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조용히 홀로 있을 때,

 그 고독 속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예민하게 의식하는 불편한(?) 능력이 있어.

 

 약 20년 전, 젊은 날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의 교훈은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였어.

 나는 부끄럽게도... 추가합격을 했지만, 은사님의 권유로 등록을 과감히 포기했고,

 목사님이 되지 않은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깨끗하지 않고,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청춘시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성적 욕구와 이른바 "야동"이었어.

 연출되어져 있는 야동을 보고 나면, 아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가... 라는 심한 자괴감이 덮쳐왔지.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이런 은밀한 고민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더라고.

 참 멋져보이던 교회형도, 참 경건하던 친구도, 여러 사람이 실은 음란의 괴로움을 간직하고 살고 있던 것!

 

 그 사람들은 음란마귀와 싸우기라도 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지만...

 매우 약삭 빠른 나는, "성욕은 어쩔 수 없는걸" 이라고 쉽게 타협해 버리고, 어느 샌가 무감각 해지는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습관적으로 야동을 보고, 에휴 내가 그렇지 뭐, 한숨 푹 쉬고, 이것을 반복하는 것.

 야동은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매체야. 그래서 실제의 "아름답고 귀중한 성"을 왜곡해버리는 거야.

 

 얼마 전, CTS방송에서는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기다림"이래.

 기다림이 주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기다림 끝에 손에 얻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즐겨쓰시는 방법, 인간이 얻게 되는 "올바름" 이라는 미국 목사님의 말씀이 있었어.

 (*어머님이 정신적으로 편찮으셔서 우리 집은 자주 CBS, CTS를 틀어놓곤 해.)

 

 기다림의 기쁨이 무엇인지 나는 리듬게임 뱅드림으로 재밌게(?) 설명할 수 있어.

 이 게임은 음악에 맞춰서 터치를 하는 것인데, EXPERT(전문가) 최고 난이도로 가면 꽤 어려워.

 그런데 한 1년 쯤, 플레이 하니까, 25 난이도에서도 살아남아 신나게 클리어 하기 시작하더니,

 출시 1년이 넘어가는 요즘에는 가끔 26 난이도에서 풀콤보를 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더라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티어 드롭스 라는 25 난이도의 곡을 풀콤보 하던 그 두근거리는 순간을!

 

 기록해 두고 싶었어. 즉각적인 쾌락이 있고, 긴 기다림 끝에 얻게 되는 두근거리는 기쁨이 있다고.

 직구로 바로 쓴다면 - 야동을 멀리해보자. 노력해서 얻는 것을 소중히 여기자.

 구성애 선생님도 힘써 알려주잖아. 건강하게 자위하려면, 야동부터 끄자. 라고, 자신의 몸을 아끼자! 라고.

 

 은사님은 언제나 "견물생심(見物生心)" 즉 눈을 조심하라고 했어.

 눈을 감고 있으면 오히려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셨지. 그 깊은 의미를 아직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눈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서 지옥에 빠질 수 있다는 거야.

 

 글의 마지막을 쓰기란 역시 참 어렵네. 떠오르는 생각이 없네.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네.

 카메라에 찍어놓은 구절을 필사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

 "명심하세요.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가 작게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렸다고 해서 자책할 일도 아니고,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의 심플하지만 단단한 루틴과 습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오늘부터 바꾸면 되지 않을까.

 결심한 좋은 습관이 있다면 계속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맑게 살아갈 수 있기를.

 실수할 때 자책하지 말고, 다만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어 오늘도 힘차게 가슴을 펴보기를.

 - 2019. 06. 나의 일기 4화

by 시북 2019.06.09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