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그리고 인간 (에스더2:1-18)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결코 누군가에게 구속된 분이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밝히 알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사역이 그런 방법으로 국한될 것으로는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의 행동패턴을 읽어낸다고 해봐도 결국 우리 하나님의 무한한 역사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한한 머리로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역사는 그래요 무한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이성이 우리의 상상력이 그를 제한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은 이제 약간 지양하시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대홍수후에 더 이상 물로는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기의 사역자를 통하여 그러니까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듯합니다. 당연히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그렇게 보인다는 정도로 합시다.

 

그러나 인간도 그 행동이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행동패턴을 예측해서 조종하고 다스리기 위해 정치학이니 행정학이니 경영학이니 사회학같은 학문들이 발달을 했고 심리학과 상담학도 일정부분 기여를 하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게 인간행동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다이나믹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합니다. 당사자는 괴롭고 염려가 되고 조바심나지만 구경꾼들은 신이 납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싱거운 결말이 아니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사가 정해진 방향이 있다면 우리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노력하지도 않을 겁니다. 가령 요즘 유례없는 한파가 기승을 부립니다. 올겨울 최대한파니 최초의 한파경보니 하면서 강추위가 맹위를 떨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추위에 움츠리고 있지만 걱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은 봄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과를 알게 되면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약간은 어려움도 있고 돌아가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승리할 것을 믿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안에 있지 않은 이들에게 정해진 목표가 없습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만큼 뜬구름 잡는 것도 없을 겁니다. 뭐가 잘먹고 잘사는 건지 그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건지 전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목표로 하고 가다가 오히려 시궁창에 쳐박히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슬피 우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고 너무 많이 가지고 한 사람들이 요즘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저게 참 마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도 나도 그걸 가지려고 경쟁하다보니 경쟁이 과열되고 무리하고 그러다가 인간에게 주어진 정도를 벗어난 일들을 하게 되고 결국은 패가망신하게 되고 뭐 그런 모양입니다.

 

세상에서 보통 이런 것에는 경쟁률도 무지하게 높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은 추구하는 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런 경쟁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전전긍긍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될지 염려하고 이리저리 재보고 두세번 다시 고려하고 생각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고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짓밟고 음모를 꾸며서 덫에 걸리게 하고 또는 걸리기도 하면서...

 

그래서 우리네 삶은 불확실성으로 특징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삶가운데서 확실한 것 한가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불확실하고 세상도 불확실하고 사람도 변하고 여건도 변한다면 전혀 변하지 않는, 언제까지나 확실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불변하는 든든한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나 불확실한 삶에서 확실한 보장 한가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중간 중간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겪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품에서 천성에 안전하게 들어간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나 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는 솰롬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평강의 상태! 그래요 저는 우리 교우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적인 평강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전혀 정반대의 운명이 된 두 여인이 나옵니다. 한여인은 페르샤제국의 황후입니다. 그녀는 명문가 페르샤의 7대 귀족가에서 태어나서 아름다움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아름다움과 배경에도 감사를 모르고 사악하고 잔인하게 굴다가 결국 어처구니없는 일로 황후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여인은 심지어 자기네 가문에서도 배척을 당합니다. 왜냐면 좋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자기만 알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줄도 몰랐고 잔인했으며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여인은 비록 아름답기는 하지만 멸망한 나라의 포로민으로서 살다가 졸지에 뜻하지 않게 권력자들의 음모로 말미암아 문호가 넓어진 황후경선에 뽑혀서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페르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고아로서 삼촌의 손에서 양육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은혜를 잊지 않았고 동포를 잊이 않았으며 결국은 그 황후의 자리를 발판으로 동족을 멸망에서 구해냅니다. 물론 한 여인의 불행이 이 여인에게는 다시없는 행운이 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에서는 행운이다, 재수가 좋았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사용해서 갑작스런 행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어쩌다가 재수가 좋아서 운이 좋아서 된 것일까요? 단지 어쩌다 우연히 뭔가 운때가 맞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겁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모든 일의 뒷면에서 우리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습니다. 얼핏보면 전혀 상관없는 일들의 결과로 전혀 엉뚱한 사람이 웃게 됩니다. 그러나 그 미세한 차이를 우리 주님이 조정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섭리를 이루시기위해서 정교하게 세상사람들의 욕망을 조종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위해서 일을 한다는 자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이리저리 어루만지셔서 자기의 일을 이루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그 놀라운 역사의 산증거를 살펴 볼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페르샤가 그리스에 쳐들어가려고 하는 전쟁준비의 마지막 날의 일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당시 인도에서 이디오피아까지 무려 127개의 민족과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페르샤 옆의 조그만 도시국가 연합이 그리스를 정복하고 싶어 했습니다.

