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싸울 것인가, 화합할 것인가 - 병자호란과 굴욕

시북(허지수) 2013. 5. 13. 16:37

 명분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은 사대외교를 기본 으로 걷습니다. 성리학적 질서를 중시했기에, 큰 것을 섬겨야 한다는 거지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도움 요청으로, 실제로 명나라가 조선을 돕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힘을 쏟아준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역사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라는 논리 앞에 서게 되는데요. 문제는 여진이 나날이 커져서, 이제 명을 위협하기 시작하니까, 조선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시작합니다. 안그래도 오랜 전쟁으로 인구도 격감하고, 농촌도 황폐하고, 국가 재정도 어렵고, 힘든 시기였는데... 오늘의 문서 역시도 상당히 가슴 아픈 시간들입니다.

 

 여진은 누르하치가 통일을 이루며, 17세기 초반 후금을 건국합니다. 일단 내부적 통일을 이루고, 힘이 쎄지면 거침 없이 밀고 들어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금이라는 신흥 강국은 명나라를 압박들어오는데, 명나라 입장에서는 대단한 스트레스 였지요. 명의 결단이 이어집니다. 이래서는 우리가 안 되겠다. 후금을 치러가자! 여기서 잠깐! 아니 지금 조선 역사를 보고 있는데, 중국 역사는 왜요? 라고 묻는다면, 이 다음 질문이 너무 강력합니다.

 

 명나라 왈 : 조선이여, 우리가 힘들 때 도와주지 않았던가? 지금 후금을 치러갈 터이니, 파병을 해주시게!!!

 

 솔직히 이야기 하면, 이건 거부하기 대단히 어려운 요청입니다. 거절할 명분이 없잖아요. 게다가 성리학의 조선에서는 큰나라가 요청한다면, 질서를 따르는게 맞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당시의 왕이 누구였냐 하면, 바로 광해군이었거든요.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추구 합니다. 시험 최고 단골 손님이니, 잘 파악해 봅시다. 이전의 외교노선과는 다른 길을 걷습니다. 철저하게 실리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조금 재밌게 쓰자면, "아놔, 기울어져가는 명나라를 도와줘야 하나? 만약 여진이 크게 융성해지면 후폭풍은 조선이 맞이해야 하는거 아닐까? 일단 이 나라는 전후복구부터 어서 해야 하잖아? 대규모로 파병했다가는 더욱 곤란해질테고... 흠!"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염두해서 살펴볼 것은, 지금 조선의 조정은 난리입니다. "전하~~~ 파병 안하고 뭐합니까!!!", "명나라가 부르지 않습니까, 은혜도 모릅니까!!!"

 

 광해군은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파격적이고 현명한 신중한 중립 외교를 걷습니다. 외줄타기를 시작한 것이지요. 파병? 일단 합니다. 강홍립의 부대를 출병시키는데, 몰래 불러서 이렇게 제안합니다. "잘 들어. 너희들 일단 가기는 가지만 후금이랑은 가급적 싸우지 말고, 적당히 상황을 잘 살펴보고, 때를 봐서 투항해도 좋아." 파병의 명분은 지키면서도, 소용돌이에 괜히 크게 말려들지 않겠다는 거지요.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고, 실제로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해 버립니다.

 

 사실이 알려지자, 대신들이 격분하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지요. 연산군 때와 마찬가지로 결정적 문제사유는 이것 입니다. "성리학적인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왕이 무슨 이렇게 할 수 있냐며, 대다수의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고, 결국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몰락하며, 왕이 교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제 광해군을 엎어버리고 집권한 인조와 서인세력들은 질서를 앞세웁니다. 이른바 친명 배금 입니다. 오로지 친명! 무조건 친명! 명나라를 위해서라면~♬

 

 침착하고 냉정하게 접근한다면, 이같은 태도는 결과론적으로 백성들이 또 다시 전쟁에 휩싸이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만듭니다. 생각해보면, 친명배금 - 명분론으로는 잘 맞습니다, 명나라 편에 선다는게 말도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위험한 선택 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인조반정 당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난을 일으켰던 이괄세력이 열받아 후금으로 넘어가면서, 각종 조선의 상황과 명분까지 제공해 주었으니, 이제는 그야말로 "후금이 조선을 치게 되는 역풍"을 맞이합니다. 1627년 정묘호란의 발발 입니다.

 

 후금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나중에 청나라를 세우며 중국을 지배했던 세력입니다. 상대하기가 정말 곤란하고 어렵습니다. 조정의 선택은 이제는 우리가 익숙할 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피신 (...) 입니다. 강화도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의병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 싸웁니다. 정봉수와 이립이 뛰어난 활약을 했는데, 후금의 보급로를 끊어버리는 멋진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상황이 곤란해진 후금은 화의를 맺고 사태가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뭐, 사실상 후금이 노리는 것은 명나라 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지나치게 무리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잘한다 의병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불과 10년도 흐르지 않아 후금이 더욱 세력이 커지고, 청나라 로 이름을 바꾸며, 황제의 나라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조선에게 어려운 시간이 닥쳐옵니다. 청은 황제국이니, 이제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하기 시작 합니다. 현실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당장 전쟁은 피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명분을 생각한다면 과거 오랑캐 나라(여진)가 지금 잘 나간다며 우리보고 신하나라 라고 요구하다니, 이게 뭐냐, 있을 수 없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간단치 않은데, 당시라면 얼마나 논란이 많았을까요.

