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신명기28:1-14)

 

이제 2018년을 시작하는 1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2월달이 시작되었고 조금 있으면 설날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본격적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에 엄청난 추위를 겪었고 또 이겨내었습니다. 물론 여기는 부산입니다. 육지에서는 가장 따뜻한 지역이므로 서울사람이나 강원도 사람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는데 우리도 나름 추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엄청 춥습니다. 물론 부산 치고는.

 

누구에게나 겨울은 혹독합니다. 제가 기사를 보니까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다리 밑에서 ,텐트 안에서 동사한 이들이 있습디다. 얼마나 추웠을까요?

 

제가 옛날에는 정말 추운 겨울 도봉산에서 눈 위에서도 잠을 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죽지 않고 살아 있는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결코 따라 해서는 안됩니다. 그 옛날 눈밭에서 함께 기도했던 그 기도의 용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총이 여전히 저들과 함께하실 것을 제가 믿습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은총이 여기 이 자리의 우리와 함께 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어려움이 없이 평안함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절대 궁극의 평안이라는 경지인 솰롬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힘을 주심으로 그 주어진 환경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가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소망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자비롭고도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자기를 공경하고 그의 길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미쁘사  자기의 사랑을 풍족하게 베풀어 주시기를 즐겨하십니다. 죄있는 자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글쎄, 그 끝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 주에 서모검사가 폭로한 성추행사실....전 그 자체보다는 그 영상에 나오는 온누리교회에서 간증하는 영상, 진실된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울던 그 영상을 보며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받는 것 같아서 참담하고 또 만일 그 사람의 눈물이 진실되었다면 어쩌지? 과연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일까? 같은 여러 생각이 들어서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속사정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 놀란 것은 일반인들도 회개, 진정한 회개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지금 죄있는 이들은 회개하면 됩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그냥 맡겨두세요. 왜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행해야 하는 것은 성도로서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여기 왜 ‘삼가’라는 말이 쓰였는지 너무 궁금해서 도대체 이게 왜 이럴까하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냥 들으면 안되나? 삼가 들어야 돼?

 

‘삼가’란 말은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란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말 성경에 쓰인 ‘삼가’는 뜻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삼가’는 원어적으로 ‘부지런하게, 열심히, 근면하게’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정중하게 받아들이라기보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그 명령을 잘 지켜 행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잘 지키려면 그 말씀을 먼저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려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하겠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려면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님에게 먼저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복을 받아 누리는 전제 조건은 먼저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본문을 따라서 계속해서 나가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우리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된답니다. 여기 ‘민족’이란 말은 ‘나라’의 뜻으로 보면 됩니다. 물론 여기 본문에서 ‘네가’ 라고 할 때의 ‘네가’는 이스라엘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고 그의 길을 따른다면 바로 우리가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뭐 누구는 우리를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렇게 말하기는 싫고 그냥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도 우리 하나님, 남의 하나님이나 저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그의 길을 따르고 그를 경외하기만 한다면.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들 이교도들은 우리를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고 공격하고 조롱합니다. 우리 교회와 목사들의 잘못도 커지만 사탄의 방해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반만년동안 이 땅을 지배해왔던 어둠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자 이를 몰아내려고 발악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싫은 세력들이 항상 우리들의 틈을 노립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항상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욕먹지 않도록 잘해야 하겠습니다.

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길을 따르면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뭐 굳이 우리가 세계 제일 민족이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는 민족이 되면 좋겠지요?

