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2 아르헨티나 레전드FW 바티스투타

시북(허지수) 2019. 11. 14. 14:10

 

 동영상 업데이트를 겸해서, 11년전의 글을 새로 예쁘게 가독성 재단장을 해봅니다. 오늘은 바티스투타 편이에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전드 공격수이자 피오렌티나의 전설. 90년대를 대표하던 에이스 중 한 명인 그의 재밌는 이야기 입니다!

 

 프로필

 

 이름 : Gabriel Omar Batistuta
 생년월일 : 1969년 2월 1일
 신장/체중 : 185cm / 73kg
 포지션 : FW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78시합 56득점 (한동안 아르헨티나 최다득점기록이었음, 이후 리오넬 메시가 갱신)

 

 피오렌티나의 영웅, 사자왕 바티스투타!

 

 아! 바티스투타의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내용이 길어질 듯 합니다. 왜냐하면 축구선수로서 그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바티스투타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티스투타는 체격이 좋았습니다. 정확히는 조금 살찐 체형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뚱뚱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해 한 덩치 했다고 보면 되겠지요. 하하. 게다가 축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당시 꼬마 바티스투타가 좋아하던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지요. 꿈이 아르헨티나 농구대표선수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일 정도로, 농구에 흠뻑 빠져있던 아이였습니다. 축구에 별 흥미가 없었지만, 글쎄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됩니다. 두둥. 그리고~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마리오 켐페스라는 걸출한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있었습니다. 그의 멋진 플레이를 보던 바티스투타는 드디어 축구에도 흥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1978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했으며, 켐페스는 대회MVP에 득점왕까지 수상했지요. 이 월드컵 대회가 어린 바티스투타에게는 대단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17살이 된 바티스투타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축구에 몸을 담게 됩니다. 농구 선수의 꿈을 간신히 접었다고 합니다. (웃음) 이 때까지만 해도 바티스투타는 학업에도 굉장히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의사가 목표였다고 하니까, 대단히 영리했던 수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목표인 의사도 접고, 어린시절의 꿈인 농구선수도 접고, 축구선수를 선택한 바티스투타. 자 그의 앞길은 어떠했을까요.

 

 18살, 이제 프로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우리 바티스투타 군은 당시에는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선수였습니다. 출장은 제법 했지만 골은 그다지 넣지 못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0년 명문 보카주니어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티스투타의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축구에 갑자기 눈을 뜬 것일까요. 하하. 또 하나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무렵 바티스투타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여하튼 1990-91시즌부터 보카 주니어스에서 맹활약을 펼칩니다.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한 스무살의 바티스투타는 국가대표로도 발탁됩니다. 이제부터 그의 본격적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스무살의 바티스투타는 1991년 칠레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합니다. 여기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합니다. 골~ 골~ 무려 6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오릅니다. 아르헨티나도 32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남미 정상에 오릅니다. 이제 더 이상 바티스투타는 동네스타가 아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월드스타반열에 오른 것이지요. 유럽에서도 당연히 그를 데려오려고 했고, 바티스투타는 1991년 세리에 A 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갑니다. 정말로 전설을...

 

 세리에 A 첫해부터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27시합 13득점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에 바티스투타는 10년 연속으로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면서 세리에 A 를 대표하는 명공격수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런데 그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실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한 바티스투타는 결승전에서 천금같은 귀중한 두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펼치면서 아르헨티나에게 다시 한 번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안깁니다. 연속 우승이었지요.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소속팀 피오렌티나는 부진을 면치 못한채 2부리그 강등을 맞이하고 맙니다. 세계적인 공격수 바티스투타가 과연 2부리그에서 뛰어야 할 것인가...

 

 팀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바티스투타는 피오렌티나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합니다. 피오렌티나의 팬들은 그의 행동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2부리그 세리에 B, 피오렌티나 팀에게는 묵묵히 열심히 뛰던 명공격수 바티스투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이 피오렌티나는 1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당당히 2부리그 1위를 차지하며 다시 세리에 A 로 승격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록과 출세보다 팀을 구하고자 했던, 피오렌티나를 사랑했던 이 남자. 너무 멋지지 않나요. 그를 두고 피렌체의 축구영웅이라고 극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1994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미국 월드컵이었지요. 잠깐 미국월드컵 이야기로 가볼까요.

 

 1994년 미국월드컵, 아르헨티나는 첫 상대 그리스를 4-0 으로 대파합니다. 바티스투타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명성과 실력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날립니다.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면서 16강에 진출합니다. 그런데 16강에서 만난 상대가 바로 돌풍의 팀 루마니아였습니다. 동유럽의 마라도나로 불리기도 하는 게오르게 하지가 이끌던 루마니아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3-2 로 침몰시켜버립니다. 파사데나의 9만 관중 앞에서 탈락해버린 아르헨티나... 그리고 91, 93년 아르헨티나를 코파 아메리카 연속우승으로 이끌었던 바티스투타의 우울한 모습. 그는 필시 매우 슬펐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는 1994년 월드컵에서 16강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1994-95시즌 바티스투타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속팀 피오렌티나의 강등고생, 월드컵에서의 뜻밖의 탈락이 그를 한층 더 강하게 해주었던 걸까요. 세리에 B 에서 다시 올라온 피오렌티나는 초반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 중심에 바티스투타가 있었습니다. 골~ 골~ 바티 골~ 골~... 개막 후, 무려 11경기 연속골을 터뜨립니다. 이것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던 세리에 A 에서도 놀라운 신기록이었지요. 바티스투타는 32시합에 출장해서 26골을 기록합니다. 바티스투타는 멋지게 득점왕을 차지했고, 피오렌티나는 승격하자마자 10위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합니다.

