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리뷰

시북(허지수) 2014. 12. 8. 21:06

 

 아름다운 여배우와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와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영국 런던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덤까지. 노팅 힐은 잘 알려진 로맨틱 영화 입니다. 주연 배우 외에도, 스파이크라는 독특한 조연이 펼치는 혼신의 연기(?)도 무척이나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말이지요. 아, 그렇다고 괜한 큰 기대를 하기 보다는, 조용한 날에 맑은 마음으로 보기에 좋은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게, 한 걸음식 다가서기 때문이지요.

 

 영국 런던에 거주중인 윌리엄 태커의 책가게는 오늘도 한가롭고 적자가 예상되는 와중에 있습니다. 게다가 매장에는 좀도둑까지 있으니 이거야 원...... 그럼에도 윌리엄은 무척이나 신사적입니다. 도둑에게 다가가 책을 되돌려 놓던지, 값을 지불하던지 말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를 지켜보는 여인이 있었으니, 주인공인 여배우 안나입니다. 몰래 선글라스를 끼고 서점에 왔다가 신사적인 윌리엄에게 확 끌리게 되는거지요.



 노팅 힐은 이제껏 봐왔던 로맨틱 영화가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개가 느린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한 끌림이 드라마틱 하지 않고, 극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남녀가 서로에 대한 약간의 호감이 있을 때, 이렇게 행동하는 구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렌지주스를 실수로 옷에 쏟고 말았을 때, 정중하게 집으로 안내하는 윌리엄의 태도를 보면, 한 캐릭터가 아니라,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평범하고 친절한 한 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한 사람. 이것이야말로 노팅 힐에서 발견한, 제가 반사해 놓고 싶은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은 조용한 가게의 주인으로 비춰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안나 역시도 헐리우드의 인기배우가 아니라 한 사람, 그녀로서만 생각하게끔 유도되고 있습니다. 인간을 평가하는 것에 있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빠져있고, 그 자리를 어떻게 살고 있느냐로 묻고 있는 태도가 정말 좋았던 영화입니다.


 그러면 다시 윌리엄의 이야기로 처음부터 돌아갈께요. 윌리엄은 런던에서 괴짜 친구와 살지만 재밌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카푸치노를 즐기는 여유도 있으며, 주변 친구들과의 생일파티엔 빠지지 않는 좋은 사람입니다. 물론 사랑에 대한 상처가 있고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었지만, 그가 선하게 살아가고 있음은 영화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안나가 갈 곳이 없어 찾아왔을 때, 그녀가 힘드니까 잘 배려해줘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는 장면은 진짜 남자다운 신사의 모습을 멋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안나는 화려한 헐리우드 스타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계속해서 시달리는 사람들의 뒷담화 소재가 되기도 하며,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10대 이후로는 장기 다이어트 중이며, 고통스러운 성형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음을 이야기 합니다. 안나의 남자친구 관계도 역시 아픔이 있어서, 폭력을 겪기도 했음을 털어놓습니다. 영화는 윌리엄과 안나에 대해서 점차 알아가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노팅 힐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감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른채로 뜨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영화 비포 선라이즈 (아! 에단 호크!) 같은 아름답고 달콤한 하루도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러나, 소심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가는 꽃다발 하나 역시도 한 편의 애정이 가득 담긴 모습일 수 있음을 노팅 힐이 잘 알려줍니다.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여동생의 생일을 기념하며, 함께 모여서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중요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알고보면 다들 상처가 있고, 오늘이 어려운 인생일지라도, 영화에서처럼 저녁의 만찬과 함께 기운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소중한 날들을 만들어 가고, 간직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막바지 - 오해 때문에 안나와의 사이가 틀어져버린 난처한 윌리엄은 소개팅을 해 봐도 산 송장처럼 지내며, 안나를 좀처럼 잊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주변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안나 앞에 서면서, 꿈만 같았던 신데델라 스토리~ 는 아름답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네요. 해외평으로는, 의외로 어른들의 로맨틱한 영화라는 평가도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노팅 힐 극중 내내 흐르고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픈 곳까지는 물어보지 않는 것, 언제나 무슨 상황이든 응원해주는 것, 실수해도 덮어주고 다시 또 격려해주는 것,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이 영화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 2014. 12. 리뷰어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