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개정판) (마태복음4:23-25)

 

한 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 퇴색된 주제이기는 한데 저는 오늘 인간 대신에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삽니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요즘 교회들 부흥이 안됩니다. 아니 부흥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 남는게 문제입니다. “당신이 종교를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불교가 40%가 넘고 천주교도 그 가까이 되는데 우리 개신교만 9%를 기록할만큼 불신자들에게도 인기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현재 한국에서 최대종파이기는 하지만 미래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무신론자들이 절반이 넘었답니다. 공산국가를 제외하고 이런 결과는 아마 전세계에서 보기 드물 겁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아예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사회가 상당히 악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 멋대로 하지 신이 만든 율법에 나를 맡기지 않겠다고 하는 인본주의가 팽배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분간 부흥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미래도 암담한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부흥전략들이 판을 칩니다. 부흥전략세미나도 여기저기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부흥전략에 왕도가 어디있습니까? 그런건 없습니다.

 

그러나 왕도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주님의 복음사역입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부흥해야 될지를 보기위해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흥이란게 사람을 많이 모아놓고 헌금받고 잘먹고 잘사는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건물에 좋은 시설에 많은 예산이 다가 아닙니다.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 된 성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성도와 말씀과 그것을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를 우리는 부흥한 교회로 불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부분입니다. 아주 간단한 본문이지만 갈릴리 사역으로 시작을 한 이 본문은 나중에는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로 끝납니다. 중간과정이 다 생략입니다. 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갈까 말까 망설이고 나오다가 안 나오고 그래서 다시 권면하고 심방을 하고 전도하고 이런 식의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하는 것은 성공적인 교회가 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대로 하기만 하면 성공할 것 같습니다. 성경이 설마 거짓말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본문은 요즘 말로 하면 교회부흥 전략쯤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약간 다른 각도로 보고 싶습니다. 즉 ‘교회가 부흥하려면’이라는 각도가 아니라 ‘과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각도로 본문을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바로 서기만 한다면 부흥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고도 인기가 없어서 부흥하지 못한다면 그나머지는 성령님께서 하실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래요 우리는 단지 주님의 말씀대로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인도로 좁은 길을 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집니다. 교인숫자는 줄어들지만 교역자와 교회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각 교회들마다 그 교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다를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전도, 또 어떤 교회는 해외선교, 어떤 교회는 치유와 위로 어떤 교회는 찬양 어떤 교회는 장애인 어떤 교회는 도시빈민 어떤 교회는 교육...이런 식으로 주안점을 두는 것들이 다 다릅니다. 물론 모든 교회들이 궁극적으로야 하늘나라의 확장을 목표로 삼겠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은 세부적으로는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게 또 좋은 면이 많겠지요.

 

그럼 우리는 왜 이 교회를 세웠습니까? 그저 그런 교회의 또 하나를 더하기 위해서 , 정관에 비록 대형교회는 없지만 여기도 엄청나게 많은 교회들이 총총하게 서 있습니다. 각기 예쁜 자태를 뽐내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런데 건물도 없는 개척교회를 왜 세웠습니까? 정관 인구가 10만이 안된다고 하는데 교회수는 무려 70개가 넘는다는 말이 들립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목사님들이 그렇답니다. 제가 알기로도 이 인근에만 다섯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하, 오늘 저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알아보고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함께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 우리 주님이 하셨던 그 사역을 이어가는 그런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상고하는 겁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제1차 갈릴리 사역을 요약한 것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의 고향은 갈릴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향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고향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을 두고 연고가 있는 곳에서 사역을 시작한다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뭔가 연고가 있는 곳에서 시작했다는데 주목합니다. 부모와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같은 문화와 의식을 향유한 곳에서 사역을 시작한 겁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주님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 본문입니다.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시니”
당시 갈릴리는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이기는 했지만 유대 본토와는 차별되는 이류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정구역상으로도 다른 지역입니다. 마치 서울에 뒤처지고 있는 부산 지역 같습니다. 심지어 성경본문에는 “이방의 갈릴리여”라고 까지 불려 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 아니라 같은 유대동포들이 사는 곳이지만 이방지역으로 취급받는 설움이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는 로마군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하튼 그런데 이 갈릴리에는 약200여개의 성읍과 촌락이 있었고 300만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간 문제가 있는 통계라고 생각됩니다.

