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에베소서6:1-4)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선바람을 타고 세대갈등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대간 갈등이 근본원인을 따지고 보면 가정의 해체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세대고 뭐고 아예 자녀를 낳지 않고 가정도 이루지 않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혼자이기 때문에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와 다른 세대를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나홀로 족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배려해야할 부모도 자식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이건 결국은 민족의 멸망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홀로 족들이 무슨 죄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다 생각이 고 사정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바깥에서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나라들로 둘러 쌓여 있는데 우리는 안으로 멸망의 길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민족멸망이 상당히 진척되었습니다. 나만 살고 그냥 죽겠다고 하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그냥 있어도 살 수 없는 ‘헬조선’이라는 원망이 이미 상당히 많이 들려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우리 나라를 살피시옵소서, 이 민족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민족 멸망이라고 하니 너무 비관적입니까? 결혼을 하지 않고 애를 낳지 않고 하면 그게 멸망이지 별겁니까?
아마 가까운 미래에 이 한반도에 전혀 다르게 생긴, 그리고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주인노릇을 할겁니다. 올해 이미 130개의 학교가 신입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첫 번째가 바로 가정의 회복입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믿음.

 

이 중에서 가정이 계속해서 존속되고 번창하려고 하면 내 자녀들만은 결코 나를 모른다 하지 않을거라는 그 믿음이 깨지지 않고 보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인식을 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더 장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자랄 때 이런 기사를 보고 한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부모들이 늙으면 양로원으로 가서 자녀들이 한번씩 보러 온다는 이야기. 우리나라는 아닙니다만 미국에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이건 솔직히 말하면 짐승보다 못한 행동입니다. 까마귀도 부모를 봉양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인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영을 가졌다고 하면서 한갓 날짐승보다 더 추악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부모들도 자녀들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조금 황당하지만 옛애인을 만나려고 두 살짜리 아이를 집에 방치하고 나갔다 왔는데 죽어 있더라는 기사, 또 다른 부모들이 게임 때문에 애를 방치하고 그래서 죽었다는 기사, 애를 출산하고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기사....음 그만하렵니다. 제가 다 속이 매스꺼워집니다. 가정의 해체는 따지고 보면 나라뿐만 아니라 인류전체를 멸종시키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여기에 동성애는 기름을 붓는 행동이지요. 동성애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다면 그때부터 인류는 멸망하는 겁니다.

 

솔직히 우리 인간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하고 자기에게 편리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마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부터 우리에게 생긴 나쁜 지혜의 유습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그래서 더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법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핑계하지 못하도록 아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기 한절 저기 한절 식으로 자기의 말을 합리화하기 위한 성경의 인용은 자칫 하나님의 말씀마저 우리를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지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지혜가 말도 못하게 크시고 우리를 사랑하시사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정의 해체, 그리고 세대간 갈등의 와중에서도 어김없이 어버이 날을 맞을 것이고 또 어버이 날에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경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말합니다. 그만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모든 다른 계율을 지키는 것에는 보상이 없는데 유일하게 부모에 효도하는 것에는 땅에서 장수하고 잘되는 복을 보상으로 제시해 두었습니다.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살인 안했다고 복 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거 안한다고 상준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복 준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끼리 지켜야 할 여섯가지 계명을 주셨지만 효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명령을 따랐다고 해서 상을 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건 하라고 하는 계명이고 다른 다섯 가지는 모두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입니다.

 

