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70년대 제4공화국은 "겨울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같은 박정희 시대구요. 그런데 앞선 3공화국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요. 이를테면 3공화국은 서로 합의되고 약속을 통해서 운영되는 모습이었다면요, 이번 4공화국은 민주주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고,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숨이 콱콱 막히는 시대, 그런 느낌으로 1970년대 겨울왕... 아니 겨울 공화국을 살펴보겠습니다. 아, 서론부터 재미없는 개그군요.

 

 특징이 있겠지요. 제4공화국부터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5공화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투표를 하는 행위는 결코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며, 먼 옛날부터 문제없이 이어져 온 것도 아닙니다. 언급한대로 4공화국부터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어 가는것이 우리의 역사니까요. 대략 공백기가 여기까지 15년, 거의 16년에 달하는 시간을 대통령을 뽑지 못한 기간이 있었다 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971년 대선 이후, 긴 시간 동안 뽑지 못했다는 거 말이에요.

 

 한편, 이제 세계적인 흐름의 변화가 생깁니다. 1969년에 닉슨 독트린이라고 나옵니다. 현대사에 영향을 미친 독트린이 두개가 있는데요. 1947년도에 냉전을 선언하는 트루먼 독트린이 있고요, 이 때에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으르렁 대면서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 되고, 이런 흐름들은 6.25 라는 비극 등 한반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트루먼 독트린에 의해서 남북의 대치상황을 가져오는 모습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요, 이번 1969년의 닉슨 독트린은 완전히 다릅니다. 닉슨 독트린은 "남북의 관계가 풀어지는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닉슨 독트린이 선언하는 것이 냉전의 완화였거든요.

 

 사실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승만의 1공화국부터 지금까지는 쭉 일관되게 대립되는 모습이었거든요. 도중에 북한의 도발에 이 쪽에서도 확 열받기도 했고 말이에요. 북한이라면 상종도 할 수 없는 존재들, 이렇게 인식해 왔었는데, 어라? 갑자기 닉슨 독트린에 의해서, 사회주의 세력들과의 화해의 제스처가 지금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단 말이지요. 이런 모습 속에서, 북한과의 대립이라는 관점이 중심점을 서서히 잃게 되었고, 따라서 남북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남북의 새로운 반응이 바로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남과 북이 합의를 해옵니다. 북한에 가서 통일 3대원칙을 합의해서 들고 옵니다. 군정시기에 만들었던 중앙정보부의 부장 이후락이 북한을 갔다왔고요. 북한에 가서 김일성도 만나고 통일 3대원칙을 합의해오다니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현실적으로는 아직 북한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후락이 어차피 북한 가서 도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독약 같은 캡슐을 입안에 넣어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회자되지요. 왜냐하면 거의 몇십년동안 북한과 으르렁 거렸으니까요. 나름대로 각오를 했었겠지요. 하하.

 

 아, 그건 그렇고, 우리는 여기서 통일 3대 원칙, 남북간에 있어서 통일을 두고 최초로 합의한 사항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3대 원칙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입니다. 이 때 중요하게 바라볼 대목은, 세계사적인 흐름과 변화 속에서 남북이 지탱하고 왔던 축이 달라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남한 같은 경우에는 이제껏 주로 써먹어왔던 반공이라는 말, 북한의 경우는 적화통일이라는 강경한 태도가 있을텐데요. 그런데 이제 이 냉전이 완화되는 시점에서는, 반공과 적화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는 남과 북이 더 이상 유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의 정권은 서로 만나서 이제는 새시대의 화두, 즉, 통일이라는 화두를 함께한 것이지요. 이제까지는 반공과 적화였지만, 앞으로는 통일이라는 것을 중점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곧바로 본질적으로 남과 북이 갑자기 변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겠지요.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통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접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통일을 하겠다" 라는 원칙은 정권을 어떻게 하면 더 연장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활용되어 버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즉 남북 모두 통일이 정권 연장과 심지어 독재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북한 같은 경우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사회주의 헌법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게 뭐냐하면, 김일성의 독재권력을 더욱 더 강화하고,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을 완전히 무장시켜 버려서, 완전히 독재화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남한은요? 아래에서 곧바로 배우겠지만 마찬가지로 독재, 유신체제가 등장하는 것이지요. 닉슨 독트린 이후, 남북의 대응은 시대에 맞춰서 달라지게 되었지만, 공통적으로 통일이라는 키워드를 정권 연장의 도구로 써먹는다는 것은 제법 씁쓸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죠.

