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러스트 앤 본 (Rust and Bone,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6. 8. 16. 23:59

 

 "의외였습니다.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해외 리뷰어의 이 짧은 두 마디가 러스트 앤 본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있음에 기뻐하게끔 안도하게끔 해줍니다. 영화 속으로 더욱 빠져들어간다면, 사람은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놀라운 의지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 나간다는 경이로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놀라움, 감탄, 아! 그래, 이거야! 이런 단어들이 차례차례 떠오릅니다. 넘어졌음에도, 부서졌음에도, 삶은 여전히 반짝인다는 사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심야에 제법 고급진 영화였습니다. (웃음)

 

 러스트 앤 본은 예전부터 한 번 보고 싶었던 영화 였는데, 기회가 잘 없다가 심야에 또 인연이 잘 닿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그것은 제 개인적 경험도 반영되어 있을겁니다. 저도 10대 시절에는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몇 년을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여주인공 스테파니의 입장에 오히려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예컨대 자꾸만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스테파니를, 마치 바깥으로 강하게 확 끌어당겨주는 존재, 알리가 있기 때문에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던 그 시절에는 "공부고 뭐고 다 싫어!"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요.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지요. 기어이 6개월 동안 특훈을 해서, 중고교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요. 특별한 운, 감사한 기적같은 인연들. 삶은 그렇게 늘 아름다운 면이 있는 것이라 지금도 생각합니다. 절망하지만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오늘의 한 걸음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 그래서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짧막하게 정리하면, 결국 -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는! 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이쯤에서 카메라를 스테파니에서, 한바탕 반대로 비춰보면, 밑바닥에 떨어진 알리가 겪는 고통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5살 아들은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경제력은 정말 완전히 바닥나서 누나 집에 빌붙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했지만, 그마저도 결코 좋은 직장은 아니고, 간신히 입에 풀칠 하는 수준.

 

 그래서 알리는 격투하는 현장에 가서, 몸으로 치고 받으면서 돈을 벌어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벌어야만 간신히 몇 달치 생활비를 누나한테 갚아나갈 수 있었던 겁니다. 알리의 지극히 현실적인 대사, "날 그런 눈으로 보지마" 참 마음에 깊이 남았던 아픈 대사였습니다. 알리는 주어진 기회들에서 조금도 도망치치 않은 채,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돈을 벌자 마자, 아들의 장난감을 꼭꼭 챙기는 마음씨. 스테파니식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가장입니다. 그는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래서 영화 마무리 장면에서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무서운 전개를 숨겨놓았을 줄이야! 하지만, 그렇게 아픔을 겪었더라도, 5살 아들은 무사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또 참으로 중요합니다. 알리는 지금 힘겹게 일어서기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챔피언 벨트를 얻어서 돈을 벌고, 계속해서 새로운 직장을 찾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이 점이 제일 중요합니다. 나는 현실과의 싸움에서 결코 주눅들거나 지지 않아! 그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제 다시, 매력적인 스테파니로 카메라를! 스테파니가 다리를 완전히 잃고서도, 다시 한 번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범고래쇼의 동작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재현해보고자 노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때, 이것이 진심임을 알게 됩니다. 알리측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은 범고래와 함께 하는 일을 사랑했잖아, 그래서 놀듯이 돈벌고!" 이쯤되면, 두 사람은 참 죽이 잘 맞는 커플입니다. 말이, 아니 영혼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놀듯이 돈 벌고, 이 말이 제일 멋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 그래서 그녀는 아무리 해도, 범고래를 미워할 수만은 없었는지 모릅니다. 감동적이게도, 계속해서 소통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불운들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그런 대사가 마치 들리는 듯 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이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테파니는 댄스장에서 알리가 바람을 피우자, 참지 못하고 대놓고 분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이런 것들이 다 사랑의 한 성질이라 생각합니다. 질투라는 격렬한 감정도, 한 사람을 온전히 갖고, 나만을 원하기를 바랄 때, 서로에게 성실하기를 원할 때, 일어나는 것이겠죠. 스테파니는 두 다리가 없어도, 온전히 사랑받기를, 당당히 사랑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당당함이 너무 명랑하고, 밝고, 활기차며, 좋습니다. 나중에 스테파니는 애칭 로보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뚜벅뚜벅 인공관절로 세상을 멋지게 마주합니다. 인간은 할 수 있다 라는 감정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다시 리뷰 맨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왜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행복과 희열을 느꼈을까요. 사회에서 별 볼일 없는 처지가 되고, 집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고, 정말로 삶이 한없이 남루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 "네 인생 별 볼일 없어" 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일이 놀라움처럼 일어납니다. 비록 산다는 건, 힘든 일도 있지만, 결코 그것만이 다가 아니야, 여기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애정 관계가 되고, 나의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잖아! 계속 되는 삶이니까, 오늘 힘들고 아파도,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기운내는 멋진 삶! 바로 그것을 담고 있습니다. 아파도 됩니다. 노력해서 아팠다면, 그 성장통이 우리를 더욱 굳세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 2016. 08. 1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