이게 ‘아, 신기하네’하고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부모에 대한 효도를 그만큼 중요시하고 또 효도를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상까지 주는 장려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도 역시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효도하는 것 어느게 더 쉽습니까? 쉬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늘아버지에 대한 효도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제가 블로그에 이런 내용으로 설교를 올렸는데 어떤 분이 그 설교 밑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분은 불상을 조각하는 분으로 여겨지는데 아주 좋은 내용을 알았다고 글을 남겼습디다. 우리 기독교가 제사를 금지하니까 효도에 대해서도 경시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에서 효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 금지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배은망덕한, 엉덩이에 중뿔난 망아지를 키우는 곳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먼저 성경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합니다.
사실 몇몇 사본에서는 ‘주 안에서’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자녀들아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렇게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대부분의 사본에서는 ‘주 안에서’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바울의 기본 사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서도 ‘주안에서’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1.자, 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순종하라 하셨기 때문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열가지의 계명을 주셨고 그 중에서도 인간 사이에 지켜야할 계명 6가지를 주셨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이걸 하게 되면 내가 이걸 해주께 하는 식으로 강조하신 ,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주실 만큼 이 계명을 강조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부모님들은 자기의 자녀들을 위해서 젊어서 그리고 한창인 중년의 때에 말할 수 없는 헌신을 하셨고 자녀들이 장성한 반면 부모님들은 늙고 노쇠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보면 자녀들이 저절로 크게 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피와 살을 먹고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장성해지는 사이에 부모님들은 늙고 힘이 없어지고 쪼그라든 것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노쇠했다는 것은 자기 몸을 지킬 힘도, 경제력도 없어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이십만원의 연금을 가지고는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비단 경제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경제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자녀들이 자주 찾아 오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에 들기를 원하지요. 아주 어릴 때 꼬물거리던 아이들이 다 컸다고 해서 부모의 품을 떠나고 부모님은 늙고 힘이 빠져서 빈둥지만 지키고 있다면 그래서 언제 아이들이 오나하고 기다린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여하튼 지금 오죽 자녀들이 효도를 안했으면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려고 ‘불효방지법’이란 게 계류 중이겠습니까? 효도를 법으로 강제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면 이건 정말 막장입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정도로 타락한 겁니다.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제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고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염을 되살려 봅시다.

 

사실 구한말 선교사들의 글에 의하면 조선사람들의 효성이 너무 지극해서 자기도 늙어서는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습니다. 변해도 너무 심하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도만이라도 효도에 더 힘을 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냥 막 자란게 아닙니다. 우리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돌 원숭이가 아닙니다. 인간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유아기를 보냅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애를 낳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많답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것이 현재의 우리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충분히 효도 받을만 합니다.

 

양로원이나 실버타운은 자녀가 없을 때나 나와야 할 소리입니다. 자녀가 없을 때 국가가 나서서 노인들을 부양하는 거지요. 그런데 번연히 자녀가 살아 있는데 그런데에 부모님들을 모시는 것은 짐승 같은 행동입니다. 부모님을 그런데 보내놓고 잠이 옵니까? 밥이 넘어 갑니까? 자기가 부모에게 불효하면 자기의 자녀도 본을 보고 본인에게 그렇게 불효할 겁니다. 뭐 시설이 어떻고 친구들이 어떻고 하는 소리는 다 헛소리입니다. 절대로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그냥 늙어서 힘이 없을 뿐인 부모님을 그런데 모신다는건 정말 빨리 죽으라는 소리나 같습니다. 우리 그러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도, 하나님 아버지도 그렇게 괄시할 수 있습니까? 제발 우리 인간다움을 회복합시다. 지금의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경제적인 동물이지만 하나님이 처음 우리를 만드셨을 때의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받아서 살아 숨쉬는 생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하십니다.

 

다음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시고 나를 키워 주시고 보호하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여러 가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서만 부모를 순종하고 효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를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으셔서 자녀들 주시고 그를 키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효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듯이 그 부모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그 모형으로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2.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은 주 밖에서는 순종하지 말라고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란 말을 생략한 사본도 있다고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다만 주님을 믿지 않는 부모님이 우리가 주를 믿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관점에서 이 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말에도 불구하고 주를 믿는 것이 결코 부모에게 불순종하거나 불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이렇게 쓰여진 것입니다. 물론 주를 믿는 자녀가 믿지 않는 부모를 구원하기 위해 더 잘해야 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끝까지 부모님을 구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부모님에게 좋게 하고 부모에게 좋은 것을 드리고 부모님을 편하고 기쁘게 모시는 것을 효도라고 한다면 그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임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3.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다하라는 계명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하나님은 효도하면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을 주신 것을 말합니다. 흔히 장수의 복이라고 말하는데 장수는 단지 오래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살고 또 사는 재미를 느끼도록 건강하고 또 생계에 어려움이 없도록 충분한 물질을 주시고 노년에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영예롭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첫’이란 말은 첫 번째를 말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있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번역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정도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는 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겁니다.

 

이 약속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면 다음과 같은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경우가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생각나는 것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는 정도 외에는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없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은 효도에 큰 강조점을 두신 것입니다. 왜냐고요? 자신도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것처럼 육신의 부모에게 섬기기를 다하라고 하시고 그 섬김에 큰 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4.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본문은 신명기 5:16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는‘ 네가 잘되고’란 구절은 없습니다. 여기서 첨가된 것이지요. 그럼 왜 본문에서는 이 구절이 첨가되었을까요?