 

그 좁은 지역에 그 불모지에 300만이 살만큼 산업생산이 따르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실제보다 유대인의 세력을 부풀리려고 한 과장된 통계랍니다.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계가 어느 정도만 정확하다고 해도 그 좁고 불모지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살았다면 당시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겠습니까? 더구나 로마의 식민지로 에돔 사람의 통치까지 받으면서...

 

예수님은 바로 이 지역을 두루 다니신 것입니다. 원어적 의미로는 갈릴리 지역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해서 두루 다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시작한 이래 잠시 동안도 쉬지 않고 중단 없이 두루 다녔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초기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제자를 만들기 위해 주님이 정말 많이 노력한 것입니다. 본문에서처럼 나를 따르라 하니까 사람들이 갑자기 매혹마법에 걸린 것처럼 따른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표현된 말 “좇으니라”는 그 말이 이루어지기 위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1.가르치시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의 제자단을 만들기 전부터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가르치다’란 말의 뜻은 일반적으로 ‘가르치다, 교훈적인 설교를 하다, 교사가 되다, ~에게 교훈을 주다’란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요즘말로 하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교훈적인 설교를 하는 것으로부터 자기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 예배하려고 옵니다. 이들은 회당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성경의 강해를 듣습니다. 주님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실천적인 설교말씀으로 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갈릴리를 다니시면서 안식일에 가까운 회당에 들러서 성경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해석하는 설교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주시면서 이들이 실천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관념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던 사람,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장로들의 유전, 인간적인 관습으로 변질되고 형식화된 죽은 신앙에 머물러 있던 유대인들에게 실천적인 살아 있는 바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가운데서 가르치는 것을 가장 먼저 언급하신 것은 오늘 우리 교회가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오늘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이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바른 예수를 증거하고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서 살펴보고 세속화되지 않은 예수님이 만드신 당시의 교회의 본뜻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는 것도 포함되지만 가르치는 것의 첫 번째 목적은 성경을 하나님의 뜻을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부터 시작하게 되면 우리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지적하고 고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무슨 설교를 하셨을까요?
참,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르친다고 해서 성경공부를 가르친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설교를 한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말씀을 선포한다고 하지 않고 가르친다고 한것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계도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인간의 유전을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참된 성경말씀을 가지고 그걸 풀어서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가 주신 가장 크고 으뜸되는 계명을 이미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고 우리가 여태껏 숫하게 들었던 말이기는 한데 정말 제일되는 계명이라고까지는 실감하지 못합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눈감았기 때문입니다.

 

이걸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금 한참 잘못 알고 있습니다. 복음의 우선순위에서 진리의 중요도에서 가치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 그리고 예수 믿고 축복’ 이런 식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게 기독교의 기본 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이란 자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고 그래서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공신화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체적으로 쇠퇴하는 가운데 초대형 교회에만 사람들이 수평이동을 합니다. 나머지는 점점 쇠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초대형교회가 사탄의 계략으로 무너지면 한국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쇠퇴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교회와 복음이 힘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면 뭐가 남게 될까요?

그리고 지상의 것에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이러한 사실에 눈감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살아생전에 잘살고 떵떵거리고 자랑질하고... 이게 우리하고 맞는데 겸손 하라 청빈하라 네 것을 가지고 나누어 주라는 말씀 그리고 너는 저 천국을 사모하라는 말씀은 정말이지 우리하고 안 맞습니다.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서 가르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모두 사랑이란 한마디에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면 말도 안되는 것 같은데 충분히 수긍할 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대전제로 삼고 성경을 역으로 파악한다면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사건,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강하를 위한 성경의 오랜 계획과 그에 따른 인간 역사들 선지자의 말들, 그 증거들로 성경이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사들이나 교역자들의 성경 실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바로 이런 허점을 교묘히 파고 들어와서 기존의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판을 칩니다.

 

“목사님 왜 성경에 이렇게 말했을까요?” 라고 물을 때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한다면 한두번은 몰라도 이런 일들이 몇 번이나 계속되어질 때 교인들에게 목사의 신뢰도는 형편없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뭔가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는 이단들에게로 쉽게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이런 경향은 일반 신자들에 비해 대학생들이나 청년층에서 심한데 이는 이들이 진리에 그만큼 목말라 있다는 반증이고 이들이 그만큼 성경을 중시하며 성경대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의문도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회자들은 이러한 성도들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수 있도록 스스로 성경본문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깨우친 성경의 진리를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아무런 의심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배운 대로 행동한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근본취지를 생각나게 하셔서 보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주께서는 먼저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제일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타성에 젖어서 그러려니 하지 말고 왜 이것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답을 강구해 나가야 합니다.