 

왜냐면 상대도 안될만큼 작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인 그리스가 페르샤의 해안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인근의 그리스인들에게 반란을 획책했기 때문에 페르샤에서는 이 건방지고 자그마한 나라들을 공격해서 뭔가 교훈을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는 죽으면서 그리스를 정복하라는 유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리스정복 전쟁은 아하수에로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셈입니다.

 

오늘 이전까지 와스디는 페르샤 궁중에서 가장 무섭고도 잔인한 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와스디 때문에 혹시라도 목숨을 잃게 되지 않을까봐서 전전긍긍했습니다.

 

와스디는 아름다운걸로 유명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왕후가 되기 전에 페르샤의 가장 세력이 큰 7대 귀족가문의 여자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금수저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매우 성격이 까탈스럽고 잔인했습니다. 이 여자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벼슬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배출한 가문의 사람들도 와스디를 두려워했지요. 이 여자 와스디는 자기의 이런 위세가 사람들을 벌벌떨게 만드는 것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대 그리스전쟁을 준비하는 마지막 잔치날 그만 술이 취해 버렸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페르샤같은 다민족 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먼저 가정의 언어는 무엇으로 정할까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의 언어와 아내의 언어가 다를 때 자녀는 어떤 언어로 교육시켜야 할지를 놓고 페르샤의 가정에서는 남녀의 주도권 다툼이 있었습니다.

 

지금 본문의 배경을 보면 백팔십일의 준비기간 그러니까 전쟁준비를 위한 기간을 보내고 전쟁준비가 잘 끝난 것을 기념하고 그동안 수고한 신하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전쟁에 나갈 장군들을 격려하는 잔치를 최후로 7일 동안 베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백팔십칠일째날 밤입니다. 이제 이 밤만 지나면 본격적으로 군대가 출정을 합니다. 그래서 가장 흥겹고도 비장한 그런 날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의 광란의 밤이었습니다.

 

궁중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한마디로 춤과 술판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 당시 근동의 남자들은 술버릇이 매우 안좋았던 모양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술이 들어가면 모두 개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술잔치에는 귀부인들은 참석하지 못하는 법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잔치를 밤에 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밤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니까. 그래서 남자들만 모여서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제후들과 장군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잔치를 벌이는데 남자는 왕이, 여자는 왕후가 중심이 되어서 각각 궁전의 다른 곳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먼저 남자들의 잔치에는 예쁜 여자들이 나와서 춤을 춥니다. 이 여자들은 부인들이 아니라 궁전의 무희들입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남자들은 각각의 민족들의 대표였으므로 그만 자기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를 가지고 자랑을 시작합니다. 각자가 우리나라 여자가 예쁘다고 마구 우깁니다.

 

술이 취한 남자들은 별걸 가지고 다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각민족의 태수와 총독들은 모두 다 자기네 민족의 여자가 제일 예쁘다고 주장하며 남에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로서로 지지 않고 막 우깁니다. 분위기가 과열됩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왕은 그만 술김에 해서는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왕은 자기의 아내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이 모든 민족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에 자기 아내 와스디가 한번 나오면 모든 신하들이 떠들던 것들이 무색해 질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 자랑을 하려고 한 겁니다.