 

범죄율도 낮고 사랑이 많고 법과 질서도 잘 지키고 하나님의 공의가 제대로 서 있고 안전하고 복지도 잘되어 있고 ... 옛날 구한말에 선교사들이 와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효성을 보고는 나도 선교사를 은퇴하게 되면 말년에는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를 보고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렀는데 요즘하고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런 좋은 것은 계속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기를 섬기는 백성들을 세상 모든 민족들 위에 뛰어나게 하실까요? 그것은 그들이 형통함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아, 저들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저렇게 복을 주시는 구나!’하고 깨달아서 저들도 역시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너혼자 잘먹고 잘살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임하리니” 하고는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주는 복들이 소개가 되는데 엄청납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의 말을 좇아 행하면 복은 우리들 각자가 받습니다. 당연하게도 복있는 사람들이 모인 나라도 복있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는 민족이라는 말과 나라란 말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스라엘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이 전체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나라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 나라와 민족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개인이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빨리 이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땅이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 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 가 우뚝 서도록 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 속에 있는 우리를 위해서 이들이 빨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자, 사람들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첫째 “성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성이나 들에서만, 그런 장소에서만 복을 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성에서도 들에서도’ 같은 말을 사용한 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거하는 곳에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에 있다면 그 성이, 우리가 들에 있다면 그 들이 우리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서 그 백성이 복을 받지요?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서 나라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이, 복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명령을 즐겨 준행하는 우리 성도들이 어디에서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이 말은 자식들이 많을 것이고 농사가 잘되게 기후도 알맞게 될 것이고 비도 제대로 내릴 것이고 또 가축들도 잘 번식하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인구도 늘어나고 재산도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믿는 백성들 개인 개인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원래 우리말 성경에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되었는데 , 아니 너무 그럴듯하게 되었는데 원문에서는 자녀 대신에 열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소산 대신에도 열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몸의 열매와 네 토지의 열매와”라고 할 수 있는데 보세요. 자식을 많이 낳아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우리 하나님은 복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그것도 매해 갱신해서 더 최저로 가고 있는 상황은 우리 민족이 지금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잘 말해 줍니다.

 

사실 인구 문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참고 계속 봅시다. 자녀도 토지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일도 다 ‘열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는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열매가 최종결론이기는 하지만 열매를 맺기까지는 인내하고 고난도 때로 겪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열매를 바로 맺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노력도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즉각적으로 뭔가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고 또 어려움이 없어지고 부자가 되고 건강해 지고 승승장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생각해서 세상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거름도 필요하고 필요한 약도 쳐야 하고 기후도 맞아야 하고 시간도 걸리고 햇빛과 비가 필요하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을 행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익지 않은 과일은 먹어도 맛이 없지요? 그래서 잘 익어서 맛있고 큰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오래 걸리는 겁니다. 그만큼 수고가 많이 듭니다. 그걸 기다리지 못해서 채익지 않은 열매를 따게 되면 그 열매는 먹지도 못하고 못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내 자녀가 나의 산업이 복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내 자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축이나 농사나 과수가 잘되고 못되고는 나에게, 그 가축을 먹이고 키우는 나에게, 농사를 짓는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잘되고 못되고는 그 자녀자체보다 나에게 더 크게 좌우됩니다.

 

내가 자녀를 잘키우면 자녀가 가진 재능을 활짝 피워서 더 크게 될 것입니다. 내 자녀를 내가 평소에 잘 양육한다면 그의 인성이 반듯해 져서 사고를 치지 않을 겁니다. 물론 내 자녀가 착하고 바르게 자랐는데 열심히 노력도 했고 효성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있는데 잘 안되는 경우, 빨리 취직이 되지 않는 경우, 아슬 아슬하게 계속 떨어지고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는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왜냐면 대기만성이라고 더 큰 인재를 만드셔서 더 크게 사용하시려는 주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최선을 다했고 자녀가 최선을 다했다면 굳건한 소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머지않아 놀라운 역사를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을 말해볼까요?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데 내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뻐해야 합니다. 자녀의 장애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장애는 두고두고 괴로움을 안겨 줍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건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다 늙어서 힘없는 나를 그래도 기뻐하고 사랑해 주고 챙겨주는 자녀를 주신 것 만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제가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혼자녀들이 미혼자녀에게 부모의 부양을 맡겨버린다는 이야기! 속사정을 떠나서 그래도 부모의 품을 떠나지 않아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장점도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 자식은 왜 결혼을 못했냐고 한탄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자녀들과 소산들과 새끼들이 열매가 나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그래요, 모든 것의 원인에는 내가 있는 겁니다. 나로 말미암아 복을 받도록 내가 먼저 최선을 다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내 행동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할 일입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머지않아 드러날 하나님의 섭리를 소망 중에 기다리십시오.