 

 주전파들은 강경 합니다 - 청나라? 웃기시네? 그래 한 번, 싸우자! 조선이 어떤 나라인데 감히 그러느냐? 명나라를 섬기면 섬겼지, 너희들의 말을 들을까 보냐! vs 한편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주화파 도 있었습니다. 오랑캐의 노여움을 사서, 백성들이 비참한 상황에 내몰린다면 이게 어떻게 좋은 정치냐! 우리의 국력도 바닥나 있고, 청나라의 병력은 강대한데, 현실을 보자! 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 조정은 결국 주전으로 여론이 모아졌고, 열받은 청나라가 기어이 쳐들어 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의 발발입니다.

 

 현실을 오판하며, 착각에 빠져 있던 대가는 끔찍했습니다. 그리하여, 인조는 조선 최대의 굴욕을 겪습니다. 강화도로 가서 버티고 싶었지만, 이제 도망치는 코스까지 보이잖아요. 청나라가 강화도 가는 길을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남한산성에서 버티는데, 불과 두 달만에 전쟁은 끝났습니다. 조선이 항복을 선언한 겁니다. 이제 청나라에게 항복! 세 번 절하고, 땅에 아홉번 머리를 찧어 박으며 신하임을 드러내는 겁니다. 이런 치욕을 겪다니... 왕자도 끌려가고, 많은 사람들이 끌려갑니다. 조선은 공황상태, 그야말로 멘붕 입니다.

 

 성리학적인 명분만 좇다가, 이런 비참한 굴욕 만을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이후 조선에서는 오랑캐에게 치욕을 겪었으니, 북벌을 해버리자는 의견 (북벌론) 이 등장합니다. 강성한 청나라를 치자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성리학의 명분은 얼마나 변하지 않는지요.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 때, 나름대로 진지하게 북벌이 추진되다가, 이후에는 쇠퇴하며 실천까지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모습들은 또 나중에 살펴보고, 다음 문서에서는 조선의 경제생활로 이어집니다.

 

 오늘의 영감~ 가급적 읽기 편할 분량으로, 짧게 정리하려고 하는데도, 쓰다보면 길어지네요. 욕심을 좀 비워야 하는데. 조선 전기 정치 파트를 마무리하며,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도움을 준 것은 어쨌든 사실이지만, 원군을 우호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 군대들이 조선에서 하도 안 좋은 일들을 많이 저질러서, 일본군 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성리학적 접근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서, 명나라도 조선을 돕는게 이익이었다고 판단했기에 움직였다는 거지요.

 

 외세가 우리를 무조건 좋게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은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명나라가 있다! 라고 끝없이 주장하던 성리학의 시대는 그 수명이 명나라가 저물어 가면서, 급속히 현실감각을 잃어갔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판단이 들어가야 할텐데,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면 결코 변화가 쉽지 않았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중립 외교를 걷던 광해군이 반정으로 추락하며 "군"으로 격하된 것만 봐도, 명분을 거슬렀다가는 끝장날 수 있었고요.

 

 이걸 적용해 본다면, 오늘날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그럴싸한 명분 때문에, 정작 사람들이 피눈물 흘린다면, 그것이 과연 바른 일일까 라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표적인게 통계수치나 소득가지고 장난치는거지요. 국민소득 2만달러, 아 좋습니다, 조금 후하게 3만달러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생계 곤란을 여전히 겪고 있으며, 소수는 마치 "높은 사람"인냥 얼굴에 철판 깔고 행동하는 사회가 된다면, 이 "소득명분"을 달성하기 위해서, 국민들은 "아래에서 견디고" 살아가는 세상이 됩니다. 명분은 좋지만, 현실은 여전히 어려워지고 맙니다. 참 이상합니다.

 

 싸움이 항상 좋거나, 평화가 항상 좋거나, 한 쪽 방향만 생각할 때, 문제가 곤란해 지는 듯 합니다. 어쩌면 귀찮은 것을 싫어할 수도 있겠지요. 하던 게 편하지 뭐, 무슨 양다리 외교냐 적당히 강자에 기대서 사는거지 뭐, 결국 그러다가 굴욕을 맛보는 겁니다. 따라서 살아가는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무엇을 지금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경철 샘의 그리스 여행기 중에 아주 짧은 이야기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는데 지금 소개하면 좋을 것 같네요. "정신이 먼저 죽고, 국가가 죽는 것이다." 치열하게 생각하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정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 때부터 인간이 죽거나, 공동체가 죽거나 하는 거지요. 정신이 반짝반짝 살아있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를 오늘도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