 

남자들이 좀 단순한게 아름다운 아내는 자기의 큰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막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이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남자들의 술자리에 여염집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법으로 금한 겁니다. 바벨론에서도 멸망하기 직전에 남녀가 어울려서 잔치를 벌이다가 페르샤에 멸망했는데 이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납니다. 뭔가 불길합니다.

 

그런데도 아하수에로 왕은 너무 술이 취하고 그리고 반년동안이나 전쟁을 준비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이제는 겨우 전쟁준비를 완료했다는 것 때문에 그만 폭음을 하고 마음이 풀려서 해서는 안되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각 지역의 방백들과 총독들 태수들이 왕의 명령에 협조해서 군대를 동원하기로 했고 군량이니 군수품들을 조달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이 그만 풀려버린 겁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풀려버렸나 봅니다.

 

왕후를 남자들의 술자리에 데리고 오라는 명령합니다. 해서는 안되는 명령이지만 왕은 술이 취한 나머지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려는 마음만으로 불붙는듯해서 내시들을 파견해서 왕후를 오라고 재촉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시들이 왕후가 여자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으로 가서 왕후에게 왕의 명령을 전하게 되었는데 당시 왕후는 여자들, 귀부인들에게 둘러 싸여서 페르샤의 여권향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집안의 주 언어를 누구의 것을 따를 것인가 또 경제권은 누가 가질 것인가? 자녀의 교육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여권의 향상을 논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궁중법도에 어긋나는 왕의 명령이 내리자 여자들은 일제히 왕후가 여자들을 대표해서 남자들의 기를 꽉 눌러야 된다고 생각해서 왕후에게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을 주장하게 됩니니다.

 

여자들의 지지 속에 왕후 와스디는 그만 왕의 명령을 거부하게 됩니다. 아하수에로는 이제나 저제나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돌아온 신하들이 아내가 잔치자리에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는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왕으로서 신하들에게 무시당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니면 아내 와스디 하나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면서 제국의 황제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해서 비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술꾼들이 단순합니다. 아내를 자랑하려다가 이제는 아내에게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신하들의 앞에서 아내에게 무시당한 왕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더 엄중하게 명령합니다. 반드시 와스디를 데리고 오도록 합니다. 그런데도 와스디도 술이 취해서 내친김에 왕의 명령을 거부하기를 계속합니다. 아마 남편과 아내가 둘다 뭐에 씌인 것처럼 어긋납니다. 아내를 자랑하려던 남편은 이제 아내를 증오하고 가만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왕은 매우 잔인하고 변덕이 심했답니다.

 

창피를 당한 남편은 잔치가 파한 다음에 아내에 대한 처벌을 하려고 합니다. 왕후로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를 물으려고 한 겁니다. 왕은 언제나처럼 신하들에게 왕후의 처벌에 대해서 자문을 했는데 와스디가 원래 매우 잔인해서 신하들이 모두 그녀를 두려워하고 싫어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갑자기 신하들의 뇌리에 이번기회에 그 무서운 왕후를 폐위시키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대대로 왕후를 배출하는 7대 귀족집안에서 앞장섭니다. 그래서 신하들의 찬성으로 왕후가 폐위되게 됩니다.

 

아무도 이 기쁜 잔칫날 비극이 일어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일의 발단도 아내를 사랑하고 자랑하려는 남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평소에 신하들에게는 잔인했던 아내지만 남편에게는 자랑이었고 사랑받던 아내였는데 그만 술이 원수지 남편의 아내사랑이 지나쳐서 아내를 미워하는 것이 기왕에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왕후는 폐위될 수 밖에 없는게 전쟁 때문입니다. 전쟁은 누가 합니까? 남자들이 하는 겁니다. 이제 그리스와 전쟁을 하러가면 가정의 경제권과 자녀들에 대한 교육같은 문제가 생길 때 남편의 발언권이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이 없을 때 아이를 자기의 모국어로 가르치고 가정 경제권을 독식해서 남편을 구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가 서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가정의 모범이 되어야 할 왕후부터 왕을 무시하는데 신하들 백성들의 가정은 온전하겠습니까?

