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73 하얀 펠레로 불린 축구전설, 지쿠(지코)

시북(허지수) 2020. 6. 14. 13:28

 

 하얀 펠레로 불리는 지쿠. (지코라고도 합니다.) 펠레와 가린샤만큼 사랑받는 브라질의 슈퍼스타, 73번째 업데이트를 준비했습니다. 초안은 2008년에 작성되었으며, 동영상을 갱신하였습니다.

 

 프로필

 

 이름 : 본명 Arthur Antunes Coimbra (애칭인 Zico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펠레와 마찬가지죠.)
 생년월일 : 1953년 3월 3일
 신장/체중 : 172cm / 72kg
 포지션 : MF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88시합 66득점 (71시합 48 득점으로 정정)
 수상 : 1977,1981,1982년 남미최우수선수상 수상

 

 하얀 펠레, 지쿠의 이야기

 

 지쿠는 브라질스타일로 부를 수 있는 발군의 테크니션입니다. 슈팅, 드리블, 패스 삼박자에 능한 선수이자 80년대 대표적인 10번 에이스 선수였지요. 특히 패스는 일품인데 긴 패스, 짧은 패스 모두 정확도가 당대 세계최고수준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프리킥도 매우 잘 찼으며, 공격수를 능가하는 득점력을 갖춘 선수입니다. 지쿠는 공격형 미드필더이면서도 섀도우스트라이커에도 가까운 선수입니다. 득점력도 굉장했지요. 국가대표 88시합에 66득점이라니, 그것도 미드필더가 말입니다. 어시스트도 탁월했습니다. 한마디로 지쿠는 탁월한 패스를 포함해 공격력 하나는 끝내주는 에이스 미드필더 였습니다. 또한 계획적인 훈련으로 인해서 강인한 육체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지쿠는 스스로 그런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테크닉은 나보다 호나우지뉴 쪽이 더 낫다. 그러나 승리를 만드는 플레이는 내가 한 수 위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발언의 취지는 지쿠의 스타일은 개인기가 아닌 팀플레이를 중시한다는 의미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마라도나, 호나우지뉴(호나우딩요), 호나우두 등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절정의 테크닉을 살린 개인기로 골을 직접 노리는 것 보다는, 지쿠는 자기팀을 살릴 수 있는 플레이를 선택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 점에서는 펠레와도 비슷하군요. 지쿠의 스타일은 적의 약점을 간파해서 정확한 패스를 찔러넣는다거나, 경기장과 팀 전체를 활용하는 탁월한 전술안, 득점을 만들어 내는 훌륭한 움직임 등이 큰 특징입니다.

 

 현역 시절에는 하얀 펠레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만큼 지쿠의 플레이는 빛나고 화려했습니다.

