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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열전

#6 그라운드의 신사 게리 리네커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9.11.08 07:20

 

 잉글랜드의 신사로 통하던 전설적 명공격수 게리 리네커, 그는 레드 카드는 물론 옐로 카드 조차 단 1 장도 받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오늘은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잉글랜드의 페어플레이어 리네커 이야기를 여섯 번째로 업데이트 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손흥민 선수의 사과 세리머니를 보고, 잘했다고 칭찬했으니까요. 잉글랜드 레전드 공격수 계보에 빠지지 않는 그 이름 리네커 한 번 같이 가봅시다!

 프로필

 이름 : Gary Winston Lineker (게리 리네커, 혹은 개리 리네커)
 생년월일 : 1960년 11월 30일
 신장/체중 : 177cm / 74kg
 포지션 : FW
 국적 : 잉글랜드
 국가대표 : 80시합 48득점
 주요수상 : 1986년 월드컵 득점왕

 그라운드의 영국신사, 명공격수 게리 리네커

 리네커는 과일가게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빵집 아들이었던 독일의 클린스만과 느낌이 비슷하군요. 1974년 어린 시절부터, 지역에 있던 레스터 시티에 입단하면서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빵에 조예가 깊었던 클린스만과 달리 리네커의 경우에는 과일에 조예가 깊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웃음) 별로 재미없는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어서 그의 축구인생을 살펴봅시다.

 게리 리네커는 1979년 프로데뷔무대를 가지게 됩니다. 그는 타고난 신동소리를 들었던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축구선수로 꾸준하게 성장해 갔고, 1981-82시즌 20대 초반이 되어서는 드디어 소속팀 레스터 시티에서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제 완연한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은 게리 리네커, 이후 5년동안 항상 20골 이상을 넣는 맹활약을 펼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1984년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혔습니다. 이제부터 게리 리네커의 본격적 전성기의 시작이 펼쳐집니다.

 1984-85시즌, 24골을 넣은 리네커는 당당히 1부리그 득점왕에 선정됩니다. 그리고 에버턴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에버턴에서는 정말 놀라운 골행진을 펼쳐나갑니다. 에버턴에서 뛰던 85-86시즌에 41시합 출장 30득점... 당연히 이번에도 득점왕은 리네커의 몫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상도 멋지게 차지합니다. 이제 게리 리네커의 이름은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공격수가 되었죠.

 그리고 1986년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이야기에 앞서서, 그럼 어떻게 게리 리네커가 이렇게 많은 골들을 기록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갈까요. 전성기시절의 리네커는 공격수에 필요한 자질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득점 감각, 위치 선정, 순발력, 그리고 냉철한 슈팅 능력까지. 체구가 크지 않은 공격수 였지만, 민첩한 움직임을 살려서 쑥쑥 골을 넣어버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서 야생고양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필드를 휘젓고 다니는 빠른 고양이가 상상되십니까, 그는 거칠게 밀어붙이면서 축구하지 않았고, 속도와 위치를 살려 영리하게 축구를 해나갔지요 :)

 자, 이제 축구로망 대망의 월드컵 이야기입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는 시작부터 포르투갈에게 깨지면서 힘겨운 상황을 맞이합니다. 며칠 뒤 열린 모로코와의 경기에서도 무승부. 1무 1패. 치욕의 무득점 탈락을 바로 눈앞에 두었습니다. 아아~ 축구종가의 자존심은 어디로 간건지. 그리고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인 폴란드와 경기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잉글랜드에게는 연속 득점왕을 자랑했던, 바로 게리 리네커가 있었지요. 전반전부터 전광석화같은 게리 리네커의 골 퍼레이드가 연이어 터집니다. 전반 34분, 이미 리네커는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있었습니다. 승부는 이미 확 기울어버렸지요. 3-0 벼랑 끝에서, 리네커의 맹활약으로 대승을 거둔 잉글랜드는 조 2위로 16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합니다.

