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지인 J양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팬이었습니다. 그녀의 추천작에는 이 젊은 감독의 작품 여럿이 들어 있었고, 마미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oksusu에서 수요일날 보라고 free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화면 구성이 조금은 비좁다고(?) 생각했었는데, 클라이막스에서 막이 와이드로 열리는 대목에서는 정말 대단히 놀랐습니다. 아, 이런 기획도 가능할 줄이야! 그 상상력에 유쾌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해외평점이 높은 편이었고, 결정적으로 누군가 힌트를 주었습니다. 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함께 보면 괜찮다는 거에요.
한참 전에 보았던, 케빈에 대하여는 꽤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른바 막장 아들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루고 있었거든요. 영화 마미도 접근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착한 아들이 아닌, 나쁜 아들이 등장합니다. 엄마는 견뎌야 하고, 사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들이 잘 되기를 당연히 바라지만, 이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춘기에 ADHD까지 앓고 있는 아이는 말썽꾸러기를 넘어서 폭주기관차 같습니다. 엄마는 당장 경제적으로 밥벌이도 힘들고,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이 곳은 보호시설, 더 이상 사고뭉치 스티브를 규율로도 통제할 수 없으니, 집으로 데려가라는 것입니다. 스티브는 아마도 홧김에 불을 내서, 또래 아이에게 화상까지 입힌 상황. 보호시설에서는 구제불능 스티브 이제 아웃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래도 엄마 디안은 무척 당당하게 아들을 격려합니다. 힘든 현실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 강한 여성의 느낌을 받습니다. 스티브는 엄마가 좋다며 뽀뽀를 요구하는 어린애 같은 모습도 있네요. 철부지랄까...
집에 도착하자 마자, 스티브는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음악을 큰 소리로 틀어놓아서 산만해 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 엄마와 의사소통을 조용하게 하지 못하게 되었고, 급기야 자기 행동하나 추스르지 못하고 다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이웃에 사는 여성 카일라가 등장해 스티브에게 응급처치를 해주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후, 세 사람은 서서히 가까워져 나갑니다. 카일라가 비록 말은 좀 더듬거리지만, 과거 중고교 교사였고, 잘 웃어주는 친절한 이웃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디안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비정규 직장에서 짤려서 눈물 흘리는 모습도 잠시. 어느새 재충전을 마치고, 구인 신문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쉬운 번역이라도 해서, 생계를 책임져 가려는 모습.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카일라는, 스티브를 애써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막막했던 홈스쿨링도 기적처럼 가능해 지는가 싶었어요.
그렇게 별일 없이 세 사람이 음식을 함께 먹으며, (대학 진학이라는)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이 영화의 백미처럼 반짝입니다. 스티브가 기뻐하며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합니다. 모 다른 영화 리뷰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랭보님의 코멘트를 덧붙여 봅니다. "세상은 문제다. 사람은 조금의 광기가 필요하다. 아니면 밧줄을 끊고 자유케 될 용기가 없다." 이름이 잘 알려진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짧은 글이라 합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유를 느껴봐서 행복해진 스티브. 그런데, 안타까운 불행은 이들의 운명 앞을 덮쳐오는데...
어마무시한 금액을 갚아나가라고 우편이 날아왔습니다. 스티브가 화상을 입혔기 때문에, 책임지라는 겁니다. 패닉 상황에 빠져버린 디안은, 마음이 내키지는 않아도,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웃 변호사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 법률적인 도움은 커녕, 술만 계속 들이킵니다. 열받은 스티브가 대들자, 아이에게 한 방 먹이기도 합니다. 이 때, 디안의 선택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아이는 건들지 마라 이겁니다.
또 기억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마트씬인데요. 스티브는 이 곳에서 불현듯 자해를 시도합니다. 삶이 이토록 힘든 것이고, 사랑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무모한 선택 앞에 구급차가 달려오고,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네요. 아름다운 대사가 흘러나옵니다. 우리 여전히 사랑하지? 그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 스티브는 자기 때문에 다들 힘들어진 현실을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현실에서 도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단순하고 깊은 진실을 (비록 가끔일지라도) 각성해가며 살아가는게 좋습니다.
영화 마미는 마지막에 안타까운 반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엄마 디안의 환상이 펼쳐집니다. 아이가 병을 극복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에 성공하고, 카일라와 함께 축제를 여는 꿈만 같은 이야기를 디안이 차 안에서 펼쳐 보이거든요. 그러나, 현실은 생계, 자신의 살아남음을 위하여, 그리고 아들과 현실의 통제를 위해서, 스티브를 보호시설에 맡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좋은 이웃 카일라도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고요.
이 영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저는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렵니다. 사람에게는 좋았던 순간이 있고,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음은 당연합니다. 광기가 자꾸만 보이는 스티브도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해방감이 정말 좋다고 달려가는 씬으로 극이 마무리 됩니다. 뭐, 분명 또 갇혀버릴테지만요. 끝으로 왜 마지막에는 와이드 기법을 굳이 자제하는 쪽으로 마무리 했을까요? 이 역시도 어쩌면, 타인을 해코지 하는, 즉 경거망동에 가까운 자유로움은 아직까지 해방이 아닐테고요. 철없음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엄마 디안은 슬픔을 감당하면서까지, 아들이 보호시설에서 성숙해지기를 꿈꿨고, 그 가능성에 걸면서 하루 하루 버텨낸다고 저는 믿어보렵니다. 영화의 표현을 빌려,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므로 시설에 맡긴다는 것이 아들을 버린 것으로 곧바로 해석해 버리긴 곤란하겠지요. 저만의 감상평을 사족으로 덧붙여 봤습니다. / 2017. 03. 3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