 

그래서 전쟁을 앞두고 남자들이 남편들이 두고 온 가정을 걱정하지 않도록 가정에서 가장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왕후가 폐위가 된 겁니다. 불과 하룻밤사이에 왕후를 폐위하게 된 겁니다. 가장 좋은 날 가장 마지막 날 그만 불상사가 생긴 겁니다.

 

또 한 여인은 유대인 포로의 후손입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이기는 하지만 평상시라면 절대로 왕후가 될 수 없는 여인입니다. 원래 페르샤의 왕후는 7대 귀족가문에서만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신하들의 음모로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에 한해서 7대 귀족가문이 아니라 모든 페르샤 전토의 여인들 중에서 왕후를 뽑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궁중법도를 어기고 왕후의 후보범위를 넓혀버린 겁니다.

 

2:1에 보면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란 말이 있지요? 여기하고 1장의 마지막하고는 무려 3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라는 구절에서 그것은 매우 큰 사건을 가리킵니다. 바로 페르샤와 그리스간의 전쟁을 일컫는 겁니다.

 

이 전쟁에서 페르샤는 그리스에 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페르샤의 아하수에로는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자 혼자서 쓸쓸히 옛일을 추억하다가 과거 어느날 전쟁준비를 할 때 왕후와의 사건을 생각하게 되고 이 여인을 다시 불러서 왕후의 자리에 복위시키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페르샤의 7대가문의 여인 중에서 와스디를 능가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웃기지요? 패전의 와중에서 지난날을 후회하는 마음이 든 왕의 심중에는 아내에 대한 맹목적인 그리움이나 사랑이 아니라 그 육체에 대한 욕망만이 남은 겁니다. 어떤 여인이라도 7대 귀족가문에서 와스디를 능가하는 미인이 있었다면 이런 사건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신하들에게 와스디를 복위시키고자 하는 왕의 심중이 전해지자 신하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 잔인한 여인이 복위가 되면 자기의 폐위를 주도한 신하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아마 가문을 멸문시키려 들겁니다. 그러니 신하들은 인재풀을 넓혀서 왕에게 페르샤 전국의 미인을 마음대로 안을 수 있는 법을 만든 겁니다. 7가문에서만 뽑아야 하는 전통을 폐지하고 전국의 여인 중에서 뽑게 만든 겁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왕의 마음이 와스디로부터 멀어지고 새로운 미인을 얻을 기대에 혹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와스디의 폐위가 된 발단이 바로 내나라 내민족의 여인이 가장 아름답다는 자랑으로 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아내의 아름다움이 세계제일이라는 허영을 충족하려는 왕의 의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름답다는 전국의 미인을 마음껏 안을 수 있는 간택행사는 와스디에게 일시적으로 생겨졌던 그리움을 깡그리 잊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비로소 에스더가 왕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겁니다. 포로민도 예쁘기만 하면 왕후가 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일이 생긴 겁니다.

 

원래 페르샤에서는 왕후로 뽑히지 않은 여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왕의 후궁, 하렘에 들어가서 평생 왕의 첩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렘을 채우는 후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인의 외모만을 사랑하는 왕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닙니다. 아마 와스디의 미모를 능가하는 여인이 많을 겁니다. 여기에서 에스더가 뽑히게 된 겁니다.

 

이 왕후의 자리에 에스더가 간택된 것은 유대인을 하각사람 하만의 계략에서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유명한 말을 하고 남편인 왕에게 가서 동족을 구해줄 것을 간청한 에스더는 결국 동족을 멸족의 위기에서 구하고 유대인을 통하여 구세주를 보내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꾼으로 사용받게 만든 겁니다.