 

 그리고, 그 해 10월 박정희 정부는 유신을 선포하게 됩니다. 7차 개헌이자, 10월 유신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걸게 됩니다. 지금 박정희 정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북한과 통일할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시점에서 통일이 되어버린다면, 북한이 주도하는 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고 위기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한반도가 붉은 사회주의로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은 국민이 정신을 차리고, 대통령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와중에,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소리는 곧장 이적행위로 규정되거나, 북한을 도와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비난받게 만드는 사회가 되어갑니다. 바로 독재체제였습니다.

 

 이렇게 통일이라는 소중한 키워드를 독재와 연결시키면서 그럴싸하게 이용해 나가는 것이지요. 북한도 그랬고, 남한도 보니까 크게 다를 바 없이 비슷합니다. 늘 그래왔듯 박정희 정부는 우리나라는 서구적 민주주의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는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오직 중심이 있어야 하고, 또한 중심이 결정해야 한다고,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낯선 용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왕조체제의 국가였고, 그래서 왕같은 강력한 중심,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는데요. 사실 그건 뭐, 정권유지를 위한 하나의 정치적인 구호라고 봐야겠지요.

 

 자, 10월 유신은 왜 문제가 되는 법이냐 하면,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몰아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거의 왕 수준이에요. 10월 유신을 가만히 보다보면, 예전 대한제국 때 광무개혁에서 나온 황제에게 권력을 몰빵하는 거의 그 정도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우겼지만, 교과서에서도 또렷히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엄연한 독재 체제를 구축한 것이었지요.

 

 일단 대통령의 임기는 6년입니다. 그런데 6년이라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선제 였으니까요. 직접 선거가 아니었고요, 71년 대선 야당 후보 김대중의 주장대로,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제 국민이 대통령 못 뽑을 것이라 했는데, 그 말이 지금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쿠... 이제부터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하는 거에요.

 

 아, 여기서 학생들이 종종 묻습니다. 그렇다면 왜 박정희는 71년 대선 후에, 곧바로 1년만에 유신 독재를 구축했던 걸까요. 1975년 쯤에 개헌해도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이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정치에서는 권력을 이제 막 새롭게 잡았을 때가, 가장 밀어붙이기가 좋아요.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권력의 누수 현상이 일어나고 힘이 빠져나갑니다. 자주 이런 일이 있다보니까, 흔히 레임덕 현상이라고도 이야기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집권하자마자 강력하게 법을 바꿨던 것입니다. 박정희 입장에서는 권력도 이제 막 잡았고, 남북 공동성명이라는 통일 이슈에 대처하려는 명분도 있고, 여러가지로 가장 최적의 시기가 바로 72년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지요. 그러므로, 75년쯤에 유신을 했었다면 반대하는 사람도 워낙 많고 지지율도 떨어지고 힘이 딸려서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아까 언급한대로 유신에 의해서 6년 간선제로 바뀌었는데요. 그러면 대통령은 어디에서 뽑느냐는 건데요.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뽑게 됩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할 때의 장면은 압권(?)입니다. 대의원들이 선출을 하는데 죄다 친정부 박정희계 사람들입니다. 이러면 간선제로 투표를 해보나 마나지요. 2359명 참석해서 찬성2357표, 기권2표, 반대0표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쭉 선출됩니다. 여기가 북한이냐고요. 아니 남한에서 있었던 70년대 제4공화국, 겨울공화국의 한 장면입니다. 우리도 이런식으로 독재를 펼쳤던 아픈 역사, 거꾸로 가는 후진화된 정치사가 있다는 것 기억해야 겠습니다. 선거는 하지만, 박수만 딱딱딱 치면서 끝내는, 말하자면 거의 이벤트나 연례행사같은 거지요. 6년이 왜 의미가 없었냐 하면, 1978년 대통령을 뽑는 모습에서도 또 박수 딱딱딱 치고 끝나는 겁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종신제 대통령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하는겁니다. 이 정도면 거의 왕이지요. 그죠. 이것이 유신헌법의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정말 막강한 권력입니다. 국회 해산권이 있고요. 국회의원의 1/3을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공화국의 기본이 입법, 행정, 사법의 분리인데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삼권분립조차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입법부를 대통령 입맛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해산도 시킬 수 있고, 1/3은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으로 구성시켜 버리니까 입법도 정부 입맛대로 구성되었습니다. 사법부의 주요 요직도 대통령이 임명해 버립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사실상 입법과 사법까지도 통솔해 버리는 모습, 이런 체제가 만들어 졌습니다. 어마어마한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명백한 독재라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강하면 강할수록, 절대로 부패한다는 오래된 교훈, 유신도 이 엄격한 교훈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선출한 1/3의 국회의원들은 유신정우회라고 불렸습니다. 박정희 1인 독재의 풍경을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진기한(!) 모습이었지요.