 

 1990년대 중반 바티스투타는 너무나 유명한 공격수였습니다. 애칭인 바티에 골을 붙여서 바티골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금발을 휘날리는 멋진 모습에 사자왕이라는 용맹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비록 아르헨티나는 3회 연속 우승은 놓쳤지만, 바티스투타는 또 득점왕에 선정됩니다.

 

 시간이 흘러 1998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바티스투타의 결승골로 당시 첫 출장한 일본에게 패배를 안깁니다. 자메이카 전에서는 바티스투타의 해트트릭이 또 나옵니다! 94년 월드컵에 이어 2 대회 연속 해트트릭 달성이지요. 아르헨티나는 무실점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합니다. 16강전은 잉글랜드와의 대혈전,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를 침몰시킵니다. 그리고 운명의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 대진 운이 없었다고 해야할까요. 우승후보 강호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의 전설 베르캄프의 마법같은 결승골에 그대로 탈락하고 맙니다. 바티스투타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이렇게 또 한 번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한편 월드컵이 끝나고, 세리에 A 1998-99시즌 피오렌티나의 바티스투타는 펄펄 납니다. 전반기 17시합에 출장해서 17골을 넣습니다. 허허.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시즌에 왼발 부상을 당해서 후반기에는 출장횟수와 경기페이스가 떨어졌고, 아쉽게 득점왕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28시합 21득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 무렵 3년 연속으로 20골 이상을 기록하는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했습니다. 이제 피오렌티나는 세리에 A 에서 이름을 날리는 강호로 자리 잡습니다. 피오렌티나의 부활, 그 중심에 바티스투타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적제안이 바티스투타에게 쏟아졌지만, 바티스투타는 오직 피오렌티나에게 충성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피오렌티나의 팬들은 너무나 바티스투타를 아끼고 사랑했고, 바티스투타 역시 피오렌티나에서 맹활약을 펼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2000년 5월 이었습니다. 파격적인 이적료 약 400억.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AS로마였습니다. 세리에 A 우승을 위해서 로마는 바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당시 재정난에 빠져있던 가난한 피오렌티나는 끝내 이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팬들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물론 바티스투타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세리에 A 우승트로피에 아무래도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도 한 사람의 축구선수이니까요.

 

 로마의 이 과감한 베팅은 성공합니다. AS로마에서도 바티스투타는 20골을 몰아 넣습니다. 4년 연속 20골 이상 득점이기도 합니다. 로마는 18년만에 감격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바티스투타 개인으로서도 세리에 A 우승트로피는 처음이었지요 :) 한편, 이 해 AS로마와 피오렌티나의 운명적인 경기도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바티스투타는 전소속팀인 피오렌티나를 울리는 멋진 결승골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숙인채 슬퍼보이던 모습은 그가 얼마나 피오렌티나를 각별히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명장면이었습니다. 우승트로피와 돈이 무엇인지... 것참. 여하튼 바티스투타는 영원히 피오렌티나의 사람이고 싶어했던 걸로 보입니다. 선수생활 마지막은 피오렌티나에서 보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바티는 피렌체를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였습니다.

 

 피오렌티나를 떠나서, AS로마에서 우승트로피를 손에 넣었던 바티스투타. 이것이 그의 빛나는 커리어의 사실상 마지막이었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의 실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수 많은 골을 양산했던 그였지만, 아무래도 사랑하던 피오렌티나를 떠나서는 그다지 축구할 맛이 안 났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리에 A 에서 언제나 두 자리 수 이상, 때로는 20득점 이상 폭발적인 득점을 올렸던 바티스투타가, 역설적이게도 이 우승 이후로 이렇게 부진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AS로마와 인테르밀란에서 활동했는데 3년 동안 줄곧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바티는 1골에 그치면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바티스투타는 국가대표도 은퇴하게 됩니다.

 

 화려했던 그의 찬란한 기록들. 국가대표 통산 56득점, 이것은 메시의 시대가 막을 열기 전까지 오랜기간 아르헨티나의 최다득점기록이었죠. 78시합 출장에 56득점이나 올렸습니다. 세리에 A 에서도 통산 318시합 출장 184골을 넣었습니다. 세리에 A 역대 TOP 10 에 들어가는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12시합 출장에 10골을 넣었습니다. 제가 확실히 쓰건대, 당대 세계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2003년, 12년간 머물렀던 세리에 A 를 떠나서 선수생활 마지막은 카타르에서 보냅니다. 한차원 높은 실력을 보여주면서 바로 카타르리그 득점왕에 등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5년 현역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폭발적인 슈팅, 절묘한 포지셔닝, 헤딩에도 능하며 프리킥도 잘차고, 수준 높은 패스까지 뛰어난 에이스 스트라이커. 루프 슛을 비롯해서 강력한 슛과 기술적인 슛으로 수 많은 골을 만들었던 시대를 풍미했던 공격수. 그는 진정 피렌체의 영웅이자,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공격수 였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충성스러웠던,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바보 같기도 한, 그러나 너무나도 멋진 전설을 쓴 남자.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바티의 영상을 덧붙입니다. 통쾌하고 멋진 바티골을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항상 애독해 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2008. 05. 16. 초안작성

 2019. 11. 14. 업데이트 및 동영상 갱신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