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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성능폭격기 장 피에르 파팽

시북(허지수) 2008. 7. 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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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Pierre Papin : From photobucket.com

 장 피에르 파팽, 그는 프랑스리그에서 5년 연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던 에이스 스트라이커이자, 1991년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던 레전드였습니다. 오늘은 애독자님의 요청으로 파팽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프로필

 이름 : Jean-Pierre Papin
 생년월일 : 1963년 11월 5일
 신장/체중 : 177cm / 70kg
 포지션 : FW
 국적 : 프랑스
 국가대표 : 54시합 30득점

 프랑스의 고성능폭격기, JPP 파팽 이야기

 장 피에르 파팽은 어린 시절 골키퍼를 맡았다고 합니다. 그 골키퍼 소년이 훗날 프랑스를 대표하던 명공격수로 이름을 날리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지요.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소년 파팽이 시합에서 무려 9 실점을 내주며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파팽은 너무나 속상해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감독이 파팽을 달래고자, 다음 시합부터는 골키퍼를 그만두게하고 공격수로 기용하게 됩니다. 그 날 이후 파팽은 이렇게 공격수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이 변화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파팽은 공격수로서의 재능이 있었던 것입니다! 2부리그에서 데뷔하자마자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벨기에리그로 건너가서 20골을 몰아 넣으며 멋지게 득점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서 프랑스 국가대표로도 발탁. 승승장구하며 젊은 에이스로 주목받게 됩니다. 1986년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는데, 아직은 새내기 대표선수였기 때문에, 확고한 주포 공격수의 지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월드컵에서 골을 넣기도 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프랑스는 3위를 기록합니다.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던 파팽은 1986-87시즌, 프랑스의 명문 마르세유로 이적하게 됩니다. 첫 시즌 두 자리수 득점을 올리면서 실력을 보여준 파팽. 그리고 이듬해부터 파팽의 눈부신 활약이 펼쳐집니다. 골... 골... 골, 고성능폭격기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기세로 골을 넣고, 또 넣고, 또 넣었습니다. 1987-88시즌부터 무려 5년 연속으로 프랑스리그 득점왕이라는 경이적인 활약이었습니다. 마르세유도 리그 4연패를 기록하는 등 파죽지세로 고공비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만 인정받은 공격수가 아니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는 놀라운 골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잠깐 스타일을 살펴보자면, 정확도가 대단했습니다. 골문 구석으로 확실하게 차 넣었습니다. 특히 골문 오른쪽 45도 위치에서의 플레이는 파팽의 전매특허였습니다. 빠른 스피드, 정확한 타이밍, 동물적인 슈팅감각, 다양한 골들이 아름답게 터져나갔습니다. 공중볼에도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기 때문에, 예술적이고 기막힌 골들도 많았습니다. 장난스럽기 까지한 유쾌한 파팽의 모습에 수 많은 마르세유 팬들이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장 피에르 파팽은 1991년 발롱도르(유럽최우수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정말로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였습니다. 마르세유 서포터들은 20세기 최고의 마르세유 선수로 서슴없이 파팽을 꼽았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인 선수였으며, 눈부신 맹활약이었습니다. 발롱도르 수상 당시, 프랑스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수상했던 선수는 지금까지도 파팽이 유일합니다. 프랑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파팽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 명료합니다. 바로 월드컵에서 활약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1990년과 1994년 연속으로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1994년에는 불가리아에게 극적으로 뒤집히면서, 월드컵을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1984년 유로 우승, 1986년 월드컵 3위,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을 자랑하게 되는 프랑스였지만 이렇게 어두운 시절들도 있었습니다. 하필 그 시절의 에이스 스트라이커가 파팽이었습니다. 실력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입니다.

 혹자는 파팽을 두고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극찬하기도 합니다. 또한 비운의 에이스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어쨌든 그가 프랑스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임은 틀림없습니다. 전설의 플라니티 시대, 황금의 지단 시대, 그 사이에 파팽이 활약한 비운의 시기가 있었던 것이 팬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한편 파팽은 1992년 마르세유를 떠나서 이탈리아의 명문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파팽은 세리에A 에서도 활약하면서 두 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또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공헌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30대가 넘어갔고,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의 보르도 등에서 활약하다가 1999년 현역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파팽이 뛰던 그 시대를 흔히 프랑스의 저주받은 세대라고도 표현합니다. 두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 예선탈락을 경험하면서,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떨칠 기회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받은 세대일 뿐, 비록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클럽에서 보란듯이 눈부신 활약을 했던 선수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맨유의 킹으로 불리던 프랑스 선수 에릭 칸토나, 마르세유의 전설로 통하는 장 피에르 파팽. 모두 훌륭한 레전드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던 명선수였습니다. 파팽은 은퇴 후, 최근에는 감독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파팽은 그 높은 인기 덕분인지, 유튜브에서 조회수 약 20만을 달리고 있는 컴필레이션 영상이 존재합니다. 5분짜리 영상을 덧붙이면서 이야기를 마칩니다. 언제나 즐겁게 애독해주시는 분들에게 오늘도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