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내용이 가득 담겨 있는 책, 김정운 교수님의 남자의 물건 입니다. 쩨쩨한 인생이 되고, 불행한 인생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는 교수님의 깔끔하고 명확한 분석이 봄바람처럼 상쾌합니다.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것은, 모두가 선택을 포기한 채, 특정한 방향으로 몰려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지금 배가 살짝 고픈 상황인데, 따라서 지금 떠오르는 재밌는 예를 들 수 있겠네요. 삼시 세끼 매일 똑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인생이 재밌을까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치도록 끔찍합니다. 다른 예로는, 술자리에서 같은 이야기 무한반복재생 중이라면, 그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는 이렇게 황당하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요?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 하고, 축구 이야기 하고, 여자 이야기 하고... 물론 여자들도 모이면 시집살이 이야기 하고, 드라마가 어떻고, 미용과 꾸미기는 어떻고... 저도 블로그 글 1/3이 축구로 도배되어 있으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만 (웃음) 여하튼,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세상이 회색으로 느껴지고, 우울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새로운 세계를 꿈꿀 자유가, 상상의 날개짓을 펼쳐볼 자유가 중요한 것입니다. 봄의 햇살이 유달리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자연을 화사한 천연색으로 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연색의 상상력입니다!
저자 : 김정운 /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간 : 2012년 02월 07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336쪽
자, 이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들을 살펴볼 시간입니다. 남자의 물건을 가지자! 내가 맘에 드는 선택을 하자! 어때요, 너무나 간단하지요. 윤광중의 모자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모자가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굳이 "나 어때?" 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삶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두는가, 나의 감정에 두는가, 이 작은 차이가 행복에 대한 아주 매력적인 통찰입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물론 생활하면서 필요하겠지만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결정을 했다면, 이것만으로도 훨씬 풍요롭고 여유롭게 인생이 변해가는거 아니겠어요. "내가 원해서 여기에 있는거야" 라는 말을 자주 할 수 있다면, 맑고 건강하며 즐거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저자 김정운 교수님도 "커피 한잔 놓고 종이 질이 아주 좋은 수첩에 만년필로 끼적거릴 때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다" 라고 고백합니다. 비슷하게 쓰자면, 저도 따뜻한 커피 카누 한 잔과 마음을 잡아주는 작업용 음악, 제멋대로 마음껏 써보는, 즐거운 손놀림으로 글쓰는 순간은 아주 신비롭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책의 짧은 문장 "삶의 마디를 만들라" 에서 영감을 계속 이어나가 봅니다. 대나무는 성장하면서 마디를 만들면서, 특유의 멋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삶의 마디가 무엇일까요? 지금 가장 떠오르는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서 저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잡았습니다. 그럼 삶의 고통의 순간을 만들라 입니까? 하하, 그렇게 가학적인 생각은 아니고요.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반듯하게 고통 없이 하루 하루 반복하다 보면, 삶의 특색이 사라지고, 무색무취로 살아가게 되는게 아닐까요? 북쪽을 향해서 끝없이 떨리고 있는 나침반의 지남철 바늘 처럼,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흔들리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훌쩍 마디를 가진 채 성장해 나가는게 아닐까요.