 

세 번째로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자, 복의 내용이 점점 구체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광주리는 과일이나 곡식을 모아두는 광주리를 말하고 떡 반죽 그릇은 빵을 만드는 그릇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반죽된 가루를 아궁이에 붙여서 빵을 만들어서 여기에 무화과 같은 것을 가지고 쨈을 만들어서 먹거나 아니면 작은 생선을 간을 해서 먹습니다. 그러니까 자녀와 가축의 새끼와 곡식의 산출에 복을 내리심에 더하여 우리가 일용할 양식과 그 양식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먹는 전 과정에 복을 내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산업과 생계의 전과정까지 지키고 보호하시며 복을 주신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면 우리의 인생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혹시 이런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네가 먹을 것이며”
그래요, 이게 너무 당연해서 전혀 복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우리가 수고하고도 제대로 그 열매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시면 이 단순한 말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보장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며 그의 도를 좇고 그가 명령하신 것을 듣고 준행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나로 말미암아 나와 관계된 모든 것에 복을 더하십니다.

 

네 번째로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그러니까 집으로 들어와도 집에서 나가도 복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집안에 있어도 집밖에 있어도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말을 좀더 확장하면 일의 처음과 나중 즉 시종을 주께서 지키시고 복을 주신다는 겁니다.

 

이런 복을 누가 받나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그래요,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그가 명령하는 것을 지키면 하나님이 이 모든 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악속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가 명령하는 것을 조롱하며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복은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죄악된 땅에 자기의 사자를 보내시지도 않을 것이며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그 복 없음이 우리에게도 미치게끔 될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이 하나님을 믿는 나라의 백성에게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흉흉하고 곤궁해지면 그 사회 속에 사는 우리가 그 어려움을 피해갈 수가 있습니까? 쉽게 말하면 나라가 공산화되면 교회가 목사가 성도가 온전할 수 없음과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실 것은 당연하지만 복락속의 태평성대속의 성도의 삶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사탄의 세력하에 계속 있다면 사탄의 법칙으로 이 세상이 다스려 질 것이고 사랑이니 양보니 희생이니 정의니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니 효율이니 조종이니 시기니 질투니 악의니 그리고 부조리같은 것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고 그 나쁜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라도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사탄의 세력이 계속된다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하고 또 그것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곤궁하고 괴롭고 힘들게 될 것입니다.

 

사실 복을 받는 것을 잘 보면 나라와 개인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몇 년째 흉년으로 먹을 곡식이 없다면 그 나라에서 발행한 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나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없습니다.

 

돈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 아닙니다. 잘 보면 인도 같은 곳은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부자도 있고 세계에서 엄청나게 가난한 이들도 있는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센 나라입니다. 중국이나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위스 같은 곳을 보면 그렇게 잘사는 사람도 잘 없고 그렇게 못사는 사람도 잘 없는 다이아몬드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층이 제일 많지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희생하고 양보하며 물질보다 정신을 더 소중히 여기고 내일의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혼자서 ‘러시아 중국 일본 북한 다 덤벼라 내가 박살내 주마’라고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이 땅에 나라를 이루고 당당하게 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이 세계에 하나님의 법이 퍼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지켜진다는 그런 가치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어야 우리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목사고 정치꾼이 아니기에 정치적인 이야기는 자제 하겠습니다만 우리는 군대나 경제로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이유를 찾으려고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가진 그 엄청난 인구를 우리가 따라 잡을 수 있을까요? 어렵지요. 일본도 남한보다는 몇배나 많은 인구와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돈도 많습니다. 자유와 풍요에 젖어 있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처럼 살 수 없습니다. 삼시세끼 밥만 먹여 줘도 감사합니다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동족이 북쪽에서 굶고 있는데도 통일이 되면 내것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 가난한 북한 동포를 먹여 살리려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야 될 것 같아서 통일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정말 황당합디다.