 

에스더는 와스디와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에스더는 페르샤 본토인이 아니라 포로민의 후손입니다. 그녀는 7대 귀족가문에서 난 게 아니라 고아로 자랐고 삼촌이 양육했습니다. 고아소녀 유대인 포로의 후손이 여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그녀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에스더가 왕후로 선출된 일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누구도 에스더를 왕후로 삼으려고 와스디를 쫓아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와스디의 폐위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날 낮 까지 아니 밤에 잔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아내의 미모를 사랑하고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너무 자랑하고 사랑했기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런데 가장 기쁜 날 가장 큰 비극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내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만을 의지하며 나갈 뿐입니다. 가장 확실한 분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에 저는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막으려면 세상에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이시며 우리의 산성이요 방패시고 목자이며 인도자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작게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편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덧입기를 원합니다.

 

신하들은 와스디의 복위를 막아서 자기네의 목숨을 살리려고
왕은 천하의 미인들을 하렘으로 불러 들여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고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게 계책을 낸 겁니다. 그런데 그런 욕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으면

 

우리의 앞날에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그 광대한 능력이

함께 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다 사용해서 자기의 일을 이루시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역사의 중심으로 삼으셔서 그로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위해서 하늘에서 직접 벼락을 때리거나 불을 내려서 자기의 일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무지개를 주심으로 다시는 그런 식의 처벌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의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일하시기를 즐겨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늘에서 직접 불벼락을 통하여 사람을 조종하지 않고 자기의 사역자를 보내서 일을 하십니다.

 

우리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지상 사역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당연히도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하고 그의 철학과 경륜이 나타나도록 부끄럼 없는 그런 당당한 일만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방법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 육적인 욕망에만 매몰되어 하나님의 영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욕심에만 탐닉하고 사로잡혀있다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요구에 둔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다른 누군가를 사용하셔서 자기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욕심을 내려놓고 쾌락을 내려놓고 죄악을 내려놓고 교만도 내려놓고 하나님앞에 아버지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일입니다. 아버지여 나를 사용하여 아버지의 일을 이루소서라고 빌 일입니다.

 

올 한해 우리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하나님이 계획하신 거룩하고 위대한 섭리의 한가운데에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나와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바꾸는 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8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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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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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사람한테 무엇이 가장 소중할까요. 어떤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을까요. 실명을 밝힐 수는 없어서 각색을 조금 해야 합니다만, 저는 요즘 명문대 코스를 나와서 큰 실패를 겪고, 재기를 준비하는 50대 아저씨와 함께 일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실패해서 수 억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가장 큰 실패가 결코 아닙니다. 이 아저씨는 젊은 시절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하마트면 뒷자리에 앉아있던 1살 아이가 아주 심하게 다칠 뻔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전혀 다치지 않았다고 해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이죠. 이 짧은 이야기는 생각을 맑게 일깨웁니다.

 

생명이야 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며, 건강한 것이야말로 큰 복이며, 사고로부터 지켜주시는 것은 얼마나 매일 매일 기적같은 일인지 모릅니다. 방송을 보니 우리나라 일년 교통사고로만 4천명이나 사망한다고 하니까요. 또 괴로워하다가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요. 저는 다는 몰라도 조금은 이해합니다. 누구나 마음을 잘못 먹어서 나 같은 것이 있어서 무엇이 될까 라고 비관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기란 버겁게 느껴지고, 실패는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일어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를 여전히 사랑하니 돌아오라 부르십니다. 다시 주님의 편에 섭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 일어나 봅시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봅시다. 어쩌면 말이에요. 우리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크신 계획이 있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다 알 수 없더라도 말이에요.

 

고백합니다. 저는 매일... 정말 자주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살지 못하는가. 그런 저 같은 사람도 그래도 일어나 일을 하러 나가고, 그럼에도 힘을 냅니다. 자꾸만 게으름의 길로, 자학의 길로 빠지려는 그 지독한 습관과 헤어지려고 다짐합니다. 또 작심삼일이 되어도, 또 결심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성실하기를 꿈꿉니다. 하나님 이 생명 부디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여 주세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 2018. 02. 시북.

 

by 시북 2018.02.08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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