 1986년 6월 18일. 멕시코의 초대형 경기장 아즈테카 스타디움, 약 10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의 16강전이 열렸습니다. 물오른 리네커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전반부터 리네커의 선제골이 터졌고, 후반에는 파라과이에게 찬물을 끼얹는 쐐기골까지 기록. 이번에도 3-0 대승을 거둡니다. 리네커는 이 경기에서도 두 골을 넣었고, 벌써 5골이나 넣으면서 이제는 득점왕도 노리게 됩니다.

 이 다음 8강전은 전설의 경기라고 불리는 그 경기입니다. 이번 경기장도 역시 아즈테카 스타디움, 무려 115,000명이 입장한 걸로 나와있습니다. 바로 8강전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의 전설적 경기입니다.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는 축구역사에 남을 두 골을 후반에 작렬시킵니다. 신의 손이 넣었다는 그 마라도나의 손골... 그리고 또 하나, 마라도나는 진짜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드리블 돌파로 선수들 5명을 그대로 제치면서 그림같이 마법처럼 골을 넣었지요. 주로 이 경기에서는 마라도나의 활약만을 기억하기 마련입니다만, 게리 리네커도 후반 종료 약 10분을 앞두고 추격골을 넣었습니다. 끝내 경기는 1-2 로 잉글랜드의 패배. 아르헨티나는 승승장구하며 86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대목은, 게리 리네커는 열심히 뛰었고, 월드컵에서 6골을 기록했다는 점. 그렇습니다.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은 마라도나를 제치고 게리 리네커가 단독 수상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리네커는 86-87시즌에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팀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이적 첫해부터 22골을 넣으면서 역시 리네커 다운 활약을 보여줍니다. 뭐, 당시 감독도 잉글랜드 감독인 테리 베너블스이기도 했구요. 온화한 감독 아래서, 신사 리네커는 또 한 번의 바르샤에서 신화를 써갈 법도 했지만...

 일단 테리 베나블스 감독이 1987년을 끝으로 잉글랜드 토트넘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 게리 리네커는 다음 시즌에는 6년만에 20골 이상을 실패하면서, 16골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후 1988년 드디어 바르샤에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부임해 오는데... 카리스마 절정의 요한 크루이프 감독과 잉글랜드의 신사 게리 리네커는 스타일이 별로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축구블로거 바셋님 표현을 가져오면, 미드필더 역할도 요구받는 등 멀티플레이를 팀에서 요청받았고, 일종의 불협화음이 시작되지요. 그러다보니, 88-89시즌 리네커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겨우 6골 밖에 넣지 못했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됩니다. 골잡이가 하고 싶단 말이야!

 어디로 갔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온화한 테리 베나블스 감독이 있던 토트넘이었지요. 89-90시즌 이적하자마자 게리 리네커는 멋지게 부활합니다. 게다가 떠오르던 천재악동 개스코인도 토트넘에 있었지요. 물만난 물고기처럼 눈부신 활약으로 골을 양산하던 리네커는 잉글랜드로 돌아오자마자, 24골을 넣으면서 3번째 득점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득점왕을 세 차례 차지했던 리네커였는데, 레스터시티, 에버턴, 토트넘, 모두 다른 팀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었다는 것도 흥미롭지요. 그만큼 잘 찼던 명공격수임을 반증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90년에도 월드컵에 참가해서 4골을 기록합니다. 4강전에서도 골을 넣으면서 서독과 접전을 펼쳤으나, 안타깝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 잉글랜드를 잡았던 서독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게리 리네커, 월드컵 통산 12경기 10득점. 지금까지도 잉글랜드의 월드컵 최다득점자는 게리 리네커 입니다 :)

 30대가 되어서도 리네커는 여전히 죽지 않았습니다. 91-92시즌에는 무려 리그에서 28골을 넣었고, 또 한 번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합니다. 현역 마지막까지도 매섭게 골을 넣었고, 한편으로는 절대로 카드를 받지 않았습니다. 신사적인 인품으로 인기도 대단했습니다. 리네커는 요약하자면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잉글랜드의 사랑받는 특급 공격수이자, 간판스타였습니다. 오늘날 시점으로는 레전드!