 

먼저 잘된다는 뜻은 잘살고 일이 잘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첨가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효도에 대한 복을 약속하셨지만 실제로 지난 예를 보면 효자들이 모두 잘되고 부자가 되고 땅을 넓힌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효자이며 양심가인 자들은 항상 더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고 성공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불효하고 막살고 이웃을 압제하며 거짓으로 모략을 꾸미는 자들이 더 형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하나님이 하신 약속하고 너무 틀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음 성경학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이런 해석을 내어 놓습니다. 이건 개개인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약속이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이를 돌로 쳐 죽이는 그런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불효자는 돌에 맞아서 빨리 죽게 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효자가 잘 사는 사회, 양심가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회가 와야만 효자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착한 자들이 억울함을 당치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의 사회, 음모가 판치는 사회, 강자존만이 유일한 법인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은 더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삶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효자들이 다 잘살고 재물이 늘어나고 오래살고 하면 좋겠는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어서 반드시 잘되거나 부자가 되거나 장수하지 못한다면 우리 하나님의 그 약속은 잘못된게 아니냐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만 잘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우리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도록 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서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이 억울함을 당치 않고 마음껏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낙원을 약속하신 것처럼 그런 사회가 이루어지면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사랑하고 효도하게 되고 또 효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이 골고루 잘살고 복을 받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책무도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노력을 높이 보시고 그런 멋진 사회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가 이미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비록 힘들고 귀찮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꼬물거리는 아이의 손과 따뜻한 몸을 만지면 막 뭔가 기쁨이 솟아 나지 않습니까? 천진난만하면서도 오로지 엄마와 아빠만이 전부인 그 아이들에게서 기쁨과 책임감과 행복을 느끼지 않습니까?

 

5.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끝으로 본문에서 바울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합니다. 먼저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한 다음 그 약속을 밝히 이른 다음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권면을 함으로써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 노엽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성경의 다른 본문 골로새서 3“21에서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아버지의 무시나 학대로 낙심하면 아이가 어떻게 제 꿈을 마음껏 펼치며 잘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아이를 잘 돌보아서 그가 가진 재능을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법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못한다고 너무 혼내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잘해지는 것은 맞지만 공부머리가 아니라 더 좋은 것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청전에 심봉사가 하는 말처럼 “하늘은 후박이 없건마는” 우리가 가치를 나누어서 미리 아이의 기를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주신 재능,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자녀의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아야만 그 귀중한 보물들이 보입니다. 잘 보살피고 개발해서 멋진 삶을 살도록 할 일입니다.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마치 노예처럼 막 다루어서 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존중하고 주의 선물로 받아 기뻐하며 귀하게 키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도로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라는 겁니다.

 

결국 이 본문에서는 가족간에 주안에서의 질서를 가지고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경구에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 진다는 거지요.

 

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광오한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닦고 집안을 안돈시킨 연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거지요. 뭐 평천하까지는 몰라도 수신제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공경하고 존중하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가족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곳입니다. 세상 모든 이가 비난한다 해도 나의 가족만은 나를 이해주고 위로하고 그리고 보호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든든한 삶의 의지처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힘들 때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받아 주고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아직도 생존해 계시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더 늦기전에 효도를 다할 일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정말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더 깨닫고 우리 가족 모두가 한 하나님을 섬기며 서로 사랑하고 돕기를 바랍니다. 부모 형제의 공궁과 도움에 대한 요청을 무시하고 나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의 건강과 그의 재산과 명예가 결코 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순종하며 그가 주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그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족이 모두 같은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가정, 일부 일처를 유지하며 백년해로할 것을 다짐하는 가정,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가정,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가정이 모여 하나님의 공의가 서는 사회가 되고 그런 사회가운데서 행복한 삶을 사는 그런 이상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간에 화목하며 사랑이 넘치는 그런 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 그리고 연로하신 권사님들 집사님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더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7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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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누리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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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늘 목사님께서는 가족에게 잘하지도 않으면서, 교회가고, 주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연로하신 부모님께 생활비나 용돈도 드리지 않으면서, 그 대신에 교회에 헌금부터 우선한다는 행동도 이상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우선 이웃, 그 중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한 후에야, 복을 챙겨 주신다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복 받기 위한 길은, 효도하자! 라고 간단히 정리될 수 있겠네요. 나만 즐겁게 잘 살기 보다는, 이웃, 가족, 친구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화이팅! / 2017. 05. 시북

 

by 시북 2017.05.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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