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보니미르 보반, 크로아티아의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였던 보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월드컵에서도, AC밀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던 불멸의 레전드 선수입니다. 멋진 보반의 이야기, 자 그럼 출발합니다. (2008년 작성된 글이며, 12년 만에 업데이트 작업입니다!)
프로필
이름 : Zvonimir Boban
생년월일 : 1968년 10월 8일
신장/체중 : 183cm / 79kg
포지션 : MF
국적 : 크로아티아 (구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 : 51시합 12득점 (구유고 8시합 1득점)
크로아티아의 영웅, 즈보니미르 보반 이야기
보반은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습니다. 냉정하고 정확한 상황판단력에 정교한 패스, 게다가 헌신적인 수비능력까지 겸비한 세계적인 선수였습니다. 90년대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상징적인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위대한 캡틴이기도 했지요. 보반의 이야기는 1990년에 있었던 유명한 에피소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반은 1985년 크로아티아팀인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실력을 자랑했던 보반이었습니다. 입단 후에도 실력이 나날이 발전해 18살이 되어서는 그 어린 나이에 주장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 클럽경기에서 역사에 남을 대사건이 일어나지요.
1990년 5월 13일이었습니다. 보반의 소속팀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와 세르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라는 이름 아래 한 지붕(국가)에서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등의 민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세르비아를 대표하는 팀 중 하나가 츠르베나 즈베즈다(=레드스타베오그라드)팀이었고,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던 팀 중 하나가 바로 보반이 있는 디나모 자그레브 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덧붙이자면 쉽게 말해 앙숙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한 판 붙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이 보다 더 피말리는 경기였지만 말입니다.)
양팀의 맞대결은 민족간의 대리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정말로 축구전쟁과 다름 없었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 드디어 일이 터집니다. 축구 경기 중에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전투경찰이 폭동을 말리고자(?) 등장해서, 크로아티아 사람들인 디나모 자그레브 서포터들을 구타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세르비아계였지요. 게다가 상대팀인 츠르베나 즈베즈다팀이 본디 경찰청 소속의 팀이었기에 완전 크로아티아의 서포터들은 두들겨 맞습니다.
야 이놈들아!!! 즈보니미르 보반은 이런 광경을 더 이상 보다 못해서, 경찰에게 그대로 날아차기를 날리면서 싸움에 가세합니다. 크로아티아 동포들이 맞고 있는 걸 보고, 캡틴 보반이 뚜껑열린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정당방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무려 9 개월의 출장정지 처분. 선수가 경찰을 때렸으니,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던 것이지요. 결국 유고국가대표였던 보반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1990년 월드컵도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반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의 행동은 정당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싸움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후회는 전혀 없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한 축구선수의 용기 있는 행동에 크게 감탄하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당시 캡틴 보반이 나몰라라 하고 폭동에서 피신했더라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반은 두들겨 맞고 있는 서포터들에게 가세해서 동포를 위해, 경찰이고 뭐고 한 판 난투를 벌였고, 이로 인해서 크로아티아에서는 그를 영웅으로 추켜세웁니다.
물론 그가 이런 애국심 하나만으로 영웅이 되었던 것은 필시 아닐 것입니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독립 후, 보반은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정신적 지주였지요. 크로아티아는 독립 후에도 축구를 상당히 잘 해나갔습니다. 국제무대 첫 참가인 유로96에서 크로아티아는 8강에 들었습니다. 보반은 포상금을 고국 크로아티아에 기부해버립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고향에도, 또한 고아의 교육비 등에도 써달라고 그 돈을 내놓았지요. 98년 월드컵에서는 더욱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립국이 된 크로아티아는 첫 출전이었지요.
그 중심에 세계레벨의 기술을 자랑하던 오늘의 주인공 10번 보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격수로는 프리메라리가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수케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9번에 있었지요. 크로아티아는 잘 찼습니다. 조별리그에서 자메이카, 일본을 꺾고 일치감치 본선행을 확정짓습니다. 16강전에서도 루마니아를 물리친 크로아티아는 8강에서 거함 독일을 3-0 으로 대파해버립니다.
사람들은 돌풍의 팀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잘 준비된 강팀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훌륭한 멤버들이 많았습니다. 4강전에서 만난팀은 홈팀 프랑스. 선제골을 넣은 것은 크로아티아의 수케르 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정말로 월드컵 첫 출전에 우승했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튀랑의 두 골로 경기를 2-1로 뒤집으면서 크로아티아에게 패배를 안겨주었고, 프랑스는 결승에서 브라질을 대파하며 우승을 차지하지요. 한편 3-4위전에서 크로아티아는 네덜란드까지 잡으면서 당당히 월드컵 3위에 빛납니다. 수케르는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역사는 골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크로아티아의 이 3위의 놀라운 성적은 캡틴 보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팀의 정신적지주이자, 크로아티아의 영웅 보반이 있었기에 크로아티아는 이렇게 놀라운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클럽팀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자랑했습니다. 잠시 살펴보고 갈까요. 앞서 언급했던 9개월 출장정지 처분 후에, 보반은 1991년 세리에A의 AC밀란으로 이적했습니다. 1년간의 임대생활을 경험하고, 이후 AC밀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세리에 A 우승 4회를 비롯해서, 1993-94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했습니다. 보반은 AC밀란의 말디니와 사비체비치를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꼽고 있군요.
2001년 보반은 스페인의 셀타비고팀으로 이적해서, 이 해 은퇴선언을 하게 됩니다. 2002년 10월 은퇴시합이 열렸습니다. 수 많은 크로아티아의 팬들이 그의 은퇴를 아쉬워 했습니다. 현역시절 보반은 "나는 100사람의 정치가도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 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100사람, 혹은 더 많은 정치가가 모이더라도 할 수 없던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으로 피폐한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고, 자랑스러운 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고아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었으며, 무너진 마을을 살리고자 먼저 나섰습니다. 그는 진정 크로아티아를 사랑하는 위대한 축구선수이자, 영웅. 빛나는 레전드였습니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보반은 공부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그레브 대학 역사학부에 들어갈 정도였고, 취미 중 하나가 독서라고 합니다. 집의 서재에 책이 수북히 쌓여있는데, 주로 에세이, 철학, 종교 관련 책들을 즐겨 읽는다고 합니다. 역시 멋진 사람이 되려면 책을 봐야 합니다. 인품이라는 것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테니까요. 참, 앞서 언급한 사비체비치, 말디니 선수외에도 크로아티아의 동료 수케르 선수와도 각별한데, 수케르와는 월드컵 때, 독일을 꺾었던 날 너무 기뻐서 같이 불타는 밤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웃음)
현역 은퇴 후에는, 축구해설가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준비한 즈보니미르 보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아, 업데이트도 이왕 했으니, 유튜브에서 골모음집도 함께 덧붙입니다.
2008. 05. 21. 초안작성.
2020. 05. 22.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