 

한때 제자훈련이니 L.T.C니 하는 제자화운동이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처음으로 하신 사역을 본받은 것입니다. 사실 기존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많이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사역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가르치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몇몇 뜻있는 목사님들이 하는 개척교회들에서 성경 공부반을 개설해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는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여하튼 주님은 두 번째로는 ‘전파’하셨습니다.

 

2.전파하라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난 다음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천국복음은 결국 문자적으로는 ‘천국의 좋은 소식’을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지상에 임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소식을 전파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전파하다’는 말은 원어적으로는 ‘어떤 메시지를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가르치는 사역이 이미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나 성경을 아는 자들에게 성경을 더 자세하게 강해하는 방법으로 가르치신 것이고 전파하는 것은 천국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회개와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엄연히 다른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알기 쉽게 표현한다면 ‘가르치는 사역’은 기존 교인들에게 성경을 자세하게 가르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이들에게 잘못된 신앙관을 바로 잡아 주고 더 열심을 내게 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파하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의 공개적인 선포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서로 질투하며 분열하고 세상과 적당히 야합하며 사는 반쪽짜리 교인들에게 참된 성도로서 거듭날 것을 주문하는 것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역은 서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제대로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참된 성경의 진리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마태가 이 두 가지 사역을 분리한데 반해 누가는 이 두 가지 사역이 회당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의 지상 대 명령을 예로 들면서 교회의 제일 되는 사명이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전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전도 역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인데 ‘전도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지 여기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고 반문할 것이라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이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두말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본 것을 증거하고 나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하는 일하고 예수믿고 복받고 천국가라는 것 하고는 차이가 심하게 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제일 처음 외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데요 그 내용은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안타깝게도 예수 믿어라가 아니고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원문 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어디에? 이땅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는데 바로 이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시작했는데 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런 사역을 할 것입니다. 여기에 힘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걸 위해서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주께서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기위해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제가 목동에서 사역할 때 그 교회의 한 집사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 “교회가 이땅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래요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너무 작아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것 같지만 우리의 나중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해지고 세속화되고 비뚤어진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세워지는 종교개혁의 횃불이 우리로 말미암아 높이 들려 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로 이 땅의 추악한 것과 거짓된 것과 더러운 것들이 다 불살라 질 것이고 우리는 불속에서 정련된 정금처럼 다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전초기지이며 휴식처이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나라 영토가 됩니다. 영토라고 한다고 해서 건물이나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어디에나 성도들이 모인곳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들의 마음에 있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못하리니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리는 세상,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 지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면서 인간들이 사는 바로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경쟁과 미움, 효율과 투쟁만이 판치는 세상의 법칙, 사탄의 법칙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자, 약한자를 보호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곳,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말하는 세상, 성경이 법률의 중심이 되는 세상, 그 모든 이들이 서로 서로 사랑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 많아져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기위해서 전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것과 전파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앉아만 있어서 될 것이 아니라 참된 성도들, 어폐가 있는데 성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교인들이 아니라.
그러므로 여기서 주께서 하신 전파의 대상은 기존 교인도 되고 불신자도 됩니다.

 

3.고치시니 (원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교회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명은 바로 고치는 것이다. 일체의 악한 것과 병든 것을 고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이며 대외적인 사역이다.

 

가르치고 전파한 것을 실천하는 사역인 셈이다. 주님은 그의 세가지 사역 중에서 마지막 사역으로 ‘고치’셨는데 모든 병과 악한 것을 고치셨다. 여기서 ‘고치다’는 말은 원문 상으로는 육체의 치료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료까지 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순한 의학적 치료뿐만 아니라 죄와 사망에서의 진정한 회복과 치유까지 포함한다.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보시고 마음에 심히 통분하사 사망권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사망권세를 몸소 깨뜨리신 것이다.
성경본문에서 ‘약한 것’은 쇠약이나 신체적 연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모든 질병이나 허약함도 포함한다. 정신과의 치료가 요구되어 지는 질병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과 관련된 문제, 즉 악령에 사로잡힌 것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서 귀신들을 몰아내는 축사의 이적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영적인 해방, 영적으로 마귀에게서 놓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 중의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 이유도 있다.

