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77 폴란드의 축구전설 - 보니에크

시북(허지수) 2020. 6. 22. 13:33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그는 폴란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레전드입니다. 82년 월드컵, 폴란드를 3위로 이끌었으며, 유벤투스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보니에크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Zbigniew Kazimierz Boniek
 생년월일 : 1956년 3월 3일
 신장/체중 : 181cm / 75kg
 포지션 : FW, MF
 국적 : 폴란드
 국가대표 : 80시합 24득점

 

 아름다운 밤... 보니에크의 눈부신 활약에 반하다!

 

 축구를 보다보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멋진 선수가 있습니다. 최근의 제게는 바조가 그러했고, 지단이 그러했으며, 메시가 그러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에 가장 인상적인 스타 중 한 명이 바로 폴란드의 레전드 보니에크 입니다. 보니에크는 못하는게 없는 선수였습니다.

 

 보니에크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슈팅능력을 자랑하는 플레이메이커이자 공격수였습니다. 패스와 드리블도 능수능란한, 한 마디로 테크닉의 달인이기도 했습니다. 유벤투스 시절의 보니에크는 미셸 플라티니와 호흡을 맞추면서 한 차원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대단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폴란드 비드고슈치에서 태어난 보니에크는 어릴 적 부터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단한 재능을 보여줍니다. 1975년 비드제프 우지라는 팀에서 본격적 프로생활을 시작해 나갑니다. 보니에크는 조금 특이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수비수로도 플레이를 해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로생활을 시작하면서 포지션을 공격수로 바꾸게 되었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그 놀라운 재능이 꽃피기 시작합니다. 1976년 스무살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였습니다.

 

 1978년 보니에크는 월드컵에 당당히 주연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1차 조별리그 폴란드는 보니에크의 맹활약(멕시코전 2골!)도 있었고, 1차 조별리그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당당히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별리그 2라운드는 상대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주최국 아르헨티나와 강호 브라질의 치열한 1위 싸움이 펼쳐졌고, 폴란드는 1승 2패로 2라운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8강 탈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시시합니까? 하하, 여하튼 78년 월드컵은 끝났고, 보니에크는 소속 팀에서는 데뷔 후 7년동안 비교적 꾸준히 활약하면서 172시합 출장 50득점을 기록합니다. 팀도 80-81시즌부터 리그 2연패를 차지하는 등 잘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82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보니에크의 멋진 활약들이 펼쳐집니다. 1차 조별리그, 폴란드는 이 시절 만만한 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1조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이번에도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합니다. 이탈리아와 같은 조였는데,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답게(?) 3무를 기록하며 간신히 다음 라운드 진출했지요.

 

 82년 월드컵 2라운드 첫 경기는 벨기에와의 경기였습니다. 보니에크의 골 퍼레이드가 터집니다. 골~ 골~ 후반에도 골~ 보니에크의 해트트릭. 3-0 벨기에를 대파합니다. 이 활약에 힘입어서 폴란드는 드디어 4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것이 있었으니, 보니에크가 경고누적으로 준결승전에 못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대목은 폴란드에게는 두고두고 너무도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경기가 펼쳐집니다. 보니에크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폴란드는 0-2 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틀 뒤에 3-4위전이 열립니다. 상대는 플라티니, 지레스, 티가나 등의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던 프랑스. 프랑스에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이번에는 폴란드에 보니에크도 있었고 만만치 않았습니다. 폴란드는 경기를 뒤집으면서 3-2 로 역전승을 거둡니다. 폴란드 3위 달성!... 보니에크의 폴란드는 82년 월드컵에서 충분히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카드가 문제였습니다. 혹자는 폴란드 대표팀을 두고 그런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예선에서는 무시무시한데... 결정적인 경기에서 약하다! 이게 간혹 묘하게 들어맞습니다. (예컨대, 유로2008에서는 예선에서 포르투갈을 제치고 조 1위를 해놓고, 정작 본선에서는 꼴찌로 짐을 싸고 말았습니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월드컵 3위를 계기로 폴란드 뿐만 아니라 이제 유럽에서도 보니에크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82년 유럽최우수선수상 투표에서 보니에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전설들인 파올로 로시, 알랭 지레스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만약이지만, 이탈리아를 잡고 폴란드가 월드컵 우승이라도 했었으면 1위의 주인공은 보니에크의 몫이었을 겁니다. 그는 그만큼 실력있는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폴란드에서도 보니에크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폴란드에서 28세 까지 해외진출이 막혀 있었지만, 보니에크는 그 실력과 명성에 힘입어 26살에 법을 넘어서면서 1982년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벤투스는 82년 장군 미셸 플라티니를 비롯해서 파올로 로시까지 영입하게 되는데... 플라티니와 보니에크는 곧바로 주전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면서 세리에를 제패하고, 유럽을 제패해 나갑니다. 보니에크는 유벤투스에 3년 동안 몸담았는데, 이 시절 플라티니와 보니에크가 이끌어 나가던 유벤투스는 획득할 수 있는 타이틀을 싹쓸었습니다. 세리에 A 리그우승, 코파이탈리아, UEFA위너스컵 등등... 1984-85시즌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는 보니에크와 플라티니의 대활약 속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합니다.

 

 결승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이끌어냈던 선수가 바로 보니에크 였습니다. 플라티니가 PK를 차 넣으면서 1-0 승리. 유벤투스의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지요. 한편, 이 결승전에서 헤이젤의 비극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축구팬들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결승전이기도 합니다. 서포터들끼리 충돌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훌리건도 수십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이 때의 충격으로 플라티니는 축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발언하고, 얼마 후 30대 초반에 축구를 그만둡니다.

 

 유벤투스 시절 보니에크의 플레이는 대단히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주말 저녁이면 펼쳐지는 보니에크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반한 유벤투스의 회장은 그를 두고 "Bello di Notte"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영어로는 "Beauty of the Night" 라는 의미인데, 아름다운 밤, 밤의 미(美) 등으로 의역할 수 있겠지요. 축구블로거로 명성을 날리고 계신 이웃 바셋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밤의 미녀 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후후. 밤마다 펼쳐지는 보니에크의 아름다운 플레이~ 캬!!! 보니에크는 유벤투스 서포터들에게도 이 애칭으로 불리면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중원의 플라티니와의 연계 플레이는 빛나는 축구예술이었다 하겠습니다.

 

 이후 1985년에는 AS로마로 이적한 후, 1988년에 현역 은퇴를 합니다. 현역 마지막까지도 보니에크는 열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86년 월드컵에서는 축구경험을 살려서 수비수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통산 월드컵 3회 참가, 국가대표로 80시합을 뛰었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서, 이탈리아의 여러 클럽에서 감독생활을 했습니다. 2002년에는 잠시 폴란드 대표감독에 취임하기도 했으나, 금방 퇴임합니다. 이후, 보니에크는 해설자로 활약했습니다.

 

 이제 보니에크의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폴란드 역대최고의 선수로 꼽히던 보니에크, 그의 아름다운 플레이를 잠깐 보고 가는건 어떨까 합니다. 유튜브 영상을 업데이트 해보았습니다. 오늘 준비된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08. 06. 24. 초안작성.

 2020. 06. 22.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