한 번쯤 쓰고 싶었는데,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고백을 덧붙이자면, 대략 6~7년전, 20대 중후반을 지나던 저는 영화 리뷰를 잘 써보고 싶어서 참 고민 많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안 써지는거에요. 영화와 책, 양쪽 모두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참 좋아해서, 꼭 한 번 잘 써보겠다면서 컴퓨터 앞에서 2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겨우 3줄 쓰고, 아! 나는 소질이 없구나! 라면서 자포자기했었지요. 하지만 세월이 번개처럼 흐르고, 긴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가치관의 변화를 겪고, 지금은 2시간 정도라면, 30줄 정도는 뭐라도 써보게 되었습니다. 꼼꼼한 완벽주의를 버리고, 부족해도 뭐 어때? 로 전향한 것이지요. 저는 창피하게도 그 작은 변화를 얻는데도 그렇게나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벼루에 먹을 갈 듯 삶은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결과물이 중요하다고 거의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조직은 인간에 대해서 점수를 매겨서, 숫자로 평가하고, 비교하는데 능숙하고, 결과물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어리석다고 조롱하며 가차없이 철퇴를 날립니다. 목적을 가지는 삶, 방향성을 추구하는 삶은 숭배되고, 반면에,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은 뭔가 내놓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받습니다. 그러나 정말 인생이 그렇습니까? 저는 확신합니다. 결과물이 없어도 고민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시간은 아주 의미 있는 시간들입니다. 기계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하고, 프린터는 무엇인가를 출력해 내야 가치를 인정 받겠지만, 사람은 결코 기계와 같은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어요. 벼루에 먹을 갈 때, "먹을 푼다!"라고 말한 것은 영감을 줍니다. 저도 포함해서,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숙제를 하듯, 인생을 경험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빨리 하나 둘 처리하면서, 인생의 쾌감을 경험하고 싶어서, 발걸음은 점점 바빠지고, 주말마다 경험할 수 있는 계획들을 세워보고, 그렇게 하나 둘 과제처럼 인생을 살아갑니다.
먹을 빨리 갈고 싶어서 힘을 꽉 주고 휘젓는다고 해서, 먹이 제대로 갈리지 않듯이, 과연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숙제처럼 빠르게 처리해 나가도 되는걸까요? 저는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하기도 하고, 천천히 고민해 보기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먹을 풀어가는 부드러운 인생이 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생각하는 연습, 빠른 시대에 이렇게 반대로 생각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통찰을 주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없이 (내용 정리 안 되면서) 계속 길어지기 전에, 뚝 끊으면서 마무리를 하자면, 저는 책 인터뷰에 나오는 차범근 처럼 자기가 들고 있는 패를 다 드러낼 수 있는 "정직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 진실한 것처럼 강력한 것은 없다. 짧지만, 그 울림만큼은 아주 긴 여운이 남는 문장입니다.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은 결국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사람은 자신만의 색을 천천히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묘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마치고 싶습니다. 꿈을 가지라는 사회적 압박이 거세게 유행처럼, 거의 유령처럼 휩쓸고 다니는 세계에서, 공부방에서 잠깐이나마 인연이 닿았던, 10대 소녀가, 깊은 밤에 고민하다가 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지? 라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짧고 인상적인 이야기에, 가끔씩 저는 "꿈꾸는 인생이 아릅답다.", 또는 과거에 유행했던, "야망을 가져라" 식의 이야기들이 혹시 타인에 대한 폭력인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먹을 가는 느린 행동, 대나무의 성장마디를 생각해 봅니다.
배우 안성기는 말합니다. "상이 중요한가? 기본이 중요하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지." 저는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꿈이 중요한가? 이 순간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열심히 살아가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꿈도 좋지만,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저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네가 잘못된 게 아냐,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괴로워 말고, 하루 하루 재밌는 순간을 만들면서 살아가다보면, 길은 어떻게든 선택하고, 찾아지는 거 아니겠어." 짧게 요약하면, "지금 꿈이 안 보여도 괜찮아" 입니다. 밤거리를 두 시간 정도 오손도손 산책하고 나면, 꿈보다 사람이며, 내일보다 오늘이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 조용히 다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천천히 오늘을 음미하는 사람이 되기를, 천천히 두 손 모아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속에서 길을 천천히 찾아보기를. 음, 오늘은 꽤 마음에 드는 리뷰입니다 :) 솔직히 글 못 쓸때가 많지만, 그래도 자학 보다는 자뻑 리뷰도 가끔 필요할테니까요. 브라보 투데이! 오늘을 기뻐하며.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