 

 말도 안 되는 법들 앞에서 국민들의 저항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국민들의 입도 또 막아야 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법을 만듭니다. 긴급조치권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심지어 헌법을 정지시킵니다. 헌법은 최상위의 법인데 그것까지도 무력화 되어버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긴급조치권 이라면서 영장발부 없이 사람을 막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지금 헌법의 기본권 조차도 무시되고 있으니까요. 법치국가가 아니라, 독재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정치체제가 만들어 낸 괴물같은 사회는 오죽하겠습니까. 이 당시의 금지곡들을 지금 보면 재밌습니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인가요. 이런 곡들도 금지곡이에요! 왜냐? 밝고 희망찬 노래가 아니었다면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했다면서! 이런 곡은 금지곡 때리는 겁니다. 사회를 우울하게 만들었다면서 금지곡을 때렸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할 말을 해야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아! 도대체 사회를 누가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남자들의 머리도 단속되고, 여자들의 치마길이도 단속되고... 그래서 유신시대라고 한다면,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사회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가 너무나도 마음 속에 파고 들었던 시대. 오늘날 우리 시대에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어쩌면 교과서에 있는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유신시대를 살았던 그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 단어만 바라봐도, 민주주의만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대였습니다. 민주주의가 그렇게도 갈망되었던 시대가, 바로 이 제4공화국 독재의 겨울공화국 시대였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99.9% 찬성으로 대통령이 당선되는 나라. 이것이 비정상임을 잘 기억해두면 되겠습니다. 이제 10월 유신에 대한 저항과 유신의 마지막도 다음 문서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문서에서 계속...

 

 오늘의 영감 - 김정인 한국사 교수님의 칼럼을 발췌한 것입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는 1970년대의 흥미로운 풍경이 등장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하는 시대, 애국이 강조되고, 나라사랑이 강조되는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특징이 있네요.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외국인에 눈에 비춰졌듯이 이 시대에는 왜 시민들만 경례하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유유히 길을 다녔는가 라는 것입니다. 권력, 갑들은 당시에도 법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쌍방소통의 애국이라는 것입니다. 영화를 참 좋아하는 저는, 패트리어트 같은 미국영화를 보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민병대원들이 총을 들고 내가 먼저 애국하고 나라를 위해서 나서려고 하는 자발성을 종종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이 또 있었습니다. 그만큼 나라를 생각하면서 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담을 감수하고 선언에 동참한 교수님들이 계시는 것이겠지요. 이 말씀이 저는 참 놀라웠습니다. "국가가 본연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 시민이 비판하며 저항행동에 나서는 것, 시민불복종 역시 애국심의 발로다. (김정인 교수님)"

 

 출산률 1.1명, 희망부재의 나라, 어려운 사람들은 많고, 힘없는 다수의 서민들을 국가가 쥐어짜려고 할 때, 이것이 계속되면 나라가 몰락한다고 경고하는 것 역시 애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힘겨운 "을" 여러분, "장그래" 여러분. 반드시 기운내세요. 한 번 물이 엎질러 졌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잘못을 분석하고 또 시도하고, 힘을 내가는 것. 그렇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by 시북 2015.01.2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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