 일본대표감독을 맡는 등 일본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일본 현지에서는 비약적으로 일본축구의 수준을 올려주었다고 평가하며 지쿠를 축구의 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일본에서는 지코라고 부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브라질의 스타라고 한다면 지쿠보다는 오히려 카카나 호나우두가 훨씬 더 와닿는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고국 브라질이나 해외에서의 지쿠의 인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브라질에서 2003년에 최근 30년동안 가장 빛났던 선수가 누구냐고 투표를 했는데, 지쿠는 2위를 차지한 슈퍼스타 호나우두를 더블스코어의 큰 차이로 제치며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해외에서의 지쿠의 지명도와 유명성은 정말 장난이 아닌데,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일본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시절에, 지쿠 감독은 팀을 이끌고 영국으로 친선시합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스탭이 머물러 있는 대기실에 정장을 입고 한 선수가 찾아옵니다. 바로 데이비드 베컴이었습니다. "어릴 적 영웅이었습니다." 베컴은 이러한 이유로 축구계의 대선배스타 지쿠를 찾아왔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현재의 많은 스타들이 지쿠를 존경하며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터키에서도 일약 대스타가 되어 있습니다. 페네르바체의 감독으로 임명되고 불과 1년만에 페네르바체를 리그우승으로 이끌었으며, 팀 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이끌어 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는 강호 세비야를 누르고 8강전까지 올라갔습니다. 최근 페네르바체는 터키에서 평균관중이 가장 많은 팀이 되었으며, 현지 서포터들은 지쿠의 본명인 Arthur를 넣어서, 아서왕이라는 별명으로 지쿠감독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지쿠는 음악도 좋아해서, 지인들의 앨범제작에 직접 코러스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차남은 브라질의 유명가수이기도 하지요. 아들이 가수로 성공한 것을 보니 지쿠도 역시 음악에 재능이 있긴 있었나봅니다 (웃음) 자, 그럼 지쿠의 선수시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1967년 14살의 나이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문팀 플라멩고 유소년팀에 입단합니다. 입단 당시에는 테크닉은 좋았지만, 몸이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라깽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쿠라는 이름의 의미도 말라깽이라고 하네요. 이 마른 지쿠를 보고 플라멩고팀의 스탭들과 육체 강화 계획을 세우고 이 때부터 치밀하게 몸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체계적인 훈련과 관리에 힘입어서 말라깽이 지쿠는 후에 사이보그 라고 불리게 될 정도로 강인한 몸을 가지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 말 있잖아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말. 지쿠도 이러한 피땀서린 훈련으로 인해서 테크닉과 피지컬이 겸비된 굉장한 선수로 커갑니다. 유소년팀에서 116경기에 출장하면서 무려 81골을 몰아치는 천재신동이 되버린 지쿠. 18살이 되어, 드디어 플라멩고 성인 톱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플라멩고에서 10년이상 활동하면서, 브라질 전국선수권을 4차례나 우승시키는 등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칩니다. 특기인 정확한 패스와 깔끔한 골결정력으로 필드 전체를 통솔하면서, 지쿠는 플라멩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플라멩고에서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지쿠를 꼽을 정도이니, 그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지요.

 

 한편 세리에 A 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1983년에 우디네세로 이적해서 활동했습니다. 지쿠는 이적하자마자 19득점을 올리며 당시에 별로 이름이 없던 우디네세를 일약 강팀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해 득점왕은 그 유명한 플라티니 장군님이 차지했습니다만, 지쿠는 플라티니보다 6경기나 적게 뛰면서도 19득점을 몰아넣으며 2위를 차지했었습니다. 우디네세의 서포터들도 새로운 영웅에 환호하며 열광했지만, 이후에 계약문제가 잘 안 풀리며 복잡하게 엉키는 바람에 1985년 이후에는 세리에 A 를 떠나게 됩니다.

 

 브라질 국가대표로는 1976년부터 활동했습니다. 월드컵에도 3번이나 참가했지요. 특히 유명했던 것이 바로 1982년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황금의4인방이라고 불리는 지쿠를 포함한 전설의 명미드필더 4명이 모여서 아름답고 화려한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센스가 넘치는 패스와 화끈한 공격력 덕분에 우승후보 0순위라고 평가받았을 정도였지만, 이탈리아의 역습축구에 2-3 으로 무너지며 우승의 꿈을 아쉽게 접어야 했습니다. 86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인해서 제대로 뛸 수가 없었지요. 지쿠는 정말로 훌륭하고 뛰어났던 선수지만 큰 타이틀이 없었기에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럽무대에서 돌아와 브라질 친정팀 플라멩고에서 다시 뛰다가, 1989년 3월 27일 36살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은퇴합니다. 브라질 플라멩고팀에서 통산 731시합 508득점의 기록을 남겼으며, 이는 플라멩고팀 최다득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 팀에서 500득점을 넘겼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다시 말하지만 지쿠는 브라질 당대의 에이스였으며,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지쿠는 이듬해 1990년에는 브라질 첫 선거로 당선된 페르난두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서 스포츠담당 대신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일본의 2부리그팀의 오퍼에 승낙하면서 대신 자리를 그만두고 다시 현역으로 복귀합니다. 내일모레 마흔인 지쿠가 다시 한 번 축구화를 신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멀고 먼 일본에서 말입니다. 허허.