 

이러한 약한 것과 모든 질병을 고친 것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로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인데 이들이 몸의 장애로 인하여 일할 수 없어서 구걸로 연명하는 현실을 깨기위해서는 구걸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 아니라 병에서 놓임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구걸로 벌어 들이는 돈이 한계가 있으니까. 병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경제적인 빈곤으로 부터의 자유, 영적으로 귀신으로부터의 자유가 바로 주님이 하신 세 번째 사역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것들로부터 놓이게 함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온 시리아에서 주님께 몰려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본다면 사탄의 영역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로 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은 영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인 측면이 있다. 오늘 교회가 우리들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지나치게 영적인 부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육적인 부분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병에 걸린 모든 이들은 병원에 보내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게 한다면 교회는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영적인 문제는 점쟁이나 무당, 그리고 철학관에 맡겨 버린다면 교회의 설자리는 어디가 될까?
일자리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병자들에게 병이 낫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길이다.

 

우리 교회는 인간들의 삶의 중심에 서기 위해 인간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교회와 정치, 교회와 경제가 연결될 때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면 우리는 사회의 제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성도들의 어려움을 보고 단순히 “기도할께요”라는 말밖에 못한다면 교회가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교회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삼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성도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영역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게 된다면 교회는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다가 결국 소멸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단들처럼 세상을 외면하고 은둔한다던지 문명의 이기나 병원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개인구원이나 영적인 구원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병자들과 약한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고 이들을 고통과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셨기 때문에 주님이 임재로 말미암아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기 시작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허황된 구호가 되고 말 것이며 교회는 잘해야 여러 집단의 하나, 즉 사교클럽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방지할 수 있는 사역이 바로 주님의 마지막 사역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목회자와 교회가 그러한 영적인 축사나 치병을 할 수 없다면 그리고 미래를 예언하고 사람을 지도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상 옛날에는 목회자에게 만능을 요구했다. 영성과 지성, 그리고 인성 과 기능까지도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역자들은 너무 온실 속에서 보호받았기 때문에 자생력이 없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사역이 단순히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그쳤다면 이방의 시리아에서 사람들이 주님에게 몰려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주님이 주님이 된 것은 주님이 베푸신 기적 때문이다. 주님이 새롭게 해석하고 가르치신 말씀이나 진리는 나름대로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이방인들을 교회로 나오게 하지 못한다. 사실상 주님이 교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기적,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에 힘입은 바 크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모습들이 바로 기적이다. 사람들은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열광적으로 주님을 따르게 된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엄청나게 의술이 발달해서 많은 병들을 고치고 있지만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많은 질병들이 있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암은 말할 것도 없고 중풍이나 간질의 치료에서도 별로 효과가 없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암과 중풍으로 고통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인들에게 많이 퍼져있다. 어떤 통계에서는 무려 40%이상의 아줌마들이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한다.

 

사실상 예수님이 병자들을 적극적으로 고치신 이유는 당시에 의술이 형편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초보수준의 치료조차도 막대한 돈이 없으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난한 이들은 돈이 없어서 치료받을 수 없었고 병이 걸린 자는 경제적으로 약자가 많았으므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곧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치는 주님의 사역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국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문제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 하나님의 법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 안에서 살아야할 많은 사람들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자기의 성도들을 품어서 보호하시는 ‘헤세드’ 의 은총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많은 병원이 세워졌지만 여전히 인간이 손댈 수 없는 병들이 성행하고 이름도 모를 수많은 질병들로 인간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그 치유하시는 사역은 당연히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병뿐만 아니라 병든 사람들의 심령도 고침받아야 한다.

 

왜곡되고 가치가 전도된 사회도 고침받아야 한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이 건강해 지는 것이 주님의 고치는 사역이며 우리가 고칠 사역이다. 단순히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도 포함하며 개인뿐만 아니라 병든 사회 역시 고치는 사역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을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되는데 이를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이렇게 우리 주님이 사역은 가르치고 그 다음에 전파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고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이 가장 잘 나타난 구절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와 같이 사역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기도해서 성령의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8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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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늦은 밤 한 곡의 찬양을 듣고 있습니다. 세상 평안과 위로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라는 곡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때로는 좋은 찬양 한 곡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때로는 좋은 설교 한 편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는 이어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과의 이어짐, 소중한 사람과의 이어짐. 하나님은 우리가 마침내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얼마나 원하고 있을까요. 먼 길을 돌아오더라도, 끝내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기로 크게 결심했다면, 주님의 손길이 주야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힘든 순간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그 맑은 빛깔이 삶을 힘차게 일으킬 것입니다. 절대로 오늘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그 분을 믿고, 이제는 주님의 이끄심과 큰 은혜를 힘입어 열심을 냅시다. 어디선가 우리는 분명히 이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제 잊지 맙시다. / 2018. 01. 시북.

 

by 시북 2018.01.1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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