이를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탐욕이 무저갱에 잠들어 있던 괴물을 깨어나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수천억원을 빌려서 거대한 예배당을 짓는 교회들은 교회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것이며 말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개 교회역사에 보면 거대한 예배당을 짓고 난 다음에는 쇠퇴가 오더라고요.

 

지금 유럽의 거대한 석조 예배당, 수십년 수백년에 걸쳐서 지어진 건물은 전부 관광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거대한 예배당과 성당에 예배와 미사는 드려지지 않습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기독교에 헌금이 막 쏟아질 때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사치하고 교만하며 거대한 건물에 투자한다면 하나님은 주신 것들을 거두어 가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게 만드실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황충이 재앙을 통하여서 저들이 어리석게 숭배하는 그것이 너희를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너희를 괴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저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 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적으로 다섯달 동안의 고통에도 목숨은 해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실로 충격적입니다. 무저갱의 입구가 열려서 검은 연기가 막 뿜어져 나오는데 그 가운에서 황충이들이 날아 올라와서 사람들을 해하는 모습은 마치 지구의 종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들에게도 왕이 있답니다. 그 왕의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이랍니다. 아바돈이란 말의 뜻은 멸망 또는 멸망의 장소입니다. 물론 헬라어 아볼루온이란 말도 비슷한 뜻을 가지지만 여기에 또 다른 이중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아볼루온’이란 말은 아폴로를 가리킵니다. 아폴로?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입니까?

 

그런데 이 신의 현신으로 스스로 자처한 로마황제가 있는데 그는 ‘도미티안’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대박해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도미티안 황제인데 어쩌면 황충이는 이런 로마황제들을 의미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반기독교적인 세상의 지도자를 의미할 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금관을 썼지만 실제 금이 아니라 금같은 것이고 면류관이 아니라 관같은 것이라는 것을 볼 때에 이들이 마치 그럴듯한 외양을 하고 성도를 괴롭히며 고통에 처하게 하는 거짓선지자 거짓 지도자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도 역시 로마제국을 본 딴 독일제3제국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휘장과 제복 그리고 철십자로 대표되는 그는 오늘날의 적그리스도요 그의 군대는 오늘날 실체화된 황충이떼입니다.
찾아보면 이런 미혹의 관을 쓴 황충이떼들이 매우 많습니다. 국민들의 민도가 높지 못하거나 독재가 벌어지는 곳에서는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 황충이같습니다. 저들은 그럴듯한 모습과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지만 실제로는 공포와 폭력으로 사람들을 다스립니다.

 

저는 이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를 오늘의 공해 또는 원자탄에 피폭된 모습으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공해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우리도 지금 매해 황사니 미세먼지니 해서 제대로 숨조차 쉬기 어려운 날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불러 일으키는 돈을 위해서 공해방지 시설이 없는, 있어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유독성의 공장을 지어서 공해물질을 세상에 확산시키는 것이 바로 탐욕이라고 하는 끝이 없는 심연의 뚜껑을 열어 젖힌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지도자들은 선거기간에는 온갖 그럴듯한 좋은 말로 국민들을 미혹하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서는 그 실체와 마각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미혹하고 또 괴롭히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요한계시록은 그냥 상징이요 비유이므로 문자 그대로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걸 아시고 다음으로 넘어 갑시다.

 

이 무저갱하면 떠오르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라사에 가셔서 군대 귀신 들린 자를 치료하실 때 그 군대귀신이 뭐라고 합니까?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 했쟎아요. 귀신들과 악인들의 영혼을 가두어 둔 무저갱이 열리면 온갖 해로운 것들과 악한 것들과 귀신들과 사탄의 권세가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간은 무려 다섯달 동안이나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재앙에서 고통받는 자는 이마에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는 인이 없는 사람들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굉장한 재앙 앞에서도 하나님의 성도들은 보호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황충이는 멸망의 징조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임하는 재앙 중에 황충이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이런걸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온 하늘을 새카맣게 뒤덥고 날아다니며 일단 지상의 목표지에 앉으면 삽시간에 식물들을 뜯어 먹고 다 먹고 난 다음에는 다시 하늘로 날아 가는 모두먹기떼들이지요.

 

그런데 이런 것 들이 식물들을 갉아먹는 간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해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요? 이 황충이들이 전갈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쏘게 됩니다. 그걸로 고통을 안겨 주는데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는 이 권세가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권세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성도가 아닌 이들만 해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안에서 보호받는 우리 성도들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미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실 때에 뱀과 전갈을 밟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보아 우리 성도들은 전갈같은 권세를 가진 황충이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삽니까? 당연하게도 땅의 푸른 것을 먹고 삽니다. 육고기나 물고기를 먹지만 푸성귀가 없으면 병에 걸려서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곡물도 당연히 필수적인 먹거리입니다. 이것도 제대로 먹어 두지 않으면 심각한 영양붕괴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황충이들이 그 입으로 푸른 것들을 다 갉아먹어 버린다면 인류는 볼 것없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황충이들에게 푸른 것들, 수목을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대신에 사람들을 공격하게 하셨습니다. 그 꼬리로, 전갈을 닮은 꼬리를 가지고 사람을 공격하는데 모든 사람을 다 공격할 수 있는게 아니라 성도가 아닌 자들만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지옥의 문이 열리고 지옥에서 나온 황충이들이 연기로 어두워진 지상에 다니면서 그 전갈을 닮은 꼬리로 사람을 공격합니다.

