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통리기무아문 설치, 추진되는 개화 정책

시북(허지수) 2013. 10. 29. 00:28

 1880년 조선은 개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개화전담기구를 설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통리기무아문 입니다. 이 밑에 12개 부처를 두어서, 청나라 및 일본과의 교류를 해가며, 개화를 어떻게 추진할지 고민하고 실행해 나갑니다. 대략 1881년 즈음에, 대표적으로 추진된 것으로는, 첫째, 군사력 강화안이 있습니다. 외국을 갔다와보니, 조선 군대가 정말 대책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식 군대를 만들게 되는데, 이른바 "별기군"을 양성 합니다. 말하자면, 별난 기계(재주)를 갖고 있는 군대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좀 별난 측면이 있었는데요. 별기군은 일본인 교관에 의해서 훈련 받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게다가 급료도 무척 빵빵하고, 옷도 멋지고~ 신식답게 꽤 근사한 군대입니다. 이러다보니, 기존에 있던 구식군인은 정리해고 대상입니다. 군사체계가 변경되는데, 5군영은 어느덧 2영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요즘말로 사단이 5개 있었는데, 3개나 없애버린 셈입니다. 생각해 볼 건, 5군영에 속했던 군인들은 돈을 받는, 그래서 생계가 달린 직업군인이란 말이지요. 이 사람들보고 "이제는 필요없으니 나가"라고 하다니, 어쩌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며, 군인 입장에선 또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나라를 근대화 추진시킨다고 해놓고, 정작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해고"라면, 그것도 참 억울한 노릇 아니겠어요.

 

 그렇게 본다면, 강화도 조약 및 개화 추진은 사실상 기층 민중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 문서에서 한 번 언급했듯이, 문을 열었더니 결과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수공업자들은 경쟁에서 밀리며 대거 몰락하고, 무제한으로 곡물이 유출되며 쌀값은 폭등하고 있지요, 게다가 먹고 살던 군인들까지 정리해고 당하고 있으니... 즉, 기층 민중들이 바라볼 땐, 개화 정책이 반갑지 않았고, 우호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걸 파악해두면 좋겠습니다.

 

 별기군 외에도, 두 번째, 또 추진되는 개화 정책은, 본격적인 외국시찰입니다. 일본에 "조사시찰단"을 파견 합니다. (옛날에는 신사유람단으로 부르기도 했고요.) 어쨌건, 이들은 일본에 가는데, 재밌게도 암행어사 형식으로 몰래 가는 모습을 취합니다. 하도 조선 내에서는 유생들이 개화 반대를 강력하게 하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보니까, 몰래 일본에 가서 다양하게 보고 오는 것이지요. 셋째로, 청나라에 사람을 보냅니다. "영선사의 파견"입니다. 근대적 무기제조술을 배우기 위해서 갔고요. 그리고 임무가 하나 더 있었으니, 연미 (미국과 연결) 하는 방법에 관하여 청나라와 논의하는 임무도 있었어요. 한편 영선사는 경비부족으로 인해, 도중에 철수하여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되고 말았거든요. (임오군란은 다음 문서부터 자세히 살펴볼께요!)

 

 개화는 어쨌거나 추진되고 있었으니 시간이 더 흘러, 1883년이 되면 근대적 시설들이 하나둘 도입되기 시작 합니다. 문자를 찍는 박문국, 화폐와 관련된 전환국, 무기를 만드는 기기창, 우편을 다루는 우정국(84년), 이렇게 근대적 시설들이 조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연미 정책도 드디어 결과를 이루어 내는데, 1882년 조.미 수호조약을 체결 하기에 이릅니다. 상당히 중요하니까 내용을 파악해 둡시다. 먼저 "거중조정" 이 들어가 있습니다. 조선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미국이 개입해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나중에 고종이 미국에 SOS를 쳤는데, 미국은 뒤통수를 치는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배울꺼에요! 지금은 그런 내용이 있었다 정도!)

 

 또한 조미수호조약에는 관세조항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최혜국대우 조항이 처음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것! (앞으로 이후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때도, 이 자동 업그레이드 되는 최혜국대우 조항이 들어가면서, 후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여하튼, 일본과 최초로 근대적 조약을 맺었다면, 서양 중에서는 미국과 가장 먼저 조약을 맺게 되었네요. 그래서 이듬해 1883년에는 보빙사 라고 해서, 최초로 서방 세계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 합니다. 개화가 추진되면서, 조선도 별기군 양성, 근대시설 도입 등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요. 그리고 피해를 보게 되는 기층민중들은 불만이 있었다! 이 정도를 이해해 두면 충분할 듯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까지 개화 관련 대목 중에서, 시험에 특히 잘 나오는 대목을 정리해보면요. 지난 문서에 있었던,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의 주장이 다르다는 점을 잘 파악해 둬야 하고요. 위정척사파의 주장들도 시험에 잘 나와요! 그리고, 다음의 흐름도 파악해 둡시다. 1880년 2차 수신사 갔다가~ 통리기무아문 만들어지고~ 개화 정책들 본격 추진되는데~ 별기군 생기고 하더라~ 이후 시간이 더 흐르면~ 각종 근대시설이 등장하더라 까지!

 

 오늘 문서는 대략 여기까지인데요. 묘하게도 정작 문을 열고 나름대로 개화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어쩐지 전혀 행복해 지는 느낌이 없어요. 오히려 별기군이니 뭐니 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까지 등장하고 있네요.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1882년 임오군란 사태! 다음 문서에서 살펴봅시다. >.<!

 

 오늘의 영감 - 롤링스톤즈의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는 없지, 하지만 노력하다 보면 때로는 찾게 돼, 필요한 것을 얻게 되지" 무엇인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꽤나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뷔리당의 당나귀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금 각색해서 써보면, 지독하게 목이 마르고, 배가 너무 고픈 당나귀가 있었어요. 왼편에는 시원한 생수가 있고, 오른편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당나귀는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무엇을 먼저 먹어야할지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아요. 그러다 끝내 굶주려 죽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걸 해결하는 재치 있는 대안으로는, 무작위의 활용이라는 방법론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거나 일단 먹으라는 겁니다. 예컨대 동전을 휙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물, 뒷면이 나오면 음식을 먹는 거지요.

 

 어쩌면 말이에요. 행동을 회피하고, 변명을 나중에 갖다붙이며 합리화 하는 태도야 말로 사실 무서운 것입니다. 조금 두렵더라도, 조금 망설여지더라도, 일단 결정하고, 노력하다보면, 필요한 것을 얻게 될꺼에요. 원하는 것을 다 얻지는 못해도, 필요한 것은 얻게 되는 인생이라, 그 정도만이라도 가게 된다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