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우아한 세계 (The Show Must Go On, 2007) 리뷰

시북(허지수) 2014. 11. 11. 22:07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조직에 몸담아왔고, 이제 중간 관리자가 되어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이 조직세계에서는 말이지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이제 마지막 꿈, 가장답게 집에서도 인정받기만 한다면, 그의 행복도 완벽할 것만 같습니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이 점에서 독특한 조직폭력 영화 입니다. 조직 폭력배의 친구나, 조직 폭력배의 가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톨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인구가 왜 조직에 몸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정말 어려웠을 때, 보스가 자신을 도와줬기 때문에, 인구 자신도 조직에 대해서 헌신하는 모습만 펼쳐질 뿐입니다. 중간이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일은 가장 열심히 하고도 결과물은 제대로 나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조직 영화라기보다는, 회사 영화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당신 제대로 밥 벌어오든지, 아님 이혼하든지, 여기에 참 답하기 어려운 곤란함이 걸려있는 것 아니겠어요.

 

 

 한편, 인구의 가족 사랑은 무척 특별합니다. 그는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식대로 사랑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바보같은 짓들이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그가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우리는 그가 진심으로 가족에게 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딸까지 온 가족을 유학시킬 만큼, 아버지라는 단어는 열심히 돈을 벌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돈을 버는데!!! 이런 식으로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우아한 세계에서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물론 화려한 자동차씬과 박력 있는 음악들도 좋습니다만) 인구가 가지는 선택과정입니다. 인구에게는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생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날 수 있었고, 이제 겨우 40대라면 다른 일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테지요. 하지만 인구는 다른 것들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시야가 갇혀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저를 포함해서, 주변에서도 참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은 익숙하고, 새로운 일은 두렵기 때문입니다. 인구는 자기 스스로는 도움을 줬던 보스가 고마워서 함께 하고 있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미지의 세계로 발딛기가 두려웠던 게 아닐까요? 그나마 조직에서는 담배값과 순대국은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즐거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구는 불운하게도 조직에서는 2인자 노상무와 끝없는 갈등구조가 반복됩니다. 월등히 실력이 떨어지지만 "빽"만 믿고 붙어 있는 노상무. 그에 비해서 인구는 담배 하나를 사면서도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는 인생인지 모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인구의 친구, 현수의 말이 맞았습니다. "노씨 형제들만 좋은 일이니까, 그만 우리 파로 넘어와라"

 

 왜 인구가 넘어가지 못했을까도 재밌는 대목입니다. 그는 아마 아무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지고보면 가족에게도 거의 깡패새끼 취급 받고 있는 형편에서, 새로운 조직에 가서 잘 적응할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인구는 그래서 처량합니다. 그가 하는 선택들은 다 이유가 있는, 혹은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지만, 그 결과들은 하나같이 억울해 보입니다. 노상무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을 때, 오히려 절규하는 것은 인구입니다. "내가 안 그랬다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인구가 최선을 다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우아한 집, 그림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핵심이 빠져 있었네요. 바로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구는 하나의 조직을 완전히 와해시킬만큼 월등한 실력자였지만,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서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지만 (와우!) 완성되었던 자신의 꿈에서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다 캐나다로 유학을 가고 없었으니까요. 인구의 아내는, 조직 폭력에 계속 몸담는 남편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다주는 기계냐" 언젠가 술을 잔뜩 드시고 아버지가 노곤한 인생살이를 짧게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때로는 늦은 연장근무로 저녁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런 점을 생각해 볼 때면, 불효자로서 말없이 함께 나마 있어주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자꾸 생각됩니다. 인구의 딸은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힘들어 했다는 것도 영화의 한 포인트가 되겠네요.

 

 그러면 이 영화는 한 가족이 함께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얼마나 재치 있게 조직이라는 소재를 삼아서 이야기 하고 있는걸까요?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해해주겠지... 라는 것이 사실은 폭력일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새 집으로 이사했음에도, 한 가족이 함께 앉아서 밥먹는 장면은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인구와 현수가 예전 순대국 집에서 장난을 치던 장면만이 참으로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은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좋은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도 그렇게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대화를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어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힘든 가장 여러분, 힘내셨으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