 

사랑과 ‘더불어’의 마음이 없다면 우리끼리만 가진 것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흘 굶은이가 부잣집에 쌓인 곡식을 버려두고 굶어 죽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내가 굶어 죽게 되어도 저건 내게 아니야. 나는, 내 식구는 굶어 죽어도 돼’ 이렇게 생각하겠나요? 택도 없지요. 말이 안됩니다. 나누지 않으면 빼앗기고 목숨도 잃을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같이 사는 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복을 누리고 그 안전한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 사회속의 내가 안전하고 복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즐겁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우리에게 형제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 명령을 제대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우뚝 서도록 하나님의 법으로 이 땅이 다스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 하나남의 나라 안에 사는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복이 우리 성도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우리에게 미친 복이 또 발아하여 주위를 살찌울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새해에는 내가 이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 보다 너 나아지게 하기위해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나를 먼저 살펴보세요.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2016년부터 도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교통신호를 지키기를 목표로 설정하고 지키고 계십니다. 이제는 그 보다 한단계를 더 나가면 됩니다.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기. 어떻습니까? 뭔가 아주 작은 호의라도 입었다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뭔가 약간 잘못했거나 마음에 찝찝한 일이 있다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만 잘해도 우리가 훨씬 더 행복해지고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뭐 이것 말고도 내가 생각하는 선한 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빛이 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도 필요 없고 한 개 정도를 더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개씩 선한 일을 더하겠다는 마음들이 퍼진다면 어느 순간 이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 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런 밝아지고 행복해진 세상의 좋은 분위기가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올 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냥 나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생각지 않고 무작정 하나님에게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막무가내 ‘복주십시오’ 타령만 한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실 것입니다.  아니 황당해 하실 것입니다.

 

복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렇다면 그걸 겸허히 받아들이고 지켜 준행해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복을 받아 누리는 전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일년동안 아무쪼록 하나님의 명령을 잘 준행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충분히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이
세상 욕심에 쉽게 좌지우지되려는 우리의 마음을 붙드셔서
하나님의 길로 잘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우리 가정이 우리 기업이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이 복을 받는, 그래서 그 속에 있는 우리에게 좋은 영향이 미쳐지는 그런 복락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8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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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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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저는 솔직히 말해, 가끔 예수 믿기란 참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뭐하러 그런 고생길을 하느냐는 거죠.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다는 비웃음을 당할 수 있죠! 게다가, 월급의 십분의 일이나 교회에 꼬박꼬박 드려야 하죠! 이상한 목사님들은 또 곳곳에 있는 건지 모릅니다? 오늘의 뉴스를 보니, 대형 교회에서 헌금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뭐가 이럴 수가 있는지!

 

그럴 때는 내가 운이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홍 목사님은 좀 괴짜거든요. 몇 년 전, 제가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 참 재빠르게 방문하셔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랑 아예 다르게 돈봉투를 건네주더라고요. 덕분에 병원에서 맛있는 거 냠냠 잘도 사먹었습니다. 주변에서 참 부러워하던게 아직도 선명합니다.

 

일이 풀려나가는 것들도 저는 좀 신기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만나 읽을 수 있어서 오늘 하루도 기쁘고, 14년차 동호회 활동 역시 여전히 망하지 않고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소명 같은 좋은 일을 연속적으로 발견하게 되어서,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예수 믿고 복 받은 게 실감이 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잘못된 생각,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너무 긍정을 하면 오만과 교만의 덫에 빠지고, 너무 부정을 하면 아무 것도 못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도와달라 기도하면서, 다만 하루를 잘 살 수 있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힘내자고요. / 2018. 02. 시북.

 

by 시북 2018.02.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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