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Letters To Juliet,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13. 17:37

 감성 세포가 죽어갈 때는 "힐링"이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그럴 때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을 권하고 싶습니다. 낭만은 여전히 가능하며, 사랑에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고요. 독특한 템포조절을 통해, 경쾌함이 듬뿍 담겨 있는 작품이니까요. 닿을 듯 말 듯, 그 경계선을 넘나드는 느낌이 참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줍니다. 또한, 사랑에 관해서도 정말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고요. "같이 있고 싶은가요?" 그러면 충분히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됩니다. "오래되고 가까운 사이라면서, 정작 그 사람은 혼자 지내려고만 한다고요?" 그러면 더 늦기 전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는 두 개의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바로 진심과 용기 입니다.

 

 음, 확실히 요즘처럼 쿨하고 가벼운 사랑이 열렬히 환영받는 시대에, 진심이 닿는다? 용기를 낸다? 이런 류의 접근은 무척 부담스럽거나, 혹은 느끼한 접근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중요한 순간에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게 사실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오래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대화는 중요하고, 함부로 내 뜻대로 의사결정을 다 처리하지 않는 "상대방과 함께 숨쉴 여유"가 필요합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흔들리는 연인 소피와 빅터의 이태리 여행기에서부터 막이 오릅니다.

 

 

 빅터는 유능한 요리사이자, 가게를 새로 열 준비를 하고 있으며, 워커 홀릭으로 유명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연인과의 달콤한 이태리 여행" 이란? 사실은 이태리에서 사업에 필요한 핵심 재료들을 확보하는 비지니스로 전개되기까지 합니다. 어여쁜 아가씨 소피가 보기에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 점점 열받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인내심 많고, 이 착한 아가씨는 꿋꿋하게 남친 뜻을 따르다가, 갑자기 운명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걸어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줄리엣에게 보내는 편지" 그 프로젝트 현장을 목격한 것이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에서 소피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감동을 했고, 편지에 답장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나의 다른 모습. 아,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장면입니다. 어쨌든 소피는 이제 "친절에 동참" 하면서, 자신도 누군가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기로 결심합니다. 아주 정성스럽게, 아주 다정하게, 침까지 꼭꼭 발라가면서 밀봉된 답장 편지는,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에 닿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영화를 보면서 "설마, 그게 가능해?"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에이, 편지 한 통이 운명을 바꿀 수 있겠어? 작은 친절이 인생을 바꿀 수 있겠어? 그런데, 놀랍게도 가능합니다! 소피가 마음을 간절히 담아 써내려갔던 편지 한 통이, 타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이걸 계기로 소피 자신의 삶까지 바뀌어 나갑니다. 저는 이 모든 행위의 출발점을 주목해 보고 싶은데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진 숨은 미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피는 이태리 여행에서, 하지 않았던 글쓰기를 과감하게 시도하기 시작했고, 이 또한 뛰어난 소설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언젠가 하겠지 가 아니라, "바로 지금" 시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 점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너무나 유쾌한 모습이 많습니다. 예컨대 클레어 할머니가, 용기를 내어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좋은 통찰을 줍니다. 일단 용기를 내고, 성큼 시도를 했단 말이지요, 그런데, 무려 50년전 첫사랑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정보는 없고, 단지 이름만 남아있습니다. 이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70명도 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현실은 이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소피와 클레어는 "위대한 선택"을 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될 때까지 계속 가보지 뭐.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험난한 현실 앞에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저는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클레어 할머니의 잘생긴 손자 "찰리"군이 보기에, 이 모든 상황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비현실적으로 사니까요. 극히 낮은 가능성에 기대어서,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데,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할머니와 소피가 황당했겠지요.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용기"의 가치가 빛나보입니다. 매일 실망하고, 좌절하고, 마음 아픈 일을 경험하지만, 할 수 있는데까지 가보겠어 라는 용기 있는 태도. 우물쭈물하는 훈남 찰리의 우유부단함과는 상당히 다른 지점이라 하겠고요.

