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인 타임 (In Time,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20. 23:57

 오래전 있었던 일입니다. 어김없이 눈꺼풀이 무거웠던(?) 어느 아침에 이숙영 누님의 라디오를 듣다가, 단 한 마디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부자" 라는 코멘트 였지요. 그 이후로 저는 돈 욕심은 없어도, 반드시 시간과 여유는 충분히 확보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작년에 은사님께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정말로 시간부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으니, "인 타임"을 한 번 보라고 추천해 주셨지요. 저의 욕망 가득한 꿈(?), 하루가 48시간이고, 1000년 쯤은 살게 되는 꿈,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 꿈이 재밌게 펼쳐지고 있는 영화, 오늘은 인 타임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기본적인 규칙 설정은 단순하고 곧바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시간을 몸에 새겨넣고 살고 있는데, 그 시간이 떨어지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인류와 다른 것은, 첫째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 충전이 가능해서 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세계에서는 화폐 자체가 등장하지 않고, 모든 것이 "시간"으로 계산되고 지불됩니다. 예를 들어 가벼운 커피는 5분, 점심값은 30분, 장거리 교통비는 1시간을 지불해야 합니다. 엄청 호화로운 자동차의 가격은 수십년을 지불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서, 시간을 보충해 나가면서 살아가지요.

 

 

 사실은 현대 사회의 한 풍경을, 일정부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돈을 벌고, 비용을 치르고, 각각의 상품마다 다른 가치를 매기고 있으니까요. 운좋게 타고난 부자가 아니라면, 몇 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를 사려면,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수고가 있어야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사실상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계층 이동이 불가능해 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득 하위 20% 사람이, 상위 20% 로 진입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거의 영화 만큼이나 이동의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루 벌어,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정말 부자인 경우라면, 경기가 아주 불황이라도, 임대 소득 등 다양한 사업 루트를 열어놓았으므로, 생활이 적자가 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고, 통계 수치가 증명하고 있는 지표가 그렇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렇게 본다면, 영화가 정면으로 꼬집듯이, 한 번 부유층에 제대로 진입해서 살게 되면, 그들은 거의 영원히 그 위치를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다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장벽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일종의 희망고문을 던져주는 건데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 라는 구호를 내겁니다. 그리고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을 띄워주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세련되게 잘만 포장하면, 얼마든지 부의 정당화, 가난의 정당화를 시키는 고전적인 수법이지요. 쉽게 말해, 현재의 처지를 "개인의 노력탓"으로 치환해 버리는 겁니다.

 

 영화가 말하는 진실은 꽤 노골적입니다. "소수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다수가 일찍 죽어야 하는 것" 이걸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면, "소수가 엄청난 부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수가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 것" 으로 얼마든지 바꿔쓸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다수가 조금이나마 임금이 올랐다고 기뻐할 여유도 없이, 물가는 그만큼 같이 오르면서, 거의 쳇바퀴 도는듯 고단한 생활은 계속 이어집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의 주인공 "윌"이 우연히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을 얻게 되었지요. 윌은 마치 성자처럼, 가난한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시간을 나눠주고, 힘든 순간에도 나누는 삶을 영화에서 끝까지 펼쳐나가며, 잔잔한 감동을 계속 흘려줍니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윌의 호기로운 태도입니다. "왜?", "진실은 뭘까?", "세상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현재의 시스템을 부정하며, 다른 가능성을 향해서 과감하게 돌진해 나갑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년 정도의 시간을 나눠줘봐야 의미가 없음을 깨닫자, 그는 전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백만년쯤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시스템에 균열을 가해보지 뭐! 저돌적이고 영리하며 반항적입니다. 또한, 영화계 아이돌(!) 답게 외모도 훈훈하고... 하하.

 

 예쁘게 등장하는 히로인이자 부잣집 아가씨 실비아는, 윌의 대담성에 반해서 함께 행동하게 되는데, 극중에 이들 커플이 툭하고 던져주는 이 대사가 역시 달콤합니다. "하루면 많은 걸 할 수 있지!!!" 물론,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굳이 옷벗기 포커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_-! 하하. 뭐 농담이고, 여하튼 정말로 하루면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무거운 몸으로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과중한 업무를 마치고, 잠깐 TV와 스마트폰으로 여가를 보내다가 어느덧 잠이 들어버리는 하루. 과연 하루면 많은 걸 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이렇게 곤란할 때는, 강신주 선생님의 철학책 한 권을 집어들면 꽤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 언제 생각을 하게 되는걸까요? 위의 문단 처럼, 일에 치여서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사실은 생각을 안 하고 그냥 하루를 흘려보낼 수 있음"을 철학자 하이데거가 간파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걸 이해하고 실비아양을 바라보면, 놀라운 묘사를 읽을 수 있는데요. "대담하게 살지 않는다면, 살아도 사는것 같지가 않다"라는 그 재밌는 표현이야말로 저는 진실에 아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매사 극도로 조심하면서, 아주 평범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사실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게 아닐까 라는 통찰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활 속에서는 인간의 생각이 정지하며, 문제 의식 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실비아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사실은 훈남과 함께 뛰어다니니 즐겁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영화 내내 생생한 표졍 연기를 그야말로 즐겁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을 계속해서 만나니까, 생각을 하게 되고, 어찌해야 할 지 굉장히 갈등하기도 하고, 이런 삶의 과정이야말로, 저는 "살아있음의 기쁨"과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낯선 것, 새로운 자극, 감미로운 책, 좋은 영화, 타인과의 대화 등이 필요한 까닭은, 우리를 사유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시스템이 붕괴되어가는 모습을 비춰주고, 윌과 실비아에 대한 현상금이 10배로 뛰는 재치를 보여주고, 그럼에도 그들이 대범하고 재밌게 "하루면 많은 걸 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막을 내립니다. 번역가 이윤기 선생님이 과거 미국생활을 할 때, 늦은 저녁마다 한 편씩 나오던 명작 영화들이 너무 재밌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고하던게 기억납니다. 사실은 우리도 그렇게 너무 재밌는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 부담스럽게 느낄 필요도 없이, 당장 가까이에서부터 조금씩 찾아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저는 아직도 만화책 꼭두각시 서커스 같은 인상적인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

 

 조금은 뻔한 결론이겠지만, 결국 백년, 천년을 사는게 중요한 게 아닌 것입니다.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고, 예상 밖의 이야기와 예상 밖의 만남, 그리고 다른 시도를 해보는게 중요합니다. 하이데거를 통해서, 인간이 그리 생각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지루해져 가는 비밀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순간적 즐거움만 뒤좇고 있다면, 그렇게 사는 인생은 어쩌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것이 문득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닌가 되묻게 되어서, 어쩐지 윌과 실비아의 당돌함이 부러워지는 것입니다.

 

 "Don't waste my time!"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줄 아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실비아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용기,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가보는 용기,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있으므로, 반드시 그런 용기는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오늘 리뷰는 마칩니다. 소중하고 낯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열심히 응원하며.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