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의 하나님 (사무엘상7:7-14)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 안에 우상을 제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건 안 배워도 잘 알고 있다고요? 어떻습니까? 우리 안에 우상을 완전히 제거했습니까? 우상의 잔재를 일소했나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의 잔재를 완전히 일소했다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상을 제하고 하나님에게로 완전히 돌아왔다면,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긴다면 과연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실까 하는 것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구원요? 당연히 구원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나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우상의 잔재를 일소하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기는 민족에게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백성에게 주가 어떻게 하시는지가 여기 나와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미스바에 모여 회개의 성회를 개최한 사무엘과 이스라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미스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있다는 소식이 블레렛에게 전해 졌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한 장소에 모인 것은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지 못한  소식입니다.

 

그동안 전쟁에 져서 쥐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블레셋의 우상과 가나안의 우상들을 제하고 자기네 민족신인 여호와를 찾았다는 것은 자칫 반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사무엘이라는 사사까지 뽑았답니다. 그래서 블레셋인들은 미리 선수를 친 겁니다.

 

이스라엘의 전지파가 모인 것과 마찬가지로 블레셋도 한 개 두 개의 방백이 아니라 블레셋 전 방백 다섯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블레셋간의 거국적인 전쟁이 벌어 진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블레셋의 침공소식을 듣고는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먼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미스바 성회가 하루 이틀에 끝난 것이 아니라 제법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옛날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준비기간이 상당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블레셋은 도시국가 연합으로 왕의 명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전쟁에 돌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각 도시국가의 군주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여기에서 통과되어야 비로소 전쟁준비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보면 적어도 몇 달은 이 성회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몇 개월 정도 미스바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은 형제들과 만나서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은 이렇게 거족적으로 다 모여서 집회를 한 적이 없고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각지파별로 헤어져서 생활했기에 한민족이라는 의식이 희박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유명한 사사들, 기드온이니 에훗이니 삼손도 모든 지파를 다 다스린 것은 아니고 한 개 또는 몇 개의 지파만을 다스렸을 뿐입니다.
학자들은 사사기 때 자칫 잘못했으면 이스라엘이 지파별로 나뉘어져서 멸망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뉘어져서 덩치 큰 옆의 나라에게 각개 격파를 당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거족적인 미스바 성회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었기에 6절 끝에서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고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굳게 다짐한 백성들이지만 이들은 블레셋이 연합하여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철기를 든 선진국과 청동기를 든 후진국이 서로 붙게 되니 이는 당연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스라엘 사이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는 믿음이 없었기에 그들은 눈에 보이는 블레셋의 침공이라는 현실적인 위협 앞에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말로는 하나님만 계시면 나에게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거짓말이고 허세일 수 있습니다. 막상 눈앞에서 창칼을 든 군대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흩어져서 내 발을 의지하고 도망갈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실 이걸 이겨내야 믿음의 용사가 되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을 텐데도 이게 안됩니다.

 

그래도 기특합니다. 만일 이전 같았으면 저들이 흩어지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시 블레셋의 신들, 가나안의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다시 블레셋의 앞에 무릎꿇고 노예로서의 삶을 갈구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이들은 비록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흩어지거나 피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표현이 웃기지 않습니까? 얼마나 다급했으면 조금도 쉬지말고 계속해서 기도해 달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사실 누구에게 기도부탁을 받았다고 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 주기는 실로 어렵습니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고 쉬고 먹고 게다가 또 다른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쉬지말고 부르짖어’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자,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도우심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겁니다. 다만 자기들이 이제 금방 회개했기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의 기도는 들어 주시겠지만 죄많은 우리들의 기도까지 들어 주시겠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교류하지 않고 문제가 닥치고 나서야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려니까 이 사람들도 양심에 찔린 모양입니다. 낯짝이란게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기기를 원하는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이들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할 이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블레셋은 철기문명을 가진 군대에 특화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투훈련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어중이떠중이 들이며 겨우 청동기만을 가지고 있는 그냥 일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이 둘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대패한 것을 보면 이 전쟁의 결과가 뻔히 나옵니다.

 

