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2011년도 강의의 내용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15분의 이야기들, 그 매력 속으로 빠져봅니다.

 ※ 7회 원본 강의 주소를 함께 첨부합니다. 아래 본문은 제 느낀 바대로 편집 및 요약되어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WFJEQJ9WEdU

 

 저는 지금 한국교회가 죽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고, 다시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한국 교회 장점도 많지요.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고, 또 헌금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 덕으로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역사상 가장 빨리, 또 가장 크게 성장을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회에도 상당한 공헌을 합니다. 민주화에도 공헌을 했고, 과거에 우리나라 독립에도 기독교가 공헌을 했고요. 또 여러가지, 교육, 문화, 환경 문제에도 기독교가 공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기독교가 근본적인 약점이 있어서, 이것을 고치지 아니하면, 한국교회가 참 위험하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첫째로, 한국교회는 도덕성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도덕적 위기에 처해있다고 믿습니다. 도덕이라는 것이 별 건 아닙니다. 직,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바로 도덕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을 들자면, 가령 정직한 것, 공정한 것인데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 하고,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요. 그러니까 정직하다는 말, 공정하다는 말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 하고, 어떤 사람에게 차별대우를 하고, 어떤 사람에게 불필요하게 이익을 주고, 그렇게 불공정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집니까?

 

 다른 사람이 우리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기독교가 도덕적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더 이상 믿지 못하고, 앞으로 전도해야 할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이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불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물론 종교에 있어 치명적이지만, 특별히 기독교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치명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좀 특이한 종교니까요. 그러므로, 신임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사람들의 신임을 받지 못합니다. 지난 해 11월에, 한국 기독교의 신임도를 조사해 봤는데, 개신교를 신뢰한다 하는 사람이 17.6%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를 신임한다는 비율이 가장 높아서 41.4%고, 불교를 신임한다는 사람이 33.5%로 나왔는데, 개신교는 10퍼센트대이니, 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또 어떤 NGO가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집단이 어디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치 집단이라고 그랬어요. 그건 어느 나라에나 마찬가지일테죠. 정치계는 불신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 못 믿을 집단이 뭐냐 그랬냐 하면, 종교계라 그랬어요. 이건 참 특이한 현상입니다. 세계에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다가, 우리나라 종교계가 이렇게 신임을 못 받게 되었는지 참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그 중에서도 개신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뢰하는 비율이 참 낮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람이 노력해서, 사람이 깨달아서, 발견되는 어떤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나타내었고, 그것을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런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나타낸다는 의미는,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독특한 교리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려고 한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가령 1+1=2 를 가르친다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그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황스럽게 1+1=1 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그 사람을 우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좀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1+1=1 이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종교거든요. 보세요. 무슨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거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라든가, 삼위일체라든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되기가 곤란한, 그런 것들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을 전파하려면은, 전파하는 사람이 매우 신임을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처럼 기독교가 불신을 받고 있다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또 도덕성이 약하다 라는 말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에요. 그리고 이것은 사랑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사랑으로 요약하셨는데, 그 십계명 가운데 4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모두 윤리적인 계명입니다.

 

 예컨대, 살인을 하면 안 되고, 도둑질 하면 안 되고, 거짓말 하면 안 되고, 이게 모두 윤리적인 것입니다. 즉, 도덕성이 약하다는 것은 우리가 십계명의 후반부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며, 결국은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있는 잘못이므로, 기독교가 지금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문합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면, 기독교인이 되느냐? 라고, 그것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뭐, 불교신자도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유교신자도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은 반드시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의 과정이 이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예시를 들면, 숨을 쉰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합니다. 강조합니다. 윤리적인 사람이 된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 이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해를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들은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자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정의에도 어긋나며, 비겁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기독교인이 비겁해서야 되겠습니까?

 

 두 번재로, 한국 교회가 반드시 고쳐야할 것이 돈, 명예, 권력의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별로 강하지 않았던 과거만 해도, 돈, 명예, 권력의 유혹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한국 교회가 많이 자라서, 헌금 액수가 많아지고, 사회 영향력이 커지고 하니까, 이것에 대한 유혹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유혹들을 아주 경계하는, 그런 종교거든요. 성경은 결단코 이것들을 좋은 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교회가 성공해도, 이런 유혹으로 부터 벗어나야 할텐데요. 오히려 - 조금씩, 조금씩 돈, 명예, 권력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벗어나서,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성경이 금하는 방법으로,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합니다.