 1992년을 끝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 물러나고, 선수생활도 이제 무대를 바꾸게 됩니다. 국가대표로 통산 48골을 기록, 역대 1위 바비 찰튼의 49골보다 1골 적은 기록으로서 리네커는 역대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역 마지막은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서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부상으로 인해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한채, 1994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리그 통산 466시합 245골을 기록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TV 스포츠 프로그램의 방송 사회자도 맡았고, 해설자로도 활동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 에피소드로는 2002년에 옛 소속팀 레스터 시티가 경영위기에 빠졌을 때, 사재를 털어서 레스터 시티를 도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레스터 시티는 2008년 사상 처음으로 3부리그까지 강등되고 말았습니다. 리네커는 이 팀에서 당시 1부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 되겠군요.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게리 리네커는 역시 출중한 실력만큼이나 경기매너로 유명했던 선수였습니다. FIFA에서 최초로 페어플레이상을 리네커에게 주었을 정도였습니다. 역시 플레이는 글로 접하는 것만큼이나, 영상 한 편 보는 것도 참 좋은 듯 합니다. 유튜브에서 리네커 영상을 덧붙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06. 18. 초안작성 2019. 11. 08. 본문 가독성 수정 및 동영상 업데이트

 

댓글
  • 프로필사진 바셋 그때 크루이프가 리네커에게 미드필더를 시켰어요. 사실 리네커가 크루이프만큼 뛰어난 선수는 아닌데 크루이프는 젊을적 자기의 모습을 봤는지 멀티선수의 역할을 바랬던거죠. 문제는 아시다시피 리네커는 많이 뛰는 선수가 아니지요.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볼수는 없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하기 싫은 거 억지로하려니...토트넘에서 원톱으로 오라니까 당장 달려간거죠. 그때 퍼거슨도 엄청 찝쩍거립니다.
    리네커하면 라리가에서는 실패한 동네 챔피언 취급을 받곤 하는데 개인역량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쳤었다고 봐야지요.
    2008.06.19 00:49
  • 프로필사진 바셋 사진 몇살 때 것이죠...거참 뽀송뽀송허다.. 2008.06.19 00:54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아하! 그런 불화가 있었군요. 상세한 전말은 몰랐는데, 이렇게 알게 되니 더욱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리네커의 라리가 부적응은 역시 운과 방향이 맞지 않았던게 아닐까 싶어요. 참, 사진은 아마 예상으로 국대 뽑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진...그러니까 20대 초반~중반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워낙 동안스타일이라서 10대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웃음) 잉글랜드는 최근 수년간 간판 골잡이가 제대로 없어서 정말 안타깝네요. 축구도 역시 골이 중요하다고, 화력이 딸리면 여러모로 어렵지요. 네덜란드 복도 많지... 하하, 댓글 감사합니다. 2008.06.19 11:49 신고
  • 프로필사진 까삐단 아함.. 그런일이 있엇군요!
    몰랏던 이야기네요.ㅎㅎ
    음..보다봤는데
    최근은퇴라해야하나요..
    뉴캐슬&블랙번의 전설이신 쉬어러옹이없드라구요
    한번써보시는게 어떨까요
    공포의 SAS 라인이 떠올라서 ㅎㅎ..
    2008.06.19 22:43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시어러~ 안그래도 써볼까 말까 몇번씩 해왔던 선수인지라... 마침 잘 되었군요 :) 특유의 손 세레머니로 명성(?)이 높지요. 지금 쓰고 있는 레전드 마무리 하는대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캬 뉴캐슬... 제가 작년에 키건 감독 열심히 응원했었는데 ㅜㅜ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2008.06.20 10:46 신고