 

 여하튼, 망설이지 않고 계속 첫사랑 찾기를 밀어붙였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는 다소 엄격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클레어 할머니의 대사는 정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보물같은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충분히,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고마워, 소피." 우리는 흔히 원하던 결과를 이루어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흔한 예로, 돈이 엄청 많으면 행복할텐데... 애인이 생기면 행복할텐데... 등등, 그러나 사실은 내가 꿈꾸던 삶을 위해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과정" 그 속에 행복이 함께 하고 있다는 통찰은 정말 근사했습니다.

 

 더 고맙게도, 영화는 중반부터 행복한 전개와 운명적 사랑을 찬사하는 대목으로, 정말 동화 그림처럼 펼쳐지는데요. 클레어는 기적처럼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심장이 쫄깃해 진다니까요. 하하. 뭐, 이 역시도 클레어 할머니가 본디 행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도 여전히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인생은 굴곡이 있고, 아픔도 있기 마련이지요. 사실은 가장 괴로웠던 것은 클레어 할머니 아니겠어요. 소녀 시절에도 그랬고, 중년 시절에도 그랬고...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행복을 숨쉬는 삶의 여유"에서, 저는 인간의 높은 품격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클레어 할머니가 이처럼 용기 있게, 멋진 인생의 황혼기를 맛보고 있는데, 두 젊은 남녀, 소피와 찰리도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우선 찰리는 여전히 소심남이긴 하지만, 한 걸음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자칭 현실주의자이자, 삐딱선으로 가기도 한다지만, 영화 막판에 완전 재치 넘치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너무나 유쾌했습니다. 저저, 분명 그러다 떨어질 것 같더라니만... 하하.

 

 가장 과감해진 사람은, 주인공격인 소피겠지요. "이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용기, 마침내 작가로서 살아가는 용기까지! 그녀는 대범한 태도로, 어정쩡한 인생을 내던져 버렸고, 한 번 뿐인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 스스로가 소설 속 주인공 처럼, 그렇게 살면 된다고 확신했던 겁니다. 그래서인지, 소피는 마지막에 주변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달콤한 입술박치기를 선보이면서, 본격 염장 - 솔로에게 가혹한(?) 장면을 보여주며 즐겁게 막을 내립니다 :)

 

 사실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도 덤으로 감상하기 좋습니다. 배경음악들도 분위기가 대단히 좋았고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삶을 사세요." 라는 말이 몇 번이나 가슴으로 전해졌는데요. 다른 삶이 가능하다며 미친 듯 뛰어들어가면, 정말 놀라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행복이 들어있는 거고요. 마무리로는, 요즘 즐겨 쓰는 이 말이 딱 좋겠다 싶네요. "인생은 어려울 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연속되는 첫사랑 찾기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클레어 할머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제대로 살고 있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소피에게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했던게 아닐까요.

 

 이루어지지 않아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것, 과연 우리는 이게 있을까요? 매일 실망하고, 혹은 좌절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어려움을 좋아할 수 있는 것, 과연 우리는 이게 있을까요? 이걸 우리가 발견하는 순간, 그리고 그 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순간, 우리는 얼마든지 또 다른 인생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레어에게는 이것이, 용기 없던 삶을 돌이켜 다시 오늘을 살아보는 것이었고, 소피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글을 써보는 것이었고, 찰리에게는 이것이, 당신이 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다, 미친듯이 열렬히 너무나 좋다 라고 말할만큼 설레고 뜨거운 모습이었네요.

 

 우리에게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기를, 정말 용기내어서 도전해보는 모습이 있기를, 미친 듯 한 번 부딪혀 볼 수 있는 게 있기를,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말하는대로, 꿈꾸는대로, 놀라운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되겠지요. "당신이 존재한다는 그 황홀함" 이랄까요. 한 편의 로맨스 영화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두서 없이 써내려 왔네요. 산다는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마음을 치유해주고, 위로해주는, 신기하도록 맑은 영화, 지금까지 레터스 투 줄리엣 이었습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