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How To Lose A Guy In 10 Days, 200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2. 12:14

 제목 한 번, 화려하면서도 길군요. 강의 하면, 보통 얻고 성취하고 잘되는 것을 다룰 때가 월등하게 많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면, 사색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깨달음을 향해서 나갈 때도 있겠고요. 그런데 이게 뭐란 말입니까. 10일 안에 차이는 법이라니! 그 제목의 가벼움 만큼이나, 명랑하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입니다. 자, 우리 솔직히 이야기 해봅시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스토리 라인이 시작부터 그려지지 않을까요? 저렇게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잘 되는거 아냐~

 

 이 영화가 재밌고, 한편으로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뻔한 이야기 임에도, 그 속에서 생각해 볼게 있고, 감동적인 게 있으며, 빵빵 웃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난데없이 조금 진지하게 들어가본다면, 결국 사람의 인연이 닿아 있으면, 아무리 떨어지고 싶어도, 결국 또 만나게 된다는 낭만이라고도 할까요. 여하튼 장단점은 분명합니다. 장점이라면, 전개방법이 지루하지 않다보니, 몰입감이 좋고, 단점이라면, 거의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엔딩이라 하겠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주인공 예쁜 앤디양의 10일 간의 진상쇼를 살펴봅시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신보라양이 개그프로그램에서 열연 중인 한 장면이 생각나더군요. 식당에서 멀쩡하게 밥먹다가 갑자기 하는 말 "우리 헤어져!"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객과 시청자들 웃음이 계속 빵터지는 이유는, 상황이 전혀 터무니 없기 때문입니다. 물을 담는 작은 물통을 보면서, 폭탄이니까 당장 피해! 혹은 전화가 걸려왔는데, 이름을 대지 않으면 넌 해고! 라고 말하는 상황이 개그로 느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평소와는 너무 다르게 설명없이 이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아무리 사람이 예뻐도, 밉게 느껴지지 않겠어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놀라운 것은 얼굴도 잘생긴 벤자민의 엄청난 인내심과 차분함 입니다. 남자의 매력은 바다 같이 넓은 마음에서 나온다 라는 유치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달콤한 말이 있는데, 벤자민의 이해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벤자민은 알렉스로 빙의(?)해서, 맛있게 요리를 대접해서 제공하는데도, 정작 진상짓을 작정한 그녀는 조금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벤자민은 화분을 엎는 대신에, 계속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봐, 잘생긴 얼굴에 그렇게 근사하면 반칙이잖소! 앤디양도 속으로는 내심 놀랐을 겁니다. "이 남자, 진심 왜 이러는거임?"

 

 약한 공격으로도 좀처럼 차이지 않자, 앤디는 날이 갈수록, 점점 수위를 높여갑니다. 남자의 자신감을 확 죽여보기도 하고, 전화를 계속 걸어서 집착하기도 하며, 남자들이 노는 친목모임에 가서 한바탕 난장판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차일 가능성 99%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이쯤되면 선량한(?) 벤자민이 상당히 불쌍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녀에게 단지 잘해줬을 뿐인데, 그녀가 행동으로 내뱉는 말은 "우리 헤어져!" 입니다.

 

 티격태격 재밌게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결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은, 함께 벤자민네 집으로 놀러갔을 때 입니다. "아니 이렇게 멋진 모습도 가진 사람이었어?" 바람둥이에 고단수인줄 알았던 벤자민은, 알고보니, 집에 한번도 걸프렌드를 데려오지 않았던 깨끗한 과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흠잡을 데 없는 근사한 청년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앤디는 더욱 웃긴데, 카드놀이의 절대고수 벤자민을 가볍게 꺾어주는 초고단수 실력을 보여줍니다. 하기야 대학원까지 공부를 마친데다가, 정치와 환경을 논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영민함이 어디 가겠어요. 하하. 서로의 매력에 더욱 반해버리는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순식간에 10일이라는 시간이 끝나버리고, 두 사람은 이제 진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가, 저는 오히려 참 좋았습니다. 진실 앞에서 둘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선 벤자민은 지금 너무 황당하고 억울합니다. 앤디가 기사를 쓰기 위해서, 자신을 10일간 갖고 놀았다는 것에 분노가 차오릅니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이용당할 때, 거의 "모욕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이제 더욱 불쌍해 지는 것은 앤디양 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잃었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첫째로, 그녀는 진심으로 좋아하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상처입고, 한 번 떠나버린 남자의 마음이 쉽게 돌아올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그 10일간의 사랑은 진심이었다고, 잡지에다가 그것도 실명으로 싣습니다. 현실감 넘치는 기사라며, 앤디는 회사에서 아주 칭찬을 듣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정치와 환경 등 재미없는 기사는 앞으로도 싣지 못합니다. 그렇게 앤디는 남자와 꿈(글쓰기)을 동시에 잃어버립니다.

 

 자, 이제 백마탄 왕자님이 출현할 시간입니다! 아 외모는 언뜻 왕자 같은데, 백마 대신에, 오토바이라는 게 조금 다르네요 (웃음) 벤자민도 여자의 진심을 알게 되자,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런 세세한 대목들이 참 좋지요.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가면을 벗은 실제의 앤디는 어떤 모습입니까. (카드잘하는) 똑똑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가에, 진심을 고백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여성이니까요. 벤자민은 미친듯이 그녀를 향해 달려갑니다.

 

 게다가 중요한 점은, 이렇게 두 사람의 진심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절대로 이 영화는 당신은 C등급이군요 같은 괴상한 소리가 없습니다. 존재 자체로, 당신은 내게 선물이에요 라는 낭만 그 자체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했다지만,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군요 라는 깨끗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참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의 명작으로 불리는거 아니겠어요.

 

 이제 결론. 연애비법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how to 식의 요령들은, 심하게 말하면, 이렇게 패러디 할 수 있습니다. 앞집 강아지가 누가 들어오길래 크게 짖었는데, 그걸 보고 주인에게 칭찬과 예쁨을 받자, 옆에 있던 강아지도 일단 따라서 짖고 보는 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또 그 옆집의 친구 강아지도 또 짖고... 쉽게 말하면, 어떤 잘 통하는 방법보다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맞춰보고자 노력하고, 행동들을 이해해 보려는 따뜻한 인내심과 배려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잔인한 이야기지만, 좋은 옷과 좋은 향수로 유혹한 사람은, 그 외면의 껍데기가 사라지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겠어요. 있는 그대로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쩌면 낭만이고 때로는 헛소리처럼 들릴지라도, 부모된 자가 아이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해서 버리지 않듯이, 근사한 사랑이란, 그 사람의 결점이 있어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벤자민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멀리 떠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직장이야 또 구하면 되지요. 나와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면서 재밌게 살아봐요." 사랑받으면서 산다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