지난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해서 흩어져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자 블레셋의 침공이 끝이 나고 전쟁이 끝이 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시 뭉쳐 있으면 당연히 블레셋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해서 블레셋으로 하여금 쳐들어올 핑계를 제공한 사무엘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무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난국을 극복하기위해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는 신앙을 보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세상에서 성도가 당하는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흔히 두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닥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의심하고 부인하는 경우 하나와 이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이 이 난국을 극복케 하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보이는 것, 이렇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더 기도하는 쪽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으로 떠나는 쪽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자 사무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9절에 보면 제사드리는 모습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젖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제사를 드립니다. 젖먹는 어린양은 아주 어린 새끼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생후 8일 정도된 새끼입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고 하니 우리가 이 새끼양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전혀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겸손을 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위해서는 아버지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다음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여기서 온전한 번제라는 말은 짐승을 태우되 뭔가 맛있는 부위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몽땅 태워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제물을 남겨서 제사장과 제사 드리는 이들이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나님께만 드렸다는 말입니다. 이건 이들의 마음이 그만큼 갈급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즉시 응답하소서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온전한 번제란 말에서 우리는 제사드리는 방법이 율법의 규정에 합당하게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지만 때로는 하나님 앞에 형식도 중요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는 내용을 형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형식만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상징하는 내용을 중히 여기라는 겁니다. 가령 추수할 때 다 베지 말고 조금 남겨두는 것은 단지 어떤 형식이 아니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급하다고 해서 내 멋대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법을 무시하고 내 판단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보다 내 이성을 더 우선시한다는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보다 순종을 더 중시한다고 해서 우리가 내 마음대로 하나님이 명하신 제사법을 어겨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말 급할 때 피치 못할 상황으로 형식을 갖추지 못한 제사가 드려질 때도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 하나님께서 정말 피치 못할 상황 이었는가 그리고 그 정성이나 내용이 진실한가를 주님이 직접 판단하십니다. 결코 우리가 마음대로 판단하고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절대 절명의 위기 앞에서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내가 온전하게 했사온즉 아버지여 온전하게 저희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결과는 어떻습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부르짖으매 응답하셨다로 결론이 납니다. 그래요, 우리가 부르짖으면 그는 응답하십니다.

목사님, 저는 부르짖었지만 응답밪지 못했는데요? 여러분 이 구절의 앞부분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으매”

그래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온전한 나를 드리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나라와 우리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부르짖는다면 
우리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러면 내 기도는 누가 합니까? 그건 옆에 이웃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사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는데 상대방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도 않으면 안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기도해 주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도와주는 그런 사회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하, 물론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도 됩니다. 그게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걸 이해합니다. 아마 우리 하나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기도는 우리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정욕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 기도해도 남을 짓밟고 피해를 줘야 내가 잘되는 그런 기도는 해서 안됩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요 그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주님이 들어 주시기가 매우 곤란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다른 성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양보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는 더 기뻐하셔서 더 잘 들어 주시고 더 복을 내려주십니다. 일단 우리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자, 보다 자세한 전쟁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블레셋이 이처럼 대거 몰려온 것은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왜 그들이 이처럼 승리를 낙관했는고 하니 이스라엘이 지금 회개 기도한다고 모여서 금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회로 모였으니 당연하게도 전쟁준비가 안되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전쟁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겁니다.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성회에서 누가 외적과의 전쟁을 생각하겠습니까?

 

그래서 블레셋이 이 틈을 노린 겁니다. 이스라엘의 국토가 요단강 이쪽 저쪽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므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완벽하게 멸절시키려면 이스라엘 사이에 살고 있는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이 틈을 타서 블레셋을 공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네 본거지를 지키기 위해서 멀리까지는 원정을 나갈 수 없었는데 이제 대부분의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여 있으므로 이때 기습공격을 퍼부으며 아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회개의 성회로 모여 있을 때 쳐들어 온 겁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지 상황이 더 좋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번제가 한참 진행 중입니다. 이스라엘은 완벽하게 기습을 당한 겁니다. 철저하게 무기력합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때로 이런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원치 않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하나님 때문에 불리한 처우도 감수하고 하나님 때문에 거짓말도 속아 주고 하나님 때문에 싸우지 않고 참고...
그래요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보호가 없고 오히려 방관하는 듯이 보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참을성이 없어서 미리 설레발을 쳐서 그렇지 우리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순간에 우리를 위하여 개입하십니다. 그의 때가 그가 개입하시는 타이밍이 가장 적절한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 보셨습니까? 혹시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적의 기병대가 창을 앞으로 해서 달려 듭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보병들이 긴 창을 들어서 방진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병대가 너무 거세가 달려오니까 보병들이 미리 창을 들려고 자꾸 시도를 합니다. 물론 겁쟁이들은 이미 도망가버린 다음입니다. 그래도 제법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애국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아 있습니다. 창이라도 들고 적과 맞서는 겁니다.

 

그러나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질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휘관은 계속해서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왜냐면 지휘관의 눈에는 가장 적절한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리 창을 들어 버리면 적의 기병들은 방향을 틀어 버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창병들이 측면에서 공격받게 되고 방진이 무너져서 각개 격파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적이 방향을 틀지 못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말의 속도가 있으므로 창을 보고서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돌격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보병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곧 기병대의 창에 찔릴 것처럼 보여도 가장 적절할 때까지 적이 가까이 와서 창병대에 돌진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은 겁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땅에 두발로 서 있는 보병들 앞에서 거대한 말위에 타고 긴 창을 들고 돌진하는 기병대는 무시무시합니다. 그러나 개입해야 할 적절한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려야만 가장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의 때도 그렇습니다. 미리 개입해서 적을 피해를 주고 적을 쫓아 버릴 수는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안심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지 못하면 좀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더 강렬하게, 더 조심스럽게 적이 쳐들어 올 것이고 우리는 더 큰 피해를 맛볼 겁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눈앞에서 위험한 순간인 것처럼 보여도 우리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번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블레셋이 쳐들어 온 것은 인간의 눈으로볼 때는 가장 완벽한 기습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가장 효과적으로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내가 가장 크게 승리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가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나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모두 쳐서 굴복시킬 기회입니까? 그래서 블레셋 다섯나라가 다  동원되었나요? 거꾸로 블레셋 다섯 나라를 다 굴복시킬 기회가 온 겁니다.