  • 프로필사진 QueenFor 워..어떻게 선수생활 동안 레드카드도 아니고 옐로카드를 한 장도 받지 않을 수가 있죠. 스트라이커라서 수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건가요 ㅋ;;;; 아무튼 정말 신사 중의 신사네요. 2008.06.20 13:28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예 FIFA에서 개인에게 특별히 상을 만들어 준게, 그 첫 번째가 바로 리네커에게 주었던 페어플레이 상이라고 하네요. 뭐, 어떻게 보면 적극적 수비가담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군요. 공격만능인 전형적 날쌘돌이 스트라이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카드 안 받은 것은 개인적인 성향도 상당했겠지요. 공격 잘하고, 카드 잘받는 선수야 많으니까요. ^^ 댓글 감사합니다. 2008.06.20 23:47 신고
  • 프로필사진 바셋 우리의 붐붐차도 분데스에서 경고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퇴장이던가...) 할렐루야!! 2008.06.21 00:13
  • 프로필사진 시북 오, 그렇군요. 그럼 차붐도 신사!!! 2008.06.21 10:19
  • 프로필사진 축구왕피구 리네커가 요새 시어러 딕슨과 함께 BBC에서 중계해주던데.. ㅎㅎ
    경기 끝나고 분석해주는게 잼있더군요
    참 온김에 RSS추가하고 갑니다~
    2008.06.20 16:32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역시 리네커! 인기 진행자 답습니다. 축구왕피구님 구독 감사합니다. 드디어 RSS구독자가 7명이나 되었습니다. 아아, 개인적으로 너무 애독하시는 몇몇 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 2008.06.20 23:48 신고
  • 프로필사진 오렌지 Good evening, Welcome to match of day today!! 미스터 르네커씨가 비비씨 매치 오브 데이 시작할때 항상 하는 인사입니다.ㅎㅎ 이피엘 기간에 저는 항상 이프로 보는데요 요약도 너무 잘해주고 가끔씩 패널들(주로 시어러, 알란..) 이랑 농담따먹기도 하는데 재밌어요.ㅋㅋ 2008.06.20 21:00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캬~ 그렇군요. 아무래도 진행 및 해설에 재능이 있기는 있는 듯 합니다. 현지에서는 지적인 이미지(귀족적인?)로 인해서 가끔 다소 비판도 받는다고는 합니다만, 역시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한 느낌입니다. 리네커 아저씨의 요약으로 매일 그 중계를 본다면, 확실히 EPL 전문가가 될지도... 재밌는 댓글 고맙습니다. 2008.06.20 23:50 신고
  • 프로필사진 정말로 Mr. nice man 이라는 별명이 있는 리니커죠.
    몇년전 BBC에서 방송한 역대 최고의 영국팀의 2톱에 리니커와 시어러가 뽑혔을만큼(설문조사) 리니커와 시어러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90년 이태리 월드컵 4강 독일과의 경기에서 리니커가 넣었던 골이 가장 인상이 깊습니다. 공격수로서의 첫터치와 균형감각의 필요성을 여지없이 보여준 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대표로 48골을 넣고 보비찰튼의 49골 기록에 다가갈수 있었던 기회를 유로92 스웨덴전에서 감독 그레함 테일러가 그를 교체함으로 잃었다는 일화가 있죠. 물론 그 경기가 리니커의 마지막 국가대표로서의 경기였기도 했구요. 물론 대중과 언론의 그의 편이었답니다. ^^;
    하여간 잘 보고 갑니다.
    2008.06.22 16:01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정말로님 안녕하세요 ^^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리네커는 국대로 막판에 다소 운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50골 정도는 거뜬히 돌파할 수 있었는데... 팬들 입장에서는 참 아쉬웠겠지요 ㅜㅜ 리네커 시어러 투 톱이라면 현역 잉글랜드 미드필더와 수비진 정도만 있어도 월드컵 우승할 것 같습니다 (웃음)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8.06.23 10:25 신고
  • 프로필사진 리네커 94년때 일본출장가서 봤는데 너무 친철합니다
    악수까지 하고 말입니다............ㅋㅋㅋㅋㅋ
    2008.07.21 16:22
  • 프로필사진 시북 오 안녕하세요 리네커님. 정말인가요? 과연 신사 답습니다. 스타들과 악수하고 사인 받은 것은 영원히 추억에 남아서 참 근사한 것 같습니다 ^^ 부럽네요. 2008.07.21 18:33
  • 프로필사진 모산도인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좋고 레드카드도 안 받고 금상첨화네요 스페인의 부트라게뇨 선수도 비슷했나봐요 잘 보고 갑니다 2014.06.15 21:45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리네커 같이 좋은 공격수 (혹은 확실한 공격수) 한 명 있다는게 얼마나 복인지...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 2014.07.01 1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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