 

자, 하나님은 말세에 성도가 아닌 이들을 황충이를 동원하여 징치하시지만 이들을 멸망시키기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비는 최후의 심판 때가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황충이를 동원하여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시려고 황충이로 하여금 꼬리고 사람을 괴롭히되 목숨은 뺏을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지말인 이때에도 여전히 주님은 마지막으로 구원받을 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겁니다.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 형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뭐뭐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말에서 ‘해하라’는 말이 ‘시금석으로 금의 순도를 시험하다’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황충이가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람들이 제대로된 신앙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가 장차 망할 성, 장망성을 떠나서 제일 먼저 들어가려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좁은문’이겠지요? 그런데 먼저 갔던 사람들이 뛰어서 돌아오면서 자기에게 소리칩니다. 속았다고 속았다고 도로 돌아가라고 이대로 가면 사자에게 잡아 먹힌다고.

 

이 소리를 듣고 기독도도 처음에는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래도 전도자의 말이 설마 거짓말이 아닐거라는 믿음으로 가까이 가서 보니까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길목 수십미터의 거리 양쪽에 사자들이 늘어서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도들을 잡아 먹으려 하는데 자세히 보니까 그 사자들은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좁은문으로 들어가려는 성도들을 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성도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좁은 문을 향하여 똑바로 가기만 한다면 우는 사자들이 달려들려고 위협해도 절대로 사자들이 덥칠 수 없게 쇠사슬의 길이가 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도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좁은문만을 바라보고 걸었고 마침내 좁은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그 부분이 기억납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이 성도를 우는 사자처럼 달여 들어서 잡아먹을 처럼 위협해도 결코 우리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는 우리를 잡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겁을 먹거나 염려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에 너무 놀라서 미리부터 좌절하고 포기하면 우리의 원수 사탄이 이기는 것입니다.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고단해 질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해도 그 순간에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아닌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성도들이 황충이 재앙으로부터 안전한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유기된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사랑을 거두어 들이지 않으시고 게다가 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지금 세상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온갖 것들이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방해합니다. 자,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을 보호하십니다. 지금 세상에 고통을 주는 것은 사탄이지요. 그러나 사탄이 마음대로 사람들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탄에게 사람들을 시험해서 옥석을 구분할려고 시험할 권세를 주신겁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정말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사탄이 건드리지 못하게 성도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가운데서도 안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황충이 사람들을 공격해서 고난을 줄 때 그 기간이 다섯달이랍니다. 다섯이란 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서 나온 모든 것은 다 상징적인 것이므로 실제적으로 다섯달이란 시간만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람들은 절망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며 하나님없이 살아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는 시험이 되지 않겠지요?

 

여기서 다섯은 ‘모자람’과 ‘약간’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보통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관련을 제외하고 완전한 수 , 오랜 기간을 나타 내는 것에 열, 십을 쓰기 때문입니다. 오는 그 열의 절반이므로 완전하지 않고 어느 정도 아쉽고 모자라고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절반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덩이가 있지요. 또 누가복음에 보면 참새 다섯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앗사리온은 드라크마의 1/10이랍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것, 적은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참새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라는 것은 매우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떡 다섯 덩이는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간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아이의 도시락에 떡 다섯덩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유대인들에게 다섯, 오는 약간의 의미고 그래서 여기 다섯달은 그렇게 길지 않은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기간이 짧다고 해서 그들이 겪는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울바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부르짖을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점점 더 이상해 지고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질병들이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며 우리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이 우리를 꼭 복락의 상태로 만들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지금도 누구에게 천국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지옥이 됩니다.

 

아무쪼록 제가 바라고 믿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평안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어서 세상에 어떤 풍파가 몰아쳐도 끄떡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속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데리고 들어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평안한데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평안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고 궁극적인 평안 솰롬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큰 일입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그를 경외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7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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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설교가 300개가 넘게 올라와 있지만, 계시록 설교는 처음 이었습니다. 교회에서도 깜짝 놀라기도 했네요.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는 목사님의 강한 경고가 흥미로웠습니다. 이단은 보통 반대로 말하거든요. 문자 그대로 믿어라. 사실 성경은 원문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쓰여 있는게 훨씬 이해하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석서의 여러 주장들도 함께 고려해 보는 잔재미(?)도 있겠고요.

 

저는 자꾸 생체기술이 발달하는게 신경이 쓰입니다. 홍채기술로 스마트폰을 여닫는 것이 최근의 기술인데, 일부 회사는 벌써 손에 칩을 넣었다는 기사가 오가지요. 신용카드가 몸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생활의 편리를 맞이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종말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개인들을 통치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현금 거래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겠고요. 결국 정보의 독재자가 출현하죠. 빅브라더 시대가 열리고,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빅브라더의 기술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첨단의 시대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발품을 팔아서 이웃을 챙기는 애정이 커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2017. 09. 시북

 

by 시북 2017.09.20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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