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끝까지 간다 (A Hard Day,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4. 11. 19. 19:22

 

 저는 삶을 되돌리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밥벌이의 고단함 앞에서는, 연이어 터지는 어려운 일들 앞에서는, 마치 배터리가 떨어져버린 휴대폰 처럼 무기력하게 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질문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이보게, 무기력한게 답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의 기운을 충전해도 좋겠고, 억지로 라도 계속 앞으로 가봐도 좋겠고, 무엇인가 답을 향해서 움직이는 그 노력들을 바라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끝까지 간다 에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해보는 매력적인 주인공 고건수 형사가 등장합니다!

 

 이제 막 30대 후반에, 경찰 짬밥만 10년! 형사로서는 유능했지만, 집안 에서는 아내와의 이혼. 딸바보로 오늘도 열심히 모범(?) 경찰로 활약중인 고건수!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지는 비극적 한 방을 맞이합니다. 바로 어두컴컴한 밤에 자신의 차로 사람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 모든 것이 다 꼬이며 덮쳐오는데...

 

 

 딸이야 열심히 키우면 된다지만, 경찰 내부에서 몰래 해먹던 비리가 감찰반에 의해 다 걸렸고, 무엇보다 과실치사에 뺑소니라니, 그 출발이 참 어둡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일단 덮어보려는 고건수의 유능한 활약이 영화 초반 내내 펼쳐집니다. 다 좋았습니다. 이 상황을 거의 전부 알아차린 박창민이라는 또 다른 조폭 겸 경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창민은 등장하자마자, 꼬리가 잘리기 전에 알아서 기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어차피 서로 좋게 끝내려면, 뺑소니 친 그 시신만 넘기라는 것입니다. 왜냐? 이유는 묻지도 말라는 것이지요. 영화는 중반부터 고건수와 박창민의 계속되는 싸움으로 열을 올립니다. 두 사람은 물러서지 못합니다. 그나마 착한 사람 편으로 묘사되는 고건수는 딸이 있으니까,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그 동기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창민의 경우는 이른바 "열쇠"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신이 필요하다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여간에 그 열쇠가 문제입니다. 왜 숨기려고 하는가, 혹은 왜 행동하려고 하는가, 이 점을 빨리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고건수는 경력 10년의 베테랑 답게, 창민의 행동 동기를 파악해서, 폭탄 테러(!)도 시행하는 등 현장에 강한 모습을 멋지게 보여줍니다. 창민은 악의 화신 그 자체입니다만, 더 나아가서 밤의 황제라도 될 모양이었지요. 한 쪽은 경찰의 최전선, 한 쪽은 어둠의 최전선. 얻어 맞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의 직진만이 영화 내내 펼쳐집니다. 다른 일을 생각하기에는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일이 매우 긴급하다는 점. 그리고 삶을 좌우할 만큼 핵심적이라는 게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모든 순간들을 되돌리고 싶지만, 단 하나도 그것을 이룰 수 없다면, 그런 인생을 잠깐동안의 우울함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진짜로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부터" 라고 영화는 숨가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건수는 동생에게 토스트 가게를 새로 열라고 부탁하면서 우리의 인생이 새 출발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적당히 나쁘게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모범 경찰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에게는 얼마든지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힘겨운 하루지만, 끝까지 옆의 세계를 향해서 도전해 나갈 때, 어떤 가능성을 만나보는 게 아니겠어요.

 

 고건수에게 있어 어제보다 아름다운 세계라면, 단지 창민이 없어지는 세계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창민이 갖고 있던 세계. 이를테면 돼지금고와 막대한 돈들은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심지어 형사 생활도 더 이상 좋은 추억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제보다 세계가 나아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을 바꾸기 위해서 괴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창민이 극중에서 잠수 신기록을 세우듯, 건수가 극중에서 베란다를 타고 넘어가듯, 이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놀랄만큼의 인내력과 도전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화 끝까지 간다가 보여주는 미학이기도 하겠지요.

 

 언제나 그렇듯 영화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초인적인 힘의 비결이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몇 가지만큼은 확실하네요. 알아서 기어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하고, 호기심 넘치게 살아갈 때, 우리는 분명 보다 맑은 정신을 지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2014. 11. 리뷰어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