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35 토트넘 레전드,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시북(허지수) 2020. 9. 21. 23:55

 

 서론! 토트넘의 신성, 손흥민 선수의 2020-21시즌 EPL 한 경기 네 골을 축하합니다!

 본론! 2008년에 초안을 썼던 글임을 밝혀둡니다. 잉글랜드 리그에서는 어쩐지 남미선수들이 활약한 경우가 많이 없었습니다. 스타일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여러가지로 그 이유를 분석하곤 하는데, 일단 분석은 제가 각국리그에 해박한 축구전문가가 아니므로 잠시 제쳐두고 오늘은 잉글랜드리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레전드 남미스타 한 명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오시 아르딜레스 이야기 입니다.

 

 프로필

 

 이름 : 풀네임 Osvaldo César Ardiles (애칭 오시를 붙여서 오시 아르딜레스라고도 많이 부릅니다)
 생년월일 : 1952년 8월 3일
 신장/체중 : 169cm / 66kg
 포지션 : MF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63시합 8득점

 

 토트넘의 전설, 오시 아르딜레스 이야기

 

 그렇습니다. 어딜가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요. 확실히 예전부터 영국리그에는 남미선수들의 활약상이 거의 없었지만, 분명 스타플레이어도 있었습니다. 토트넘에서 활약했던 아르딜레스도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잉글랜드에서 성공한, 손꼽히던 전설적 선수였습니다.

 

 아르딜레스는 체구는 작지만 대단한 테크닉을 자랑하던 아르헨티나의 훌륭한 테크니션이었습니다. 전술적인 눈도 뛰어났고, 지성을 잘 살린 감각적인 플레이로 팬들을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천재적인 테크닉에 관중들이 찬사를 보냈고, 잉글랜드 리그에서도 당대 대표적인 스타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두뇌적인 플레이의 대가였는데, 지금은 변호사 자격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973년부터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아르딜레스는 이윽코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 1978년에는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됩니다. 7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는 켐페스, 파사렐라, 아르딜레스 등을 앞세워서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아르딜레스는 이 때의 우승멤버 중 한 명이었으며, 대회 최우수 미드필더에 선정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활약으로 인해서, 아르헨티나를 떠나서 잉글랜드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가 몸담은 팀이 (이젠 우리에게도 친숙한!) 바로 토트넘 핫스퍼였지요.

 

 잉글랜드로 와서도 그의 플레이는 화려했으며, 월드컵 우승멤버답게 스타 선수로서 멋진 활약을 펼쳐나갔습니다. 토트넘의 부동의 플레이메이커로서 군림하였으며, 80년대 초반 컵대회 2연패에 크게 공헌합니다. 한편 1982년에는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납니다.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섬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지요. 아르헨티나가 당시 군사독재정권이었고 내부문제를 외부로 돌려서 해결하고자 꼼수를 부리며 영국령이었던 포클랜드 섬에 시비를 건 것입니다. 결국 대처 영국수상은 강경 대응을 해서 몇 달간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두었고,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은 역으로 몰락해 버립니다.

 

 축구이야기 중에 잠깐 역사이야기 해서 죄송합니다 (웃음) 여하튼 이러한 사정으로 두 나라는 사이가 안 좋게 되었고, 아르헨티나인이던 아르딜레스는 1982년 일시적으로 파리 생제르망에 임대 이적을 해서, 프랑스에서 뛰어야만 했던 기구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토트넘 축구팬들은 아르딜레스의 이러한 안타까운 사정에 너무도 아쉬워한 나머지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에게 주고, 우리에게 오시 아르딜레스를 달라" 라는 현수막까지 걸었다는 전설적(?)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토트넘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사랑받았던 아르딜레스 였습니다.

 

 한편 1982년 월드컵에도 아르딜레스는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에이스 10번 외에는 알파벳 순으로 등번호를 붙이게 되었는데 아르딜레스는 A로 시작한 덕분에 1번을 달고서 필드에서 뛰게 됩니다. 그래서 아르딜레스는 등번호 1번을 달고 뛰었던 필드 플레이어로서 또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는 비화가 있습니다. 하하. FIFA는 2006년에 등번호 1번은 골키퍼만 사용할 수 있도록 확정하게 되었는데, 이제 이 아르딜레스의 1번을 달았던 필드플레이어 이야기는 앞으로는 다시 못 볼 전설로 남겠군요. 한편, 아르헨티나는 82년 월드컵에서는 브라질과 이탈리아에게 밀리며 2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포클랜드 전쟁도 끝나고, 아르딜레스는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복귀하게 됩니다. 30대가 넘어가던 아르딜레스는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나 1983-84시즌 토트넘의 UEFA컵 우승에 공헌하면서, 특유의 사령탑적인 존재감을 자랑했습니다. 1984년 토트넘 UEFA컵 우승! 토트넘의 훌륭한 국제무대 트로피였습니다.

 

 여하튼 아르딜레스는 이후 1988년까지 토트넘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토트넘에서 10년간 몸담으며 221시합이나 소화했습니다. 남미선수로서는 정말 드물게 맹활약한 선수였지요. 이후에는 몇몇 프리미어리그 팀들을 거쳐서 1991년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역시 그 지성을 살려서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뉴캐슬, 토트넘 등 여러 팀의 감독을 맡는 등 의욕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까지는 거두지 못했고, 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감독생활을 하며, 최우수감독에 선정되는 등 수완을 발휘해 나갔습니다. 2008년 시점에는, 남미에서 축구팀 감독으로서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준비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80년대 토트넘의 전설의 한 축을 담당했던 명선수 아르딜레스, 그는 국내에 많이 알려진 선수는 아닌지라 자료가 많지 않았기에, 마치면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네요.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했던 선구자적인 레전드라고 해야할까, 뭐 여하튼 매우 인상적이며 훌륭했던 아르헨티나 선수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07. 29. 초안작성.

 2020. 09. 21. 본문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