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30. 18:27

 요사이 저는 불확정성과 불안감이라는 두 가지를 여러 차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먼저 불확정성이라고 한다면, 간단히 말해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안정적인 사회라고 할지라도 한 방에 훅 가는 것이 세계의 냉혹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입니다. 고도로 과학이 발전했음에도, 아직도 인류는 지진을 예측할 수 없으며,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를 했음에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꽤나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 불안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을 선택함으로서, 이겨나갈 수 있음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자책에서 벗어나려면, 현재를 행동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입니다. 서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영화 테이크 쉘터 리뷰를 써볼까 하는데, 난감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어떻게 접근하는게 좋을까... 이럴 때는, 느끼는 대로 후다닥 써보면 좋겠다 싶네요.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노동자 계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서민이지요. 당장 직장에서 짤리면 큰일나고, 가진 돈은 넉넉하지 않고, 그럼에도 소박하게나마 행복을 유지하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이 보입니다. 또한, 귀여운 딸은 말을 하지 못해서, 딸과는 수화로 의사소통을 해나가고 있으며, 조만간 치료를 고려하고 있고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런데 주인공 커티스가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아주 기분 나쁜 꿈이 펼쳐지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꿈속에서 모두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상당히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키우던 개가 팔을 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래미가 납치되거나, 부인이 칼을 들 것 같은 기분, 절친한 직장 동료는 흉기를 휘두르고... 그렇게 자꾸만 악몽과 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커티스도 상태가 심각함을 눈치채고, 의사를 찾아가서, 안정제를 복용하는데요.

 

 어쩐저 저는 이 상황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커티스는, 동료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으며, 나름대로 빵빵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정작 일상에서 잘 기뻐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았던 것이, 부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계속해서 삶을 괴롭혔고, 급기야 서서히 현실의 삶까지 흔들거립니다.

 

 확신에 찬 커티스는 분명 초거대한 폭풍이 올꺼라며, 집 앞에다가 거대한 토네이도 쉘터 (대피소) 공사를 시작합니다. 돈도 없는데... 대출까지 안아가면서 말이에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를 구입하고, 중장비가 동원되고, 이웃들도 어느새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좋은 대안 중에는, 무엇인가 목표를 정해서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 동안은 불안을 거의 잊을 수 있습니다. 커티스는 안전하고 쾌적한(!) 쉘터 구축에 엄청난 공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약 20만원짜리 방독마스크도 갖춰놓고, 보존기간이 긴 음식들도 잊지 않고 준비해 놓았습니다. 물론, 이건 다 커티스 입장에서 바라본 시점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이건 그야말로 미친 짓에 불과합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마당을 파내고, 거기다가 대피시설을 만든다며, 거금을 들여 토목공사를 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조금 더 진행되면, 커티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밝혀집니다.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을 앓았으며, 고작 10살 무렵에 나를 버리고 사라져버렸음을 관객이 알게 됩니다. 또한 커티스는 아내에게 절절하게 이해를 구합니다. "내가 정말 이상해 보이는거 알아, 그렇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족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 어쩌면, 커티스의 처절한 삽질들은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여기서 조금 과감히 접근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떨어진다는 것은 끝장이므로, 돈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은 계속해서 삶의 충격을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커티스의 형도 결정타를 날립니다. "현금으로 한거지? 신용 카드 긁지마, 그러다가 끝장난다." 다시 말해,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환경이 어느 날 덮쳐올 수 있음을 생각해 봄직 합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미리 살아갈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면,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습니다. 테이크 쉘터는 삶의 불편한 대목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흐뭇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영화 입니다. 그러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불안감으로 어찌할 바 모를 때에는, 한 번쯤 홀로 생각하면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태풍이 불어닥치는 어느 날, 커티스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급히 비싼(!) 쉘터 안으로 피신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슬픈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태풍은 후다닥 금방 지나갔으며,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흘러갑니다. 한마디로 "혼자 오바"했던 겁니다. 이후 커티스는 행동을 되돌아보며, 좀 더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불안의 이미지를 믿지 않고자 합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현실 극복의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아내의 넉넉한 마음도 아주 근사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충격의 최후를 보게 됩니다. 엔딩 직전, 옳았던 것은 커티스였고, 정작 불안을 모른 체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던 다수의 사람이야 말로 크게 잘못되었던 겁니다. 저는 완전히 멍해져서, "이 뭐..." 라고 당황하고 있다가, 안정을 되찾고(!) 뒤늦게 묘한 여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불안감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요. 결코 나만 사는게 힘들고 지치는게 아니었던 겁니다. 다만 커티스는 좀 더 예민하고, 좀 더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아내 사만다가 커티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던 것의 이면에는, 그녀 역시도 "삶의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말하지 않고 있을 뿐, 표현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결코 비극적인 해석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이 힘들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위정자의 거짓말들 입니다. "안심해, 안전해, 괜찮아" 같은 싸구려 위로에 무작정 익숙해져 있으면, 우리는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원전이 터지고, 음식을 먹어도 괜찮아 했다가 내부 피폭이 일어난 것은 결코 가볍게 웃고 넘길 일이 아닐테니까요. 그러므로, 때로는 자신의 느낌대로 밀고 가는 게 용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안할 것입니다. 오늘날 그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테이크 쉘터는 아무것도 안 하기 보다는, 변화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차라리 더 좋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안내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위험의 가능성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은,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커티스는 제일 먼저, 키우던 개에게 울타리를 쳐줍니다. 작은 변화를 계속 시도하였기에, 불확실성을 극복한 테이크 쉘터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