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329골의 전설, 프리덴라이히.

시북(허지수) 2008. 2. 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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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Friedenreich


 프리덴라이히. 브라질의 전설적 스타. 통산 1,329골을 넣어서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프리덴라이히의 시절(1909~1934)은 집계가 완벽했다고 할 수 없기에, 그의 통산 골 기록은 100% 신뢰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1892년에 태어난 프리덴라이히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브라질 최초의 유명 스타플레이어이자,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던 선수였다는 것이다. 자, 그럼 약 100년 전으로 여행을 시작해보자. 프리덴라이히, 오늘은 그의 이야기이다.

 프로필

 이름 : Arthur Friedenreich
 생년월일 : 1892년 7월 18일 (1969년 9월 6일 작고)
 신장/체중 : 불명
 포지션 : FW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16시합 7득점
 기록 : 통산 1329골 기록

 호랑이로 불리던 프리덴라이히의 이야기

 프리덴라이히, 그의 아버지는 독일인이었고,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이었다. 혼혈인이었으며, 흑인이었다.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그는 1914년 브라질 국가대표에 발탁된다. 이것이 브라질 사상 최초의 흑인대표선수의 탄생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1914년 이전까지 브라질 국가대표는 모두 백인들로만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가 축구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백인인 독일아버지 덕분이라고 한다.)

 1919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상대는 당대 세계 최고의 팀 중에 하나인 우루과이였다. 프리덴라이히는 이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브라질에 사상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안긴다. 득점왕도 차지하면서 맹활약하는 프리덴라이히와 첫 우승을 들어올린 브라질 국가대표팀. 이 승리로 인해서 브라질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은 오늘날의 축구왕국 브라질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였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우승이었다. 한편 그의 별명인 호랑이(El Tigre)도, 우루과이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기에 그런 별명까지 붙였을까, 정말 뛰어난 공격수였던 것은 분명하다.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이야기 하겠다.
 그 당시만 해도 브라질의 축구는 (아니, 다른 나라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종차별을 했다. 당시 브라질 축구계는 백인 상류사회의 전유물이었는데, 당연히 흑인 프리덴라이히는 심한 차별을 감수해야만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흑인선수들은 반칙을 당해도 심판이 못 본척 하는 불문율까지 존재했었다고 한다. 이런 차별로 인해서 그는 항상 머리에 기름을 발라 넘기고 그물망 같은걸로 머리를 덮고 있었다고 한다.

 프리덴라이히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더 출장해서 열심히 축구를 하려고 노력했으며, 17살에 프로에 데뷔해서 43살까지 현역선수로 뛴다. 통산 1,329골을 기록. 이것은 훗날 펠레가 세운 1,281골을 넘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그는 그렇게 많은 골을 넣었음에도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거의 보수를 받지 않고 축구선수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흑인 혼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지 축구가 좋았으며, 무서울 정도의 놀라운 실력으로 브라질 축구계 전설의 시초를 만들었다. 프리덴라이히의 축구 통산 최다골 기록은 지금도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

 프리덴라이히의 플레이스타일은 얼마 안 되는 문헌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별명인 호랑이가 말해주듯이, 뛰어난 스피드와 강력한 슛을 겸비한 스타일이었음은 분명하다. FIFA역시 그의 1,329골을 인정해주었다. (다만 참고기록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기록의 정확성 논란과 함께 당시는 아직 축구 초창기였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그만큼의 출중한 기록과 명성을 누린 선수는 없었다. 따라서 프리덴라이히의 재능은 파격적이라고 불릴만큼 뛰어났다는 것이 기록에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전부이다.
 
 또한 프리덴라이히가 높은 평가를 받는 점은 브라질 축구계의 인종차별을 무너뜨려 갔다는 것에 있다. 처음에는 심한 차별도 많이 받았지만, 실력 하나로 그는 팀에게 인정받는 에이스가 되었으며, 더욱이 이로 인해서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축구가 서민들에게, 즉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어갈 수 있었다. 점차 그는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되었고, 191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때는 그가 신었던 축구화가 보석가게에 진열될 정도였다고 한다. 호랑이에 이어 황금의 다리라는 또 하나의 애칭도 얻게 된다.
 
 끝으로 프리덴라이히는 1930년 1회 월드컵에 참가할 기회가 왔음에도 38세의 고령이라는 이유로 일부러 사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후배들... 그러니까 레오니다스 (38년 3회 월드컵 득점왕), 펠레 (58년 월드컵 우승) 등의 슈퍼스타가 이후 하나 둘 배출되기 시작한다. 그는 브라질 축구신화를 한발짝 앞서서 미리 길을 닦아주었던 빛나는 슈퍼스타였으며, 펠레 등의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제대로 뛸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준 훌륭한 명선수였다. 여담으로 펠레의 아버지가 늘 이 아르뚜르 프리덴라이히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믹키님 정보도움)
 
 브라질 축구는 아마도 1919년부터 이미 월드컵 최다우승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여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앞서서 천 골을 넘게 골을 넣었으며, 인종차별을 무너뜨려 갔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가 즐거운 것임을 알려주었던 프리덴라이히 같은 명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브라질의 축구강국으로서의 위용과 저력은 식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프리덴라이히가 지금에 와서 빛나보이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