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한공주 (Han Gong-ju,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6. 7. 10. 05:38

 

 오늘도 어김없이 지인 J양의 보물지도를 펼쳐서, 걸작 영화 리스트를 살펴봅니다. 한공주를 선택했습니다. 전 잘못한게 없는데요. 포스터부터가 강렬합니다. 사전정보가 없었지만, 잘 만든 영화답게 금방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극중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슬픔과 잔잔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싸워나가는 17세 소녀 한공주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고통을 겪고 난 후,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차분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한공주, 전화옥 양에게 대해서 참 모질게 대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장면이 그렇습니다. 예컨대 산부인과를 찾은 한공주 양이, 애써 여의사를 부탁했음에도, 그런 요구는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묵살됩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만 합니다. 참아낼 만 합니다. 그 다음부터가 너무나 충격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낱낱이 고발하고 싶습니다. 한공주의 부모님은 어떻습니까, 어머님은 더이상 딸을 돌보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돈에 눈이 흐려져서, 마찬가지로 딸을 방치상태로 빠뜨립니다. 아버님의 입장에서, 사실은 이혼을 겪은 후에, 더 이상 딸을 살갑게 키우지 못했노라고 변명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방치해둔 사이에 딸은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네 자리의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1366 여성 긴급의 전화 입니다. 힘들 때는 일단 도움을 요청하고 누르시기 바랍니다.

 

 한공주처럼 최악의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제가 좀 젊은 시절에 야학에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뺏어가고, 폭력을 휘두르는 가정이었습니다. 정말 난감했습니다. 겨우 17살의 소녀가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럴 때, 우리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요청해야 합니다. 영화처럼 한국사회가 부패해 있고, 사람들이 저마다 욕망에 가득차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떻게든 사람은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전화옥 양처럼 죽음을 겪게 방치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자, 이 나쁜 시키들. 일탈을 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양아치 10대 집단이 우리를 불쾌하게 합니다. 더욱 역겨운 것은 반성하지 않는 그들과 그들의 부모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사실 어쩔 수 없이 가해자 집단에 동참하게 됐다며, 탄원서에 서명을 받아내려 합니다. 그리하여 한공주는 냉정하게 되묻습니다. 나는 사과를 받아야 되는 입장인데, 왜 자꾸 어디론가 도망쳐야 하나요? 영화에서처럼,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해 버리는 것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한공주의 꿈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25미터를 헤엄쳐 가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빛나는 노래와 연주 재능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그녀는 그렇게 소박한 꿈을 좋아했고,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싫어했는가를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삶이 정말로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수년간 무릎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리치료 등을 오래도록 받았었지요. 그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을까요, 굉장히 단순하지만 100미터 달리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였습니다. 다른 것들은 사치로 느꼈을법 합니다. 한공주가 까칠한 모습으로, 또래의 여자아이 친구들에게 한 번씩 심하게 대하긴 하지만, 사실은 그녀도 상처 없이 사랑받고 싶었던 열일곱 소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주는 소중한 친구를 한 번 잃었기 때문에, 친해지는 것이 어쩌면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게 되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힘들어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 그래서 영화에서 친구 이은희가 적극적으로 공주를 도와주려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 힘내어 버티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은희는 공주에게 다가가서, 그 쪽으로 가면 길이 없음을 알려주고, 연예계로도 연결시켜주려고 하고, 앞서서 배려해주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은희처럼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우리는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은희야 고마워.

 

 실은 우려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성을 상품처럼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성을 사고 팔지 않는가, 거기에 대해서 그 어떤 반성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관습이 학교에게까지 내려와, 심지어 청소년의 성을 상품처럼 대하는 막장 현실이 펼쳐진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수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사건 사고로 인해, 뉴스 보기 무섭다 라는 말이 참 슬픈 말입니다.

 

 어떤 말로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번 반복되었던, 수영장씬이 마음에 남네요. 공주가 25미터, 그리고 벽을 박차고 다시 왕복하며 50미터, 그렇게 수영을 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을 겪었더라도, 인생은 계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힘내어서 작은 목표라도 잘 이루어가며 오늘을 힘있게 사는 것이 결국 정답에 가장 근사치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비관하게 할지라도, 슬픔을 딛고, 열심히 살아갈 용기가 부디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기를, 그 플러스 에너지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 2016. 07.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