 

 최근에 한기총이라는 집단이, 선거를 하면서 돈을 쓰거든요. 이건 뭐, 명예, 그것도 가짜 명예, 허영을 얻기 위해서, 성경이 금하는, 거짓말, 뇌물 같은 방법을 사용했으니까, 따지고보면 그깟 명예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경우, 명예라는 것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돈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면 돈이 우상이 되버린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하나님만 섬겨야지, 돈의 우상, 명예의 우상, 권력의 우상을 섬겨서야 이것은 기독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려면은, 적어도 돈을 무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즉, 교회에서 돈 많은 사람이 우대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교회에서까지 참 중요한 사람이라며 대우해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비록 가난하지만은,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비록 권력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그런 사람이 교회에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돈 많고, 권력 높고, 명예로운 사람이 교회에서도 우대받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자존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한국 교회는 돈을 무시해버리는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권력, 무시할 줄 아는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한국 교회가 이 혼탁한 세상에 그래도 좀 빛이 될 수 있지요.

 

 특별히 이 돈은 한국 사람이 매우 좋아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돈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든지, 돈을 섬기든지 결단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만 섬기든지 해야합니다. 둘 다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교회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라는 말을 강조하는데요. "우리"교회를 우상으로 만들지 말자는 겁니다. 본래 교회라는 것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또 거기서 힘을 합쳐서, 전도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그러한 공동체 입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수단인 공동체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자체가 그냥 목적이 되버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올라가버린다면, 교회도 우상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즉, 한국교회는 요즘 우리 교회를 우상으로 삼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 복음 전파에도 방해가 되지만은, 우리 교회의 이익이 된다고 막 추구해 버리는 겁니다. 또한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이며, 기독교의 명예를 높이는 일임에도, 우리 교회에 이익이 없다며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런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큰 교회가, 큰 버스를 대동해서, 온 시내로 교인을 태우러 다니지 않습니까? 불신자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굉장히 황당해 합니다. 아니, 기독교인은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가까운 교회 다니면 되지, 꼭 그렇게 큰 교회가, 큰 버스로 시내를 돌아다니며 교인을 모아야 하는가, 하면서요. 실은 이런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들이 지금 이런 행위들을 하거든요.

 

 저 시골교회는 지금 목회자의 생활이 어려운데, 도시의 큰 교회에서는 사치와 편의까지 다 누리거든요. 이런 광경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과 복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중요하다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교회, 바로 옆에 또 다른 교회를 세우기도 합니다. 또 불신자들이 황당해 합니다. 교회가 무슨 가게, 점포냐고 욕을 하지요.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만을 내세우며, 우리 교회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이 세 가지, 우리가 극복해야, 한국교회가 다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돈을 무시하는 것도 참 어렵고, 우리교회 우상을 버린다는 것도 참 어렵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참 어렵지만은, 이것 우리가 지금 고치치 않았을 때, 한국 교회는 지금 가망이 없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교회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적어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바꿔나가고, 고쳐야, 한국교회가 제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7월 7일자 오늘의 영감 - 강의 도중 마음의 떨림을 느꼈습니다. 이 대목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은 /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 / 비록 권력 같은 것은 없지만은 /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그런 사람 / 이렇게 끊어놓고 다시 읽어보니, 시와 같은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은사님을 따라, 가난하고 작은 개척 교회를 다닌 지도, 벌써 수년 째 입니다. 재능도 별로 없는데, 기타 반주를 맡았고, 설교 말씀 중에는 다만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신앙이라고는 사실 눈꼽밖에 없는 기독교인 입니다. 운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복에 복을 더한다 기복의 말 보다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소박한 기도가 더 좋습니다.

 

 살아오며 몇 차례, 남을 적극적으로 도와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느낀 바가 있습니다. 분명하게 되돌아 온 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가난할 지언정, 나눔의 가치를 꼭 실현하는 사람이고자 합니다. 맡은 바 작은 일에도 정직하고, 성실한 인생이기를 또한 원합니다. 나에 대헤서 평소 스스로의 모습 보다는 훨씬 높은 기준을 세워두었습니다. 그 기준에 닿을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이고 싶습니다. 인생, 화이팅! 절대로 슬픔에 굴하지 않기를! /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6.07.0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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