 

 일본의 이 약소한 2부팀을, 일약 일본의 명문구단으로 만든 것이 바로 지쿠입니다. "스미모토금속축구부"였던 이 팀에서 지쿠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며 22시합 21득점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팀명이 이듬해 1992년에 개명됩니다. 이 팀이 바로 2007년 J리그 우승팀이기도 한 명문 "가시마 앤틀러스"입니다. 지쿠는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로서 플레이도 하면서, 현장에서 지도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자 그럼 일본에서 축구의 신으로 평가받는 지쿠의 실화를 좀 더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3년 J리그 개막이 되었습니다. 지쿠는 40살이었지요. 가시마 앤틀러스는 작은 도시의 클럽이었고, 대도시에 속해 있는 베르디 가와사키, 요코하마 마리노스 같은 팀에 비해서 압도적인 불리가 예상되는 이른바 약팀으로 평가되던 팀이었습니다. 뚜껑을 열었습니다. 개막전 나고야 그란퍼스전에서 지쿠는 J리그 첫 해트트릭을 하면서 가시마 앤틀러스의 5-0 대승을 이끕니다.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가시마 앤틀러스는 전반기 우승을 차지하는 대이변을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축구계는 열광하게 되지요. 그도 그럴것이 대스타가 이끄는 시골팀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맹활약했으니까요. 세계톱클래스 선수였던 지쿠는 프라이드, 규율, 프로로서의 의식 등을 몸소 가르쳤습니다. 매스컴과 팬들은 지쿠에 대해 축구의 신이라고 극찬했지요. 1994년 40이 넘은 나이가 되었고, 현역에서 정말로 은퇴하게 됩니다. 이후 지쿠는 고국 브라질로 돌아갔고, 브라질 대표팀의 스탭으로서 98년 프랑스월드컵에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지쿠는 다시 한 번 일본축구계에 몸담게 되는데, 바로 일본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일본대표감독 사상 최고의 연봉이었다고 합니다. 그전까지 감독의 경험이 없었지만, 브라질 대표팀의 스탭, 가시마 앤틀러스 시절의 지휘경험 등에 힘입어서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일본대표팀을 이끌게 됩니다. 2004년 아시안컵 우승(나카무라슌스케 MVP)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훈련방식 덕분에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지쿠가 감독으로 거둔 첫승이 하필 2003년 4월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의 경기였습니다.

 

 2006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11승 1패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본선 진출을 확정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히딩크의 호주 대표팀과 막강한 브라질 대표팀에게 그대로 무너지면서 탈락하고 말았지요. 일본대표감독으로 통산 33승 12무 15패를 기록했습니다. 히딩크와 마찬가지로 일본대표팀을 이끌 당시에 유럽 강팀과의 친선경기를 많이 잡는 등, 일본대표팀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많이 노력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스타일을 살펴보자면, 일본대표팀을 이끌던 시기에는 자주성을 살린 플레이를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쿠가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에는 "최고령인 나도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너는 왜 이렇게 열심히 뛰지 않느냐" 라고 고함치기도 하는 등 카리스마가 일품이었지만, 대표감독을 맡으면서는 아무래도 개인을 존중하고 창의적인 축구를 기대했던게 아닐까 합니다. 다이렉트한 축구를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의 선수시절 스타일 답게 패스축구를 중시하며, 정확하고 아름다운 축구가 되는 방향으로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판단력과 기술(테크닉)을 중시하며, 한편 그것들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신체적 조건(예컨대 스피드, 밸런스 등)의 강화를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대스타 지쿠...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태리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 그리고 세계최고의 공격수였던 브라질 호나우두.
 그들은 "언젠가 지쿠와 같이 되고 싶었다." 라고 말하며, 지쿠의 플레이를 동경했었다고 합니다.
 지쿠는 그만큼 명성이 높았던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철저한 노력파였으며,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왔던 지쿠.
 그가 지금 다시 한 번 감독으로서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꿈, 그의 새로운 도전에 무한한, 그리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

 유튜브에서 지쿠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8. 03. 11. 초안작성.

 2020. 06. 14.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