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열심히 본 지가 몇 년 안 되는 저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신작은 거액을 들여서 제작했으니, 친구와 극장에서 보기로 약속을 잡았지요. 바다와 해저까지 누비는 어드벤처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고아로 자랐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자주인공 카리나가 예쁘고 멋있고요.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하여 전설을 쫓아다니는 헨리의 이야기 역시 근사한 모험담처럼 생각되어 즐거웠네요. 정작 전설적인 해적 캡틴 잭 스패로우는 지금 매우 곤란한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금고를 털겠다는 어마무시한 계획이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하니까요.
튼튼한 은행을 노리고 잭 스패로우 일당은 최선을 다해 엄청난 건물을 끌어당기며 화려한 영화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말들의 힘찬 마력 앞에서 금고가 보관되어 있는 대저택이 들썩거리고, 딸랑딸랑 주화들이 거리에 뿌려지기 시작합니다. 간신히 해안가까지 화려하고 성공적으로 금고를 끌어왔는데, 안을 열어보니까 이게 왠걸 텅텅 비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선원들은 잭 스패로우와 결별을 선언합니다! 내가 이럴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당신과 해적질, 도둑질 하는 줄 아냐! 비정하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고! 슬픈 해적 잭 스패로우와 함께 이제 영화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전설의 해적 잭 스패로우! 한 때 그는 스페인의 엄청난 함선을 상대로도 결코 지지 않았던 패기와 총기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스페인 함선의 캡틴 살라자르는 자신의 화력만을 믿고 거세게 밀어붙였다가, 그만 저주의 지역으로 들어가서 말 그대로 좌초해 괴멸 당하고 맙니다., 거기서 영원히 햇빛 한 번 받지 못한 채 해골 병사들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을 뿐이네요. 그런데 마침내 변화가 찾아옵니다. 잭 스패로우가 자신의 나침반을 술값으로 넘기고 말았거든요. 어둠의 장막이 걷히며, 햇살을 받는 살라자르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자신의 호화(?) 유령선을 앞세워 닥치는대로 바다를 노략질 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바다의 패자로 군림하던 바르보사 함장은 지금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 척의 배를 소유하고 음악을 즐기며 자신의 삶을 만끽하고 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유령선이 등장해 자신의 소중한 배들을 집어 삼키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함장의 자존심은 굳건히 살아 있어서, 직접 살라자르와 만나서 협상을 나눕니다. 잭 스패로우 만나게 해주겠어! 그렇게 영화는 잭 스패로우와 살라자르의 복수극으로 흘러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영화는 곳곳에 유머 코드가 조금씩 들어 있어서 재치가 있습니다. 봉인 되었던 뛰어난 배, 블랙 펄이 마침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가 싶더니 물에 그대로 가라 앉아 버리는 모습은 당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잠시 뒤, 정말 웅장한 위엄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박력이 일품입니다. 그 밖에도 하늘의 별들을 길잡이 삼아서 항해를 해나가서 끝내 섬을 발견한다는 대목은, 천문학과 지식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정작 선원들은 지도를 봐도 글을 몰라서 어차피 알 수 없는 지도 라고 개그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드벤처 영화다 보니까, 정작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이 곳곳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블랙 펄의 화려한 등장, 그리고 상대역인 살라자르 함선의 해골병사들은 물위를 잽싸게 뛰어오고, 앙상한 상어까지 등장해 아군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일들은 저주를 푸는 열쇠가 되는 "삼지창" 이야기가 분명히 사실일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며, 후반부터는 삼지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갑니다. 바다는 갈라지고, 해저 속에서 잭 스패로우는 온갖 고생을 다 하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지요. 카리나와 헨리! 삼지창이 부서지면 저주도 사라진다는 매우 명쾌한 논리를 깨달으며, 이야기는 깔끔하게 마무리 됩니다.
헨리는 가족 상봉을 하게 되었고, 카리나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잭 스패로우는 바다를 힘껏 누비며 즐겁게 항해를 계속할 테지요. 느낀 점이 있다면? 카리나의 살아가는 방식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계는 그녀를 마녀로 낙인찍었고, 그녀의 지식을 이상하게 여겼지만요.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감으로써 좋은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내가 누구의 딸이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낙인에 주눅들지 말아야 합니다. 외부의 평가에 너무 민감하게 더듬이를 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그런 작은 시도들로 얼마든지 시간을 소중히 채워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추신. 좋은 작품 늘 서둘러 권해주시는 만화광님께 감사드립니다.) / 2017. 06.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