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해지는 좋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생각을 하게 만들고, 고민을 하게 만들지요. 그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좋은 영화들도 있습니다. 잡스러운 생각을 걷어내주고, 밝고 시원해서,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영화, 지인의 권유로 보게 된 영화 카모메 식당이 그러합니다. 72년생의 젊은 여성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히트작, 카모메 식당에 대해서 이야기를 남겨봅니다. (여담으로, 원래는 안경을 볼 계획이었으나, 어떤 끌림 때문에 이 영화부터 보게 되었네요.)
식당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게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기 마련이니까요, 동호회도 마찬가지겠지요. 동호회마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10년 넘게 좋은 동호회, 색다른 동호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저는 최근 길을 잃었습니다. 도대체 동호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에서 순간적으로 빛나는 섬광을 엿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하게 와닿았던 카모메 식당, 그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동호회 이야기로 서론을 열었는데, 식당도 닮은 점이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마냥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 식당을 열었다면 손님이 많고 그래서 주인이 부자가 된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돈만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잠깐의 즐거움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누리기는 힘들지요. 자, 오늘 영화의 주인공인, 식당을 새로 차린 가게 주인 사치에, 그녀는 정말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으니까요. 오마이갓.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가게에 손님이 오지 않을 때의 방법이라면 여러가지 대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전단지 홍보 등을 비롯해서, 광고를 싣는다거나,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 본다거나, 이벤트나 할인행사를 한다거나 등등. 그런데 핀란드에 새로 일식점을 차린 사치에는 이 모든 방법들을 단 하나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초조해하지도 않고, 장사가 안 되면 문닫으면 된다는 내면의 단단한 각오를 바탕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갑니다. 추구하는 것은 소박한 즐거움이었지요. 그녀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가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이 가게에서 만족하고 돌아간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시당초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서 가게를 연 것이 아닐테지요. 핀란드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가게를 열어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리만 날리고 있지만... (사실, 파리 한 마리도 못 들어옵니다만;;;)
우연히 한 명씩 가게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들은 사치코의 상냥함에 반해서, 단골 손님이 되어갑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미덕은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에 있습니다. 옆에서 위로를 건넨다면서 펑펑 울지도 않으며, 기쁨을 함께 한다며 미친듯이 웃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깔끔한 일본 음식처럼, 무덤덤해 보이면서도 필요한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식당의 주메뉴인 (그러나 인기 없는) 주먹밥처럼, 소박함 그 자체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위로가 필요할 때는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배려하는 위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이상하지요? 보통은 같이 험담하고, 그 인간이 진짜 나빴다 라고 실컷 욕하고 나면 기분이 풀린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가끔은, "내가 너의 상황에 대해서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옆에 있어만 줄께" 라는 이 따뜻하면서도 차분한, 말없는 태도가 진짜 위로일 수도 있다는 점. 놀라웠습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먼저 신나게 떠드는 법이 없습니다. 오픈 마인드를 하자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가게 주인 사치에의 대사 몇 마디가 참 인상적입니다. (약간 각색해서 정리하자면)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 사람이 결정할 일이니까, 섭섭한 날이 오더라도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괜찮아. 매일 즐거운 일상만이 계속될 수는 없는거니까"
TV화면에서는 그토록 행복하게 보이던 핀란드 사람들도 알고 보면, 갈등이 있고, 잘못도 저지르고, 슬퍼하기도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사우나에서 오래참는 것을 이벤트로 열만큼 여유로워 보이고, 선량해 보이는 핀란드 사람들도, 때로는 보드카에 만취해서 식당에 쓰러지기도 하지요. 영화는 이런 우리 모두의 어느 날에 대해서, "그래도 산다는 건 괜찮아" 라고 정중하면서도 밝은 톤으로 속삭이고 있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실 특별히 엄청난 내용은 전혀 없고, 앞뒤의 배경설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핀란드의 어떤 풍경과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고마운 통찰을 얻었습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통찰입니다. 손님이 적게 와도 괜찮으며,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으며, 그저 조금씩 서로의 생각들을 나눠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즉 정리하자면, "욕심 없이 해나가도 괜찮아" 입니다.
리뷰를 마치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라고 써놓으면 좋겠네요. 행복은 일상 속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기, 바로 곁에 있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언제나 어딘가에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아서, 찾고 또 찾고,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느슨해지면, 안주할 것 같아서,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여 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해줄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게 뭐야? 그것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괜찮은거야" 라고 말합니다.
곧바로 현실을 생각한다면, 매일의 고단한 밥벌이가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힌트만은 분명합니다.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별로 나쁜 게 아니구나. 성공 없이 살아간다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충분히 찾을 수도 있구나. 다른 세계를 꿈꾸며, 목표와 성취에 목을 매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포근했던 영화 카모메 식당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성스러우면서도 조바심 없이 느슨한 사치에의 태도는 행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지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결론을 지으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계획하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잘하고 누릴 수는 없겠지요. 주어진 것을 즐겁게 해나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슬픈 일은 시간이 흘러 지나가기 마련이고, 지금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할테니까요.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