 

블레셋의 한두 나라만을 상대하다가 블레셋의 남은 나라가 서로 연합하거나 이민족들과 연합한다면 이스라엘 혼자서 맞서기는 곤란합니다. 이 도시 저 도시로 찾아다니면서 적을 추격하기 곤란합니다. 그래서 모여 있는 적을 치는 것이 전쟁에 승리하는 가장 지름길인 겁니다. 바로 이 때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으셨을 때 블레셋이 오해하고 착각하고 몰려오게 하신 겁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

여기 보시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손을 굳게 하셔서 저들이 싸우도록 하신게 아니라 직접 우레를 발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가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나 블레셋 사람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까지 우레의 신은 바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레는 보통 비오기 전에 잘 칩니다. 번개가 번쩍하고 우레소리가 들리고 비가 쏟아지고 그래서 농사의 신, 비의 신으로 바알을 섬기는데 바알의 손에 번개 창이 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레는 바알의 권능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우레가 블레셋사람들에게 발하여 블레셋을 패하게 하십니다. 이런 현상을 본 사람들은 드디어 우레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임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흥망성쇠도 나라의 강약도 우리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하나님에게 민족적으로 거국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점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할 때 사무엘상 2:10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어머니 한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겁니다. 물론 한나가 알고 기도한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수십년이 흐르고 사무엘이 위기에 직면하자 그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늘에서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 여호와의 대적을 치셨다는 겁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실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행동, 우리가 드린 헌신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셨다가 하나님의 때에 나타내시고 갚아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큰 손길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하나님의 개입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문제일 뿐 하나님의 역사가,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블레셋이 물러가고 사무엘이 돌을 취해서 세우고 그 돌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고 우리 안에 우상을 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면 그가 응답하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십니다.

 

우리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요? 그래요, 우리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블레셋에게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철과 청동기가 맞붙게 되면 당연하게도 청동기가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가 더 커고 위대해 보이는 겁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블레셋을 막으셨답니다. 게다가 빼앗긴 영토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모리 사람들과도 평화가 있었답니다. 사방에서 에워싼 적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적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승리를 쟁취하기 직전에 발해지는 우레는 블레셋을 충분히 어지럽혔을 것입니다. 자기네들의 신인 바알이 자기네를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바알의 권능으로 알고 있던 우레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블레셋을 치는데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종종 착각합니다. 선입견에 사롭잡혀 하나님은 이것을 하실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하나님에게 기도만해서는 안되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해! 글쎄요, 여기 사무엘서의 하나님은 그 옛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좋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기왕 그를 믿고 있는 것 좀 더 전심으로 그를 섬깁시다. 좀 더 확실하게 아버지에게 가까이 나아갑시다.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그 돌비는 사무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족속들에게 영원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돌이 될 것입니다.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다고 했지요? 무려 이스라엘이 13km나 따라가면서 블레셋을 쳤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미스바에서 벧갈아래까지 즉 이스라엘의 영토에서 블레셋의 경내까지 따라가서 쳤다는 말입니다. 대승을 거두었다는 말이고 이전에 엘리의 두 아들 때에 블레셋이 이스라엘 경내 깊숙이 들어와서 이스라엘을 친 것에 충분히 비견되는 승리입니다.

 

비무장 백성들이 철기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준비하고 쳐들어온 블레셋인들을 이긴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앞에서 우레의 신으로 알려진 바알의 자식들인 블레셋이, 자기들이 그렇게나 섬기는 바알의 권능으로 여겨진 그 우레에 맞아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더욱 굳게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우리 얘기를 한번 해볼까요? 우리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그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잘압니다. 말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실생활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이 유한한 머리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제한하고 의심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건 이렇기 때문에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될 것이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인생에 굴곡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헤아리지 못한 변수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변하는 세상에서 절대로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계략과 방해를 뚫고 하나님의 군병으로 승리의 면류관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8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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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세력에 의해서 멸망당할 뻔 했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고, 하나님을 부르짖으매, 마침내 응답하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나요?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나요? 올바른 삶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나요?

 

결국 세상은 올바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선을 나에게만 맞추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신기한 일들을 만나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루라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시간이며, 그릇입니다. 그 선물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2018. 03. 시북

 

by 시북 2018.03.06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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