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an Dzajic
오늘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슈퍼스타의 이야기 입니다. 그의 이름은 드라간 자이치,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축구역사상 최고의 레프트윙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야기로 가봅시다.
프로필
이름 : Dragan Džajić
생년월일 : 1946년 5월 30일
신장/체중 : 174cm / 77kg
포지션 : 레프트윙 (FW, MF)
국적 : 구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인, 현 세르비아)
국가대표 : 85시합 23득점 (유고슬라비아 역대최다출장)
전설적 레프트윙, 드라간 자이치 이야기
축구에서 가장 선수가 귀한 포지션 중 하나가 바로 레프트윙, 왼쪽 날개 위치입니다. 이 위치에서 멋진 움직임을 보여주는 선수는 이제까지도 드물었고, 지금도 드물고, 아마 앞으로도 드물 것입니다. 왼쪽을 지배하는 팀이 약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드라간 자이치는 레프트윙의 전설적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드라간 자이치의 평가는, 당대 레전드들의 표현을 잠시 빌려오겠습니다. 자이치를 두고 베켄바워는 자이치 이상의 레프트윙은 없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바비 찰튼 또한 모국 잉글랜드에서 자이치의 플레이와 비견될 선수는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는 역대최고의 레프트윙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자이치는 천성적으로 재능을 타고 났지만, 항상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노력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테크닉은 절정인데, 크로스실력은 20세기 최고였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드리블 돌파도 굉장히 잘했고, 찬스를 만드는데 탁월했던 선수였습니다. 득점 감각도 뛰어나서, 스스로도 많은 골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의 평가는 2003년 모국에서 최고조에 이릅니다. 2003년 10월, 당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에서는 과거 50년 동안 최고의 축구선수가 누군지 뽑았습니다. 당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는 유명한 에이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레전드에 몰표를 줍니다. 드라간 자이치는 큰 차이로 스토이코비치를 제치면서 유고사상 최고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그는 유고의 영웅이었습니다 :)
자이치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선수였습니다. 1961년 강호 츠르베나 즈베즈다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팀에 입단합니다. 입단한 다음 해인 16살 때부터, 부동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쳐나갔고 이후에는 캡틴으로 팀을 이끌면서 수 많은 득점을 올렸고 공격을 주도합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590시합에 출장해서 287득점이라는 발군의 활약을 펼칩니다. 득점력, 어시스트, 경이적인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팀도 5번의 리그우승을 차지합니다.
1970-71시즌의 챔피언스리그도 잠깐 보고 가겠습니다. 당시 자이치의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유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습니다. 그리고 8강전까지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그런데 하필 8강전에서 자이치는 퇴장을 당하면서 4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고 맙니다. 결국 구심점을 잃은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준결승에서 그리스의 명문 파나시나이코스 팀에게 안타깝게 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아약스가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지요. 다양한 강호팀들이 맞붙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른바 빅리그 전성시대 입니다만...
이렇게 걸출했던 자이치 선수. 이 마법의 왼발을 가지고 싶어했던 명문팀은 정말 많았습니다. AC밀란이나 레알마드리드 등... 그런데 대체 왜 이런 팀들에서 못 뛰었느냐 하면,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28살까지 해외진출이 막혀있었습니다. 게다가 불운하게도 마침 28살이 될 무렵에 부상과 병역의무라는 이중고를 맞이하고 맙니다. 결국 29살 때, 프랑스팀 SC바스티아에 이적해서 2년간 선수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해외에서의 클럽활동 전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재능이 참 아깝게도 느껴집니다. 바스티아에서도 2년간 56시합 31득점이라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는데 말입니다... 이후에는 다시 모국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돌아와서 한 시즌을 보내고, 곧바로 32살이라는 이른 나이로 은퇴선언을 합니다.
이후에는 츠르베나 즈베즈다 팀의 매니저(테크니컬 디렉터)로 활약하게 됩니다. 대학에서 상업과 경제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서, 오랜기간 츠르베나 즈베즈다 팀에서 일합니다. 후에 회장까지도 역임합니다. 회장까지 오른 자이치는 2004년 건강 문제로 사임했습니다. 한편, 자이치가 스토이코비치에 각별히 애정을 쏟아서 영입한 것도 유명합니다. 자택까지 직접 방문해서 설득한 끝에 스토이코비치를 츠르베나 즈베즈다 팀으로 오게 만들었지요.
국가대표로 활약한 모습들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10대 때부터, 유고 국가대표였던 자이치 였습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있었던, 유로68 의 이야기도 상당히 유명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프랑스를 대파하고, 4강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4강에서는 자이치의 귀중한 결승골로, 66년 월드컵 우승팀에 빛나던 잉글랜드를 침몰시켜버립니다. 결승전, 이탈리아와의 경기. 자이치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던 유고는 후반에 아쉽게 동점골을 내주면서 무승부. 결국 재시합을 가져서,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탈리아의 레전드 루이지 리바에게 골을 내주면서 0-2로 패하면서 준우승.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치의 눈부신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1968년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 맨유의 전설적 레전드들인 조지베스트, 바비찰튼에 이어서 자이치는 당당히 3위를 차지합니다. 이후 전설로 남게될 베켄바워와 파케티가 4위, 5위였습니다.
자이치의 멋진 플레이는 많은 관중을 매료시켰습니다.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자이치가 뛰던 시대의 유고슬라비아는 큰 대회 때, 서독 등에게 막히면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드라간 자이치는 간판스타로 맹활약 했습니다. 국가대표 85시합 출장 기록은 구 유고슬라비아의 역대최다출장 기록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영웅이었던 드라간 자이치. 세계에서 손꼽히던 전설적 레프트윙, 그는 베켄바워와 바비찰튼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슈퍼스타였습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