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의 열연이 돋보이는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입니다. 검은, 어두운, 우울한 등이 어울리는 암흑가를 그리는 영화지요. 그러다보니 주로 남자의 이야기로도 묘사되기도 합니다. 주먹과 싸움이 등장하고, 그들만의 룰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제목은 참 미스터리 합니다. 느와르 영화의 제목이 달콤한 인생이라니! 달콤한 장면은 거의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서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가 남들보다 많이 해왔다고 자부(?)하는 것 중 하나는 약을 먹어본 경험입니다. 저는 20대 초반까지 거의 약을 달고 다녔고, 안 먹어본 약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릴 때는 병으로 인해서, 하루에 스무알이 넘게 억지로 먹곤 했었지요. (약 많이 먹은 덕분에 저는 위장이 굉장히 약합니다 -_-;;;) 여하튼, 보통은 약맛이 없거나, 씁쓸하거나, 삼키기가 어렵거나 뭐 그렇습니다. 그 때 등장하는 것이 사탕 하나지요.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처럼 작은 사탕 하나의 달콤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으로 떠나봅시다.
주인공 선우는 잘 나가는 조직의 에이스 입니다. 맡은 바 임무를 깔끔하게 해내고, 실력까지 출중하기 때문에, 보스 강 사장의 마음에 꼭 들게 되었습니다. 곧 두 사람은 친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강 사장은 믿을 놈 하나 없는 이 바닥에서도, 선우를 신뢰하며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깁니다. 보스의 애인을 감시하고 파악하라는 임무입니다. 이 정도면 선우는 이제 보스의 후계자로 점찍어도 될만큼 믿음직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렇게 순항하던 선우는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끝까지 추락하는 놀라운 반전이 펼쳐집니다. 순식간에 조직에서 없어져야 할 인간으로 찍히고, 거대한 조직의 적이 되고 맙니다. 선우는 너무 억울합니다. 대체 왜 이런건지. 선우의 명대사가 귓가에 울립니다. "말해봐요. 말해봐요. 왜?" 선우는 보스의 애인을 탐내지도 않았으며, 최선의 길을 선택하고자 노력했으며,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아마 이 표현이 어울리겠지요. "그 순간을 희망없이 사랑했던 죄" 선우는 보스의 애인을 지켜보던 달콤한 그 순간을 사랑했기에, 이루어 질 수 없는 그 순간이 슬픔이며,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선우를 벼랑 끝으로 밀어서 떨어뜨리고, 끝까지 찾아가서, 묻어버리고자 했던, 보스의 이유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대사입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아니, 이게 무슨 모욕감이란 말인가요!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그렇다 치고, 조직의 특성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면 좋겠지요.
조직은 일부 소수를 위해서 존재하거나,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의 하수인들은 행복한 일상을 만들기가 꽤 힘들지요. 위에서 시키는 일을 따르지 않으면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고, 그렇다고 다른 조직으로 옮긴다고 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테니까요. 보스의 날카로운 말처럼, 위에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잘못이 없더라도 잘못을 만들어 내거나, 잘못했다고 누군가 책임을 떠안고 사과를 해야만, 체제가 유지되는 정말 이상한 집단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건 사고가 터지더라도, 밑에서부터 잘려나가기 시작하는 정말 기묘한 작동원리가 발동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모욕감이라는 것을 제 식대로 번역하자면, "넌 토를 달았어." 라는 것이 됩니다. 바꿔 말하자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어 라는 것도 되겠고요. 아, 그럼에도 선우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합니다. 아니 그래서 나를 버리고, 묻어버렸나요! 영화는 중반부터 다시 한 번 정확히 반전되면서, 선우(이병헌)의 카리스마를 멋지게 보여줍니다. 이런 조직 다 부숴버리겠어!!! 상처의 흔적은 바꿀 수 없지만, 상처를 준 인간들의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통찰도 참 좋네요. 그는 이 순간부터, 자신이 보스가 된 것입니다.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의 엄청난 반격이 시작됩니다.
부메랑이라는 단어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멀리 던지고, 높이 던졌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속도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이러합니다. 이들은 높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행해 하고, 간혹 그 기준을 간신히 채워놓더라도, 그 채워짐이 무너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부메랑처럼 높게 날아가 스스로의 뒤통수를 그대로 내리 칠 수 있다는 것,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인간 부메랑 선우가 조직안으로 날아옵니다. 아름다운 불빛을 향해서 제 몸을 태워가며 돌진하는 나방처럼, 그를 막을 것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선우는 하나 하나 통쾌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결코 인정사정 없는 그의 모습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인정사정 없는 대우를 먼저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이에는 이"라는 고전적인 해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웃기시네요. 당신이 나에게 모욕감을 줬지요" 라고 대사를 패러디해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뭐, 말보다는 훨씬 빠른 총알이 먼저 나가지만요 :)
마지막으로 좋았던 것은 역시 달콤함이지요. 희망 없이 사랑한다는 것의 달콤함. 마치 눈사람 같다고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눈을 굴리고, 근사한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이튿날 찬란한 햇살 아래 형체 없이 녹아버린, 그 눈사람, 그 봄날의 꿈처럼, 이 사랑하던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눈사람이 영원히 우리 곁에 서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많은 날들을 씁쓸함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선우의 인생도 그러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생은 달콤한 인생일 것입니다. 작은 행복한 순간들은 많지 않더라도, 그 환한 장면들로 인해서 우리가 웃을 수 있다면, 그 역시 달콤한 인생일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가 노력해야 할, 작은 행복을 위해서! 오늘도 즐겁기를 기원합니다. 누군가 당신은 언제가 가장 달콤한 순간이었나요 라고 질문할 때, "음... 지금의 소박한 하루 하루가 정말 즐겁네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달콤함이 넘치다 못해, 눈부신 인생을 살고 있는건 아닐까요. 아, 너무 봄날의 꿈같은 이야기 입니까. 하하.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