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호주를 무대로 하고 있는 수작 영화 드레스메이커 이야기 입니다. 복수를 테마로 하고 있고, 의상들이 또 영화 보는 재미를 선물합니다. 기본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25년 전, 소녀 시절에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서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틸리양. 그녀는 호주를 떠나 유럽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이제 디자이너 라는 직업을 가지고 고향 마을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틸리를 기억할 것인가? 그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무렵 저는 예술 속의 의학이라는 교양서 한 권을 읽고 있었는데요. 의대 교수님께서, 아내가 기분이 별로일 때, 가방을 선물하면 기분이 2개월 동안 좋아지고, 원피스를 선물하면 기분이 6개월 동안 좋아진다고, 써놓아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여자 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예요. 남자인 저 역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입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주인공 틸리는 시대를 앞서가는 과감한 옷들로 단번에 마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엄마를 만나서는 과거 살인사건의 진실을 좀 알려달라고 설득해 보지만,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틸리는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 직접 가보며, 25년 전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나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는지, 유독 그 때의 살인사건만큼은 선명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꼬마 소년이 자신을 자꾸만 괴롭혔다는 것만큼은 분명한데... 틸리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열심히 하기로 결심합니다. 엄마를 씻겨드리고, 멋진 옷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마을에 미식 축구 경기가 열립니다. 틸리가 의자를 펴고 예쁜 옷 입은 채, 요염하게 앉아 있으니 남자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입니다. 옷이 날개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였어요. (실제로 날개 같은 옷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어릴 적 친구를 설득합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멋진 옷을 만들어 줄께. 그러니 25년 전 사건의 정보를 좀 내놔!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 스토리라인이 잘 맞아떨어져 나가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총과 주먹 싸움 말고도 얼마든지 복수의 길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조지 워싱턴의 금언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질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미친 몰리"라 묘사되며, 나 홀로 동떨어져 지내고 있는 틸리 엄마는 결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이 이상한 마을 던가타에서 자신의 딸을 믿고 지지했던 사람이며, 모정을 가지고, 틸리가 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음을 차라리 잘 되었다며 기뻐하는 장면이 꽤 뭉클했습니다. 말하자면, 딸이 던가타 마을에서 평생 살인범 누명쓰며 손가락질 당하는 인생 보다야 백배천배 낫다는 거죠.
몰리는 사연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어쩌면 순진하게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는 알고보니 나쁜 놈 - 바람둥이였습니다. 둘 사이에서 딸 틸리를 낳았지만, 이 남자는 몰리를 버리고 떠나서, 곧바로 돈 많은 주지사 딸과 결혼해 버리지요. 그렇게 아빠 없는 아이라며 험한 말을 들어가면서도, 틸리를 열심히 키웠던 마음, 그러다 딸과 생이별해 25년을 버텼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영화에서는 몰리의 과거가 생략되어 있지만, 몰리의 현재는 알 수 있습니다. 딸이 옷을 잘 만들고, 멋진 남자친구도 생기고 하니까, 노년의 자신의 삶 역시 더욱 재밌어졌음을 제법 풍부하게 느낄 수 있었네요.
중반부의 여러 반전들은 꽤 충격적입니다. 연인 테디가 갑작스럽게 사고사로 사망하고, 틸리는 이 마을에 대하여 좋을 게 없음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과거 살인 사건 역시 진실이 밝혀지면서, 소년이 실수로 자살을 했으며, 학교 선생이 거짓 증언을 했음이 드러납니다. 이 때, 경찰이라고 있는 파렛은, 사적인 약점이 잡혀서 진실을 파헤칠 수 없었고요. 자신의 먹고 사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린 틸리를 내쫓는 결정에 일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질 낮은 던가타 사람들은 앞다투어 틸리에게 찾아와, 새 옷, 예쁜 옷, 멋진 옷, 무대 옷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몰리와 테디의 연이은 죽음 앞에서 드레스메이커 틸리의 힘쎈 결단이 펼쳐지며, 이 작품은 말그대로 영화처럼 화염 속에 화려하게 막을 내립니다.
리뷰를 마치며 - 살아나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사건들과 뗄 수 없는 주지사가 아내에 의해서 살해당하는 제법 과격한 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잖아, 너는 다만 내 재산만이 필요했을 뿐이잖아, 내가 네 성적 욕망의 대상일 뿐이니? 그런 일방적 희생요구의 삶에 대하여 마침내 NO 라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권력의 정점인 주지사가 사라지며, 마을이 완전히 잿더미가 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어두운 세계관의 영화였지만 거기서 희망 하나를 발굴한다면, 저주 받은 인생 따위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분명 작은 재능은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과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 2017. 07. 2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